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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19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11/01/09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살고자하는 마음
  3. 2011/01/04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살고자하는 마음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진리를 모르는 자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면 그의 말을 듣고 따라서 행하는 자들도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자기가 지금 왜 그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이 중생한 자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혼과 마음의 거룩을 얻게 되니 어찌 진리를 모르는 자의 행위와 말이 거룩해지리요? 오히려 그들은 예수이름을 이용해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 것들을 취하며 자기의 생각을 진리로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므로 둘 다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으니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먼저 나가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전하라고 하시거나 또는 그 어떤 말과 행위를 원치 않으시고 오직 진리만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다 진리를 배우던 제자들이 진리의 한 부분을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깨달은 그 제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하지만 그들을 보내시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처럼 질서가운데 계시니 82명 가운데 70을 먼저 전하기 쉬운 이스라엘의 모든 마을로 보내셨으며 12은 독사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던 성전 쪽으로 보내셨다. 그러므로 전자는 갈릴리를 비롯해 사마리아와 유대의 각 마을에서 하루 이틀을 머물며 진리를 가르쳤으되 예루살렘으로 갔던 12은 오직 해가 올라와서 갔으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옴은 성전의 주변에 거하던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거부당할 것을 모르고 그 헛된 일을 시키신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니 당연히 모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12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심히 패역한 자들에게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12은 나중에 자신이 없을 때에 그 영혼들이 거부한 것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있으니 사람의 손에는 없음을 깨닫고 율법이 아닌 의문에 붙들린 그 영혼들이 오직 불쌍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전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획대로 나중에 맛디아와 11는 자신이 거절 받았던 그 날을 기억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 오직 진리만을 담대하게 전하되 자신을 죽이는 자들도 불쌍히 여겼다.

 

당시 예루살렘으로 보냄을 받은 베드로는 우선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한 영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에는 율법과 계명이 진리인줄 알고 따랐소. 그러나 율법도 계명도 그것을 만드신 이가 진리요. 그러니 그것은 오로지 진리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소이다.” 이에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는 ‘그것을 만든 이가 누구요?’라고 물었고 베드로는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 하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하자 성전을 통해 육의 이익을 얻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양쪽 뺨을 때리면서 말하길 ‘우리가 율법과 계명을 수없이 지켜왔으며 모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것을 지키므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도다.’라고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듣자 베드로는 그 영혼에게 다시 ‘그렇소이다. 그러나 계명과 율법이 먼저요 율법과 계명을 준 자가 먼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육신의 배를 채우고자 성전에서 일하던 자는 대뜸 준 사람은 모세라고 답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세가 아니요 모세는 받은 자이니 준 자는 여호와이시며 여호와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소이다.’라고 말하니 성전에서 사고파는 행위는 내가 아니요 제사를 위한 것이라는 의로움을 품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말을 듣자 또다시 양쪽 뺨을 때리며 ‘네가 그리스도냐?’라 하되 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쌍욕을 하며 가판대를 둘러엎지 않고 ‘내가 아니요 나는 그를 따르는 제자요’라고 했다. 이에 그는 땅에서 돌 하나를 집어서 던지며 ‘너나 율법과 계명을 지키라. 그리고 그 자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어찌 알 수 있겠느뇨? 그런데 넌 랍비에게 가르침은 받았느뇨? 네가 어디서 말씀을 배웠느뇨?’라고 소리를 지르며 베드로를 향해 계속 돌을 집어 던졌으니 그는 다수의 힘으로 때렸고 베드로는 맞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진리를 위해 자신이 죽으면서까지 다른 자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자신이 진리를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되 유전과 교훈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는 영혼들을 자기의 생각으로 비판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다 결국 피 흘려서 죽이므로 자신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임을 그 미움과 살인이 증거한다. 그런데 당시 12이 핍박이 가장 심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다른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했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12제자들과 70인의 전도대를 진리를 위해 보내실 때 그들에게 명하신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었으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70인과 달리 12에게는 이방인과 사마리아를 거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쉬운 곳에 가서 전하지 말고 오직 앞날에 가장 큰 핍박이 있을 그 성전의 앞에 가서 전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그 시기부터 이미 마지막 날의 준비를 하여 자신이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승천한 후 닥칠 그 핍박의 날에도 오직 진리만을 붙들고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려 하심이었다.

