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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3/07/26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살고자하는 마음
  2. 2013/07/19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
    살고자하는 마음
  3. 2013/07/12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살고자하는 마음
  4. 2013/07/05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5. 2013/07/03
    이기는 그에게는
    살고자하는 마음
  6. 2013/07/02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살고자하는 마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이방인의 믿는 자들은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주시고자 메시아가 이 땅에 임하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구약과 또한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생명을 주고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담겨있는 신약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전통이나 신학이나 교단 같은 것을 통해 예로부터 들어오던 말들도 있다. 하지만 악한 목자들은 육의 욕심을 더하고자 또한 자기가 존경 받으며 앉아 있는 그 자리를 굳히거나 높이고자 성경의 여기저기서 자기가 원하는 말들만을 고르고 바꾸고 빼며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것들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밖에 있는 자들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강조하며 더 권위를 두고 따르되 누구든지 만일 전통에서 벗어나는 자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2천년 전 그리스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유대인들은 모세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과 성문을 가지고 있었으되 동시에 어려서부터 유대교의 전통을 통해 유전도 들어왔다. 하지만 성전에 거하는 독사의 새끼들은 자기의 썩어질 욕심과 헛된 영광을 위해 후자를 전자보다 더욱더 가르쳤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의문의 율법과 유전을 더 믿고 따르며 권위를 두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여호와를 사랑하며 따르던 백성들도 세례요한도 자신이 들어오던 말들로 인하여 처음에는 인자를 의심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에게 제사가 다가왔으니 자신이 예비한 나사렛예수가 타나카의 예언대로 오리라던 그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감옥으로 찾아온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 질문을 주어 그리스도께로 보냈던 것이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질문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찾아왔다. 그리고 당시 그곳에는 그리스도의 12제자들과 그 주변에 거하는 백성들 가운데 적은 수도 함께 모여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소수의 무리의 앞에서 요한이 질문한 것의 대답으로써 바로 그 이사야의 예언을 주셨다. 또한 옥에 갇혀있는 요한에 대하여는 나를 따르는 자는 이 첫째하늘에서는 옥에 갇힐 것이되 셋째하늘에서는 그 왕궁을 두루 다닐 것임을 상징적으로 그들에게 가르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었다.

 

“섬기러 온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이곳에서 왕같이 누리며 또한 자신을 높이는 자는 셋째하늘에서 오히려 초라한 모습으로 있을 것이되 이 첫째하늘에서 인자를 위하여 옥에 갇힌 자는 오히려 셋째하늘에서는 아버지께서 그의 거룩에 따라 영광과 권세를 주시리니 그가 아버지의 그 영원한 왕국을 두루 다니며 그 높은 위치에서 온전케 된 의로운 모든 백성들을 지휘하며 다스리겠노라.”

 

그리스도의 가르침 후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는 이 말씀과 그 상징의 의미를 가지고 떠났으나 그 무리들 가운데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자들은 몇 안 되었다. 그래서 그곳에 남은 요한의 제자들 3명과 또한 몇 명의 무리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서로를 둘러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렇다면 사람이 하늘의 영광이 약속된 그 진리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지 알게 하시고자 이러한 말씀을 허락하셨다.

 

“너희가 과연 광야로 나가 너희보다 더 지혜롭다는 자들에게 가 물어서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겠느뇨? 이 말은 진리이니 그들도 깨달을 수 없으되 바로 너의 앞에 있는 인자가 그 영을 깨달을 수 있게 할 수도 있으며 또한 그 진리를 오히려 너희에게 가리울 수도 있노라. 그러므로 진리의 의미를 지혜롭다 하는 자들에게 묻지 말되 오직 그 말의 주인에게 물어 그 깨달음을 가져 깨달음에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니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에 복이 있으리라.”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살고자하는 자 가난한 자가 어떻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으로써 전하셨으나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우선 진리는 오직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아만이 깨닫게 할 수 있으니 누군가 만일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그 고난과 영광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면 그것은 그가 곧 고난 받을 메시아라는 증거가 된다. 즉 유대종교의 전통과 유전을 통해 자신을 가짜메시아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그 소수의 무리로 하여금 그들의 앞에 서있는 인자가 바로 메시아라는 믿음을 가지도록 이 말씀을 통해 확증하셨던 것이다. 더불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이전부터 들어오던 것과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구약과 맞추어보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말씀을 허락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메시아가 선지자보다도 더 나은 자라는 말씀과 또한 자신의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여호와께로 돌이키므로 얻는 그 생명을 선포하러 보냄을 받은 엘리야에 대한 말라기의 예언이다.

