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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인자께서는 세례와 금식 후 원수에게 받은 3가지 시험들을 모두 말씀으로 이기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지은 사람들처럼 연약한 육신을 입고도 이제는 사람을 의롭게 또한 거룩하게 하는 새 생명의 복음과 거룩하게 회복된 성도들이 거룩한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천년왕국의 복음과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셋째하늘의 영광스런 소망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벳세다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갈릴리호수의 주변에 있는 모든 마을들을 다니시며 비로소 첫 번째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으니 그때 유대인들이 복음을 얻도록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이었다.

 

아버지께로 택하심의 은혜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가장 먼저 허락하셨던 그리스도의 마음과 목적은 이것이었다. 우선 아버지께서 합당하게 받으시는 영혼의 기준가운데 하나요 첫째는 사람이 그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은 유대인들과 앞으로 십자가피로 거듭날 이방인들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더 아버지께로 합당한 자가 되길 바라시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다윗처럼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자이니 그는 아버지께로 두 가지의 은혜를 얻는다. 그리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두 가지의 은혜를 깨달으면 회개의 목적과 필요성도 깨우칠 수 있다. 그리하여 330장을 부를 때 그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믿음과 소망가운데 부를 수 있으며 또한 길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자들은 새 생명의 복음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올바르게 알고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첫째 아버지께로 합당한 자는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킨 후 의를 따라가며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거룩에 이르므로 마음속 선악의 죄에서 자유를 얻었으니 셋째하늘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영원한 본향에서는 물질도 공간도 시간도 그 무엇도 자녀들의 거룩한 육체를 제한하지 못하니 그들은 한 번 마음먹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며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의롭게 된 백성들을 바로 그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다스린다. 또한 그 거룩한 몸을 입고 그리스도를 따라 성소로 담대히 들어가 그리스도와 같은 자유와 거룩을 따라 아버지를 섬길 수 있다.

 

둘째 아버지께서 합당하게 받으시는 자는 모든 것들이 오직 한 길로만 가게 된다. 한 길이라는 것은 오직 진리와 구원의 길이니 인치심을 받은 영혼들이 아버지의 그 얼굴과 영광 앞에 이르도록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로 이 어두운 첫째하늘에서부터 영원한 셋째하늘의 성소와 지성소까지 그 길을 내주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합당한 영혼과 또한 그와 관계된 모든 것들을 오직 그 한 길로만 이끌어주신다.

 

