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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2/22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12/16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12/14
    가슴에 금띠를 띠고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12/05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살고자하는 마음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이 말씀은 2천년 전에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일이요 앞으로 마지막 때에 동일하게 있을 그 일에 대한 비밀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일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인자로 오셨던 나사렛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른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되 그렇지 못했던 성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동일한 일이 은혜시대가 끝나고 환난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그대로 이루어지리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잘 깨달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생명에 거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대로 이 땅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는 아버지를 믿는 유대인들 가운데 가난한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으나 성전을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는 전혀 환영 받지 못하셨다. 하지만 메시아를 사랑한 소수의 백성이든 사랑하지 않은 다수의 백성이든 그리스도를 따른 제자들이든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며 설교하던 목자들이든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의롭고 거룩한 자에게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고 불의하고 죄악된 자에게는 악한 자의 부활을 주기 위해 메시아가 심판 주로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함께 선지자를 통해 받은 예언도 있었으나 이미 광야생활을 할 때부터 장로들과 레위자손의 말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메시아에 대한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도 있었다. 하지만 성전의 목자들은 모세오경을 주로 가르치며 예언도 전했으나 자신의 혀가 만들어내는 유전과 교훈을 더욱더 강조해서 가르쳤다. 이처럼 목자들은 모세율법과 예언보다 자기들의 유전과 가르침을 더 전했으며 그로 인해 백성들은 그것을 더 많이 들어오고 있었으되 참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목자들이 전하는 설교가 옳은지 그른지 구약을 펴 비교하지 않고 ‘목자들의 말이니 당연히 맞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성전목자들이 가르치는 유전과 전통의 권위는 당연히 기록된 토라와 예언보다 더 위에 있었고 백성들은 날 때부터 토라를 미간과 손목에 매고 늘 외우면서도 스스로 세뇌를 당했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전부터 들어오던 메시아에 대한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것이었다. “거짓메시아가 오면 그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로도다. 그러므로 그가 오면 이 성전을 무너뜨리므로 너희들이 여호와로부터 흩어질 것이로되 너희들은 그 자를 오히려 기뻐하겠노라. 그러나 반대로 성전을 지키는 자들은 오히려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겠도다. 그것은 성전을 지키는 자들이 그 성전으로 인하여 백성들을 오직 여호와께로 묶으려 함이로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리신 후에 그들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여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임을 가르치시므로 백성들도 오직 인자를 통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리셨다. 또한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므로 거룩한 것이 아니요 날마다 그 거룩의 길을 걸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목자들은 크고 화려한 그 성전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얻는 썩어질 육의 부요와 영광에 마음이 있었으니 성전의 가르침은 ‘육 일 동안은 세상에 나가 열심히 살되 거룩한 날은 오직 거룩하게 지켜야 함이로도다.’라며 오히려 백성들을 세상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입을 벌린 독사처럼 자기의 유익을 위해 백성들의 영혼을 육과 세상으로 이끌되 말씀을 이용하는 그들을 독사새끼들로 보셨고 성전목자들은 메시아를 매우 미워했다.

 

또한 당시 성전목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수의 영혼들을 이끌고 있는 목자들처럼 지 애비와 애미 때부터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명예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성전에서 나와 메시아를 믿고 따르려면 자기의 손에 있던 부와 명예를 다 내려놓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 자신에게 육의 풍성함과 영광을 가져다 주고 있는 그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리고 있는 메시아를 환영할 수 없었다. 또한 거룩의 일을 하는 그들이 정작 거룩에 마음이 없었으니 마지막에 십자가를 통해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분명히 보고도 지금까지 참된 메시아를 거부하며 신명기18장의 유전을 들먹이며 예수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되 666을 넣어줄 가짜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환난 때에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둔 목자들도 마지막 때가 되면 택함 받은 일곱교회를 미워하며 이단으로 정죄하되 전통을 이용한다.

