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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이 첫째하늘을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하실 때 이 셋째 별의 그 많은 바닷물에다 소금을 은혜로서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에 필요한 이 소금을 누구나 흔하게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육의 음식에 재료로 쓰이고 있으며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믿는 자는 소금이라는 이 말씀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안식 후 8일째에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거룩한 형상과 모양으로 둘째사람을 지으신 후 2천년 전에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으로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바닷물에다 넣어둔 소금이라고 하셨다. 소금이 어떻게 사람의 손까지 오는지 또한 짠맛을 잃은 소금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들여다보면 믿는 자가 이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소금은 바닷물에서 나오니 바닷물에서 나온 후에는 깨끗이 말린 후 그것을 음식에 넣어 그 음식을 사람의 입맛에 맞춘다. 그러므로 음식이 깨끗하고 맛이 있으려면 당연히 깨끗한 바닷물을 말려야 하며 또한 깨끗하게 말리므로 그 말린 것에 반드시 짠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더러운 바닷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물이라도 더럽게 말리면 짜지 아니하고 쓴맛이 나기에 음식을 버리게 되고 몸에도 해롭다. 그리고 물을 말렸으되 그것이 짠맛을 내지 아니하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깨끗한 물에 던지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에다 버리니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맛을 잃은 그 소금을 통하여 헛수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너희를 깨끗한 물에서 택하여 말렸으니 사람들이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 거룩하고 영원한 그 비밀한 영광의 생명에 이르도록 그들의 영혼 속에다 오직 진리만을 전하여라. 그러나 만일 진리를 전하지 못하는 자는 짠맛을 잃은 소금이 더러운 물에 버려지듯 오히려 더러운 물로 들어감이니 그리하여 그는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인 지금도 그리스도의 이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누구든지 진리를 전하지 않는 자는 이 세상에 거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리를 아무리 전해주어도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은 육의 욕심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몸도 이끌고 오히려 그 더러운 세상의 물로 더욱더 깊이 빠져가는 것이다.
 