게다가 자기를 의롭게 여기며 자기의 생각을 따르다 회개하고 돌이켜 의를 따라가며 두 가지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에 이르기 전에 천년왕국에서도 그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죄를 이기고 자유롭게 되어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에 이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에 있는 낙원을 이 땅에 이루신 후 이 세상을 천 년 동안 다스리실 때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의 그 다스림에도 함께 참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택함이 있든 없든 누구든지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켜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며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천국에서 천 년 동안과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셋째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권세가 영원히 그를 기다리고 있으며 또한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스도와 함께 자유롭게 섬기는 약속이 있으니 회개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택함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버지께로 합당치 못한 여김을 받았으니 그리스도의 이러한 마음과 목적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를 알고 믿을지라도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취하고자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지 못했으니 오히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따르며 육으로 인하여 세상을 따라 사망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안타까움은 십자가 후의 교회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입을지라도 그들 중에 아버지께로 합당한 영혼들은 몇 안 된다. 즉 대부분의 이방인들도 역시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아버지의 그 의를 따르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의롭게 됨을 믿는다며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는 자들을 의롭게 보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와 마지막 때에 불의한 모든 자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거룩한 새 생명을 누리지 못하며 다가오는 천국의 그 영광과 권세에도 참여하지 못하다 셋째하늘에 올라갔을 때는 그 영광의 자유에도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불의한 자들은 세상에서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취하다 결국 어떤 자는 육의 사망으로 어떤 자는 어두운 곳으로 어떤 자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원수는 영원한 셋째하늘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 가장 먼저 지음을 받은 종들 가운데 속해있었으니 자신처럼 가장 높은 종들과 함께 새예루살렘성의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말씀을 늘 듣되 오직 아버지의 아들을 통해서 들었다. 그런데 원수는 밑에 있는 종들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항상 말씀을 바꾸거나 빼거나 더해서 전했으니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얻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교만한 마음으로 창조한 그 선악의 죄를 돌이키지 않고 거짓말하며 끝까지 대항하면서 결국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고자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은 종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피조물이 어찌 오직 한 분 신이시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를 이길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욕심과 영광을 얻고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지키지 않고 버린 원수와 그의 타락한 종들은 의롭고 거룩한 셋째하늘에서 쫓겨나 어둠으로 가득한 이 첫째하늘(우주)에 갇혀 영원한 유황불 못(태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원수는 이 첫째하늘에서 회개하거나 가만히 있지 않고 오히려 둘째사람들을 자신이 창조한 죄로 이끌며 죄를 퍼뜨리고 있으니 그는 셋째하늘에서 처음부터 다른 종들에게 그 죄악을 퍼뜨린 거짓말의 아비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셋째하늘에서 지음을 받은 원수는 주님의 나라에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아들께 받은 말씀대로 전하지 않고 바꾸어 전하며 거짓말하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쫓겨난 자였으니 자신이 현재 시험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셋째하늘에 있을 때 가장 높은 종들에게 늘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던 아버지의 독생자이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들을 아버지의 의로운 백성으로 삼고 또한 중생한 자들 가운데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과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고난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이른 영혼들을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 얻고자 아버지의 아들이 사람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끝까지 대항하던 원수가 또 하나를 잘 알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육신의 연약함이었다. 즉 그리스도가 비록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사람들처럼 그 연약한 것을 입고 있음을 알았기에 바로 그 연약한 부분을 붙들고 그리스도를 시험했다. 그러므로 첫날 원수는 40일간 금식한 육체의 그 배고픔을 알았기에 돌을 들어서 빵같이 먹으라며 그리스도를 시험했고 둘째 날에는 육을 입은 연약한 자가 육신의 생각을 따르며 말씀에 순종치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성전의 가장 높은 데서 뛰어내려 메시아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시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자께서는 원수가 행한 그 두 가지 시험에 승리하셨으니 그것은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을 입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육을 따르지 않고 오직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수는 두 번의 시험에서 실패하고도 아들의 메시아자격을 빼앗기 원했으니 즉 의로운 백성과 거룩한 자녀를 삼으시려는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무너뜨리기 원했으니 더 시험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제 셋째 날에는 자신이 준비한 가장 힘든 시험을 위해 육을 입은 그리스도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악한 자는 거룩한 자를 만지지 못하니 원수는 그리스도의 몸을 붙들 수 없기에 셋째 날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한 종들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산으로 이동했다.

 

원수는 거기서 이 셋째 별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보여주었으니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우선 사람은 육을 입고 있기에 썩어질 육의 필요나 욕심과 더불어 자기를 높이려는 교만으로 이 세상의 헛된 영광과 권세도 함께 누리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얻고자 육을 입은 수많은 교만한 자들이 지금까지 세상 모든 나라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경배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자기에게 손을 벌려 기도하며 영혼까지 팔며 자신을 경배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원수는 육을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과 심지어 영혼까지 바쳐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확실히 경험했기에 그리스도도 육을 입었으니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신이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무릎을 꿇고 나를 가장 높은 아들로 아버지와 네가 나를 받으면 내가 너에게 이 셋째 별만큼은 살을 찢고 피를 흘리지 않아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게 하겠노라.’는 말과 함께 그 마지막 시험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예수께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시험하는 그 원수에게 ‘오직 내가 아버지와만 관계하고 나는 오직 아버지만을 섬기겠노라.’고 대답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을 입고 계셨으나 겸손을 취하시어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순종하므로 원수를 이길 수 있으셨고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요 마지막 때에 자신이 흘린 그 피로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거룩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그 복음을 선포하셨으니 오로지 육과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기므로 거룩한 말씀을 전할 자격을 갖추셨기에 비로소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의 복음까지도 선포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과 선지자들을 보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이러했고 핍박이 가장 심했던 초대교회 때에도 이러했고 지난 일곱교회시대에도 이러했고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이러하며 환난 때에도 이러하리니 그들은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과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의 복음을 증거하되 그전에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처럼 그 세 가지를 이기고 승리한 후에 선포했고 선포하고 있으며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가 쥐어주는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이기지 못한 채 이것이 복음이라며 전한다. 심지어 살고자하는 마음을 휴지처럼 버리고 썩어져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것을 얻는 기쁨과 소망으로 전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은 불순종하는 자요 사단이요 이단이요 라며 저주를 퍼붓고 있으며 어떤 자들은 마음만이 아니요 실제로도 돈과 여자와 명예를 취하고 있으니 그들이 과연 누구의 종들인지 누구의 말을 전하고 있는지 어떤 복음인지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말씀을 바꾸어 전하고 있는 그 독사의 자식들이 사람이 결코 상상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는 그 영원한 유황불 못의 가운데로 그 옛 뱀을 따라 들어감이 마땅하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자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렸으니 그 욕심과 교만의 길에서 자신을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 길이 의롭고 거룩한 길이요 나는 큰 상급을 얻으리라고 한껏 부풀어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의 깊은 곳에 품고 있는 마음과 믿음은 이것이다. “내가 입술로 저주를 발하며 내 몸으로 음란을 행하며 나와 내 가족의 육의 필요와 욕심을 챙기며 또한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이미 그 시험을 이겼기 때문이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원수는 첫날에 그리스도께 대한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했으나 이 첫째하늘을 거룩케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대항하는 자다. 그러므로 아들에게 주어진 그 메시아의 자격을 무효로 만들고자 둘째 날 계속해 두 번째 시험을 하기 원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으로 시험하고자 예루살렘성의 성소의 입구에 있는 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그리스도를 올려놓고자 했다.