 

유대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르치며 들어오던 두 번째 유전과 전통은 이것이었다. “처음에 오는 자는 거짓된 자요 나중에 오는 자가 진짜이니 처음에 오는 자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성전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둘째로 오는 진짜 메시아는 너희들과 함께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의 그 민족을 되찾아 해방과 평화를 주겠노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은 유대를 침략한 로마와 싸워 해방을 얻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 안에 거하는 선악과 싸워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니 오히려 그들에게 이웃민족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천년왕국의 안식은 은혜시대와 환난시대가 끝나고 인자의 재림 후에 이루어지고 영원한 안식은 그 천국의 끝에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시작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백성들은 그 가르침이 아버지의 사랑과 공의임을 깨닫고 거룩한 성전의 복음을 이루고자 메시아를 사랑하며 따라다녔다. 그러나 성전목자들과 다수의 백성들은 자기의 원함을 이루어주지 않는 그리스도를 두 번째 유전과 전통에 따라 가짜로 여겨 십자가에 못박고 지금까지도 자신의 거룩에 애쓰지 않고 이웃에 거하는 나라들과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싸움을 하고 있으며 또한 언제까지 그렇게 칼과 총을 들고 전쟁을 연습할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적그리스도와 함께 3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의 완전한 해방을 얻고 전쟁의 끝에 평화를 맺을지라도 나중에 가짜메시아에게 버림받는다. 하지만 그 버림받음을 통해 가난한 백성들은 오히려 깨달음을 얻어 2천년 전에 오신 나사렛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된다. 또한 그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토라와 예언을 보니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에서 거룩의 믿음이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한 신약도 믿는다. 그러므로 가짜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하나로 묶고 666을 들고나왔을 때 그들이 이방민족의 일곱 교회와 하나가 되어 함께 싸우되 목 베임으로써 그 원수와 세상에게 넉넉히 승리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독사새끼들 가운데 바울처럼 뒤늦게 성전에서 돌이킨 소수가 다시금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며 또한 열방의 전통에 거하는 영혼들 가운데서도 오직 소수가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군중들과 병든 자들과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과 가룟유다는 모두다 유대인들이기에 죄에서 자유케 하는 권위나 죽은 자를 살리거나 병 고치는 능력이 오직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가 아브라함이 받은 그 복음과 부활의 언약에 이르게 하는 바로 그 메시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즉 교회시대로 말하면 이방인의 믿는 자들은 이미 보고 들어서 진리와 생명은 그리스도임을 믿고 있지만 문제는 자신의 목자들에게 듣고 있는 그 말씀들이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로 나온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냐 아니면 사람의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에 속한 비 진리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가난한 백성들은 유전과 전통의 가르침에 의해 거짓메시아인 인자를 어떻게 구별했으며 그리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성전에서 돌이켜 나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는가?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유전과 전통의 수많은 비 진리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참된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때나 교회시대나 마지막 때나 참으로 쉽고 간단하고 정확하고 이성적이고 인격적이니 자신의 속마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또한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을 들을 때 과연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에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육적이고 세상적인 복과 형통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있다. 또한 말씀을 전할 때 자기의 생각을 넣어 사람들을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에게로 이끄는 목자들도 있고 거룩에 마음 없는 율법의 행위로 인도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전통은 사람의 유전과 교훈을 전하며 들어왔으나 성경에는 고난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죄와 세상을 이기고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복음도 밝히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에 다수가 전자의 말을 달콤하게 여기며 따르고 있으니 후자보다는 전자의 말에 더 권위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공적인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원수가 주는 그 육과 세상의 시험에서 승리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사람들에게 썩어질 육을 채우시거나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높은 곳에 앉히시거나 사람의 생각과 의와 선으로 이끌게 하시거나 거룩에 마음이 없는 행위와 열심으로 이끄시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십자가의 물과 피를 통해 그들의 몸이 성전이 되게 하시어 아버지와 하나되므로 평화를 이루게 하심이었다.

