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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날마다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료에 관계된 영적인 세계가 있으니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깨달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수는 악한 짐승보다 더욱더 더러운 흑암의 세력을 통해 사람들이 취하는 음식과 음료를 늘 더럽힌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음식 위에다 머리를 털어대고 그 속으로 들어가 헤엄치며 돌아다니니 그것은 거룩한 제사가 아니라 귀신에게 제사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음식을 더럽히는 장면이 보이지 않기에 맛있다면서 먹고 마신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비록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자신의 육과 영에 나타나는 결과를 잘 살펴보면 자신이 더러운 음식을 먹고 마셨는지 혹은 거룩한 것을 취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사람들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는 육적인 결과로써 자신이 비록 상하지 않은 음식과 음료를 취했다 할지라도 배탈이 나거나 구토를 한다. 또한 더럽혀진 음식은 사람의 몸을 서서히 썩히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쌓이면 결국 육신이 연약해져 질병을 얻는다. 둘째 결과는 영적인 간음이니 그는 더러운 음식을 통해 얻은 힘으로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주님을 떠나 이 사망의 어둔 세상으로 더욱더 깊이 들어간다. 또한 거듭난 영혼이 더욱더 빠른 시기에 영적인 잠에 빠지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되 교만한 영혼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오히려 자기의 말로 바꾸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실행하면서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원수는 세상의 그 어떤 음식과 음료보다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것을 더욱더 더럽히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주님의 만찬이다. 하지만 믿는 자가 만찬에 참여해서 먹고 마실 때도 역시 세상의 음식을 취할 때처럼 그 흑암의 세력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위와 동일한 결과들이 자신에게 나타나면 인자의 살과 피를 살피지 않고 먹고 마신 것이요 반대로 인자의 생명을 얻으면 거룩한 것을 합당하게 취한 것이다. 원수는 또한 사람을 영적인 간음과 그로 인한 사망으로 끌어들이기 원하니 사람의 혀가 좋아하는 각종 음식과 독물을 만든다. 고로 원수의 가장 흔한 제사음식으로는 자신을 따른 모든 영혼들과 함께 거할 그 영원한 처소를 상징하여 만든 피자가 있고 가장 흔한 독물로는 자기의 마음의 색과 같은 콜라가 있으되 아버지께서 주신 네 가지 강물과 자연에서 바로 나온 것들은 모두다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원수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의 음식이나 마음대로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욕심을 품고 세상에 거하는 자들의 음식만을 더럽힐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선악을 돌이키고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은 항상 깨끗한 것만을 먹고 마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거룩한 것을 먹고 마셨다는 것은 자신의 육신과 영혼에 나타나는 결과를 살펴보면 알 수 있으니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신 후 거룩에 애쓴 자는 그의 몸도 영도 깨끗하기에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간다. 그러므로 결국 사람이 깨끗한 것을 먹고 마시기 원한다면 방법은 오직 한 가지이니 먼저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에서 돌이킨 후 그가 이제는 만찬에서 인자와 함께 흠이 없는 것을 먹고 마시면 된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계시를 받고 그리스도를 예비한 자이니 구약선지자들처럼 이런 영적인 세계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육과 영이 마지막 제사의 순간까지 주님을 예비하고자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회개했으며 젊을 때 이미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서 돌이켰다. 그런 후 광야에 거하며 그리스도의 전에는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그 네 가지 강물과 자연에서 나오는 것들만을 취하되 원수가 주는 음식과 독물은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인자와 함께 할 때에는 비로소 모든 음식을 입에 대었으니 만찬에 오른 것은 주께서 거룩하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떤 제사음식과 독물도 다 먹고 마셨다. 반면 당시 큰 성전에서 백성들을 이끌던 독사의 자식들은 이러한 영적인 세계를 몰랐으며 그들의 마음은 오직 썩어질 것과 헛된 것에 있었다. 그러므로 원수는 흑암의 세력들을 통해 그들이 먹고 마시는 제사음식과 음료를 매우 더럽힐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비록 취하기 전에 축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더럽고 교만한 마음을 아시기에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제사음식을 거룩하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늘 더러운 것을 먹고 마신 후 그 힘을 가지고 오직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며 음란을 행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것을 먹고 마시며 거룩에 애쓰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과 세례요한을 보고 오히려 악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사실 유대인이었기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그 규례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 지식으로 인하여 베드로처럼 음식에 대해 오히려 지혜롭지 못한 것이 있었다. 