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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1/30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11/24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11/10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11/10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사람은 자신과 깨끗한 첫사랑을 나눈 사람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서 잊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다가와 자신을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잊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 다가와서 그 아름다움을 줄 때 그것을 곧 취한다. 또한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을 지나갈 때 그를 본 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자기발로 그 사람을 따라가 그와 하나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과 그리스도와 이 세상의 관계를 뜻하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그 첫사랑을 잊은 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미 세상에 빼앗겼으며 썩어질 육을 얻고자 점점 세상으로 들어가는 자는 자기의 마음에서 첫사랑을 잊어가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마음의 증거로서 그의 손에 이런 저런 육과 세상의 것들을 쥐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가 되는 것은 포기한 영혼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첫사랑을 잊지 않은 자들이 있으니 그 마음의 증거로서 그의 손에는 세상의 것들이 하나도 없으며 행여 있거나 없어도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첫사랑을 회복하고 있는 자는 이 음란하고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셋째 하늘에 마음을 둔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취했던 헛된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때에 바로 이러한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며 형제자매가 되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피 흘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마음이 정직한 자를 의로우심과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손을 가지고 거룩을 이룬 그들이 마지막에 들림을 받거나 산 제사를 드린 후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멀리서 둘째 하늘의 낙원을 이끌고 내려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영혼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원하신다. 그래야 그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되 그리스도의 성품을 잘 깨닫고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거룩하신 영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모습들은 오직 첫사랑을 잊지 않고 깨어있는 영혼들과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만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자비가 풍성하시니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갈급한 자에게도 그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먼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옷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으니 누가 그 옷을 입는지를 알면 그 의미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왕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왕이 하는 일은 다스림이요 또한 자기의 말에 순종하며 자기의 일에 충성한 자를 자신의 가까이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시니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어가는 그는 마음에 늘 평화와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거듭난 한 영혼이 마음에 늘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그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는 원수가 더럽힌 이 첫째 하늘의 모든 것을 태초의 낙원과 같이 선하게 회복시키신 후 천년왕국의 왕으로서 이 땅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되 자신을 위해 충성한 자들과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마음에 늘 평화와 기쁨을 누렸던 그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천년왕국의 영광과 권세에 참여하는 것은 그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발에 끌리는 옷은 둘째로는 많은 자녀들 가운데 장자의 권위를 가진 자가 입고 셋째로는 혼인예식을 위하여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이 입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약과 신약의 많은 자녀들 가운데서 맏아들로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고난 받은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두 번째 의미요 그가 신랑으로서 자신의 깨끗한 몸에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신부들을 자신의 지체로서 맞이하는 모습이 세 번째 의미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 그리스도의 앞에 나온 그 여자의 성품은 조용했으며 앞에 있기보다는 뒤에서 숨어있기를 더 좋아하였으되 내색은 많은 처녀였다. 또한 거룩을 이루는데 자신의 육신을 걸림돌로 여기며 오직 자신의 집안에 거하면서 늘 자신의 깨끗함을 소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거룩을 원하였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버지의 뜻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집안에만 거하며 거룩에 이르고자 애쓰되 오히려 그 육신에서 나오는 날을 날마다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홀로 거룩에 애썼지만 홀로 애쓴 그것이 오히려 그를 죄악에 거하게 했으니 즉 그는 늘 사람들을 만나기 원치 아니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그와 함께 할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신을 그 상황에서 구원해 줄 남자가 없음을 깨닫고 죄의 짐을 지고 또한 육의 질병을 가지고 사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삶을 견디고 있었으니 혈루증은 사람의 피가 생성하지 아니하며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하얀 피가 썩어져 가므로 육신이 날마다 힘을 잃어가면서 사망으로 들어가는 병이었다.