 

하지만 믿는 자들 가운데 다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십자가를 볼 때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와 또한 이 세상을 이긴 후 거룩한 몸을 입고 부활에 이르는 믿음보다는 자신이 전통에서 들어온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니 멸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한다. 또한 자기생각과 지식으로 푸는 말씀을 끝까지 진리로 붙들리니 마지막 때에도 전자는 후자를 미워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끝까지 자기의 생각과 세상을 따르는 목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영혼들은 세상에게 버림을 받고도 끝까지 바빌론에 남는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펴 비교한 후 거기서 나온 영혼들은 광야에서 거룩의 믿음을 회복하리니 어떤 이는 휴거로 어떤 이는 목베임으로 어떤 이는 666을 받지 않고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도망을 다니다 살아서 천국에 들어가 생명을 얻는다.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사람은 눈이 감기면 음란한 것들을 못 보지만 거룩하신 말씀도 못 본다. 입이 닫히면 거짓말과 욕과 비판을 못하지만 복음도 못 전한다. 귀가 막히면 세상의 헛된 말들을 못 듣지만 말씀도 못 듣는다. 다리와 팔과 몸이 구부러지면 세상에 들어가 썩을 것을 거두지 못하지만 감사의 찬양과 시를 부를 때 성소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똑바로 서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모태에서 나와 1년 안에 혹은 태어나면서 불치병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엔 온전하다 나중에 성장하며 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른 원인이 있다.

 

우선 태어날 때 혹은 태어나 1년 안에 얻은 연약함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버지의 그 영광을 위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몸의 한 부분이 상하게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 이유는 첫째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시므로 그들이 그 몸을 가지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게 하심이요 둘째 그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몸이 낫고자 하는 소원과 더불어 그 썩어질 육신을 벗은 후에 얻게 될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을 품게 하심이다.

 

그런데 이렇게 택함 받은 자들 중에 아버지의 그 마음과 선하신 뜻을 이해하며 감사하는 영혼이 있으니 그는 아버지의 그 영광만을 소망하기에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온전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으로 들어가거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 그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오직 아버지와 아들을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그 때를 기다리며 견뎌내니 함께하는 그의 가족들도 고난이 아니요 오히려 소망 중에 기뻐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그가 온전한 몸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그의 연약한 몸을 치료해주신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그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 안에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을 이룬 후 그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택하심의 은혜를 받았어도 아버지께서 베푸신 은혜를 거부하고 감사치 않는 자가 있으니 그 영혼은 우선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영혼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한 자신을 그렇게 낳았다며 육신의 부모도 원망하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한 일반의 사람들을 시기하며 질투한다. 그러나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을지라도 원수와 같은 마음을 품는 영혼들은 아버지의 그 선하신 뜻과 반대로 나가게 되어있으니 그들은 헛된 영광을 얻고자 오히려 온전치 못한 그 육신을 이끌고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불평과 원망과 시기질투로 자신을 감싼 후 아버지의 은혜를 내팽개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꾼 자들의 가정은 당연히 지옥으로 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영광에도 이르지 못한다.

 

반면 하나님의 그 영광과 상관없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렇게 된 경우는 그의 죄로 인한 것이니 예를 들어 한 영혼이 앞을 못 본다. 그것은 그가 눈으로 범죄를 하였기에 아버지께서 허용하신 것이되 거기에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있다. 즉 전에는 온전했으나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해 상한 자기 몸의 한 부분을 보면서 이제는 그가 그 죄에서 돌이키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죄를 돌이키므로 회복된 자도 택함 받은 자들과 함께 거룩을 이루어가되 자기의 몸이 상한 것을 날마다 보면서도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오히려 그 죄를 붙들고 멸망 받을 이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당시 입이 닫힌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앞으로 이끌려 나온 그 영혼은 두 번째의 경우였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계속해 그 입술에서 범죄한 것이 세 가지였으니 첫째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설교를 들으면서 오히려 말씀을 늘 비판했고 둘째 자기가 원치 않는 말씀과 찔리는 말씀을 변경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늘 방해했고 셋째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그 입술에서 신령한 말들이 나온 것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범죄한 영혼에게도 선하신 뜻을 베푸신다 하셨으니 그가 입으로 범죄하였기에 결국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셨다. 그러므로 흑암의 세력은 그의 죄를 통해 그의 입을 합법적으로 붙들었으니 그는 48세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더러운 입을 열지 못하고 살다 그리스도를 붙들기 위하여 꼬투리를 모으고 있던 그 바리새인들에게 이용을 당하게 된다. 즉 바리새인들은 입이 닫힌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데려가므로 그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는지 또한 무슨 말을 하는지를 관찰하며 기록하고자 했으니 그를 찾아가 거짓말로 꼬였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꼬임에 빠진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데려와 그리스도의 앞에 세웠고 서기관들은 그리스도의 입과 행동을 지켜보며 기록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입을 열어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들의 속마음을 잘 알고 계셨다. 또한 범죄하여 몸의 한 부분이 상한 그 영혼을 찾아가 거룩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악한 뜻을 이루고자 거짓말로 회유한 사실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큰 건물 안에서 영광을 취하며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있는 목자들도 생명의 기회를 얻도록 즉 돌이키도록 그곳에 모여있는 독사새끼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하셨다.

