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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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그것을 얻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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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을 걸으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어린 자식이 결국 아비에게 살이 찢어지는 매를 맞을 때 철없는 자식은 아비의 마음을 모르니 때릴 때 고개를 숙이는 아비를 보고는 ‘왜 내가 맞는데 아빠가 울어요.’라고 울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매를 맞을 때의 아픔보다 2배 5배 10배 더 아프기에 부모 눈에서 눈물이 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망으로 이끄는 죄와 멸망의 세상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영혼의 육체에 사랑의 매를 때리시고 당신은 사람의 몸이 느끼는 그 아픔과 해산할 때의 고통보다 1000배의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면서 기다리신다. 그러나 자식을 길러본 사람은 육신의 부모자식간에 그런 애틋한 마음을 아버지께서 주셨음을 알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은 둘째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거룩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되 태초에 아버지의 품에 함께 계셨던 독생자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이 말씀을 통해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더 자신의 속에 죄가 거하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생각과 의와 이 헛된 세상으로부터 십자가아래로 나아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당시 로마의 편에 섰던 세리는 자기민족 사람들의 집이나 그들의 사업에 가서 세금을 걷되 힘이 있으니 세금을 떼어갈 때마다 자신을 위해 항상 귀한 것 한 가지씩을 가져갔다. 한편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자기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서 그들이 하는 일을 고난에 빠뜨려 핍박했다. 그들은 이렇게 법이 정한 만큼만을 받지 않고 더 많이 받아서 챙겼으며 또한 세금거두는 그 일을 한 대가를 로마로부터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매국노나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나라를 구하고자 올바른 결정을 했으며 의로운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태는 그의 애비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원하는 대로 취했으며 애비의 힘으로 학벌도 있었기에 두루 다니며 세금을 얻어 자기의 육적인 욕심을 채우면서 죄와 세상에 빠져 살다 한 소문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돈 벌레에다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던 마태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께로 오직 죄의 용서함을 구하고자 자신의 거하는 처소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갔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또한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다른 높은 세리들도 불렀으니 그들도 자신처럼 스스로를 죄인으로 깨닫고 있을 것임을 예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뒤를 밟으며 말과 행위를 기록하던 14명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그 자리에 함께 했으니 그들은 자기들이 그곳에 온 목적을 이루고자 어떠한 말을 던져서 그리스도를 곤란에 빠뜨릴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죄인이나 세리와는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한 자신들은 백성들의 영혼을 인도하며 육의 욕심과 영광을 취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자신을 거룩한 주의 종으로 여겼으니 지금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율법을 어긴 죄인들이었다. 즉 그리스도를 더러운 자라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또한 그 기록도 남기기 위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뿐만 아니라 마태의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온 자들과 또한 자신을 해하려고 그곳에 함께하고 있는 그 큰 건물의 목자들도 공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의사는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필요하되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든 병자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병에 걸려있음을 모르는 사람과 알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며 끝까지 부인하는 사람과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과 의사도 자신의 중한 병은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 병은 내가 안다며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포기하는 사람과 세상일로 바쁘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의사가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수많은 병든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더러운 죽음의 병에서 낫기를 원하는 사람만 찾아가 고개를 숙인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의원인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으로 인하여 죄들을 범했으며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짓고 있으며 또한 내일도 동일하게 짓다 결국 그 죄에 묶여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기는 자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셨다. 행여 그리스도께서 그런 자들은 부르신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과 인격이 스스로 영적인 의원을 거부하며 오히려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선악을 더 깊이 숨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발을 대고 걸어 다니는 모든 영적인 병자들 중에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 사함 받기 원하는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려고 오신 것이되 원수는 악한 서기관들을 통해 마태복음에서는 회개시킨다는 말씀을 뺐으니 누가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므로 마태의 초대를 받은 자들과 또한 인자를 따라다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이제는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전자의 영혼들은 돌이킬 것들을 족히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앉은 그 자리와 가진 그 소유권들이 더욱 좋았으니 돌이켜 그리스도를 좇는 자가 없었고 후자의 영혼들은 그들의 교만한 목회자라는 자리가 그들을 돌이키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마태만 그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좇았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다른 세리들과 성전의 목자들도 부르셨으나 그들은 육의 욕심과 교만에서 나오는 그 죄와 불로 멸망을 당하는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자신의 영생보다 더욱더 사랑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기에 영적인 의원을 거부하되 입술로는 여호와를 믿는다며 제사를 드렸으니 그들은 불순종으로 사막에서 엎드러진 그 다수의 후손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둘째사람을 공평하게 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목자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한 가지 빛을 더 알리셨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뜻은 이것이다.