즉 그리스도의 전에는 부정한 것을 전혀 입에 대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께서도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그 뜻을 위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요한의 그 마음만은 기쁘게 받으셨다. 그럴지라도 그는 행한 일로 인해 옳다 함을 얻는 그 지혜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신을 따르는 그 제자들과 70인만이 아니요 그와 같이 이제는 거룩한 제사로써 자신의 재림을 예비하기 원하는 교회시대의 모든 제자들과 양들도 지혜롭게 행하도록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만약 요한이 원수로부터 나온 각종 음식들에 대해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깨끗함을 구하며 취하였다면 아직은 십자가에서 인자의 살과 피가 없는 시기라 하여 아버지께서 그가 홀로 혹은 가족과 혹은 거룩한 공동체가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그 음식과 음료를 깨끗하게 하시지 아니하셨겠는가? 그러므로 아무리 원수가 내어주는 음식일지라도 부정한 음식일지라도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더러운 흑암들이 매우 털어대며 헤엄쳤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믿음으로 만찬을 행하면 그것은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니 그에 대한 지혜를 아버지께서 주시겠고 더불어 믿음은 지혜를 늘 더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혜는 오직 자신을 살핀 후에 먹고 마시는 자에게서 나오는 그 행위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신이 많은 동물들을 창조하기 전 누구에게 그 동물의 왕국을 다스리게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만약 원숭이를 왕의 자리에 앉히면 꾀를 내어 오직 자기의 욕심을 위해 다스리고 사자는 힘으로 자기의 멋대로 폭력으로 다스리고 소는 자기의 생각대로 고집스럽게 다스리고 쥐는 약삭빠르게 높은 자리에 앉은 후 오직 자기의 이익만 구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어미젖을 빠는 은혜를 아는 모습과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욕심 없는 모습과 높아지려고 다투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모습과 공의를 먼저 자신에게 요구하며 늘 자신이 가야 할 길로만 다니는 순결한 모습으로 다스리는 양을 국무총리로 세우고 또한 자신을 창조한 창조자와 동물을 아는 지혜를 갖추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전하며 적들이 나타났을 때는 발톱을 세우고 펄쩍펄쩍 뛰며 백성을 위해 용감히 싸우고 맛있는 것을 보면 낮은 사람들을 불러 함께 먹고 자신의 목이 비틀려 죽을지라도 밤이 지난 후 밝아오는 그 여명을 전하기 위해 정확히 때를 맞추어 우는 닭으로 하여금 그 국무총리를 다스리는 왕으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신은 양과 닭을 곧바로 국무총리와 왕 자리에 앉히지 않고 그들이 동물의 왕국을 인자와 공의로 다스릴 수 있는 성품을 갖춘 후에야 그 권세를 맡기고 싶었으니 그들을 창조한 후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가 동물의 왕국에서 국무총리와 왕이 되도록 창조했으되 다른 동물들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지도자의 성품을 갖추어야 한 나라를 이끌 수 있겠노라.” 신의 말을 듣자 양과 닭은 어떻게 하면 그런 성품을 갖출 수 있느냐고 물었고 신은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양은 오직 깨끗한 풀을 뜯어먹고 닭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며 내 말만 듣고 행하며 양들에게 내 말을 그대로 전하므로 이룰 수 있겠노라.” 그러나 닭은 그 말을 듣고도 창조자를 따르지 않았으니 양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고 양들은 배고파도 깨끗한 풀을 뜯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나는 은혜를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이에 신은 거짓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성품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다시 일러주었다. 그러나 닭은 신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자신의 창조자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신의 뜻과 말을 깨닫지 못했으니 오히려 늘 자기가 원하는 말을 전하며 마을로 내려가면 맛있는 고기가 많다고 했다. 그러자 양은 마을로 내려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고기를 주워먹었으니 몸에서 온통 시커멓고 더러운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은 다른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은 나중에 동물왕국에서 국무총리가 될 거라며 자랑했다. 그러자 다른 동물들은 양의 몸에 나있는 털을 보더니 ‘그 동물의 왕국에서는 더러워야 다스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편 닭은 마을을 돌아다니는 양들의 털을 깎아 팔아 고급양말을 사 신고 다니며 닭장도 점점 큰 것으로 바꿨다. 또한 양을 많이 모아 자기 말을 듣고 자기를 따르게 하되 자기 말을 안 듣는 양들은 멀리 두므로 자기가 창조자보다 높아졌다. 그래도 닭은 다른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은 나중에 동물왕국에서 왕이 되도록 선택을 받았노라며 자랑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닭의 모습을 보더니 더럽고 교만한 자가 다스리는 그 동물왕국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신은 그들이 욕심과 교만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을 걷도록 또다시 타일렀다. 그러나 양과 닭은 창조자의 말을 듣고 따르며 그 성품에 이르고자 애쓰기 보다 오히려 늘 자기의 욕심을 채우며 자신을 높이고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위만을 계속 이루어갔다.