 

“한 백성이 범죄하였기에 그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돌이킬 기회를 허용하시어 그의 육을 다물게 하셨도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지금은 원수에게 붙들려 그 입을 열고 닫고 하는 도다. 그러나 그 육이 사망한 후에는 아버지께서 너희 영혼이 그 입을 영원토록 닫게 하시겠노라.” 그러나 성전의 목자들은 자기의 뜻과 계획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생각했으니 썩어질 육의 욕심과 영광스런 그 자리에서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입을 열어 그리스도를 가짜라고 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입이 닫혀있던 그 영혼에게는 그가 범한 죄들을 돌이키므로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죄를 아느뇨? 네가 만일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너의 죄를 씻으라. 그리하면 너의 입도 회복이 되겠노라.” 이 말씀을 듣자 그 영혼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죄로 상한 자신의 몸의 한 부분을 보며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선하신 뜻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그 세 가지 죄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다 회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회개가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것임을 보시고 그의 입을 붙들고 있던 그 어둠의 세력을 불러내셨으니 그의 입은 원래대로 다시 열렸다.

 

이와 같이 사람은 죄악으로 인하여 어둠의 세력들이 그 영혼에게 들어가 누구에게는 입을 누구는 눈을 누구는 귀를 누구는 몸의 한 부분을 붙들어 그를 참으로 비천하게 만들되 그리스도께서 그 치유의 기적들을 보여주신 것은 그들이 온전케 되어 사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안에 거하며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그 더러운 것을 깨우친 후 회개를 통해 영혼의 깨끗함을 입고 또한 영혼의 깨끗함을 인하여 몸도 온전케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심이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동일하니 어디가 아프거나 붙들리거나 불치병에 걸리면 자신을 돌이키지는 않고 오직 병원과 은사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저 질병만 낫기 원한다.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어떤 나라의 백성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몇몇 선한 자들은 반짝거리는 금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들은 각자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자신의 집안 깊숙한 곳에다 고이 간직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왕은 참으로 욕심이 많고 악한 자였다. 그러므로 돌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들을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돌들을 길거리에다 많이 뿌려놓았다. 하지만 선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금은 탐났다. 그러므로 두 개의 검은 자루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그들의 집에 들어가 금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자기가 빼앗은 금들을 자기가 거하는 곳에다 깊이 숨겨놓고는 기뻐했다. 이에 그 선한 백성들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하니 억울하여 이곳 저곳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악한 왕은 금을 빼앗기고 우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불공평하고 불의하게 대우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위쪽에는 의로운 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선한 왕이 선한 백성들이 당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므로 그 왕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그 악한 나라의 왕을 쳐들어가 싸움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 악한 나라의 왕은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악한 왕은 자기의 모든 군대를 동원해 그 선한 나라의 왕과 마지막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그 선한 나라의 왕은 금을 소중히 여기는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서 그 마지막 전쟁을 이겼다. 이에 그 승리한 왕의 종들은 그 패한 나라의 왕궁에 들어가 그 악한 왕이 빼앗았던 금들을 다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띠로 만들어 전쟁에서 승리한 자기의 왕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 선한 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기념물로서 그 소중한 금띠를 자기의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그 무엇보다 금을 소중하게 여겼던 백성들은 그 선한 왕의 모습을 보고는 기뻐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 선한 왕은 그 소중한 것을 자신과 함께 싸움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나누어주며 그들의 허리에 묶어주었다.

