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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8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13/06/21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살고자하는 마음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어떤 남자의 책상 위에 모니터와 스피커와 자판이 있고 책상 밑에는 컴퓨터가 있었으며 그는 늘 컴퓨터 위에다 장갑을 두었다. 하지만 그의 딸은 컴퓨터 위에 있는 장갑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밖에서 일하고 들어와 장갑을 벗어 딸에게 주며 말하길 아빠컴퓨터 위에다 좀 갖다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아빠의 장갑이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본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보통 책상 위에 장갑을 벗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순간적으로 책상 위의 모니터와 스피커와 자판을 컴퓨터로 착각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책상 위에다 장갑을 올려놓았다. 이에 아빠는 딸의 이름을 부르며 책상이 아니라 책상 밑에 있는 컴퓨터 위에 두라고 했다. 이에 딸아이는 ‘아!’하면서 즉시 아빠가 시킨 대로 했으니 아빠와 딸은 영원히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
 
그러나 아빠가 딸아이에게 충분히 알아듣도록 설명해주어도 또한 컴퓨터 위에 놓여있는 장갑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어도 아이가 만일 자기의 생각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아빠에게 들은 말대로 하지 않거나 오히려 아빠에게 책상이 컴퓨터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말이 안 통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의 죄가 이미 그의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니 정말 몰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상대방이 한 말뜻을 알아들어야 상대가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으되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알면서도 안 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만일 서로간에 말이 계속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수 없고 또한 그 말이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원치 않는 말과 행위를 하다 결국에는 그들의 관계가 끊어져버린다. 그러므로 말은 인격체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시켜주는 참으로 조심스런 도구다.
 
그런데 홀로 한 분 신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도 또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사람도 둘 다 인격체이므로 이 둘의 관계를 맺는 것도 역시 영이요 생명의 기준이 곧 진리다. 그러므로 영의 뜻을 깨닫고 옳은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에 거하되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람의 말과 생각에는 생명주는 능력이 없으니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는 자는 사망을 맺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영을 내셨으나 어떤 자가 자기부모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지 않거나 주를 위해 가족을 버리겠다 말하되 진리를 따르지 아니함은 영의 뜻을 깨닫지 못함이니 아버지와 끊어진 관계를 유지한 자는 결국 죽은 자들에게 장사를 당한다. 또한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영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종류의 전쟁이 다 그리스도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니까 원수마귀가 불신가족을 통해 자신에게 시험과 핍박을 준다며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불신가족의 핍박을 이기고 그들을 전도하라는 유전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며 의좋게 지내기보다는 욕심을 이루고자 서로 미워하며 싸우기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으리요? 하물며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시리요? 그러므로 육적인 욕심과 요구를 버린 자는 심령이 가난하니 영의 의미를 깨닫고 거룩을 행하되 말씀을 보면서 늘 자신의 생각과 지식으로 푸는 자는 육과 자기의 의가 가난하니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의 생각을 따라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말과 행위를 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비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따르는 것은 이미 자신의 안에 자기의 욕심과 명예만을 구하는 악한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을 준다는 말씀은 처음부터 거짓말한 원수가 오로지 자기의 욕심과 앉아있는 그 자리를 위해 자기의 생각으로 말씀을 바꾸는 그 악한서기관들을 통해 자신처럼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자기에게 이끌고자 변경한 것이니 원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는 이 예언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혹은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이방인으로서 흑암에 앉아있다가 이제는 사망으로 들어가는 그 헛된 세상에서 나와 자신을 따를 수 있게 된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것이니 그 본래의 기록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은 와서 그 원수와 화평코자함이 아니니라. 또한 세상에 심판을 내리기 전 원수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오로지 사람들을 살리고자 온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에 따라 한 몸의 머리께서는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셨으니 이 세상과 평화를 이루지 아니하므로 원수와 화평을 이루지 않으셨다. 실제로 인자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실 때 원수가 주는 시험들을 이기므로 육의 욕심과 필요를 취하거나 세상의 영광을 조금도 따르지 않으셨고 마지막에는 이 세상을 구하고자 의롭고 거룩한 것을 자신의 십자가에서 다 내주시므로 공생애를 마치셨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 하며 목회를 하되 원수가 누구에게나 주는 세 가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도 또한 목자의 일을 통해 그것들을 취하며 또한 심지어 그것들을 얻고자 사역을 시작한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거룩의 일을 통해 늘 육의 필요와 욕심을 채우며 세상이 주는 영광을 좇아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과 평화를 이룬 상태에서 돌이키지 못함은 아버지께 받은 깨끗한 장갑을 끝까지 컴퓨터가 아닌 책상 위에다 놓고 싶어함이니 목자라고 하는 자가 원수와 화평치 아니하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고도 가룟처럼 이 세상과 평화를 이루고 있다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가 누구의 제자인지 알 수 있다.
 