 

우선 아버지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 생명을 주시고자 보내신 그 인자가 바로 메시아라는 것은 세례요한이 참된 선지자라는 사실로써 확증된다. 게다가 구약의 모든 선지자도 오직 메시아를 예언했으며 마지막에는 메시아의 약속을 믿고 피 흘림을 당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을 참된 선지자로 보았으되 참된 선지자들의 계보 끝에 있던 그가 메시아로서 예비한 이는 바로 나사렛예수라는 인자였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자인 요한의 외침을 통해 인자가 참된 메시아로 증명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는 자들은 요한도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처럼 마지막에 제사를 드릴 때 그 피 흘림을 통해 그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보며 확증할 수 있다.

 

둘째 인자가 선지자보다 나음을 통해서도 확증된다. 선지자들은 오직 메시아가 오는 길을 예비할 것을 예언했으며 그로 인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이미 원수에게 사망의 이끌림을 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피 흘림은 오직 메시아의 초림을 위한 것이었으니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그 죽음을 먼저 예비했던 것이다. 즉 구약의 참된 선지자들과 또한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의 피 흘림으로써 처음 이 땅에 오신 그 나사렛예수가 참된 메시아로서 증명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는 자들은 선지자의 예언과 외침처럼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보면 확증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거짓된 목자들과 양들은 그 구약의 성취를 보고도 나사렛예수를 끝까지 부인했으니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아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되면 수많은 거짓선지자들과 또한 전통과 신학만이 아니요 자기생각으로 말씀을 푸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이것이 진리요 말세에 이렇게 된다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며 혼란케 한다.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뜻대로 계시를 받은 자들도 자신이 받은 대로 증거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호흡하는 모든 자들은 공평하게 둘 다 듣게 된다. 하지만 전자의 수가 아무리 많고 권위가 있을지라도 오직 후자의 말대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약한 자들도 마지막에 누구의 말이 성립되었는지를 보면 그가 낙원을 이끌고 둘째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참된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있는지 아님 무저갱에서 666을 가지고 올라오는 가짜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있는지 확증할 수 있다. 게다가 보고도 의심하는 자들에겐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니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의 예비 즉 피를 보고 확증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에 거짓선지자들은 666으로 온 세상을 하나로 묶은 한 왕에게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그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목자들을 넘겨주니 그는 그들을 재판한 후에 목을 베어서 죽이되 그 144000의 피 흘림은 오히려 신약의 성취를 예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말세에 어떤 목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요한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오직 피 흘림으로써 그리스도를 예비하게 되니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요 동시에 살아있는 자들의 살아있는 증거와 예비를 통해 오시는 이가 바로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거룩을 다 이루고 다시 살아나신 참된 그리스도라는 확증이 된다. 반면 어떤 목자들은 평소에 돈과 명예를 위해 주님의 일을 하다 결국에는 어떤 목자들을 피 흘림으로 내어줄 것이니 그것은 자신이 거짓선지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요 동시에 그들이 예비한 자가 곧 원수라는 확증이다.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

2천년 전 감옥에서 마지막 선지자로서 몸을 산 제사로 드린 세례요한의 질문에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의 비밀이 담겨있다. 그것은 요한과 주님의 제자들은 나사렛예수라는 인자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다 끝에는 자신의 목숨을 드리므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부활을 얻었으되 그렇지 못했던 성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요한과 제자들을 잡아 사망에 넘기거나 직접 죽이고 오히려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일이 소수의 신령한 신부들이 들림 받은 후 마지막 대환난의 끝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시기 바로 전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비밀이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따라 죽으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얻었던 그 생명에 이를 수 있다.

 

