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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7
-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살고자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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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13
-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살고자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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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비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화를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주고 싶었다. 또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그 아들만을 사랑하며 올바르게 키웠다. 그러므로 아들은 커가면서 자신이 아비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으니 자신도 역시 다른 어떤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자기아비의 말에 온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아비의 뜻만 이루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가 아들에게 이러한 말들을 해주었다. “나의 사랑하며 기뻐하는 아들아! 내가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것처럼 네 동생들에게도 똑같은 것을 주는 게 내 소원이니 너는 이 포도 씨를 가져가 땅에 심거라. 그러면 그것을 통해 네 동생들도 가장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겠노라.” 아들은 아비의 말을 듣고 난 후 아비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또한 자기동생들을 위해 씨를 땅에 심으려고 했으나 그 씨는 반드시 자기의 목숨을 잃어야만 심을 수 있는 씨였다. 그러므로 아들은 자기아비가 자신에게 어떠한 마음과 믿음을 품고 있는지 또한 동생들을 향한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생들에게 가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거나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않고 오직 자기아비의 말과 뜻만을 전한 후에 쟁기로 땅을 파고 그 씨를 심었다. 이에 둘째 아들과 셋째 딸은 그 쟁기와 죽음을 보며 사람은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니요 오로지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아비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과 또한 아비를 어느 정도까지 섬겨야 할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자신의 마음을 다해 아비의 말에 순종하며 오직 아비의 뜻을 이루어가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반면 넷째 딸은 그의 쟁기와 죽음을 보고도 마땅히 깨달아야 할 바를 깨닫지 못했으니 마음과 뜻을 다해 아비의 말에 순종하며 아비의 뜻을 이루어가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유익을 위해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다 결국 독 사과의 씨를 심었다. 이에 아비는 포도 씨를 심고 목숨을 잃은 맏아들과 자녀들에게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보화와 자신의 모든 유산을 나누어주었으되 그들이 영광과 기쁨을 누릴 때 자신도 함께 기뻐함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까지 불법을 행하다 죽은 넷째는 그것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쓴 열매를 맺은 만큼 책망받고 쫓겨났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밝히 보이시고자 자신의 십자가로써 그 율법과 법도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바로 그 인자가 율법과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임을 그 십자가를 통해 확증했고 이방인은 그 십자가의 죽음을 보며 바로 그가 속죄와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운데 있는 자들도 먼데 있는 자들도 그를 따르는 신실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오직 진리를 따른 자들이 맏아들과 함께 약속의 자녀들이 되어 아버지의 그 영광과 권세에 참여하므로 아버지의 그 소원을 영원토록 이루어 드릴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이방인과 달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기 전에도 이미 아버지를 섬기는 법도를 알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으니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해 거룩을 이룬 후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여호와를 섬긴 구약의 그 선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그곳에 모여 이 말씀을 듣던 자들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아직도 음침한 마음이 있었다. 즉 그들은 인자에 대한 의심스런 마음을 아직도 품고 있었으며 또한 말씀들을 자신의 유익으로만 삼키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그 음침한 마음들을 지적하시고자 그들에게 이 말씀을 전해주신 것이니 그 목적은 두 가지다.
우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하므로 그들의 앞에 서있는 그 인자가 곧 메시아임을 그들에게 확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인자는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므로 이 땅에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아니하셨고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오로지 말씀만을 전하셨다.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깨닫도록 인자가 율법과 법도를 이루겠노라 예언하셨고 자신의 십자가로 자신의 말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음침한 그들이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가는 인자를 보고도 어찌 아버지의 아들임을 확증하지 못하리요?
둘째 입을 열어 주님을 사랑하노라 주님께 감사하노라 고백하는 자들이 만일 아버지를 진심으로 섬기길 원한다면 자신의 품에서 낳으시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던 그 소중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를 자신은 과연 어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지를 또한 어떠한 영혼이 되어야 하는 가를 깨우쳐주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아버지만을 섬기셨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도 섬기고자 오직 아버지께로 또한 아버지의 소원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그것들을 아낌없이 희생하므로 그것을 분명히 보이셨다.
결국 교회시대에 아들의 십자가를 보고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달은 자들도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섬기며 또한 어떠한 영혼이 되어 거룩하신 아버지를 섬겨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택함의 은혜를 받은 이방인의 교회는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의 영광에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생명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거룩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두고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쓰되 마지막 희생을 바라보며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다 내어주신 아버지와 아들의 그 뜻과 계획을 그들이 알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희생하므로 남을 살리는 그 참된 진리를 믿고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와 아버지의 소원을 또한 아버지의 경륜과 그 기쁘신 뜻과 그 영광의 자유도 모른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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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진리를 얻고 또한 깨달음도 얻지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는 진리를 얻지 못하고 또한 아무리 보고 들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전자에겐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시고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의 마음의 눈과 귀를 여시어 깨닫게 하시되 후자에겐 세상의 신이 내주는 신비가 그의 마음을 혼미케 할뿐만 아니요 오히려 아버지께서 주시지도 않으시고 또한 깨닫지도 못하도록 가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으로는 아버지를 불의하시고 불공평하신 분으로 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되도록 계획하신 아버지의 뜻이 오히려 공의롭다고 말씀하신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하여 어린애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각각 어떤 자들인지 또한 아버지께서 이렇게 계획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의로운지 그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다.