한편 깨끗한 바닷물을 말리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것을 자신이 더럽게 말린 자는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진리가 그에게 없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주리요? 그는 오로지 썩어질 것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보고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의와 계획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전하게 된다. 이때 누구든지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 쓴맛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기쁘게 따르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도 이미 육과 세상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성품은 사랑과 공의가 함께 하시니 세상에 아들을 은혜로 주시고 길이 참으시다 결국에는 아들을 통해 세상에 심판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결국 짠맛을 잃은 자들과 쓴맛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몸에서 끊어 모두다 더러운 물로 내어 던지신다. 그러면 그들은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과 함께 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밖에 버려져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와 그의 자식들에게 밟힌다. 하지만 이 더러운 세상이니 불의한 세상이니 말은 하되 이방인들에게 밟히면서도 세상에서 나오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이 불로 멸망을 당할 때는 그들도 자신이 택한 이 세상과 함께 각각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소금의 짠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오직 사람을 씻어 거룩케 하는 진리만을 전한다. 그리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진리가 있는 자가 진리를 전할 때 의롭고 깨끗한 생명을 원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와 싸운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밟혀지지 않고 오히려 죄와 이 세상을 이긴 그가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심판으로 받아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떤 왕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되 똑같은 일을 행했다. 그 모습을 보자 백성들 중 왼쪽에 있는 999명이 그를 좋아했으니 판단하는 자가 같은 일을 행하는 모습이 자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가지고 오른쪽에 있는 999명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며 싫어했다. 잠시 후 어떤 돈 많은 자가 왕이 되었으나 그 자도 의롭지 못했으며 게다가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나라와 백성의 유익을 위한다며 나라의 안팎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며 자기의 욕심을 챙겼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왕처럼 많이 가지고 오른쪽에 있는 999명이 그를 환영했으나 왼쪽에 있는 자들은 그가 많이 가진 자들만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며 싫어했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서 2명은 위쪽에 있는 나라의 왕을 따르며 사람의 부활을 전했으니 2천명 모두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불의하지만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되 그 과정에서 핍박을 당한다. 또한 나중에 불의가 드러나 법의 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므로 그것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욕심과 불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욕심이 없고 의롭다면 그리고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2001명 가운데 2000명에게 핍박을 받는다면 그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원수가 힘의 논리로 이끌어가는 이 세상에 그런 자가 어디에 있으리요? 또한 세상의 법과 정치와 경제와 종교와 사회 그 어느 구석을 들여다보아도 그런 의는 없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들 1000명 가운데 1명이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나와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천년왕국)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원수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그 7000명은 공의와 사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도를 닦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요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에 애쓰며 동시에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람의 안에 이루어지는 의와 거룩을 전한다. 또한 십자가의 피로 거룩에 이른 자가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른다는 복음과 함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므로 심판을 준비하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세상의 공중권세자인 원수도 보고만 있지 아니하니 그리스도를 통한 의와 부활을 전하는 그를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 미워하고 핍박한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자기의 의가 아니요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이니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의를 이루셨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의가 어떤 것인지 또한 누가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인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의를 따르는 자가 누구에게 왜 핍박을 받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떤 왕이 모든 백성들을 위한 공의와 사랑의 뜻을 공평하게 세우고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한 대로 상을 줄 테니 나의 뜻을 이루라.” 그러자 종들이 마음을 다해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한 종은 욕심을 품고 자기만 높아지려고 했다. 또한 게으르고 교만했다. 그러니 자기의 욕심을 이루고자 구부러진 뿌리와 달리 곧게 뻗은 가지와 같은 말과 행위를 곧잘 잘했다. 게다가 심보가 고약해서 왕의 뜻에 충성하는 종들을 방해했다. 그래야 왕의 상을 자신이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왕은 종들에게 행한 대로 상을 주었으나 옳지 못한 종에게는 마음을 돌이키라고 했다. 그러나 종은 자기가 만일 왕의 말을 들으면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지 못하니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불평하며 왕에게 대항했다. 이에 왕은 그를 왕궁에서 먼 나라로 쫓아냈다. 그러자 쫓겨난 종은 거기서 왕의 흉을 보며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었다. 이때 욕심과 영광으로 인해 이성과 윤리가 마비된 자들은 어리석게도 그 종에게 모여들어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다녔으니 어떤 자는 세상 모든 돈을 원했고 어떤 자는 세상의 높은 권세를 원했고 어떤 자는 세상의 영광을 원했고 어떤 자는 좋은 것을 바라되 게을렀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고자 온갖 말과 행위를 다하며 또한 다른 자들을 비판하며 돌아다니니 그 불의한 종은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며 인정했다. 반면 그 나라의 백성들 중 7000명은 자기의 왕이 의로운 분임을 믿었다. 그러므로 종의 거짓말을 듣지 않고 또한 자기의 생각도 따르지 않고 오직 왕의 말을 듣고 왕의 뜻을 이루어갔다. 그러자 심보가 고약한 자들이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을 떨어뜨리고자 손을 툭툭 쳤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왕의 뜻만 이루어갔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결국 세상의 권세를 가장 많이 가진 백성들이 다 함께 모여 왕의 의를 따르는 자들을 전부다 피 흘려 죽여버렸다.
 
이와 같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오직 한 분 신으로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공의와 사랑이 절대 거룩하시고 절대 공평하시고 절대 정직하시며 절대 완벽하시다. 그리고 그런 성품으로 어떤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게 치우치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 한 종 한 종 모든 인격체들에게 똑같이 대하시되 오직 각 종과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평하게 심판과 상급을 내리신다.
 
이때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품고 자기의 의를 따르는 자들은 아버지의 의를 매우 싫어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을 핍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들은 자신부터 그 의를 지키고 따르며 그 의를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가 영광을 얻는다는 영광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자신부터 아버지의 그 의를 지키고자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면서 고난가운데서도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 의와 거룩을 유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아버지의 그 의를 이루셨다.
 
그러나 당시에 아버지를 알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의 권세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선포하는 그 아들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의를 이루는 그 십자가의 길을 늘 핍박 받으며 걸어야만 하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큰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피 흘려 죽으셨으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의를 이룬 아들에게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고 다시 살려주셨다.
 
이로 보건대 핍박을 받은 자는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이라는 의를 나타내는 자가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의를 나타내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를 나타낼 때에는 셋째하늘에서 처음부터 아버지의 의를 거부하고 이 첫째하늘로 쫓겨난 그 원수로 인하여 큰 무리의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때에 아버지의 의에 굳게 서 있는 자에게는 오히려 의롭고 거룩한 복이 있으니 그 부활은 영원한 영광과 권세다.
 