참된 선지자였던 요한과 거짓선지자였던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은 그 수효와 권세에 있어 마치 계란과 바위였다. 게다가 요한은 전통을 따르는 목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불의와 죄악도 지적하며 돌이켜 생명을 얻으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들은 사람에게 없는 죄목도 씌워 합법적으로 혹은 쥐도 새도 모르게 불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으되 손할례당이 눈엣가시 같은 광야의 소리를 세상에 넘겼기에 헤롯은 회개하라며 말씀으로 찌르는 그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적그리스도는 법을 다루는 자들을 통해 6일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모반을 계획했다는 누명을 씌워 감옥에 넣었다. 그리하여 요한이 그리스도께로 이 질문을 한 것은 그가 옥에 갇힌 후 90일이 되었을 때였다.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믿었기에 광야에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으나 유대인들은 전통에 거하며 어릴 때부터 성전의 목자들에게 대대로 들어온 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선 처음에 오는 자는 거짓된 자요 나중에 오는 자가 진짜라는 말이 있었으나 구약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런 말씀이 없고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영부터 69이레가 지난 후 메시아가 와서 피를 통해 속죄와 구원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말은 의문의 율법과 유전이었다. 둘째 유대인들은 나중에 오는 메시아가 자신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모든 것들을 되찾아 해방을 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참된 메시아라면 그가 반드시 자신들을 해방시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인자께서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하게 오지 않으셨고 외모조차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안 좋으셨으니 요한이 예비한 인자는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아닌 독사새끼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거짓메시아였다. 그리하여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도 또한 70인도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한 백성들도 처음에는 그 의심을 다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도 유대인으로서 그 말들을 늘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심은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쳐 주님의 일을 했던 요한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는 3개월간 옥에 있으며 자신이 죽기 전에 그것을 꼭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만일 참된 메시아를 위해 목숨을 잃으면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그것은 영생을 위한 값진 죽음이 되지만 거짓된 메시아를 위해 죽는 것이라면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에 생명 없는 무가치한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곧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 하는 시점에 있던 요한은 나사렛예수라는 인자가 구약의 예언대로 오리라 한 참된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면회 온 자기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이런 질문을 전달하게 된다.

 

“당신이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참된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또한 제가 예비했던 그리스도가 바로 그것을 이루는 그 길에 서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을 가만히 보면 질문 하는 자도 질문 받는 자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 십자가를 보는 시각에 따라 자신의 마음과 믿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즉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당신이 우리를 죄와 세상에서 구원해 거룩케 하여 아버지와 하나되게 하시는 참된 그리스도가 맞으며 또한 제가 예비한 메시아가 바로 그 속죄를 이루고자 어린 양의 길에 서계시는 것이 맞느냐고 들린다. 반면 마음과 믿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우리가 사는 동안 육의 부요와 세상의 복을 주는 그리스도가 바로 당신이며 또한 제가 예비한 메시아가 바로 그런 복을 위해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것이 맞냐고 들린다. 하지만 요한은 참된 선지자였으니 전자의 문제를 고민하며 질문했다. 또한 나사렛예수라는 인자가 만일 참된 메시아라면 거룩을 이루고자 고민하고 있는 영혼에게 어떤 답을 주시는 것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된 목자들의 교훈과 더불어 율법과 예언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그가 오직 말씀을 펴서 비교하며 판단할 수 있도록 이런 답변을 주신다.

 

“그리스도가 만일 어느 죄인은 구하고 어느 죄인은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메시아의 피에 용서의 한계가 있는 것이니라. 또한 십자가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들의 수도 적을 것이니라. 그러나 인자의 피는 거룩한 피요 십자가의 피는 원수의 머리를 누른 상징이니 그가 어떠한 죄로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었든 문둥병에 걸렸든 혼과 마음의 병에 걸렸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이킬 때에는 누구든지 용서가 가능하겠노라. 또한 어떠한 사람이라도 십자가를 붙드는 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아버지의 능력에는 아무도 미칠 수 없으니 너도 또한 이와 같이 나의 피와 십자가의 승리를 아직은 보지 못하였으되 이미 보았다 함과 같이 믿고 또한 간직하며 그날을 바라보며 있으라.”

 

이제 요한은 자기제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그 말씀을 오직 율법과 예언에 맞추어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전통에서 늘 들어오던 사람들의 말이 아닌 오직 말씀을 붙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한 사람처럼 살과 피가 있는 인자가 참된 그리스도가 맞고 또한 자신이 예비한 나사렛예수가 생축제물로서 속죄와 부활을 이루는 그 길에 서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감사와 믿음으로 목베임을 통해 아버지께로 입술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지막 환난 때에 똑같이 이루어질 비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신 인자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신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안 믿는 유대인은 그들의 전통과 유전에 따라 나중에 오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동일하게 메시아를 기다리되 자신이 기다리는 자가 진짜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는 그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3차 대전 후 나오는 가짜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자신의 몸에 666을 받으리니 전통을 따르는 목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염소들은 전부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경을 본적이 없거나 말씀을 몰라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는가? 그렇지 아니하니 보고도 듣고도 알고도 그들이 종교와 전통에서 돌이키지 못함은 그때까지 받은 은혜와 또한 앞날에 구하는 은혜가 그들을 나가지 못하게 붙든다. 즉 사람은 자신의 눈과 귀로 거짓을 확인하고도 은혜를 받았으면 자기가 늘 들어온 말에 따라 그것이 참되게 보이니 계속 따르되 반대로 은혜를 받지 못했으면 자기가 늘 들어온 말에 따라 진리를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버린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반대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총과 칼로 죽이고 왕이 된 후에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고 말하지만 자리를 이용해 불법으로 돈을 모으고 어떤 사람이 입만 열면 세계와 가정의 평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그의 자식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두 눈과 귀로 잘못된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니 거짓된 자들에게서 충분히 돌이킬 수 있으나 받은 은혜와 앞으로 구하는 은혜가 사람을 못 돌이키게 하니 그가 만일 거짓된 자에게서 돈과 좋은 자리를 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으면 거짓평화와 거짓정의임을 알면서도 거짓된 자를 계속 따르게 된다.