“너희는 그 성전의 회당에 와서 양을 잡고 소를 잡고 비둘기를 잡고 온갖 짐승들을 잡아 피를 흘리는 도다. 하지만 예배를 드린 후에 그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자기의 그 죄악된 삶을 사는 도다. 그러나 이렇게 거룩의 모양을 보이는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너의 마음에 있는 그 죄악 한 가지를 이기고 거룩하게 되는 그런 자를 아버지께서는 더 원하시는 도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건강하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으리요?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이 세상에서 나와 영적인 의원을 따르는 자만이 인자께 거룩의 능력을 얻어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와 이 세상을 이기며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영적인 병에서 고침 받은 자가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의와 거룩의 열매를 아버지께 보여드림이요 영광의 복음의 비밀을 위해 입을 벌리며 거룩의 사명을 자신과 이웃에게 다했기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병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병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신의 마음에 음란을 품고 또한 욕심을 품는다. 또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에 완고함을 가득히 채운다. 하지만 사람이 이성 있는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악한 원수에게로 마음을 빼앗긴 결과는 자기의 육체에 나타나니 죽은 피가 나가지 못하고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어 육에 한 번 충격이 올 때에 어떤 자는 몸의 한 부분을 붙들리고 어떤 자는 여러 부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으로 나타난 그것이 곧 소수에게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로 이끄시고자 베푸시는 사랑의 기회이되 다수에게는 곧 맞이할 사망의 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의 안으로 들어가 이제는 그의 마음에서 밖에 있는 육신으로 나오는 것이니 사람이 그 병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과연 무엇을 행하여야 하리요? 그가 나음을 원할 때에는 단지 그 마음을 돌이키고 그가 아버지께로 붙들리면 그 병에서 쉽게 해방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하며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리니 아들의 은혜를 거부한 자들은 그 육의 질병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밖에서 들어온 그 죄를 안고 그대로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렇게 욕심과 음란이 가득한 마음에서 나온 병을 가지고 사망으로 내려가던 한 완고한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나왔으니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회개와 천국의 복음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에 빼앗긴 그 목자들의 마음을 깊이 찔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욕심과 자기의 높아짐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깊었으니 찔림을 받고도 돌이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성전목자들은 육과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을 돌이키고 자기가 앉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인자를 잡아죽이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꼬투리를 잡아 합당한 증거를 모으고자 늘 뒤에서 인자의 말과 행위를 하나하나 듣고 보며 꼼꼼히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시떨기의 밭을 가진 목자들을 따르며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과 그 종교지도자들의 관계는 이와 같았다.
사람은 처음에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선하게 창조되었으니 불의하고 죄악을 행치 않고 오히려 의롭고 거룩한 말과 행위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일이 만일 자기에게 유익을 주면 불의하고 더러운 일과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든 위에 있는 자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옳지 않은 일을 시키면 밑에 있는 자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아도 행하니 그것은 자기에게도 유익을 주기 때문이요 그래야 현재의 자리를 지키며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윗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말하며 행하는 자들도 있으니 그들의 마음은 더욱더 악하다.