둘째 살고자하는 마음과 진리에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흑암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그리스도만을 따르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과 또한 앞으로 초대교회의 이후로 일곱교회시대에 그와 같이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만 허락하신 말씀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진리의 원래 기록은 이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거든 자신의 애비와 애미에게도 얽매이지 말 것이며 아들과 딸에게도 얽매이지 말지니라. 또한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영혼을 서로 얽매거나 얽매이지도 말 것이니라.”
 
그러므로 인자께서는 자신이 먼저 생명의 말씀에 순종해 마리아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얽매지 않으셨고 또한 어미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는 그 얽매임에 자신도 묶이지 않으셨다. 자신의 육의 동생들 넷과도 마찬가지셨다. 사람에게 얽매이면 생명나무를 위한 죽음의 길을 걷지 못하기 때문이요 상대방을 얽맨다고 하여 그가 그 죽음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인자로서 자신이 먼저 말씀의 모범을 보임은 그 비밀과 은혜의 경륜을 이루도록 아버지께서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자신에게 예정하신 그 십자가의 길만을 끝까지 걷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언이니 교회시대의 모든 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말씀에 기록되었듯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 하셨으니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의와 모든 결단과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달리는 것이며 십자가라는 것은 자신의 살과 피를 드릴 도구이니 진다는 것은 그 제사의 도구를 자신의 마음속에 두고 좇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버지와 그리스도께로 합당한 자인지 아닌지는 그의 장갑이 오직 컴퓨터 위에 있는지 아님 다른 곳에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은 하얀 종이를 보면 하얀색으로 보이지만 만일 빨간색안경을 끼고 보면 빨간색으로 파란색을 끼면 파랗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빨간색과 파란색이라고 주장해도 그 종이는 변함없이 하얀색이되 부끄러움을 모른다. 또한 색안경을 끼거나 벗는 것과 어떤 색을 택할까 하는 결정은 누가 시켜서 따르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나 인격체는 그 안경을 벗지 않으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알고 따르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반대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은 인생에서 생명 없는 곳으로 끌려 다니며 생명 없는 일을 하다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가되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빛을 본 자는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일을 하다 결국에는 생명의 부활에 이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구원의 시작인 거듭남을 자기가 원하는 색안경을 끼고 보니 교회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목사나 선교사의 일을 한다고 하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거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신했다고 병에서 나았다고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천국이나 지옥을 보았다고 전엔 무신론자였지만 지금은 창조자를 믿는 다고 귀신의 정체를 안다고 죽음까지 갔다 살았다고 사람이 죽은 후 심판이 있음을 안다고 교회개혁을 외친다고 모태신앙이라고 전도와 봉사를 많이 한다고 주여 주여를 부르며 기도한다고 신랑의 재림과 휴거를 준비한다고 방언과 예언을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무엇을 왜 믿는지도 모르고 믿음으로 간다고 주장하며 교만한 자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행함도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는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피를 믿고 회개했으되 늘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그 믿음으로 자신의 죄들을 다 회개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이 세 가지를 마음을 다해 다 마쳐야만 비로소 영의 거듭남을 얻고 또한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의 길을 걸어 혼의 거룩함에 이른 자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자녀의 약속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색깔의 안경을 골라서 끼고 그 기준으로 본다. 또한 자신과 같은 색을 끼고 있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사람이 중생하지 못하면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없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으므로 누구라도 만일 자신이 골라 낀 안경을 벗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것이니 사람을 사망으로 이끄는 것은 곧 죄다. 그러므로 색안경을 통해 거듭남과 중생 후의 온전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여 각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이되 그 죄가 골라준 안경을 끼는 자는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이 말씀도 사람들이 갖가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중생할 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고 어떤 이는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어떤 이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어떤 이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거나 나타내는 것을 어떤 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을 시인으로 본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충성스런 마음과 확실한 믿음을 보이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니 그런 것들과는 다른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인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이 큰 사람과 눈이 큰 사람이 동일한 성경을 보니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살면 산다고 되어있었다. 또한 육의 영은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으로 이끌되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감동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 그들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어려움에 처했으니 생명의 영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감동을 육신의 영은 예수를 믿으면 병도 낫고 부자가 된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자는 후자의 감동을 버리고 전자를 따랐으나 입 큰 자는 반대로 행했다. 잠시 후 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목자를 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아들의 영은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니 마지막에 네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육의 영은 사람을 많이 모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감동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눈 큰 자는 전자의 감동을 입 큰 자는 후자를 따라갔다. 그들이 이제 개척을 시작하자 진리의 영은 사람과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의롭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려면 너의 가정에서부터 땀을 흘리되 일용할 양식은 아버지께서 합당한 자를 통해 주신다는 감동을 육의 영은 먹고 살아야 하니 후원자와 또한 지금 있는 교회에서 널 따르는 사람들을 알아보라는 감동을 주자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감동을 따랐다. 그들은 또한 부흥을 원했으되 거룩하신 영은 사람의 수가 많아도 그 안에 거룩함이 없으면 아버지께서 거하시지 아니하시니 그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부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 설교 전도하고 각종세미나와 집회에 다니라는 생각을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감동을 따라 세월을 아끼다 어느덧 그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정결한 영은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피난처에서 더욱더 거룩함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헌금이 줄면 어떻게 교회가 유지되느냐며 교인들이 세상에 들어가 각자 맡은 일을 끝까지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감동을 주었다. 그러다 마지막 전쟁 후에 666이 나오자 주의 영은 그것을 받으면 영원한 사망이니 너는 끝까지 복음을 전한 후 목숨 바칠 준비를 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그것을 네 몸에 넣지 않고서야 어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칼 앞에 섰으니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목자는 평소처럼 보혜사의 감동에 따라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죽었으나 입 큰 목자는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며 끝까지 사망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몇 년을 더 살다 영원히 죽었다.