이처럼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의로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결국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되 그 핍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기에 인내한다. 또한 나중 영광이 어떠한지 믿기에 원수의 선악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피 흘려 죽기까지 다 이룬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의를 이루고자 그 아들을 따르며 거룩을 이룬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에서 천 년 동안 그리고 천국의 끝에 들어갈 셋째하늘에서도 영원토록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 어떤 왕: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
* 왕궁: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
* 종들: 천사들
* 불의한 종: 선악을 창조하고 그 죄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아버지의 원수(루시퍼)
* 먼 나라: 마지막에 큰 날의 심판으로 들어가는 이 첫째하늘(우주)
* 7000명: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에 아버지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들
* 심보가 고약한 자들: 원수의 선악을 따르며 이 세상의 영광을 얻은 자들
* 그들이 들고 있는 것: 아버지께 받은 은혜와 약속
* 피 흘림: 거룩한 산 제사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은 인격체요 육신이 있으니 무엇이든지 자신의 혼의 생각으로 이루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나는 생각대로 자기가 원하는 뜻을 세우고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 그것을 아버지 뜻으로 바꾼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이루어가며 자신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이 정한 그 아버지의 뜻에 함께하라고 말하므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것이 곧 불법이요 그들에게는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 약속되어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격체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에도 오히려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으셨다.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 가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그 뜻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의 뜻은 곧 아버지의 뜻이었으며 아들의 말과 행위는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인격이 다르며 또한 사람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거하셨어도 늘 아버지와 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실 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의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불법을 행하는 자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이루도록 이끄는 말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셨으니 누군가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의 몸을 아끼며 보호하되 자신의 목숨은 더욱더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유익이 아닌 모든 둘째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셨으니 평생 아버지의 뜻을 이룬 후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 희생의 피로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거룩을 이루었기에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에 서므로 아버지와 화평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사람들 사이에 십자가로 화평을 이룬 아들에게 즉 평생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룬 후 마지막 순간에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해 자신의 뜻을 다 이룬 그 아들에게 가장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셨다. 그리고 아들을 따르며 평생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 각자의 십자가로 화평을 이룬 그와 같은 많은 아들들과 딸들 가운데서 맏아들로 세워주시고 아버지의 보좌 이외에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과 그 안의 모든 것들에 대한 권세를 다 주셨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라간 자이다.
 
이 땅에서 자신도 그리스도처럼 화평케 하길 원하는 자들은 우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속죄를 이루시어 아버지께로 담대히 나아감을 얻게 하셨음을 믿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오직 아버지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말씀과 진리만을 내며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므로 그리스도의 그 본을 보여준다. 즉 화평케 하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는 우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부터 거룩을 이루며 마지막의 그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이니 그 길에서 영광의 복음만을 전하되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십자가를 전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도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아닌 아버지께 인도하고자 살과 피를 내어 놓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다. 그리하여 영적 예배를 드린 자는 결국 그리스도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따르며 화평케 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주실 복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을 찢고 피를 내어 화평케 한 자들에게도 아들에게 주셨던 가장 큰 열매 다음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수 있도록 자신의 가까이 이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받은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에 속한 모든 권세를 자신을 끝까지 따라와 화평케 하고 자신의 한 몸에 거하는 형제자매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화평케 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화평케 한 아들들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거룩을 이루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며 이 땅에서 고난과 고통을 잠시 받은 자들이 천년왕국의 끝에 이 세상이 멸망 받고 맏아들을 따라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극히 크고 영광스런 그 호칭을 영원토록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사람들을 모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게 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던 영광을 당연히 이 땅에서 받되 그것은 잠시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나 유황불 못은 영원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말씀을 읽고 보아 그 영광과 쫓겨남과 형벌을 잘 알아도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려면 자신이 원하는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앉아야 하는 혹은 이룬 후 앉아있는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되 어리석은 자들은 안에 있는 교만이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떤 의로운 사람이 맑고 투명한 유리컵에다 깨끗한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그 물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게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불의한 사람이 와서 그 컵의 중간에다 시커먼 먹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가운데부분만 까맣게 보였으나 그것이 점점 더 넓게 퍼지다 나중에는 모든 물도 컵도 서서히 다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 컵과 물은 처음처럼 깨끗하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에 처음에 맑은 물을 부었던 그 사람은 더럽혀진 물을 다 쏟아버린 후 흐르는 물에다 컵을 깨끗하게 씻었으니 컵이 처음보다 더 맑고 투명해졌다. 그리고 나서 처음 물보다 더 깨끗한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컵도 물도 둘 다 처음보다 더욱더 깨끗하게 보였다.
 