이와 같이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천년왕국과 그 끝에 올라갈 셋째하늘의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약속되어있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모든 만물을 아버지의 뜻대로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와 거룩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입혀주신 그 거룩한 몸을 거룩을 이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도 허락하시어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니 거룩한 많은 아들딸들이 천국과 셋째하늘에서 왕과 제사장으로서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침 받은 자는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한 몸 안에서 거룩에 이르므로 그 영광과 권세의 언약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전 말씀에서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전하시며 나사렛예수라는 인자가 곧 오리라던 그 메시아임을 율법과 예언과 성문을 통해 알리셨다. 그래야 한 영혼이라도 더 그 인자가 참된 그리스도임을 알고 진리를 따르므로 그 약속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늘 진리만을 전하셨어도 다수가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그들은 전통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인자를 원수가 보낸 자라며 정죄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렇게 구약예언대로 오신 반석을 오히려 거치는 돌로 여기며 부인한 이유가 있었으니 우선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약속하셨으며 그것을 위해 사람에게 오직 한 가지 거룩만을 원하신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따르며 거룩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아니함은 그들의 마음이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썩어질 욕심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의 안에 거하는 어둠은 진리를 듣거나 보아도 깨닫지도 못하도록 마음의 눈을 가린다. 그리하여 바로 그 죄로 인해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를 보고 가짜로 의심했던 것이요 성전목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백성들이 그 죄를 애통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니 이러한 일은 마지막 때에 입으로 믿노라는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육과 세상으로 인해 침노당한 유대인들이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의 영원한 영광과 권세를 버리고 사망의 그늘에 앉아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마음이 아프셨다. 또한 그들에게 자신의 아픈 그 마음을 알리고 싶으셨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주님을 아노라 믿노라 하면서도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자들과 또한 자기의 생각과 의로 인하여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말씀이니 그 뜻은 이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가만히 살펴보아라.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그들 자신의 영원한 생명의 유익과 또한 그들이 영광과 권세를 이루도록 이것을 하여라 또한 저것을 하여라 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은혜를 입은 피조물은 그저 가만히 있노라. 오히려 창조자의 뜻을 원치 아니하고 피조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며 나아가고 있노라. 그러므로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를 지으신 후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아버지와 창조자의 그 마음을 한 번만이라도 헤아려보아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144000의 예비 즉 그들의 피 흘림과 함께 새예루살렘성을 이끌고 이 땅으로 내려와 왕으로서 다스리시되 그전에 먼저 용이 무저갱에서 올라와 666으로 온 땅을 하나로 모은 후 이젠 더 이상 땅의 임금들이 아니요 자신이 직접 왕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천국이 침노당한 자들은 자신은 내줄지라도 자신이 낳은 자식은 고통과 죽음에 내어줄 수 없는 사랑을 버렸으며 아버지께서도 짝사랑은 거부하시니 육과 세상과 교만방자에 빠진 자들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에 자신이 늘 들었던 전통의 가르침을 따라 오히려 짐승을 구세주로 믿고 환영하며 육이 살고자 사람의 수를 넣는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많은 자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되 십자가의 사랑을 버린 자들은 정작 그리스도로 인하여 실족하게 된다. 