 

이처럼 이성적인 사람도 어리석게 될 수 있으니 그것은 오직 말과 행위가 다른 그 인격체에게 자신이 원하는 은혜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짓목자들이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쳐 그때까지 목회사역을 한 것은 거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는 것이 아니요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함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양들의 마음도 똑같다. 그리고 그들의 아비인 원수는 그들이 원하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기에 자신이 가진 세상을 통해 썩어질 헛된 것들을 베풀어주며 이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받아오며 구하던 은혜로 인해 짐승의 수를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육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 표를 진심으로 받고 원수를 자신의 왕으로 영접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는 거짓된 주님이 그들에게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과 함정과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된다.

 

그러나 세상의 왕이 되는 은혜와 재벌이 되는 은혜와 종교의 영광을 가진 독사의 자식이 되는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런 은혜와 영광을 좇았을지라도 아무리 낮은 위치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생명에 이르길 원하시니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은혜를 공평하게 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통에서 들어온 말과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성경을 펴서 말씀과 맞추어보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깨달음을 주시리니 그는 거기서 나와 진리를 따르며 거룩에 애쓸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환난 전에 들림을 받거나 환난으로 들어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옥에 갇히되 십자가의 승리를 믿고 담대히 목베임을 당한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생명을 잃은 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런 생명에 이르리니 그것은 그가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많은 자들이 가짜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넘어지되 참된 그리스도로 인해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들도 반드시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에 거짓이 없고 신실했기 때문이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통해 거룩한 진리의 한 부분을 배운 제자들을 보내시며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할지 또한 전도여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 알리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을 영접하는 영혼들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주신 약속은 오직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누구든 진리를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영원한 생명나무의 상급에 대한 약속이다.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누가 어떻게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얻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구름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종착지를 알고 싶어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썩어질 육이 부유해지며 또한 이 세상에서 좋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므로 성형수술한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자 구름 같은 사람들이 귀가 솔깃해져 그 여자를 영접했고 그녀는 자기에게 나온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주었다. 그랬더니 여자의 말을 듣고 따르는 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소망 없는 세상으로 깊이 들어가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과 하나되었다. 반면 7명은 종착지를 알았으며 마지막에 다시 찾아오시는 자신의 신랑을 영접하기 원했으니 음란과 혈기와 거짓말과 교만에 무너지는 자신을 애통하며 늘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이기기 원함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육의 부요와 세상에서의 성공보다는 자신과 가족의 마음의 기쁨과 영혼의 평화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러므로 어떤 어린 남자 아이가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을 말해준 그 아이에게 가서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이며 어떻게 될 수 있냐고 물었고 아이는 자신에게 온 그 소수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으니 처음에는 불의와 죄가 전혀 없는 선한 피조물이었으나 자신의 욕심을 구하며 또한 자신이 높아지려는 교만 때문에 말씀에 불순종하고 타락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을 다시금 선한 피조물로 회복시키시길 원하셨기에 자신의 독생자에게 진리를 주시고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체를 입혀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아들은 자신의 피를 통하여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이 세상에서 나와 자신을 따르는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이시되 빛은 반드시 어둠을 이기니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영혼의 안에서는 죄가 스스로 떠나고 결국 혼의 거룩에 이르러 더 이상 불의와 죄가 아니요 새 생명가운데 행하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타락한 피조물이 아담이 범죄하기 전처럼 회복된 자가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런데 사람의 몸이 이렇게 변화되면 마치 처음엔 어둡고 넓은 방안에 작은 촛불 하나만 있던 상태에서 나중엔 눈부신 조명이 그 방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취는 것과 같으니 전자는 중생이요 후자는 성전이다. 즉 인침을 받은 자의 영과만 함께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비로소 그의 몸과 혼에도 거하시되 그의 몸을 성전 삼으시는 과정에서 그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허락하시다 나중에는 충만하게 하시니 거룩하게 된 영혼은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평안이 충만해진다. 또한 육체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영혼은 나중에 썩어질 장막을 떠나 그리스도께로 법적인 심판을 받은 후 그 거룩한 몸을 입었을 때에도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그 성소에서 충만한 기쁨과 평화를 영원토록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인격체로서 자신의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하니 당연히 그것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자를 기쁘게 따라간다. 그러므로 첫째 누구든 영의 생명을 얻은 자를 영접하면 그는 오직 사람의 영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말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을 영접한 자에게 오직 영의 말만을 들려준다. 그리하여 영의 생명을 얻은 자를 영접한 자는 오직 영의 말을 듣고 행하므로 나중에 결국 영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영의 생명을 얻은 자를 영접하는 자는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고 자신을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께서 자신과 함께 그의 안에 거하겠노라는 약속을 주셨으니 영의 생명을 얻은 자를 영접해 영의 말을 듣는 자에게 오직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진리의 빛과 자신의 흠 없는 살과 거룩한 피를 배부르게 주시어 그 약속을 지키신다. 그러면 그것은 진리를 따라 영의 말을 듣는 자가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안에 거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되는 것이니 그는 그 빛으로 인해 그의 안에서 결국 그 죄가 스스로 떠나고 성도가 된다. 그리하여 그가 영만이 아니요 혼과 몸의 거룩에도 이르면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그의 영만이 아니요 이제는 그의 생각과 몸에도 성전을 삼으시고 거하시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께 영의 생명을 얻은 자가 사람들이 영의 생명을 얻도록 영의 말을 전하듯 동일한 영적인 원리에 의해 육의 생명을 얻은 자는 사람들에게 육의 말을 전해 육의 생명을 얻게 해준다. 그러므로 육의 생명을 얻은 사람을 따르며 그의 말을 기쁘게 듣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들을 얻게 된다. 그러나 누구든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소망 없는 세상에서 헛된 영광을 얻으려면 그는 반드시 세상으로 들어가야 하되 이 세상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에 세상과 하나된 영혼은 결국 썩을 것은 썩을 것을 입고 죽을 것은 죽을 것을 입게 되리니 누구든지 세상에 거하는 영혼은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될 수 없다.