 

그러나 원수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며 가장 깊은 어둠에 거하는 자이기에 거룩한 자들은 만지지도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빛의 종들을 통해 십자가의 길에 있는 자들을 날개아래 감추시어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기 때문이니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에도 손을 대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덴에서 자신의 꼬이는 말로 첫 사람을 타락시켰던 것처럼 마지막 아담도 자신의 지혜로운 말로 타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원수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손바닥 두 개 정도의 두꺼운 낙엽들을 준비하시어 뿌려놓으셨다. 그리하여 원수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물의 위에 서신 그리스도를 성전의 그 꼭대기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 장소를 옮길 때는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한 종들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이동했으니 빛과 빛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원수는 그 높은 곳에 서계신 그리스도께 ‘네가 만일 아버지의 아들이고 메시아라면 그 높은 데서 뛰어내리므로 너를 확인시켜라. 그러면 아버지의 종들이 너를 붙들지 아니하겠느뇨? 그러면 나도 네가 아버지의 아들인 메시아라는 것을 믿겠도다.’라는 말로 꼬이며 시험했다. 즉 원수는 자신이 똑똑하고 제법 많이 알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가득한 자들의 어미이니 그리스도는 내 지혜로운 말에 앞뒤가 막혀 결국 뛰어내리므로 간단히 증명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버지의 아들인 그리스도도 사람과 같은 몸을 입고 있으니 육의 배고픔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번에도 악한 의도를 가진 원수의 말에 이런저런 대꾸를 하거나 간단히 증명해 보이기보다 오직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원수의 시험을 이기셨다.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치 말라. 이는 그가 범죄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아버지를 시험코자 하는 자는 오히려 자신이 그 시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 하셨노라.”

 

그리스도께서 원수에게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으니 그것은 광야에서 여호와를 시험하던 유대인과 십자가후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주님을 시험하는 이방인 둘 다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이방인의 믿는 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하지 아니하기 원하는 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능력인 십자가로 결국에는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의 행함도 거룩해야 함을 믿고 경건의 능력을 즉 거룩한 행함과 입술을 주님께 보여야 함이다. 왜냐하면 거룩케 하시는 그 일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이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신실하게 믿는 자에게는 거룩의 믿음과 동시에 거룩의 행함 둘 다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아버지께서는 믿음과 행함을 둘 다 원하신다는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알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십자가의 살과 피로 거룩에 이른다는 믿음이 없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종교행위에 빠지되 그리스도께서는 마음 없는 의문에 속한 그런 행위들을 십자가에서 폐하시고 드러내셨다. 반면 어떤 자들은 자신에게는 거룩의 믿음이 있다고 시인하지만 그에게 정작 거룩의 행함들은 나타나지 아니하되 오히려 원수가 주는 선악의 생각들에 이끌려 자신의 입을 벌리고 육신을 움직인다.