반면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들은 대환난 전에 들림을 받고 둘째짐승이 가짜임을 알고 있는 신부들은 환난복음을 전한 후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육과 세상과 자기 의를 내려놓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자는 이 말씀으로 실족과 생명의 기준을 깨달으리니 그는 생명에 거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전에도 당시에도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메시아의 오심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오시자 성전목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염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에 의문의 율법과 유전으로 나사렛예수라는 인자를 거짓메시아라고 의심했으되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독사새끼들이 말하며 이끌어주니 육과 세상과 교만과 자기의 의로움에 빠져있는 자들이 어찌 그 인자를 율법과 예언에 비교하리요? 어리석은 자들은 말씀을 펴볼 생각도 없었다. 반면 그리스도의 12제자들과 70인들과 여호와를 사랑하던 백성들은 율법과 예언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인자를 메시아로 믿고 거기서 나와 예루살렘교회를 이루었다. 또한 율법과 선지자가 예비한 진리를 끝까지 따라갔으니 그것은 자신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갈급함을 오직 여호와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이 이런 상황에 있음을 아셨으니 그들이 어려서부터 늘 전통에서 들어온 유전의 말이 아닌 오직 율법과 예언에 인자와 그의 말을 비추어보고 판단하므로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들도 거룩하신 영도 인격체이시며 사람도 인격체이니 다른 인격체를 억지로 믿게 하거나 믿을 수 없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인격체와 함께하면 마음도 몸도 힘들어지되 원하는 존재와는 함께 할수록 기쁘다. 그러므로 현재까지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곳에서 떠나가되 오직 따르려는 자들에게는 더욱더 확신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앞에 서있는 그 인자가 메시아임을 확증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주셨다.
첫째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것은 우선 그리스도전의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동일하게 전했으며 또한 많은 기록으로도 남겼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메시아가 사람들의 죄와 허물의 구속을 위하여 인자로 와서 고난과 고통을 받을 것임을 남겼고 호세아는 음란한 여자가 자기의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처럼 믿는 자들이 여호와로부터 떠나 세상에 빠졌을지라도 그 은혜를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게 한 몸을 이루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회복시키실 것임을 기록했고 말라기는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은혜 받은 자들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그 생명의 언약을 성취하도록 엘리야를 보내주신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이렇게 메시아를 예언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마지막 선지자였으며 또한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가 바로 메시아라며 돌이킴을 선포했다. 그러므로 자기생각과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키라는 요한의 그 선포와 예비를 통해 오신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가 바로 참된 메시아로 확증되는 것이다.
둘째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것이니 유대인들은 아버지께로 주어지는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르려면 할례의 약속을 받은 자신들도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들은 그것들을 지키고자 애썼으되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다 지키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과 계명을 주신 그리스도가 와서 친히 그것을 완성시키면 자신도 여호와를 힘입어 그것을 완성시키므로 그 생명의 약속에 이르고자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인자가 공생애 끝에 십자가에서 완성하고 부활할 것이니 율법의 완성을 예언한 요한의 바로 그 예언대로 그 인자가 곧 참된 메시아로 확증되는 것이다.
이제 유대인들은 자신의 집에 있는 타나카를 직접 펴서 읽어볼 수 있으니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는 말씀을 통해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가 참된 메시아임을 믿을 수 있다. 또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지만 계속 의심하는 자일지라도 그 인자가 예언대로 고난 받고 피 흘리므로 율법과 계명의 약속을 다 이루고 부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수의 목자들과 백성들은 말씀과 맞추어보지 아니하고 자신이 늘 들어오던 유전과 전통으로 판단했으며 또한 자신의 눈으로 십자가를 보고도 믿지 못했으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음란한 자들에게는 진리가 가려지도록 이미 아버지께서 그렇게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하는 가난한 유대인들만 진리를 볼 때 보고 들을 때 듣고 믿었으며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음이 없는 연약한 자들은 어린 양의 제사와 부활하신 주님의 그 거룩한 몸을 본 후에는 확실히 믿었다.
