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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0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11/10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상징하셨으며 그 상징은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그 약속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야 하기에 포도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어주시는 여호와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드린 영혼들은 아담 이후로 노아시대든 율법시대든 그 상징의 의미를 알고 순한 짐승의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거룩에 애썼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긴 자들도 성전에 들어와 동일한 것을 먹고 마시며 동일한 행위를 보였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일 때 늘 포도주가 필요하니 대대로 다음과 같이 포도주를 빚었다.

 

그들은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는다. 또한 포도원을 해치는 짐승이나 열매를 가져가는 자들을 막고자 망대를 세운다. 동시에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들되 새거나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무로 빈틈없이 만든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은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만큼 힘든 일이다. 이제 때가 되면 포도를 따서 틀에 넣고 짠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았던 그 나무통에 담고 뚜껑을 닫아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는 또다시 포도주를 담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그 통이 이제는 더 이상 포도주를 붙들 수 없기에 이곳 저곳에서 포도주가 흘러나와 다 버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포도주를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 보관하면 썩은 향기가 나니 그런 포도주를 누가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그릇에 담아서 숙성을 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담그는 과정을 통해 요한의 제자들도 또한 자신의 제자들도 또한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7교회들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신랑인 자신과 거룩하고 신령한 신부의 관계이되 포도주의 비유에서는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새로운 포도주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새롭게 거듭난 생명의 영혼들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거듭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주신 그 영원한 생명의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포도주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라는 것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혼의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처음에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의 마음과 믿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오히려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그 믿음과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자신의 신랑만을 따르고 있으니 그들이 바로 새 그릇이다.

 

반면 낡은 그릇이라는 것은 피가 있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는 그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없기에 이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시험에 든 영혼들과 또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둔 자들과 동일한 행위를 보인다. 그러나 거룩의 모양은 동일해도 그들의 믿음은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대한 것이니 그들의 마음은 다른 남편에게 빠져있다.

 

또한 사람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새로운 나무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새 포도주를 넣어 보관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아들을 통해 얻은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새로운 그릇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낡은 그릇 안에 있다면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신도 믿음과 마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자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하게 숙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는 자는 우선 그 포도주에서 썩은 향을 낸다. 그러다 결국 그 썩은 틈으로 흘러나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이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하면 자신도 그들처럼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거룩함과 신령함을 이루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환난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이 길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며 또한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며 많은 일들을 하되 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오히려 불의하고 죄악된 향기를 안과 밖으로 내뿜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다 하며 죄와 함께하는 영혼은 받지 못하심을 마음이 없는 행위에 빠져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는 자들과 은혜의 방종에 빠진 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을 원치 않는 자들은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다가도 마지막 때에는 오히려 세상으로 도망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의 능력을 믿는 공동체나 혹은 그렇지 못한 공동체와 함께하되 그 결과는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느냐 혹은 이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느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러한 새 그릇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나 걱정하지 않아도 됨은 그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을 포기한 자는 낡은 그릇 안에서 율법의 영에 인도를 받을 것이요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단단한 그릇에 남아 자기의 의를 세우는 목자를 따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것이요 육과 세상의 복을 원하는 거짓된 자는 거짓선지자가 유황불 못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거룩을 원하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거할지라도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거룩하신 영께서 새 그릇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독수리날개에 업혀 광야로 나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다 들림을 받고 대환난에서 산 제사를 드리고 그 기쁘신 뜻에 이르게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다 고장 나서 고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것을 산다. 이때 어떤 사람은 못쓰게 된 컴퓨터를 미련 없이 통째로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쓸만한 부품들을 떼어내서 보관하고 어떤 사람은 전체를 당분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혹시 고쳐질까 또한 나중에 필요할 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못하거나 쓸모 없는 것들은 미련 없이 내다버린다. 또한 새 컴퓨터에서 부품을 뜯어내어 헌 컴퓨터에 붙여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찬가지로 새 옷의 한 부분이 필요할 때 헌 옷에서 좋은 부분을 뜯어서 붙이지만 헌 옷을 위해 새 옷에서 필요한 만큼을 뜯어서 붙이는 사람도 없다.