 

이방인들은 가족들 가운데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그를 살리기 위해 병원과 의사를 찾아 다니며 자신의 모든 물질을 다 쓴다. 하지만 그것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함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이 그것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질병이 죄에서 시작되며 또한 그것을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말씀으로 고칠 수 있음을 잘 알았기에 그 여자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어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소유들도 아낌없이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에게 넘긴 후에 그 여자의 깨끗함을 원했다. 그러나 독사자식들이 말씀과 제사로 깨끗함을 베풀지 못함은 그들도 그 죄악과 함께 거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도 또한 그 여자와 그의 가족들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그 여자는 드디어 여호와의 생명을 주는 그 남자의 소식을 들었으니 그때 그의 나이가 27살이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과 또한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는 육신의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그 여자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음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안에 거하던 죄는 네가 만일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며 생각과 몸을 붙들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자신을 붙드는 그 생각과 오래된 그 질긴 성품을 이기고 오히려 그 죄의 짐과 악한 질병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자신이 염려한대로 그곳에는 이미 온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의 주위를 둘러싸고 따라가고 있었으니 그 수효는 472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따라가며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또한 그의 마음은 인자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면 자신이 그 육신의 질병에서 깨끗함을 얻을 것이요 영혼에 거듭남의 은혜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바로 뒤에 다다랐을 때 그 거룩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하얀 옷자락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 여인이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잡았을 때 일어났던 역사는 이러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혼이 처음부터 영과 육의 나음을 얻기 원했던 마음을 읽으셨으며 또한 그가 메시아의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붙들었다는 것도 아셨다. 그러므로 자신을 섬기던 종들에게 육신의 치유와 영의 거듭남을 명하셨으니 하나님의 일곱 영이 그 여인과 함께하는 종들에게 시켜 그의 육신도 나음을 얻고 또한 그의 안에 거룩하신 영께서 임하시어 영도 인치실 수 있도록 종들이 그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여인의 속과 겉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하여 마가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을 깨닫고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다는 그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결국 그 여인의 거룩에 대한 마음과 믿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졌으니 그의 영도 또한 그의 육체도 깨끗하게 씻김을 얻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그 중생의 씻음도 임했다. 또한 그 영의 해방으로 인해 한 순간에 그의 육안에 하얀 피가 필요한 만큼 생겨났으니 힘을 잃었던 육신에도 곧 힘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여인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과 또한 육신의 질병에서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감격하며 감사했다.

 

그런데 다른 병자들과 그 여인은 차이점이 있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질병을 가진 자들이 나왔을 때 그들을 고쳐주시기 전에 항상 모든 죄를 아버지께 회개해야 함을 깨우쳐주셨다. 모든 질병은 욕심과 교만과 선악의 죄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이요 먼저 죄가 용서받아야 육신도 온전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난 자와 태어난 지 1년 안에 병을 얻은 자들이 나왔을 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후에 치유를 허락하셨다. 하지만 그 여인의 경우는 회개를 하지 않아도 영혼과 육체에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 이유는 그 여인은 다른 영혼들과 달리 이미 자신의 죄를 늘 자백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가 이제는 거룩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나왔다는 것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아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여인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후 늘 기도로써 자신의 혼의 거듭남을 이루어나갔다.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자신이 들은 말씀들에 늘 순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신랑에게 받은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자신의 의와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에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므로 자신의 안에서 나오는 그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자신의 썩어질 육신을 떠났을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정결한 신부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유대인들 가운데 아버지의 딸이 되었으니 마태는 그것을 깨닫고 여자여 안심하라는 말씀대신 딸아 안심하라고 기록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상징하셨으며 그 상징은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그 약속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야 하기에 포도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어주시는 여호와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드린 영혼들은 아담 이후로 노아시대든 율법시대든 그 상징의 의미를 알고 순한 짐승의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거룩에 애썼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긴 자들도 성전에 들어와 동일한 것을 먹고 마시며 동일한 행위를 보였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일 때 늘 포도주가 필요하니 대대로 다음과 같이 포도주를 빚었다.