이와 같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마음이 깨끗한 자요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만 품을 때 깨끗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자기의 마음에 오직 자기의 남편만 품고 있으면 그것은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남자나 다른 것들도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으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 깨끗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그러다 다른 남자와 다른 것들이 자기의 마음 안에서 강해지니 결국 자기의 남편이 전혀 없는 그 마음은 더럽혀진 것이요 음란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육적인 부부만이 아니요 믿는 자들과 그들의 영적신랑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이와 같으니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영혼들은 영적으로 더럽혀진 음부(淫婦)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계속해서 그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자는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첫째하늘에서 거룩을 이룬 자는 둘째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셋째하늘에서는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들이 된다. 그리하여 부활의 상급을 얻은 자들이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셋째하늘의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가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을 보니 그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아들과 딸에 대한 언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가운데 아버지의 자녀가 될 자들이 가장 원하는 한 가지는 바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자신들의 영혼의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로 뵙게 되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날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마음에 조금도 흠과 티가 없으시니 오직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마음뿐이시다. 그러므로 그 날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지금부터 오직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한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세상과 함께하는 그 마음에 함께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깨끗함과 거룩함을 유지한 그가 아버지의 계신 곳에 들어가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 앞에 섰을 때 그 빛을 받아도 두려움이 없는 것은 오히려 아버지께서 마음이 청결한 그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거룩한 육체를 입었을 때는 거룩한 육체의 거룩함과 영광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 영혼에게 고통이 임한다. 설령 그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소멸하시는 아버지의 그 영광으로 인하여 그 고통이 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지 아니하시는 이유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비밀의 영광에 이르러 대제사장을 따라 거룩한 곳과 또한 가장 거룩한 곳까지 들어와 기쁨과 영광을 누리길 원하시니 자신의 거룩하신 영을 둘째사람의 코를 통해 깨끗한 마음에 부어주시므로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가꿀 수 있다.
 
첫째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이 순수하며 항상 솔직한 자가 마음이 깨끗한 자이다.
 
둘째 항상 첫 마음을 지키는 것이니 두 번째 세 번째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자이다.
 
셋째 그가 늘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자가 마음이 깨끗한 자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 가지만 잘 지킨다 하여도 마음이 깨끗한 자가 될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마음에 일만 악의 뿌리를 박고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말하길 육은 중요하고 복된 것이니 다른 사람의 육신을 불쌍히 여기라고 했다. 그러자 육을 더욱더 풍성히 얻고 싶은 사람들과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옳게 여겨졌다. 또한 그가 그렇게 했기에 많은 열매를 가지고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며 그를 닮고 싶은 마음으로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의 육을 불쌍히 여기며 늘 육적인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 말을 전했던 자도 역시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듣고 따르던 자들은 그제서야 육신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한 자가 썩어질 거짓된 것을 가르친 자임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마음도 처음부터 거짓되었음을 알았으나 육신의 기회가 없으니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반면 육적인 것을 일용할 만큼만 가지고 험한 의자에 앉아있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집에 있는 서랍에 진주를 넣어놓고 기쁨을 항상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사는 사람은 진주가 하나도 없으니 마음에 기쁨도 평안도 소망도 만족도 없었다. 그러므로 진주가 없는 사람은 혹시 누가 자기에게 진주를 나눠줄 사람이 없나 하고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애타는 마음을 가졌다. 이에 진주가 있는 사람이 진주가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서랍에서 진주를 꺼내어 나누어주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도 인생을 살며 얻지 못했던 참된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누리다 육신의 장막에서 나왔을 때는 진주의 약속대로 모든 것들을 영원히 누렸다.
 
이와 같이 거짓선지자는 자기의 썩어질 육의 욕심을 채우며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기쁘게 여기니 늘 썩어질 것을 얻으라고 가르치며 양들을 세상으로 흩어지게 한다. 또한 썩어질 것을 나누면 썩어질 것을 더 얻을 것이요 게다가 영적인 복도 함께 얻게 된다고 거짓말한다. 그렇게 하므로 거듭남이 없는 이방인들은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과 에서 끝까지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인도하되 거듭난 영혼들은 다시금 그들이 나왔던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가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독사의 자식들은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중심으로 들어가리라는 그 약속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어질 복을 원하는 자들의 귀에는 헛된 거짓가르침이 아름답게 들리니 거짓된 자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것들을 얻고자 썩어질 것을 나누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육신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은 모든 것들이 썩어져 자신의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거짓된 목자를 따른 거짓된 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되 돌이키지 못함은 육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리가 아닌 거짓된 말을 붙들고 사망으로 들어간 자들은 자기 마음의 거짓됨을 죽은 후에야 깨닫는 것이 아니요 이미 살아있을 때 그것을 깨닫고 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위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 생명을 전해주신 아들을 섬겼는지는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런 자에게 아버지의 나라에서 더욱더 풍성히 허락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하셨고 또한 모든 믿는 자들도 공평히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늘 불쌍히 여겨 그가 거룩에 이르도록 부르짖는 자요 또한 자신도 진리가 풍족하지는 않지만 다른 자들도 진리에 순종하므로 그 생명에 이르도록 마음을 다하여 진리를 함께 나누는 자이다.
 