당시 전통의 목자들을 따르는 백성들 가운데 이러한 자들이 넷이 있었으니 그들은 오로지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원했다. 즉 저 자가 만일 이 병든 자를 고치면 저 자는 진짜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요 오로지 신이라고 여길까 시험코자 했다. 고로 그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죄에 붙들려 침상에 누워 곧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가서 이런 말로 권했다. “네가 만일 그에게 가서 잘못되어도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는 없노라. 또한 우리도 그를 믿고 싶으니 네가 온전하게 되면 우리도 그를 믿겠노라. 그러니 이대로 가만히 누워있기보다는 한번 가보자.” 이에 병든 자도 자신이 더 악해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자는 사망에 이른 자인데 네가 살릴 수 있으면 한 번 살려보라.’는 뜻으로 지붕을 뜯고 달아 내렸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를 심히 질투하고 시기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꼬투리를 잡아 증거를 모으고자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항상 14명의 서기관을 보내어 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를 그대로 기록하여 자기들에게 알리도록 명했다. 나중에 그리스도를 잡았을 때 그것을 보고 그것들 가운데 몇 개를 뽑아 신령한 율법이 아닌 의문의 율법으로 인자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날 그곳에는 늘 인자만을 맡아 뒤에서 좇아 다니며 듣고 기록하는 서기관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바리새인들도 함께 있었으나 백성들의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자신들을 백성들이 보고 깨달을까 두려워 서기관들의 사이사이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가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유익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 숨어 사람들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먼저 병든 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에 더러움이 이제는 더 이상 마음에 거하지 아니하고 네 육으로 나왔으니 네가 이 병을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였도다. 그러므로 그 더러운 마음을 너의 마음에서 끄집어내어 네 마음도 또한 네 육도 깨끗함을 얻으라.”
한편 그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이 인자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인자를 시험코자 하느뇨? 아버지께서도 너희들을 시험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돌이키길 원하시는 도다. 하물며 사람이 아버지를 시험치 말라 율법에도 나와있은즉 그러나 너희의 마음에 의심이 가득 차 인자를 시험코자 하느뇨?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함께 누워 있겠느뇨? 너의 의심을 버리고 아버지를 믿으면 인자를 믿으라. 인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왔으며 아버지의 일을 이 땅에서 행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이 영혼이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 그 죄악을 내려놓았으니 인자가 이 자를 용서하였으며 이제는 일어나 나아가거라 하였노라.”
그런데 그때까지 큰 건물의 안에서 가르치는 목자들은 사람이 걷고 보고 듣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기적은 보았으되 죄 사함을 얻었다 함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또한 늘 성전의 제사를 인도하되 서원한 자가 드리는 참된 제사의 의미를 모르니 오직 짐승의 피를 뿌리는 성전제사로만 죄의 사함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참으로 분명한 꼬투리를 잡았다고 확신하며 인자의 참람됨을 기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주의 종이요 여호와를 아노라 믿노라 하되 오히려 메시아를 잡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들도 불쌍히 여기시어 사람이 어느 곳에 서있을지라도 그가 마음을 돌이킬 때에는 용서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보다 말씀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신이 걷던 그 굽은 길에서 돌이켜 왕의 대로로 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안에 있는 죄가 육의 욕심과 헛된 영광을 놓지 못하는 그들의 생각과 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에게 계시를 주시며 성전목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실 때 그들을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개들이라고 알려주셨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에는 성전의 목자들이 개들의 후손임을 아셨기에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시험하며 꼬투리를 잡으려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너의 병에서 나았다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너의 죄가 용서함을 얻었다고 하셨다. 즉 죄 사함은 아버지의 권위요 그 권위가 인자에게 있음을 나타내므로 병든 자도 믿고 돌이키며 또한 그를 데리고 함께 온 자들과 또한 목자들도 믿고 돌이키기를 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어 지금까지도 병든 자를 데리고 온 자들이 믿음이 있었도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의 깨달음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와 세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들에게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그 병든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자가 죄를 사하심을 믿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악을 다 내려놓았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에서 용서받았음을 믿거든 일어나 걸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을 벌리고 싶어도 감히 벌리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자신이 마음의 중심으로 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고 읽으심이요 또한 죄인을 심판하여 유황불 못에 넣으시는 그 두려우신 하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앞에 서계심을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일 이후로 그는 늘 바리새인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그 유대인들과 함께 살지 못하였으니 광야에 나가 그도 그곳에서 애통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는 그 복을 얻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나라의 왕이 자기의 뜻을 이룬 백성들을 위하여 큰 상급을 준비해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백성들이 내가 준비한 이어달리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도다. 누구든지 이어달리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이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도 나의 뜻을 이룰 수 없으니 그는 상급을 얻지 못하겠노라.” 