 

그들은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는다. 또한 포도원을 해치는 짐승이나 열매를 가져가는 자들을 막고자 망대를 세운다. 동시에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들되 새거나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무로 빈틈없이 만든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은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만큼 힘든 일이다. 이제 때가 되면 포도를 따서 틀에 넣고 짠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았던 그 나무통에 담고 뚜껑을 닫아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는 또다시 포도주를 담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그 통이 이제는 더 이상 포도주를 붙들 수 없기에 이곳 저곳에서 포도주가 흘러나와 다 버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포도주를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 보관하면 썩은 향기가 나니 그런 포도주를 누가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그릇에 담아서 숙성을 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담그는 과정을 통해 요한의 제자들도 또한 자신의 제자들도 또한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7교회들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신랑인 자신과 거룩하고 신령한 신부의 관계이되 포도주의 비유에서는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새로운 포도주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새롭게 거듭난 생명의 영혼들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거듭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주신 그 영원한 생명의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포도주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라는 것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혼의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처음에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의 마음과 믿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오히려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그 믿음과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자신의 신랑만을 따르고 있으니 그들이 바로 새 그릇이다.

 

반면 낡은 그릇이라는 것은 피가 있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는 그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없기에 이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시험에 든 영혼들과 또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둔 자들과 동일한 행위를 보인다. 그러나 거룩의 모양은 동일해도 그들의 믿음은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대한 것이니 그들의 마음은 다른 남편에게 빠져있다.

 

또한 사람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새로운 나무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새 포도주를 넣어 보관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아들을 통해 얻은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새로운 그릇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낡은 그릇 안에 있다면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신도 믿음과 마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자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하게 숙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는 자는 우선 그 포도주에서 썩은 향을 낸다. 그러다 결국 그 썩은 틈으로 흘러나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이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하면 자신도 그들처럼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거룩함과 신령함을 이루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환난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이 길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며 또한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며 많은 일들을 하되 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오히려 불의하고 죄악된 향기를 안과 밖으로 내뿜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다 하며 죄와 함께하는 영혼은 받지 못하심을 마음이 없는 행위에 빠져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는 자들과 은혜의 방종에 빠진 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을 원치 않는 자들은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다가도 마지막 때에는 오히려 세상으로 도망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의 능력을 믿는 공동체나 혹은 그렇지 못한 공동체와 함께하되 그 결과는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느냐 혹은 이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느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러한 새 그릇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나 걱정하지 않아도 됨은 그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을 포기한 자는 낡은 그릇 안에서 율법의 영에 인도를 받을 것이요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단단한 그릇에 남아 자기의 의를 세우는 목자를 따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것이요 육과 세상의 복을 원하는 거짓된 자는 거짓선지자가 유황불 못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거룩을 원하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거할지라도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거룩하신 영께서 새 그릇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독수리날개에 업혀 광야로 나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다 들림을 받고 대환난에서 산 제사를 드리고 그 기쁘신 뜻에 이르게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다 고장 나서 고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것을 산다. 이때 어떤 사람은 못쓰게 된 컴퓨터를 미련 없이 통째로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쓸만한 부품들을 떼어내서 보관하고 어떤 사람은 전체를 당분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혹시 고쳐질까 또한 나중에 필요할 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못하거나 쓸모 없는 것들은 미련 없이 내다버린다. 또한 새 컴퓨터에서 부품을 뜯어내어 헌 컴퓨터에 붙여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찬가지로 새 옷의 한 부분이 필요할 때 헌 옷에서 좋은 부분을 뜯어서 붙이지만 헌 옷을 위해 새 옷에서 필요한 만큼을 뜯어서 붙이는 사람도 없다.