 

이 비유에서 새 옷이라는 것은 한 영혼이 거룩에 이르렀기에 새 옷을 입을 것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에 거하는 영혼들은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혹은 통해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를 입는다. 반면 헌 옷이라는 것은 그가 거룩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세상에서 죄가 가득 찬 그 옷을 입고 있음을 예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을 따라 말하며 행하고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지 않은 영혼은 한 몸에 거할 수 있는 옷을 입지 못하니 그것은 그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법적인 심판대에서 유황불 못이나 어두운 곳이나 온전케 되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헌 것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비록 헌 것이요 고장이 났어도 혹시나 고쳐질까 기대하면서 쓸만한 것들은 끝까지 이용해보려고 하되 도저히 쓰지 못하게 될 것들은 결국 버린다. 하물며 아버지께서는 영이 가난한 자와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베푸시어 거룩으로 이끄시되 꺼져가는 등불도 끄시지 아니하신다. 또한 자신의 살과 피를 아끼지 않은 아들께서도 한 영혼을 한 순간에 끊어내지 않으시고 한 번 두 번 세 번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한 몸에 있어야 할 자가 있고 있어야 되지 않을 자가 있으니 그 기준은 이것이다.

 

어떤 나라에 목욕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목욕탕의 주인은 마음이 선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짜로 목욕탕을 이용하라고 허락했다. 이 소식을 듣고도 어떤 자는 목욕탕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 온 몸이 근질거려도 깨끗이 씻기보다는 오직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과 몸의 이곳 저곳을 긁고 있던 사람들 중에 오직 깨끗하게 씻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에 목욕탕 주인은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여러분이 깨끗하게 목욕을 마치도록 깨끗한 물을 충분히 준비해두었으며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속옷과 정장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그러나 목욕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이 목욕탕에서 스스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말이 끝나자 어떤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불린 후에 마음을 다해 땀 흘리며 때를 밀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옷을 벗기는 했지만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오히려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 담배를 하며 진실한 목욕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은 목욕탕을 더럽히는 그들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그들이 목욕하러 들어가지 않자 주인은 이곳은 재미있게 노는 곳이 아니라 목욕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만 있다 하겠다고 말한 후 이것은 목욕비라며 주인에게 돈을 내고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나 주인은 더러운 돈을 받지 않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계속 놀기만 했다. 이에 주인은 이번에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등과 몸을 긁으며 사람들을 목욕탕에 많이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이에 주인은 또다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이제 목욕탕밖에 나가서 놀다 묻힌 더러움까지 목욕탕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주인은 그래도 나가라고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이제는 마지막으로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목욕은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목욕비도 많이 내고 사람들도 많이 데려왔으니 우리에게도 저 선물을 달라며 등과 몸을 긁어댔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주인이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를 내쫓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선악으로 인하여 다 죄인이기에 거룩에 애쓰는 자다. 그리스도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니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요 거듭난 영혼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아무리 불의한 죄인이라 하여도 그가 거룩에 이르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새 옷을 그에게 배불리 먹여주신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거룩하신 신랑이 한밤중에 돌아왔을 때 신령하고 신실한 영혼들을 맞이하시는 것이니 십자가를 의지해 거룩에 이른 그들이 그 신령하고 거룩한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죄가 자신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오늘이요 내일은 내일이라 하면서 거룩에 힘을 쓰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깨끗한 영혼이 더러운 자와 함께 할 수 없으며 의로운 영혼이 불의한 자를 따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깨끗한 자도 함께 더러워지고 의로운 자도 함께 불의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에 한 영혼이라도 더러운 영혼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도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거룩에 애쓰지 않는 자들은 그 공동체에서 내쫓는 것이 옳으니 그런 자가 바로 옛 옷을 입은 자들이다.

 

결국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목자든 양이든 속에 죄가 있음에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교만한 자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자와 세상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자와 자기 스스로 거룩을 이루려고 하는 자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로 이끌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종들에게 가리도록 명하시니 강한 자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반대로 그가 아무리 연약한 자라도 신실한 영혼 깨어있는 영혼은 그가 어디에 거할지라도 찾아내시어 거룩하신 영을 통해 광야로 불러내시고 장막에 들어가게 하신다. 하지만 그가 누구라도 그 안에서 다시금 강해질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놓아주신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