그렇다면 당시 큰 건물들에 거하던 목자들과 양들은 어떻게 십자가를 보고도 즉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도 그 인자를 부인했는가? 또한 교회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나사렛예수를 죽인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두운 세상에 있음으로 인하여 어둠으로 마음의 눈이 가리워져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 유대인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만군의 여호와를 통해 창조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어찌 창조자인 그 메시아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즉 로마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 피조물인 사람이 어떻게 생명을 주신 창조자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가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원수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와 물질을 다 취했고 취하고 취할 것이다.
둘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갈대아에서 나온 이후로 또한 자기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에 가나안으로 향할 때 그 광야에서 이방민족들에게 고난 당하고 핍박 받은 모든 것을 다 해소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원수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어두운 현재의 세상에다 천년왕국을 세우심이 아니요 오히려 이 세상을 심판하신 후 이 땅을 태초의 에덴동산처럼 선하게 회복하신 후에 그 불법자가 묶인 상태에서 천국을 이루신다. 그리고 유대인의 장자들에게는 새예루살렘을 이방교회의 장자들에게는 만국을 다스리게 하시니 그것은 천년왕국에서도 또한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아버지의 영원하신 셋째하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음란한 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빼앗겼기에 유대교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두 가지를 해결해주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세상이 대적하지 않고 환영하며 세상을 하나로 묶어 유대인의 열두 지파가 온 이방을 다스리게 하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이방인이 교회에서 늘 말하기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되리라 하면서 세상의 복을 바라보며 세상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거룩이니 그런 유대인과 이방인이 기다리는 자는 오직 육과 세상을 즐기게 해주는 불법자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까지 요한이 예비한 인자가 여호와께로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엘리야임을 통해 살과 물과 피가 있는 자신이 곧 메시아임을 깨우쳐주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으니 그 의미는 지금까지의 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을 원치 않는 자는 그냥 조용히 그곳을 떠날 것이요 머무르는 자는 그 다음에 나오는 인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의미들을 깨닫도록 마음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진리는 변함이 없으며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 마지막 때에도 진리를 원하는 자들은 늘 겸손하고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기다리되 육과 세상을 원하는 자들은 진리가 전해지는 곳을 떠나가고 악한 자들은 남아서 훼방한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통해 그 빛을 깨닫고 따라간 자들이 그 생명에 이르되 어둠에 마음을 둔 자들이 자신이 속한 세상과 함께 결국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택함 받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생명의 언약과 성취에 대하여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거룩한 자의 몸이 여호와의 성전이 될 것이요 나중에 거룩한 부활의 몸을 입고 만군의 여호와와 함께 거하며 천년왕국의 땅을 다스린다는 복음을 가장먼저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하지만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먼저 택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육신적인 혈통만을 가지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그 복음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오직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세상에서 나와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의 약속을 이룬 자만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주신 그 생명의 언약을 성취한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으로 인해 연약하고 마음에 죄가 있어 늘 불의와 죄를 범하니 어떻게 거룩을 이루리요? 그러나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하실 수 있으시니 누구든지 그 언약을 소망하며 아버지께서 거룩케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를 친히 거룩케 하시므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믿고 순종한 유대인은 아브라함처럼 그 언약을 다 이루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도 인격체시며 사람도 인격체니 아버지께서는 원치 않는 자를 이끌어 억지로 순종케 혹은 억지로 거룩케 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전목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아버지의 은혜와 약속을 얻고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다스리는 그 위치에서 눈먼 백성들까지 타락과 사망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십자가이전의 목자들은 과연 무엇으로 인해 거룩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 결과 그 생명의 약속을 얻지 못했는가? 즉 인격체인 그들의 마음을 언약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 길에서 겪게 되는 고난과 핍박도 아니요 죽음의 두려움도 아니요 어이없고 어리석게 들리겠으나 이방인처럼 썩어질 욕심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빼앗긴 유대인들은 늘 성전에 나와 제사 드린 후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며 의와 거룩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 오직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둔 우상을 구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며 백성을 세상과 간음하도록 인도한 독사새끼들과 그것을 좋게 여긴 백성들은 사망으로 들어갔다. 즉 썩어질 것과 헛된 것으로 성전을 더럽힌 자들은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의 그 영원한 영광과 권세를 침략당했다.