 

이와 같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게 되면 그 이긴 나라가 진 나라의 가장 소중한 것을 왕께 드린다. 그러면 싸움에서 승리한 왕은 수고한 대가로서 그것을 취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에 능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이끄는 이 세상을 이기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아버지께로 받은 금을 자신의 허리에 묶으셨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같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얻어 허리에 묶게 된다.

 

그러므로 원수는 아버지와 아들께로 의롭고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고 셋째 하늘에서 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선악의 말과 행위로서 자신과 다른 종들을 더럽혀갔다. 그러나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범죄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그를 셋째 하늘에서 쫓아내셨다. 그리고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들은 마지막에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지막에 그 형벌로 들어가게 될 원수는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자이다.

 

그런데 원수는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난 후 태초에 의롭고 선하게 창조된 그 둘째 사람을 미혹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었으니 원수처럼 타락했다. 그리고 원수는 사람이 타락하는 그 순간에 사람의 마음에다 뿌리가 있는 나무로서 그 선악의 죄를 심었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자기의 욕심과 교만에 이끌리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죄를 범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도 만일 그의 인생가운데 회개치 아니하면 원수를 심판하신 것처럼 심판하신다. 그리하여 거룩해지라는 그 말씀에 끝까지 불순종하고 회개치 않은 자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형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며 욕심과 교만을 품지 않으셨으니 범죄치 않으셨다. 또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도 이기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는 아버지께로 금을 받아 자신의 허리에 두르셨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금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 자신의 허리에 금띠를 묶으신 게 아니었다. 오직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금과 같이 빛나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활하신 그 모습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과 같이 세상과 죄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도 금띠를 띠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 금띠를 원하는 자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가 마지막에는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 얻은 피로 산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 죽음은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와 그가 이끄는 이 세상을 이기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같이 이긴 자들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얻어 허리에 묶는다. 그리하여 태양보다 더 밝은 황금 같은 빛으로 셋째 하늘을 영원히 비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오직 자기만을 위한 욕심과 교만을 품은 자들은 그 소망의 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돌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돌과 헛된 영광을 원수에게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불의와 죄 없이는 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거부하고 사망권세와 이 세상에 묶여있던 그가 마지막에 원수와 함께 그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당시 감람산 맞은편 언덕에 긴 타원모양의 거대한 성벽 안쪽이 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통곡의 벽안에 세워진 직사각형모양의 높은 성전 안에 돈 바꾸는 자들과 제사짐승을 사고파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독사새끼들이 문안 받기 좋아하는 시장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시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담을 쳤으니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좌우로 두 개의 긴 공간이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 뜰이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성소까지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가되 백성들은 뜰과 좌우의 공간 즉 회당까지 들어와 거할 수 있다. 그런데 성전목자들 가운데 한 명이 성소에서 나와 말씀을 봉독하고 그 뜻을 말해주는 시간을 정하며 또한 사람들을 회당의 한 장소에 모아 바리새인의 설교를 듣도록 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또한 회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므로 모든 것이 오로지 같음이 없고 분쟁이 없도록 했으니 그가 바로 회당장이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회당장은 모두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영혼의 이름은 야이로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인의 나이인 12살에 이른 사랑하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이 이제는 육신의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가 자신의 뜻대로 자기의 육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이로의 딸은 죄가 쌓여 얻게 되는 그 어떤 질병으로 인함이 아니요 혹은 자신의 육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해서 얻는 질병으로 인함도 아니요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며 얻은 질병으로 인함도 아닌 오직 그의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죽음의 문턱에서 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 여자의 영혼은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리스도께 방문을 요청하고 싶었다. 유대인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그리하여 자신이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육신의 시간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께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아비를 통해서 부탁했다. 그것은 유대인여자인 자신이 부끄러울까 했기 때문이요 또한 스스로 깨닫기에는 이미 자신의 때가 거의 다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의 아비에게 요청을 했으나 결국 그의 영혼이 12년 동안 거했던 그 육을 떠났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자기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자식을 구하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회당장의 자리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보다 딸을 더 소중하게 여겼으니 그 여자의 영혼이 육에서 나온 후 인간의 시간으로 약 15분 후에 집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해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된다.