 

둘째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 즉 누구든지 어떠한 영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영접할 때에는 그의 어떠한 영의 성품에 따라 자신의 영에 생명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선지자의 성품은 오로지 심판을 전하는 것이니 그 성품을 가진 자는 마지막에 생명과 사망의 심판이 있을 것이요 누구든 생명을 얻으려면 세상에서 나오라는 심판의 말을 전한다. 이때 그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듣고 믿은 자는 바벨론에서 광야로 나오게 되고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선지자가 전한 말을 듣고 순종한 자를 구원해주신다. 그리하여 누군가 이렇게 심판의 말에 의해 생명을 얻은 자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해 선지자의 상을 받은 경우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영적인 원리로써 의인의 성품은 오로지 순결함을 뜻하니 그 성품을 가진 자는 생명이나 사망의 심판을 주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원한다면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하라고 외친다. 이때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 말을 듣고 믿은 영혼은 광야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을 이루어가게 되고 신랑은 다시 왔을 때 신령한 신부를 들어올려 그들의 거룩에 맞는 거룩한 몸을 입히신 후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부르신다. 그러므로 순결하라는 말에 의해 생명을 얻은 자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므로 의인의 상을 받은 경우다.

 

셋째 주인이 무엇을 얻고자 애쓸 때에 그의 종들도 옆에서 자기 주인의 애씀에 함께한다. 그리고 주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종들에게도 그들이 애썼던 만큼의 상을 허용한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이 없는 불쌍한 한 영혼이 오로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한 몸에 들어와 아버지의 뜻에 애쓰고 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애쓰는 그 영혼만이 아니요 그의 옆에서 그와 함께하며 그를 섬기고 돕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상급을 허락하시니 어리고 연약한 한 지체가 오직 거룩에 이르도록 섬긴 지체들도 또한 종들도 다 함께 그 생명의 상급을 더욱더 좋은 것으로 얻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눈에 냉수가 거룩에 이르도록 돕는 것으로 보이고 소자가 구원 얻을 후사로 보이는 것은 아니니 오로지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는 어리고 연약한 영혼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 그러므로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자와 끝까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와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서 돌이킬 마음이 없는 자들의 눈에는 냉수가 잘 차려진 음식과 흰 봉투에 담긴 종이로 보이고 소자는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보인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여장을 한 어떤 남자가 자신이 키우는 개의 목에다 쇠사슬을 채우고 줄을 연결해 묶어놓고는 그 줄을 한 번도 풀어주지 않았으며 개를 데리고 산책도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였던 그 여자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으로 개가 원하는 음식과 맛있는 음료수를 주었다. 또한 값비싼 다이아몬드와 금 같은 보석들을 개집의 겉에다 박아놓았으니 개집이 반짝거렸다. 그러므로 개는 비록 날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먹고 일하면서도 묶여있는 자신의 삶을 기뻐하며 만족했다. 그러다 만일 개가 자유를 원하면 그 여자는 개가 원하는 것들을 더 채워주며 목줄은 풀지 않았으되 간절히 원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반면 그 옆 광야에는 한 남자가 양우리에 양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는 양을 자기의 친구처럼 대했다. 