 

그런데 누구든지 만일 이렇게 오직 한 분 신이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를 시험하면 아버지도 아들도 그 시험하는 자에게는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역사를 안 하시니 믿음이나 행함이 빠진 그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주님을 시험하는 자는 결국 원수의 시험과 웅덩이에 빠져 거기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입술로는 믿되 마음은 끝까지 세상에 빠져있거나 육신의 생각에 이끌리는 말과 행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하나님을 시험했거나 혹은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한 자는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그가 비록 영혼은 구원을 얻을지라도 마지막에 육체는 죄로 인하여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첫사랑을 잊거나 주님을 시험하는 데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주신 그 속죄의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의 거룩에 이를 수 있음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되 그리스도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의와 생각과 또한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의를 따르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한 몸 안에서 거룩에 애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그의 마음에서 그 죄의 뿌리를 제해주시고 거룩한 자라 칭하시니 성도는 큰 구원의 은혜에 점점 더 다가간다.

 

그런데 큰 구원이 큰 은혜인 이유는 믿음과 행함을 둘 다 보이므로 거룩에 이른 그가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기 때문이요 또한 그 천년왕국의 끝에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갈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그가 믿음과 행함으로 이룬 거룩에 맞게 상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룩한 자녀들의 본향은 영원무궁하기에 그들은 그 은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함께 거하게 된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선악의 죄로부터 또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구원코자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속죄의 피를 내어준 아들을 믿고 죄들을 회개하는 영혼에게는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니 그는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았다. 한편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따르지 않고 의를 따르면 의롭게 여기시고 또한 인자를 의지해 죄와 싸우면 아버지의 때에 그의 마음에서 죄를 제하시고 거룩하다고 칭하시니 그가 바로 거룩한 자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새 생명가운데서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으며 전한 구원에 점점 더 가까이 이르게 된다.

 

한편 셋째하늘에서 선악의 죄를 창조하고도 회개치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불순종하다 이 첫째하늘로 쫓겨난 원수는 생명이신 아버지와 영원히 멀어진 자요 거룩에 대항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자기처럼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을 붙들고 또한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며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자기와 함께 영원한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가길 간절히 원하는 게 그의 속마음이다. 그리하여 에덴동산에서 선하게 창조된 아담의 마음에 선악과의 뿌리를 덧심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에 순종하므로 육의 욕심과 필요에 이끌리지 않거나 자신이 쥐고 있는 세상의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잃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원수는 아버지의 아들이 그 자격을 상실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즉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메시아의 그 일을 이루지 못하도록 금식을 마치신 그리스도를 시험했던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께 대한 원수의 이러한 시험계획은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의 아들이 둘째사람들을 구하러 이 땅에 메시아로서 오셨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원수는 그것을 알면서도 악한 마음과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말로 시험했다. “네가 이 백성들을 구할 자이며 또한 메시아라 하는 자이냐? 만일 그렇다면 이 돌을 들어서 빵같이 먹으라.”

 

원수가 이렇게 그리스도를 가장먼저 육적으로 시험한 이유가 있으니 그는 우선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종들이 그 돌을 빵으로 쉽게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이니 그 돌을 씹는다 하여도 모든 육에 아무런 상처가 없을 것도 알았다. 하지만 원수는 그것을 알면서도 인자의 육적인 배고픔이라는 약한 면을 이용해 시험한 간교하고 악한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원수에게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자신이 전하신 말씀대로 자신이 먼저 육의 욕심과 필요를 구하지 않고 오직 일용할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취하며 늘 말씀대로만 순종하셨다. 그리하여 주기도문도 가르치실 자격이 있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육에 필요한 것들과 욕심을 다 접어두시고 오직 영으로 사는 것으로 그 간교하고 악한 자와 또한 그가 주는 육적인 모든 시험을 다 이기셨다. 즉 사람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주실뿐만 아니라 거듭난 영혼이 이제는 그 육의 욕심과 필요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므로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도 승리하도록 자신이 먼저 승리하므로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온전한 생명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육의 유익이 아니요 영의 유익을 위하여 살고자 한다면 그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처럼 육을 이기므로 그 사망의 원수에게 이길 수 있으니 그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른다. 그러나 반대로 누구든지 영의 유익을 버리고 육의 유익을 위해 사는 에서의 후손들은 육의 필요와 욕심으로 인하여 썩어질 육을 이기지 못하리니 진 자는 그 이긴 자의 밥이 될 것이요 영은 구원을 얻을지라도 육은 잃게 될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사람의 죄와 허물들이 사함 받는 다는 믿음만이 아니요 자신의 죄들을 낱낱이 회개하는 행함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또한 전에는 썩어질 돈과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이 자신의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자신을 위해 그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구속의 피를 흘려주신 아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인치심의 은혜를 얻는다.

