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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9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11/06/02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살고자하는 마음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돈의 단위다.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깨닫고 또한 그것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묶어주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를 벌리다 결국 원수처럼 변하게 하는 것임을 경험했으니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있는 제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불의와 죄와 비인격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그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요 거의 모든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은 썩어질 욕심 때문이다.

 

돈은 세상에서 자신이 어느 계층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부유층과 제일 밑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1억일지라도 그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아무리 써도 줄지 않고 쓸수록 더 불어나니 돈 쓰는 재미가 없는 사람과 비싼 것들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과 중산층에 속한 사람과 가파른 피라미드를 올라가고자 달리는 사람과 별다른 재산 없이 매달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과 4인 가족의 법적인 최저생계비를 보며 그럼 우리가족은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과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바벨론에서 나와 광야에 거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리를 먹고 사는 사람이 보는 천원의 가치도 다르되 바벨탑을 짓고 있는 자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신히 꾸려가고 있든지 누구나 다 돈에 매여있다.

 

이처럼 돈은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그리스도 당시의 한 앗사리온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한다고 설명해주어도 계층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니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와 닿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진리는 그가 가난하든 부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지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니 앗사리온의 가치가 어느 정도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든지 어느 계층에 거하고 있든지 누구나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 있으니 네 명의 가족이 한끼식사를 하되 반찬은 포함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쌀만을 구입하는 금액이 바로 한 앗사리온이다. 그리하여 앗사리온은 교회시대의 끝자락에 있는 서민가족에게는 라면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가 있으나 다른 계층에게는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한편 당시 유대인들이 앗사리온 하나나 둘로 참새를 사는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은 큰 고등어로 작은 고등어를 감싸놓는다. 이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고등어가 두 마리에 얼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마리 수의 계산이 아니라 무게의 계산이니 같은 두 마리가 포개져 있어도 작은 것 두 마리 보다 큰 것 두 마리의 가격이 더 비싸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참새를 파는 사람들은 두 마리를 한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는 두 앗사리온에 팔았다. 이렇게 그들은 참새를 마리 수가 아니요 무게로 비교해서 팔았으니 원수가 아버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교만한 독사의 자식들을 통해 더하거나 빼서 바꾼 곳들과는 달리 마태와 누가가 참새의 마리 수에 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말씀은 두 가지 다 옳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니 참새장사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참새들을 가지고 시장에서 가서 사람들을 모아 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새들의 그 재롱을 재미있게 보았으니 참새장사에게 돈을 내거나 또한 자기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몇 마리씩 사서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고로 참새장사들은 참새를 통해 자기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으되 참새장사가 참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주인이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배고프면 담을 넘는다는데 짐승이랴? 그러므로 새들이 때로는 그 새장의 창이 열렸을 때 주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떨치고 나온다. 하지만 주인은 날개 털에다 이미 줄을 묶어놓았으니 새들은 잠시 파닥거리며 날다가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늘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 참새장사와 같지 아니하시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가는 영혼들의 머리털까지 이미 다 세셨다. 그러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마지막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육의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참새들의 주인은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되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유익만이 아니요 모든 영혼들의 그 유익을 위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그 불의하고 죄악된 피라미드에서 마음을 돌이키고 나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니 사막에서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전한다. 이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고자 자신의 손을 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조여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통하여 허락하시고 합한 자가 없는 그 대환난가운데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연을 통해 광야에 거하는 자들을 먹이신다. 그러다 원수가 세상의 권세로 그들을 잡고 법으로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 후 그들의 몸을 성전 삼으시어 영광스럽게 하시므로 그들과 자신 모두에게 그 선한 유익을 끼치신다. 그리하여 약속의 자녀들은 태초부터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아버지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그 악한 자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그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한 셋째하늘에서 죄를 창조한 후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며 아버지께로 대항하다 쫓겨난 원수와 또한 그 사망과 함께 타락한 종들과 또한 죄에 대한 사망권세를 실행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뜻한다. 흑암의 세력은 이미 원수의 사자들에게 세뇌를 받아 악을 행하겠다는 결심과 이 땅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무저갱에서 올라왔으되 ‘너희가 만일 사람들을 죄로 이끌어 사망으로 데려오면 내가 너희를 다시 살린 후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주겠노라.’는 원수의 말은 거짓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욕심과 이익과 높아짐을 위해 불의한 힘의 논리로 세상을 악하게 끌어가고 있는 그 흑암의 세력들은 이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의 뿌리가 되며 바로 그 뿌리를 인해 모든 피조물과 자연이 악한 죄의 영향을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2천년 전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둘 다 무저갱에 멸하시니 육의 사망권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원수의 그 세뇌는 거짓말이다.