 

야이로는 그리스도를 만나자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중하고 간절한 부탁의 표현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를 그리스도의 발 위에 얹었다. 하지만 그가 날마다 간구한 것은 영의 생명이 아닌 썩어질 육의 생명이었으니 그리스도께 자기 딸의 육의 생명을 구했다. 그러므로 독사새끼들에게는 항상 엄중하셨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알릴 바를 알리시고자 ‘육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되 네 영혼이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고 구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야이로는 썩어질 육에서 영원한 영으로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켰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자신과 딸의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간구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회개한 마음이 진실함을 들여다보시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따라 즉 그 여자의 육체가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한 번 더 허락하시고자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피리를 부는 자들이 와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풍습을 보고 따라서 피리를 부는 것은 그 육체에서 떠난 그의 영혼이 그와 가까웠던 영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영혼과 또한 그 함께 하였던 자들에게 그 악한 영들을 계속 붙들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게 믿는 자들과 이방인들은 영적인 세계의 깨달음이 없으니 썩은 몸을 장사하러 가거나 굴에 넣을 때 피리소리를 내는 것은 죽은 자와 함께했던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문화를 따르는 어리석은 유대인들과 또한 슬픈 소식을 듣고 모인 야이로의 몇몇 친척들과 또한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이 여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후 제자 셋과 부모만 데리고 그 여자의 몸이 놓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전에 야곱이 그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돌을 베고 잔 것을 기억하므로 영혼이 떠난 몸이 쉰다는 의미로써 만든 풍습이 있었으니 죽은 자가 어린 생명이면 그의 부모가 단단한 돌을 들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누운 자가 성인이라면 그의 가장 가까운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그 길쭉한 돌을 들고 들어가되 그 돌을 들어줄 자가 없으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떠난 그 여자의 몸도 유대인의 그 관습에 따라 편편한 돌 위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과 때가 있으며 또한 그에 따라 그 여자의 영혼은 육신의 죽음을 원치 않았고 또한 그의 부모도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돌 위에 누워있는 그 몸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 육에게 명하신 것이 아니요 그 육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여자의 영혼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일곱 영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 다시금 그 여자의 영혼을 이끌어 그의 몸으로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에서 나간 후 사람의 시간으로 90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로 돌아온 후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위하여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했다. 자신에게 육의 생명을 한 번 더 허락하신 아버지의 그 뜻과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요 그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마지막에 결국 영과 혼과 육의 거룩함을 이룬 후 다시 육을 떠났을 때 유대인으로서 그토록 원하던 거룩하고 영원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었다. 한편 그 여자의 아비는 당연히 독사의 자식들에게 성전의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으니 야이로는 스스로 그 배설물을 버리므로 자신의 첫 마음을 지켰다.

 

한편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첫사랑을 붙들고 깨어있는 영혼들은 달리다굼이란 말을 통해 기억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능력이 교회시대와 또한 마지막 환난 때에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에 임하실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그 이방영혼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그 약속에 따라 자신의 뜻과 때에 맞추시어 이 땅에서 썩어질 그의 몸을 일으키신다.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난 그 이방인도 달리다굼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 여자의 영혼처럼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거룩을 이루어가리니 아버지께서는 광야로 나온 모든 믿는 자들이 그 능력을 보고 다 함께 일어나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하신다.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