 

이 비유에서 새 옷이라는 것은 한 영혼이 거룩에 이르렀기에 새 옷을 입을 것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에 거하는 영혼들은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혹은 통해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를 입는다. 반면 헌 옷이라는 것은 그가 거룩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세상에서 죄가 가득 찬 그 옷을 입고 있음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을 따라 말하며 행하고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지 않은 영혼은 한 몸에 거할 수 있는 옷을 입지 못하니 그것은 그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법적인 심판대에서 유황불 못이나 어두운 곳이나 온전케 되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헌 것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비록 헌 것이요 고장이 났어도 혹시나 고쳐질까 기대하면서 쓸만한 것들은 끝까지 이용해보려고 하되 도저히 쓰지 못하게 될 것들은 결국 버린다. 하물며 아버지께서는 영이 가난한 자와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베푸시어 거룩으로 이끄시되 꺼져가는 등불도 끄시지 아니하신다. 또한 자신의 살과 피를 아끼지 않은 아들께서도 한 영혼을 한 순간에 끊어내지 않으시고 한 번 두 번 세 번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한 몸에 있어야 할 자가 있고 있어야 되지 않을 자가 있으니 그 기준은 이것이다.

 

어떤 나라에 목욕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목욕탕의 주인은 마음이 선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짜로 목욕탕을 이용하라고 허락했다. 이 소식을 듣고도 어떤 자는 목욕탕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 온 몸이 근질거려도 깨끗이 씻기보다는 오직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과 몸의 이곳 저곳을 긁고 있던 사람들 중에 오직 깨끗하게 씻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에 목욕탕 주인은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여러분이 깨끗하게 목욕을 마치도록 깨끗한 물을 충분히 준비해두었으며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속옷과 정장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그러나 목욕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이 목욕탕에서 스스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말이 끝나자 어떤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불린 후에 마음을 다해 땀 흘리며 때를 밀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옷을 벗기는 했지만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오히려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 담배를 하며 진실한 목욕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은 목욕탕을 더럽히는 그들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그들이 목욕하러 들어가지 않자 주인은 이곳은 재미있게 노는 곳이 아니라 목욕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만 있다 하겠다고 말한 후 이것은 목욕비라며 주인에게 돈을 내고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나 주인은 더러운 돈을 받지 않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계속 놀기만 했다. 이에 주인은 이번에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등과 몸을 긁으며 사람들을 목욕탕에 많이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이에 주인은 또다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이제 목욕탕밖에 나가서 놀다 묻힌 더러움까지 목욕탕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주인은 그래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이제는 마지막으로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목욕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목욕비도 많이 내고 사람들도 많이 데려왔으니 우리에게도 저 선물을 달라며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주인이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를 내쫓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선악으로 인하여 다 죄인이기에 거룩에 애쓰는 자다.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니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요 거듭난 영혼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아무리 불의한 죄인이라 하여도 그가 거룩에 이르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새 옷을 그에게 배불리 먹여주신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거룩하신 신랑이 한밤중에 돌아왔을 때 신령하고 신실한 영혼들을 맞이하시는 것이니 십자가를 의지해 거룩에 이른 그들이 그 신령하고 거룩한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죄가 자신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오늘이요 내일은 내일이라 하면서 거룩에 힘을 쓰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깨끗한 영혼이 더러운 자와 함께 할 수 없으며 의로운 영혼이 불의한 자를 따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깨끗한 자도 함께 더러워지고 의로운 자도 함께 불의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에 한 영혼이라도 더러운 영혼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도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거룩에 애쓰지 않는 자들은 그 공동체에서 내쫓는 것이 옳으니 그런 자가 바로 옛 옷을 입은 자들이다.

 

결국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목자든 양이든 속에 죄가 있음에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교만한 자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자와 세상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자와 자기 스스로 거룩을 이루려고 하는 자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로 이끌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종들에게 가리도록 명하시니 강한 자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반대로 그가 아무리 연약한 자라도 신실한 영혼 깨어있는 영혼은 그가 어디에 거할지라도 찾아내시어 거룩하신 영을 통해 광야로 불러내시고 장막에 들어가게 하신다. 하지만 그가 누구라도 그 안에서 다시금 강해질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놓아주신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