 

둘째 차라리 그리스도에게 가라고 하면 말이 어색해지니 사람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유대인들로 본다. 그러나 양이 누구인가를 깨달으면 그들이 가서 오직 진리만 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어린 양은 속죄제사의 제물로 쓰이는 짐승이니 구약예언에 따라 이스라엘의 어린 양은 오직 인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짐승의 피가 아니요 깨끗한 피로 구속 받을 수 있기에 제자들이 그 거룩한 피를 전했던 것이요 또한 그 어린 양에게로 나올 수 있는 그 길을 예비하려는 것이었다. 즉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으나 어린 양을 잃어버린 불쌍한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거룩과 부활을 위해 이스라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로 가게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할례 받은 유대인이나 거듭난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고난은 원치 않고 그저 부스러기만 드린다. 즉 자기의 생각을 따르고 세상의 풍속을 좆고 자기의 의와 선을 구하면서 돈과 행위를 드리는 것이 더 쉽고 또한 자기의 육신에도 유익이 되니 십자가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자의 그 거룩한 피를 통해서가 아니요 오히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함을 인정받기 원함이되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죄가 있으니 스스로는 의롭거나 거룩하게 되지 못한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할례가 있든 없든 중생이 있든 없든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교회를 다니는 불신자들은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도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은 이미 교만이 하늘에 닿았으니 자기 입으로 이방인보다는 차라리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먼저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뜻이요 또는 이방과 가까운 주변지역부터 전하라는 뜻이라며 억지로 풀어서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공생애기간에 이미 이스라엘과 그 부근의 이방지역들을 다니셨으니 사람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함은 오직 자신의 속에 거하는 그 완악한 죄로 인함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키는 영혼만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그리스도는 머리시오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몸이다. 그런데 새하얀 털로 덮인 양을 볼 때 그의 머리만 희지 아니하고 그의 온 몸에 나있는 털도 동일하게 하얗다. 그러므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는 말씀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또한 그에게 붙는 사람들의 어떠함도 상징한다. 즉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상징하며 또한 동시에 그에게 붙는 사람들도 의롭고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몸이 이렇게 의롭고 거룩하다는 것을 교회시대에 자신의 신령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이 깨닫기 원하셨다. 또한 자신과 같이 거룩한 육체를 얻어 자신과 하나되어 영원토록 함께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의로움과 거룩함을 유지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머리와 몸을 양털처럼 하얗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시대에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은 그 머리 되신 분의 몸에 들어가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즉 거룩한 육체를 얻어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그들은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어떻게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었으며 또한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한가지 비유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왕이 자기의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 그 후 그 왕은 자기가 거하던 왕궁에서 나와 자기나라의 끝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을 만나러 갈 일이 생겼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곳에 사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일주일 후에 너희들을 찾아올 것이니라. 그때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왕궁의 음식을 준비해서 올 것이요 또한 금은보화를 많이 가져올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위하여 음식이나 금은보화를 준비하지 말아라. 오히려 목욕탕에 가서 깨끗하게 씻은 후 깨끗한 옷을 입고 내가 올 때까지 그 안에서 오직 나를 기다리며 있기를 바라는 도다. 그러면 내가 와서 왕이 입는 옷을 입혀 왕궁으로 데려갈 것이니라. 그리하여 그는 항상 나와 함께 거하며 왕과 같이 다스리겠노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왕이 누군지 언제 오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의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정물에 들어가서 왕이 올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왕의 말을 듣고도 왕의 마음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기는 했지만 깨끗하게 씻지를 않고 그냥 목욕탕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몸으로 그 더러운 구정물에 들어가 왕이 올 때까지 재미있게 놀면서 힘들게 음식과 금은보화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나는 은혜를 베푼 나의 왕을 위하여 이렇게 충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마음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자신과 함께 그 구정물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 첫 번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왕의 그 말에 순종했으니 목욕탕에 가서 깨끗하게 씻은 후 깨끗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깨끗한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올 때까지 그 목욕탕 안에 거하며 손꼽아 왕을 기다렸다. 또한 ‘왕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며 늘 진실한 마음을 품었다. 반면 네 번째 사람의 마음은 첫 번째 사람과 같이 그 구정물을 좋아했으니 왕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목욕탕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옷을 벗거나 목욕을 하지 않고 다시 나왔다. 그리고 나와서는 곧장 그 구정물로 달려들어가 놀면서 입술로는 늘 ‘왕이시여! 나와 내 자식들에게 복을 내리소서.’라고 했다. 왕이 오는 그 날까지 그랬다. 이에 그 왕은 일주일 후에 와서 자기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가 올 때까지 깨끗한 옷을 입고 기다린 그 세 번째 사람에게 왕이 입는 옷을 입혀주었다. 또한 자기가 말로 약속한 모든 것들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켰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것은 그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거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거룩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행해야 하리요?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변함없이 오직 아버지와 영원한 셋째 하늘에 두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거룩한 자이다. 그러다 그 마지막에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거룩을 끝까지 유지한 그가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니 그가 그리스도의 양으로서 자신의 마음에서 그 첫사랑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에 순종했기에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이 의롭고 정결해진다는 것을 믿는 자는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을 의롭고 정결케 하시는 그 믿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고 정결해진 그가 그리스도의 그 한 몸에 붙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 이 약속은 교회시대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끝인 이 마지막 때에도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는 영혼은 내일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다시 오셨을 때 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붙는다. 그리고 어떤 자는 거룩을 유지하다 144000으로서 대환난으로 들어가 복음을 다 전한 후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그 영광스런 몸에 붙는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반면 누군가 진리를 알고 싶어 이런 말들을 낸 사람을 지혜롭게 여기며 ‘생명과 연합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되 사실 나도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 그는 진리를 모르는 영혼들 가운데 솔직한 자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도 무슨 뜻인지를 당연히 모른다. 그러므로 생명과 연합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자가 이제는 그리스도와 연합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연합의 뜻과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는 것’이라며 또다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을 한다. 그래서 질문한 자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는 것은 또 무슨 뜻이고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보면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주관할 수 없다.’며 자신이 말하고도 설명하지 못하는 유전과 교훈에 속한 말을 반복한다.