반면 유대인가운데 어떤 자들이 그 생명의 약속을 얻었는가?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은혜와 약속을 받은 후 부활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며 또한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한 자들에게 그 약속을 지키시니 인자를 보라!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을 회개하고 세상에서 돌이킨 후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해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의와 거룩에 애쓰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다. 그리하여 평화를 이룬 자들은 육과 세상으로 인하여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침략당하지 않았다.
이처럼 택함의 은혜를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의 약속이 주어져 있으되 그 복을 성취한 자들이 바로 의로운 피를 흘리며 그리스도를 예비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이스라엘사람가운데 가장 복된 것은 그는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처럼 메시아의 탄생 전에 이 첫째하늘에 태어나 그리스도를 예비했다. 하지만 그는 여느 선지자들과 달리 자신이 예비했던 그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났다. 게다가 메시아보다 먼저 육의 사망에 들어가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복까지 성취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고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복된 자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듣자 그곳에 있던 소수의 무리들도 요한과 같은 복을 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과 셋째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원하는 그들의 영적인 갈급과 마음을 아셨다. 그러므로 자기의 위치가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높아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셨으니 누구든지 만일 요한보다 더 높은 거룩에 이르면 그는 요한보다 더 높임을 받게 된다. 즉 그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왔을 때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더욱더 가까이 앉을 것이니 그가 천년왕국의 끝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여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아버지께로도 더 가까이 거하게 되므로 높아진다.
그런데 거룩한 몸을 입고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어 천국과 셋째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상속한다는 그 영광스런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전의 유대인만이 아니요 일곱교회시대의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동일하게 약속된 것이다. 그러나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써 다 그 복을 이룬 것은 아니듯 이방인도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영이 거듭나므로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지만 단지 신약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에 영광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도 역시 아버지의 약속과 거룩케 하심을 믿고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며 죽기까지 순종해 거룩을 이룬 소수가 약속을 성취한다.
그렇다면 교회시대의 이방인은 거듭나므로 그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가? 즉 이방인의 다수는 무엇으로 인해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서 천국과 셋째하늘을 다스리는 그 영광과 권세를 침략당하는가? 돼지들도 역시 개들과 동일한 것으로 인하여 빼앗김이니 이 마지막 때에도 첫사랑의 은혜와 약속을 잃은 우매한 목자들은 믿는 자들이 육과 세상 것들을 얻도록 그릇되게 인도하고 있으며 양들도 자신이 원하는 썩어질 것과 헛된 영광을 바알에게 구하고자 아버지의 앞에 나와 양손을 벌리니 목자도 양도 그들의 마음과 행위가 이방인과 일반이다. 이러하니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자들이 어찌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하여 거룩에 애쓰며 또한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룰 수 있으리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 은혜의 약속이 오직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교회시대에도 많은 자들이 거듭나 약속을 얻고도 썩어질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으로 인해 그 영광과 권세를 빼앗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신 것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로 하여금 거기서 돌이켜 나와 인자를 따르며 거룩에 애쓰므로 그 영광스런 생명을 얻으라는 아들의 십자가복음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모인 소수만이 아니요 교회시대의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원수로 인해 그것이 침략당하지 않도록 이 말씀을 주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평화를 빼앗기듯이 천국과 셋째하늘의 그 은혜를 입었다 할지라도 원수에게 그 마음이 빼앗길 때에는 천국과 셋째하늘의 그 영광도 빼앗기는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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