한 아이가 어떤 꼬마에게 잘못과 실수를 범했다. 그런데 그 꼬마는 단순했다. 그러므로 자신도 그 아이한테 똑같이 대했다. 그러자 어떤 어른이 꼬마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만일 잘못하며 실수할 때 다른 아이들이 너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해주고 함께하길 원하니 아님 용서하지 않고 너에게 보복하길 원하니? 그래, 맞아! 그러니까 너도 너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돌이키며 다른 친구의 잘못과 실수를 보면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되 네가 온전할 때 비로소 입을 열어 친구들도 올바른 길을 걷도록 말해줘라.” 이에 꼬마는 어른의 선한 말이 이해되었으며 또한 옳게 여겼기에 그대로 묵묵히 순종하기 시작했다. 반면 어떤 지혜로운 아이도 어른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으나 잘못하고 실수하는 아이를 때로는 비난하고 멀리하고 나쁘게 대하며 절대 용서를 못했다. 또한 자신의 잘못과 실수는 숨기고 그냥 넘어가되 그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이번에는 단순한 꼬마와 똑똑한 아이가 동일한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자 어른은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면 거짓말하게 되고 거짓말은 결국 큰 화를 불러오니 항상 정직하라고 일렀다. 이에 단순한 꼬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항상 솔직했으나 똑똑한 아이는 거짓말이 더 쉬웠다. 이제 어느덧 두 아이가 커서 각각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런데 단순한 남자는 결혼 후 몇 초가 지나자 자기여자보다 다른 여자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똑똑한 여자도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이 끌렸으니 남자는 마음으로 음행하다 실제로도 다른 여자들과 간음했고 여자도 하체가 큰 이웃 남자와 심히 음란하게 행하므로 어른의 노를 격동시켰다. 그러자 어른은 잠시 동안 그들을 지켜보다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마음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방인을 바라보게 될 것이요 음행은 두려움과 괴로움을 가져올 것이요 어른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음란의 기쁨을 멈추지 못하리니 결국에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질 것이로되 음행에는 큰 심판이 있으니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 옳도다. 또한 거룩한 부부관계는 자신도 또한 자식들도 아름다운 열매를 함께 얻겠노라.” 그 말을 듣자 단순한 남자는 깨끗함을 원했으며 또한 자기여자와 자녀들로 하여금 그런 열매를 얻게 해주고 싶었으니 자신의 첫 마음과 약속을 지키고자 돌이키고 회개한 후에 순결한 마음과 몸으로 오직 자기여자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의 육신을 즐겁게 해주는 돈과 명예와 교만을 사랑했으니 점점 더 큰 하체를 가진 남자들과 간음하되 끝까지 육신의 기쁨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게다가 어른의 말을 매우 듣기 싫어했다. 그러므로 어른은 겸손한 꼬마들과 남자들에게는 계속해 선한 말을 해주었으나 교만한 아이들과 여자들에게는 더 이상 선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마음의 안에 거하는 그 죄로 인하여 누구나 다 불의와 죄악을 범한다. 그러나 동일하게 더러운 그 사람들 중에서 깨끗한 영혼이 있고 깨끗하지 못한 영혼이 있으니 그 차이는 그에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다. 그러므로 깨끗한 영혼은 자신의 더러움을 알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여 오로지 진리를 구하되 더러운 영혼은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도 깨끗함을 원치 아니하니 오직 자신의 육과 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구하며 따라간다.
사람의 이러한 마음과 인격으로 인하여 만약에 깨끗한 영혼이 진리를 찾으면 그는 오로지 진리를 따르며 배우고 깨우친 진리에 순종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진리로 씻겨져 결국에는 거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독사의 자식과 교만한 영혼은 진리를 구하지 않고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주어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함은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이루는 그 길에서 진리는 부딪히는 돌이요 자기생각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더러운 영혼들의 안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이런 마음을 잘 아시기에 그 선악의 죄를 씻어낼 수 있는 거룩한 진리를 더러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직 깨끗한 영혼에게만 주시되 깨끗하지 못한 영혼에게는 허용치 아니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의미다.
그렇다면 비유에서 단순한 꼬마가 나중에 맺게 될 아름다운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년왕국과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맺게 될 열매이니 어린아이들은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처럼 살과 뼈가 있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입고 부활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천국과 그 끝에 올라가게 될 주님의 셋째하늘에서 제사장과 왕으로서 다스리는 장자의 명분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그들은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 오직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는 사람이 단지 외모만 좋으면 그가 깨끗하지 않아도 영광스런 자리에 올라가 권세를 부릴 수 있으나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에서는 오로지 어린아이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 주님의 가까이에 거하게 하시니 그들이 참으로 그 높은 자리에 앉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되 그것이 천년 후에 영원히 간다. 이러하니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예정된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이 어찌 의로우시고 공평하시지 아니하리요?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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