왕의 말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려고 출발점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해야 하는 그 길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보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 출발점에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자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옳게 여긴 사람들은 그 출발점에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며 또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의 왕이 원하는 경주이니 우리는 나중에 상급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곱 명은 오직 왕의 뜻을 이루기 원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이 달리기를 시작하자 그 왕의 아들이 와서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가 하여 펴보니 거기에는 자기가 평소에 알고 싶었던 궁금한 것들이 정확하게 써있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그것을 재미있게 읽으며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자기에게 정해진 만큼을 달린 후 두 번째 사람의 손을 치니 그 왕의 아들은 그 두 번째 사람에게도 동일한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사람도 자기가 궁금해하던 것을 재미있게 읽으며 기쁘게 달렸다. 그리고 일곱 번째 사람까지 모두다 이와 같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출발점에 서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게에서 맛있는 것을 사와서 먹느라 그 경기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가 가게에 가서 맛있는 것을 많이 사먹는 이것이 왕의 뜻이요 왕이 원하는 경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맛있는 것을 제일 많이 가진 자가 그 이어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므로 그는 달리는 자들의 뒤를 쫓아가면서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온 몸을 때렸다. 그러면서 말하길 우리는 왕의 이름과 왕의 뜻으로 너희를 이렇게 처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일곱 사람은 그들의 방해와 고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어달리기를 마쳤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신이 준비한 금 면류관을 그 일곱 명에게 씌워주고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앉혀주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항상 일곱 교회를 통해 진리의 비밀을 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오직 아버지의 말씀을 가지고 직접 다스렸다. 그리고 초대교회 이후의 다른 교회시대의 일곱 교회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 진리의 비밀을 가지고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를 따르는 자들은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마음과 그 행위를 오직 아버지와 아들께만 드린 교회는 항상 일곱 교회요 또한 마지막 교회인 오늘의 시대에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의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 부활의 약속을 믿고 그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정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내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진리를 깨닫고 순종해 거룩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과 이방의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 피로인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 소아시아와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과 그 행위를 오직 주님께만 드린 자의 피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모든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대환난 때에 목 베임을 통한 피 흘림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가 회개와 천국의 복음을 땅끝까지 다 전파한 후 그 마지막 피를 흘림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내려와 그 천년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그 약속을 은혜로 받은 후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롭지 못한 자기를 부인하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또한 복음을 다 전한 후 마지막에는 피의 순교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교회시대에 그 길을 걷는 자들은 때로는 기뻐하며 때로는 크게 기뻐하니 그것은 그 길에서 자신이 알고 싶어하던 진리의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들은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에 이른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그들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러 자녀 됨의 그 약속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진리와 생명과 구원의 십자가 길은 고난의 길이되 기쁨과 소망의 길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드리면 그곳에 자신의 입과 손과 발과 몸도 드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되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곳에 자신이 원하여 스스로 드린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그 길을 자원하여 걷는 자들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니 아들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에 늘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 믿음으로 그 길을 걷는 자는 어느 시대든 마음에 평화도 항상 있다.
결국 이 땅에서 사람들의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볼 때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마지막에 그 환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설교하는 자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가 늘 충만하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마음에 없다면 그는 누구의 제자요 무엇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이겠는가? 그리하여 육과 세상을 가지고 있는 거짓된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마지막 때에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적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아버지의 택하신 자들을 핍박하는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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