 

이 인치심이 은혜임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받게 될 영원한 유황불 못의 심판을 면했기 때문이요 십자가의 전과 달리 거룩하신 영께서 그의 마음 안의 영과 함께하시며 거룩을 이루도록 도우시기 때문이요 유대인과 달리 거룩을 이루지 못한 교회시대의 이방인들을 위해 온전케 되는 의인의 영들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남은 거룩하신 영의 인치심과 더불어 깨끗한 물로도 씻음을 받아야 하니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첫사랑을 간직한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말씀의 기초를 쌓으며 의를 깨닫고 의를 따르므로 의에 이르고 또한 인자를 힘입어 거룩에 이르므로 얻게 될 그 새 생명을 향해 살겠다는 새로운 출발의 의미로서 물로 세례(침례)를 받는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만이 의롭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의를 따르겠노라 결단한 자를 아직 그가 의로움이 없어도 의롭게 보시며 그 후 계속 의를 따르며 그가 마음의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 행할 때 의롭다 칭하시되 이제는 더 나아가 인자를 힘입어 자신의 마음에 있는 선악의 죄와 싸우는 자의 마음에서 죄의 뿌리를 뽑아주시고 거룩하다고 칭하시니 그는 비로서 새 생명가운데 행하게 되는 것이다. 즉 육을 입은 아담이 에덴에서 타락 하기 전에 죄 없이 선하게 지음을 받은 상태로 자신도 회복되어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겠노라는 결단과 함께 받는 것이 바로 물세례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의로우시고 마음에 원수의 선악이 없으시되 아버지의 선악기준만 있으시며 육에도 더러움이 전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요 거룩하신 영께로 늘 이끌리므로 썩어질 것을 위해 원수가 이끄는 세상과 조금도 합하지 않으셨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런 아들을 사랑하시며 항상 그의 마음 안에 함께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새 생명가운데 행하고 계셨으며 그의 마음에는 이미 천국이 임해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중생의 씻음이 필요 없으니 인침의 은혜를 얻은 사람들의 그 결단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자신의 정결하고 거룩한 지체들의 머리로서 물의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의 육적인 욕심과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따르는 종교지도자들이 거하는 그 성전의 더러운 뿌리에서 나온 분이 아니셨으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면서도 거룩을 온전히 유지하셨다. 오히려 깨끗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물에서 나오셨으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깨끗한 생명이 있으며 그리스도에게서만 아버지의 그 깨끗한 생명이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 생명을 얻기 원하는 자는 오직 의를 따르므로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물세례에 담겨있는 의미이다. 즉 그 깨끗한 생명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시고자 물세례를 받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노라 하며 자신을 의롭게 여겨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과 사망의 세상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 생명이 주어지는 않는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의를 따르는 자에게 그 생명이 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아버지께서 어찌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부활의 생명을 주시어 그로 하여금 사람의 욕심과 사람의 불의와 생각을 영원히 유지하도록 하시리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자신의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낸 후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이 의롭지 않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믿으니까 의롭다며 의로운 척하는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도 있고 알고도 의와 거룩을 포기하고 그 길을 그대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도 참으로 그리스도처럼 의롭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들도 적지만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인침의 은혜를 얻은 후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적은 수의 영혼들을 위한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이 그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는 그 사람의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이 나온다. 그리하여 그들의 간절히 원했던 대로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을 얻을 수 있다. 대신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의를 따라가야 한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선악의 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의를 따를 때 사람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가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에게서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리시고자 이미 의롭고 거룩한 아들로 하여금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기 전에 이 말씀을 전하도록 이미 태초에 계획해두셨던 것이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