그러므로 그는 밖에 나갈 때마다 양과 함께 멍에를 메고 푸른 초장을 산책했으며 높은 산에도 데리고 올라가 넓고 푸른 하늘과 멀리 있는 높은 산과 산밑에 있는 작은 세상을 함께 바라보았다. 또한 양의 혀가 원하는 음식과 음료를 주지 않고 오로지 신선한 풀과 맑은 시냇물만 먹였으며 쇠사슬에 묶인 개들 가운데 도움을 요청하는 개를 만나면 주인과 함께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양은 자신이 비록 멍에를 메고 있어도 오히려 그 멍에를 통해 자기주인과 늘 함께 하므로 날마다 새로운 것을 보고 깨끗한 것을 먹고 진리를 전하는 자신의 삶을 기뻐하며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 주인이 자기집 앞에 나가서 말하길 누구든 자기에게 오면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어떤 게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이냐고 물었다. 이에 그녀는 백문불여일견이라며 자기가 기르는 여섯 마리의 개들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좋아하며 어떻게 하면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여자는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 남자도 자신과 함께하는 열두 마리의 양들을 보여주자 일곱 명의 남자가 다가와 우리가 만일 저 양들처럼 살면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남자는 저 여자는 나를 미워하므로 나를 따르는 너희들도 미워하며 죽일 계획을 세우겠으나 나를 위하여 죽으면 오히려 나와 함께 친구로서 영원히 산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곱은 끝까지 당신과 함께하겠다며 남자를 따라갔으니 그들은 영혼이 좋아하는 것을 먹고 속이 깨끗한 집이 되어가며 자기주인과 함께 멍에를 메고 누리는 삶에 기쁨과 만족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양의 삶보다는 개 같은 삶을 원했으니 여자에게 자신의 목에다 빨리 쇠사슬을 채워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들을 묶은 후 그들이 원하는 음식과 음료를 주었으며 집에 보석들을 하나씩 박아주었으니 나이가 들며 개집이 비싸졌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자기 옆에 묶여있는 자의 음식과 집을 보며 저 사람보다 더 많이 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여자는 그런 자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고 더욱더 교묘한 말을 귀에 들려주니 그들은 허사를 경영하면서 날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먹는 인생에 기쁨과 만족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개장수가 차를 끌고 그 동네를 찾아오자 그녀는 때가 된 것을 깨닫고는 자기의 말을 듣던 자들을 팔았으니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가 개와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되었다. 또한 그날 밤 남자의 양우리에 들어가 그 일곱을 죽이고 그 피를 마셨으나 오히려 남자의 말대로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생기와 더불어 생각하는 혼과 마음을 가진 인격체로서 창조하셨으니 사람은 짐승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마음을 품고 무엇이든 선택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혀를 돌리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영원한 영의 생명보다는 썩어질 육의 생명을 구하려 하면 그는 반드시 원수에게로 가게 되어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가 자기의 말을 듣는 자에게만 그가 원하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수는 사람에게 마음의 기쁨과 영혼의 평안은 못 준다. 그러므로 원수가 이끌어가고 있는 세상에 매인 자는 그가 비록 육의 기쁨과 세상의 만족을 잠시 얻을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과 영혼에는 못 얻는다. 게다가 사람은 가난하든 서민이든 중산층이든 상위1%든 아무리 맛있고 비싼 것을 먹어도 몇 번 먹은 후에는 별맛을 느끼지 못하며 사람들이 쓰는 세상의 모든 물건들도 마찬가지이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그 무의미하고 허무한 형적을 향해 달리고 있다.