 

이처럼 사람은 배우는 곳에 들어가거나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배우되 가르치는 자가 만일 진리의 깨달음이 없으면 배운 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가 정작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배우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가르치기를 좋아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유전과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안에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그 마음이 이미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 소경들이 소경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으려고 들어온 그 원수의 교만을 처음에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며 진리의 한 부분을 깨달은 70인 전도대와 12제자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허락하셨다. 당시 성전의 목자들은 탐욕이 심한 개들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탈취한 것들을 집에 쌓아두었으나 가난한 자들이 찾아와 배고프니 빵을 좀 달라하면 줄 것이 없다면서 그냥 먹던 것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계속적으로 제사를 인도하며 백성들을 모아 말씀을 전하며 살진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털을 입되 양 무리는 먹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두루 다니시며 그 백성들을 보시니 성전에 말씀을 읽는 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이 나와 있었지만 그 백성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 거하면서도 짖지 못하는 개들을 꾸짖으시되 특히 자기집에 쌓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를 인도하는 제사장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꾸짖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목자 없는 양같이 배고프고 목이 말라 고생하며 유리하는 그 백성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영혼들에게는 진리의 한 부분을 가르쳐주셨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12제자들과 또한 자신을 따르던 영혼들 가운데 70인을 택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아버지처럼 온전케 되기 원하는 백성들과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보내시며 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니 그 비유의 뜻은 이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키고 자신을 따라오는 영혼에게 진리를 주시며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런 정직한 영혼의 마음 눈을 열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덩이 안에 거하는 자들은 이 비유를 이용해 더 많은 자들이 선교사로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금하자고 가르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육과 세상에 있으며 또한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지 않았으며 또한 진리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세상보다 믿는 자들을 먼저 심판하시기 전에 그들 가운데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광야에서 살지고 좋은 꼴을 먹이시되 욕심과 교만을 위해 끝까지 짖지 못하는 개들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 세상과 함께 멸하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p cxspfirst"="" style="margin: 0px; padding: 0px; line-height: 1.6; 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2pt; word-break: keep-all;">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