 

이처럼 시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니 이 말씀은 양들을 오직 진리로만 이끌다 마지막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택함 받은 교회의 목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또한 3차 세계대전 후에 온 세상이 하나가 되었을 때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이미 정해진 그 세상의 법으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그 법정에 서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시인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인정하시니 십자가의 길 끝에서 산 제사로 영광을 드린 자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러나 대환난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믿음이 아니요 시인이니 누구든지 마지막에 거룩하신 영께서 주시는 그 감동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성령을 훼방한 자는 육이 잠시 동안은 살겠으나 잠시 후엔 영원한 사망에 거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따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아버지께 서원을 갚고 그 생명에 이르며 누가 육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사망으로 들어가리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육과 자기의 뜻에 있느냐 아님 영과 아버지의 뜻에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육의 귀를 가진 자는 이미 환난 전부터 자기의 입을 위하여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니 마지막 때에도 원수의 그 말을 듣되 아버지의 영께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라고 외치셔도 그 영혼은 두려움에 오직 그의 육신이 살고자 하여 평소에 듣던 육의 감동에 귀 기울이며 그 말을 따라간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영의 귀를 가지고 있으니 이미 환난 전부터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듣고 따르다 그 마지막 때에도 역시 생명의 영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생명에 이른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이제는 진리를 따라 거룩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영혼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한 번 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순종할 것이로되 한 번 불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불순종하리니 비록 자신의 생각을 돌이킴이 죽음보다 더 두렵고 말씀과 생명의 영의 감동에 처음 순종이 어려울지라도 그 한 번의 처음 돌이킴에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