 

또한 원수는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으로 묶어놓은 자기사람들에게 마음의 괴로움과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니요 마지막에는 그들의 영의 생명도 빼앗아가니 그들은 이렇게 빼앗긴다. 그러므로 육을 위해 세상의 부속품처럼 살고 있는 자는 육과 세상을 얻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반드시 불의와 죄를 범하며 쌓게 되어있다. 그러나 죄에는 영원한 망의 심판이 있고 이 세상은 마지막에 진노의 포도주 틀로 바뀐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쌓은 것에 대한 형벌의 심판을 의롭고 정직한 말씀의 법으로 내리시니 육의 목숨과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마지막에 이 세상과 함께 그 불과 유황의 사망으로 들어가므로 영원한 영의 생명까지 잃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육의 생명보다는 자신의 영의 생명을 구하는 영혼에 대해서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주시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를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 허망한 자리에서 건지시어 아들의 흠 없는 피로 세우신 그 거룩한 공동체로 이끄신다. 하지만 영의 생명을 구하는 자가 그리스도께 나가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한 몸을 이루려면 우선 세상에서 나가면 죽이겠다는 원수의 협박을 그의 영이 십자가의 믿음으로 이겨야 하고 또한 육의 부요와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던 그의 마음을 돌이켜야 하며 또한 자신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준 이 세상을 미워해야 한다. 그리하면 원수가 더 이상 육과 세상을 이용해 그의 몸을 이끌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기 원한다면 그는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원수는 사람의 안에 거하는 로 그리스도예수의 사람이 된 그의 혀를 놀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의 위협을 이기고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는 자가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 마음과 영혼에 늘 기쁨과 만족을 얻고 또한 세상에 대하여 죽은 그가 비록 불의한 세상은 즐기지 못하나 주께서 이끌고 내려오시는 둘째하늘의 낙원과 또한 천년왕국 후에 올라갈 그 영원한 셋째하늘에서의 영광과 권세를 소망하며 늘 거룩에 애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는 영의 생명을 구하고자 흑암에서 일어나 그리스도께로 나간 사람의 생명을 미리 빼앗는 자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육체의 목숨을 빼앗은 원수는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의 삶에서 돌이켜 그리스도께로 간 자의 죽음도 이미 계획하고 있으니 마지막 때에 십자가를 진 자들의 경우에는 단두대를 통해 그들의 육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룩을 위하여 아들과 함께 평화롭게 제사를 드린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는 오히려 영광가운데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거룩한 몸의 생명에 이른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기는 그에게는

어떤 왕이 자기의 나라를 공의와 사랑으로 평화롭게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악한 자들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칼로 찌르며 용광로에 빠뜨려 죽이기 시작했다. 이에 그 왕은 전쟁터로 나가 자기 혼자 용감하게 싸워 상대편 나라의 칼과 용광로를 다 쳐부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큰 영광을 가지고 다스렸다. 그런데 백성들은 자기의 왕이 홀로 싸우는 그 모습과 또한 승리한 후 큰 영광을 얻어서 다스리는 그 모습을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나중에는 존경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왕은 영광스러운 자신을 우러러보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나와 같이 승리를 할 것이니 내가 그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싸움에서 승리한 자는 나와 같은 자가 될 것이니 그는 나처럼 큰 영광을 얻어 나의 왕좌에 함께 앉겠노라.” 왕의 말을 듣자 14명이 왕의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며 왕과 약속했다. “제가 어찌 편히 누워서 영광 받기를 바라겠나이까? 다른 사람이 어찌하든지 저는 왕의 군사가 되겠습니다. 제가 승리하기까지 왕께서 싸우신 것을 보고 그대로 싸우겠습니다. 그 영광을 위해 저의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이다. 왕의 용사된 제게 왕의 일을 맡기소서.” 왕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사들이 자기처럼 용감하고 힘있게 끝까지 싸워 승리하길 원했다. 그러므로 전쟁터로 나가는 전날 밤에 군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그들에게 힘을 낼 수 있는 음식들을 많이 베풀었다. 또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밤이 되자 왕의 군사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드디어 싸움터로 나갔으며 왕은 자기가 했던 약속을 다 지켰다. 즉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이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악한 자들과 싸울 때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쟁터에서 악한 자들의 칼과 용광로를 조금도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하여 왕을 따르며 왕의 말을 들은 군사들은 악한 나라와의 싸움에서 모두다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승리한 왕의 군사들은 승전가를 높이 부르며 백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새벽에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왕은 어떤 군사는 자기의 오른쪽에 앉는 영광을 주고 어떤 군사는 자기의 왼쪽에 앉는 영광을 주며 너희는 나와 같은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왕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은 군사들은 자신의 왕과 함께 큰 영광과 기쁨을 누리며 왕의 나라를 함께 다스렸다. 