 

구체적으로 흑암의 세력은 우선 사람을 질병으로 이끌되 그들이 행사하는 질병의 종류와 한계가 있으니 그 기준은 사람이 범한 죄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키는 자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어떠한 질병도 치유하신다. 그들은 또한 영광의 복음의 빛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의 눈과 귀를 가린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그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다. 또한 사람들의 육안에 가시처럼 거하고 있으니 한 사람을 볼 때 그것이 바로 그를 곤고케 하는 죄의 삯이다. 하지만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듯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회심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에 애쓰는 자에게서는 그들이 스스로 떠나니 성도에게는 그 빛으로 인해 다시금 성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또한 공중권세를 가진 원수의 세뇌를 받아 세상의 모든 지역들을 막고 있으니 인간들이 창조의 기초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수의 지혜를 얻어서 만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도구에 바람을 일으켜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 추수한다. 게다가 그 순간에 그의 육을 붙들고 있는 흑암이 그것을 느끼게 하므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평소에는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늘 두렵게 하므로 그들의 말을 듣게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로 언약을 이루셨으니 회심한 자에게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그를 선한 길로 이끄신다. 그들은 또한 사람뿐만 아니라 각종 피조물과 짐승도 어떻게 사망으로 이끌까 늘 계획을 세우며 자기의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환난 때에 십자가에서 이미 죄를 사한 그리스도를 원수가 이기면 그들이 육을 입고 있을 때 누렸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얻어서 또다시 누릴 수 있다는 헛된 믿음과 또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불의와 죄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흑암의 세력들이 이렇게 수많은 사망의 일을 행하며 그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람이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사고나 사람의 실수로 죽는 것을 보기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로 인한 사망은 깨닫지 못한다. 또한 육신의 생각이 아닌 생명의 말씀에 순종코자 하는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어둠의 세력들은 자기들이 주는 생각대로 말하며 행하는 자들에게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즉 오직 자기의 의와 욕심과 이익과 명예와 게으름을 구하는 그 불의와 이기심을 통해 종처럼 부리며 악한 일을 행하게 하므로 그 사람을 정복해간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왜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의 악을 허용하시므로 사람에게 육의 죽음을 겪게 하시는가? 또한 왜 동일한 질병과 자연재해와 사고에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는가? 그것은 생명나무 선악과의 약속을 이룸이니 각 사람의 죄와 거룩으로 인함이다. 즉 아버지의 그 동일한 창조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이 죄나 혹은 거룩의 한계를 다 채웠기 때문에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는 것이요 그 죽음의 후에 아버지께서 거룩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생명의 부활로 죄에 대해서는 원수를 통해 사망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므로 이미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 상급을 영원토록 베푸시기 위하심이다.

 

예를 들어 원수가 많은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추락시키고자 계획했으니 흑암의 세력들이 갑작스런 바람을 불려고 한다. 이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죄나 거룩의 그 한계를 다 채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후 자신의 심판대에 선 영혼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말씀으로 법적인 심판을 내려 생명이나 사망의 상급을 베푸신다. 하지만 만일 그 안에 아직 죄나 거룩을 채우지 않은 자들이 몇 명이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못하게 하시되 원수는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자들까지 죽이고자 불법을 행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한계를 채운 자들은 심판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원수에게 불법을 대한 책임을 물으시되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그 몇 명의 경우에는 종들을 통해 보호하시니 그들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살면서 거룩을 원하면 거룩을 죄를 원하면 죄를 이루어가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왜 목숨을 건졌는지 깨닫지 못한다. 한편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수의 불법을 막으실 때가 있으시니 그곳에 만일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것들도 못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 의로운 자가 그곳을 떠났을 때는 허락하신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죄에 종 노릇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한 영혼들은 육체에서 나온 후 용암이 끓고 있는 땅속의 무저갱으로 보내주시니 그것이 바로 심판의 부활이요 그들은 거기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다 천년왕국의 끝에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리니 거룩을 거부한 모든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 바로 둘째 부활이다. 또한 자신이 받은 법적인 심판을 인정치 않고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고자 불법을 행한 흑암의 세력에 대해선 그들이 행한 만큼 둘째 부활 때에 형벌을 더하신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후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을 유지한 자들은 원수의 모든 불법에서 지켜주시다 살아있는 채로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옮기시니 그들이 바로 구약시대의 에녹처럼 휴거 받는 영혼들이다. 또한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이 비록 선을 행하는 자들의 몸에서 피를 흘려서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을 꺼내시어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니 그들이 바로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므로 이루신 그 약속에 의해 부활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마지막 때의 144000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결국 빛에 의해 물러가는 어둠을 보며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그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몸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과 사망으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거룩에 애쓰는 것이 옳다. 또한 사람이 겪는 육의 죽음은 방법과 모양만 다를 뿐 죄나 거룩의 한계가 차면 단지 시간의 문제이니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아버지께서 영원한 셋째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을 바라보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가며 남아있는 육체의 기회 동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애쓰는 것이 옳다. 그리하면 그는 결국 죄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날이 오리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사망을 삼키셨기 때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