 

이와 같이 이기는 자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그선악의죄와 또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것들을 이길 수 있으리요?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을 실제로 입고 가장 먼저 그것들을 이긴 분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시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기신 그가 자신을 따라오는 자와 함께하며 도왔기에 그도 역시 육체가운데서 죽음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이긴 그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히고 부활시키시어 지성소에 있는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앉히시므로 그를 모든 만물가운데서 매우 높여주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며 이긴 자들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셨다. 하지만 거룩한육체를 입은 24장로와 장자들도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동등함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되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셨을 때 이 땅은 태초에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되었던 에덴동산처럼 회복된다. 그리고 낙원의 북방 가장 높은 산에 새예루살렘성이 있으니 그리스도는 그 성안에서 정가운데 앉으신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으로는 남았던 유대인을 왼쪽으로는 이겼던 이방인을 앉히신다. 그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자들이 다 그리스도와 같이 이긴 자가 되므로 그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천 년 동안 함께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는 자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의 끝에 이 첫째 하늘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고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심판을 마치셨으니 장자들과 신령한 교회와 백성들을 이끌고 아버지의 나라로 올라가신다. 그러면 셋째 하늘의 시온산에도 역시 새예루살렘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긴 자들은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우편과 좌편에 앉아 함께 기쁨을 누리며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영광스런 빛을 비추고 다니며 시간과 공간의 끝이 없는 셋째 하늘을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그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는 혼인날까지 정절을 지키겠노라 마음먹었다. 이제 남자는 여자를 위해 혼인예식과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떠났다. 그리고 여자는 그때부터 자신의 남자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며 기다리는 동안 남자 없는 연약한 여자로서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랬다. 또한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어디든지 남자와 함께 다니며 늘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게 간절한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오직 남자가 돌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남자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돌아오며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그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 매우 기뻐하며 집에서 뛰어나와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다리며 당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키느라 수고했소. 순결한 당신을 위해 영광스런 혼인예식과 성대한 혼인잔치를 준비했소. 그러니 우리 함께 한 몸을 이루어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쁘고 행복하게 삽시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 여자는 남자와 기쁨으로 한 몸을 이룬 후 준비된 혼인잔치에 참여해 신랑과 함께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도 늘 남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거하며 함께 다니며 함께 기쁨과 안식을 누렸다. 그리하여 순결을 지킨 그 여자는 자신이 간직했던 간절한 마음과 소망들을 다 이루었다. 

 

이와 같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다시 오셨을 때에 그 안에 있는 낙원에서 실제로 있을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의미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시기 전에 먼저 과정에 있던 그 영혼들이 종들과 함께 혼인잔치준비를 공중에다 다 차린다. 그런 후 아들의 일곱 종들이 내려와서 잔치가 빠짐없이 준비되었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다시 아들에게 가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때가 되었도다. 너의 신부를 맞이하라.’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비로서 하늘 문을 열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신다. 

 

바로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그 일곱 종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몸을 육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지킨 신부들을 이미 다 찾아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개 영혼아 오너라.’하시면 그 영혼이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알고 나온다. 그러면 종들은 장막에서 나온 그 영혼을 데리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운 자를 먼저 맞이하여 그를 껴안고 ‘수고하였도다. 아름다운 나의 몸이 되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 영혼도 똑같이 한 몸으로 맞이하시니 이렇게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예식이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아니하고 슬픈 것을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신랑과 함께하며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정결한 영혼들이 신랑과 한자리에 앉아서 함께 잔치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기쁨을 누리니 그것이 바로 혼인잔치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정결한 한 영혼을 부르시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영혼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하되 오직 부름을 받은 영혼들은 신랑의 그 음성을 듣고 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음성을 들을 때에는 그 영혼이 매우 기뻐하며 그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잊고 오히려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얻으며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있을 그 환난이 임박한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얼마나 가까이 오셨나? 먼저 두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의 문을 열고 오직 자신에게 마음을 드린 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영혼의 속에 들어가고 그는 자신의 속에 들어와 자신의 신부가 되리라는 그 약속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현재 얼마나 가까이 오셨는가 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문을 여시고자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셨다. 그러므로 어느 때든지 그가 열고 나오실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져 먹고 마시고 있으니 신랑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으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