이와 같이 2천년 전 초대교회시대에도 일곱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비밀의 경륜과 영광의 자유의 복음을 받았으되 자신이 받은 그 긍휼을 자신만 가지고 있지 아니하고 다른 자들에게 긍휼을 나누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통해 긍휼을 받은 자들도 아들들로 받으시고 아들들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정결한 몸으로라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정결한 몸이 아니면 셋째하늘의 온전케 된 의로운 백성으로라도 오기를 원하시니 긍휼을 받은 자들은 순종한 만큼의 생명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 모든 기회를 이미 다 예비해놓으셨고 또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해놓으셨으나 환난으로 들어가는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는 이전의 교회시대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원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요하게 해놓았으니 사람들의 마음에서 셋째하늘의 소망을 다 빼앗아갔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오직 오늘에 충실하되 그들의 마음가운데서 살고자하는 마음과 진리에 갈급한 마음을 가진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참으로 복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버지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군들이 아들을 통해 주신 그 약속에 따라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진리와 간구로 긍휼을 베풀 때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이 땅에서 풍성히 채워주신다. 또한 비밀의 경륜과 영광의 자유의 복음으로 긍휼을 베푸신 그리스도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이 있을 것임을 아버지께로 심판을 받아 입으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여자들과 제자들에게 보이시므로 또한 자신이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보좌에 앉아계심을 통해 확증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비록 핍박과 고난의 십자가 길이지만 늘 마음의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유지하셨다는 것과 또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시어 그 보좌에 앉아계심을 믿고 다른 사람의 영원한 영혼을 진리와 기도로 긍휼히 여기는 자도 이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그리스도와 동일한 그 복을 오늘 받다 내일 확실히 받을 것임을 믿음으로 확증 받고 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친 영혼들에게도 그 기회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있을 것이니 참으로 그들이 아버지의 앞에 와서 그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말을 못하며 오히려 아버지께 할 말을 다 못하리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은 병에 걸리면 아프기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하면 아프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찾아오면 아프지 않고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되 죽음을 두려워하며 또한 더럽고 악한 병에 걸리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일매일 살되 내일이 마지막인지 모르고 오늘 내가 숨을 쉬고 있으니 내일도 숨을 쉬는 것은 당연히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오직 잠시뿐이요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살다 자다가 죽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병들어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니 좋지 않은 것을 30개월 이상 먹은 소를 맛있게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며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을 중하게 처벌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익이 될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또한 피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의 피가 깨끗해져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원한다. 고로 뱀같이 독 있는 짐승의 피를 자신의 몸에 넣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힘이 강해진다고 하면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빨대를 꼽아 짐승의 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그것으로 인하여 나중에 얻게 될 질병과 긴 고통을 알되 사람은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좋아하니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빠른 자들은 오늘 얻는 순간의 기쁨을 위해 어리석음을 택한다. 사람은 또한 피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의롭고 깨끗하고 건강한 사람의 피를 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기와 욕심과 앉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자들의 생명을 취하는 왕의 피를 누가 받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피를 준다고 하면 돈과 높은 자리를 원하는 자들은 줄을 서서 그를 기다린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육이 깨끗해지거나 더럽혀진다. 또한 그것을 통하여 더러운 질병을 얻어서 고통을 받다 죽거나 혹은 건강을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이 달려있어도 사람은 인격체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은 먹고 마시되 그렇지 않은 것은 쳐다보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것도 자신이 원치 않으면 아무리 권함을 받아도 먹거나 마시지 않지만 반대로 아무리 나쁜 것도 자신이 원하면 말려도 취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으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앞으로 십자가 이후의 초대교회와 교회시대에 있을 일의 예언이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린 자라는 것은 자신이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 영혼이요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그는 그리스도의 살에 참여하는 영혼이요 목마른 자는 그리스도의 핏잔을 원하는 영혼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신다고 하였으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하고 싶은 영혼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후에 간절히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 원한다. 또한 자신의 온 마음이 늘 그것이 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정결한 한 몸에 가있다. 그러므로 그는 원수가 아무리 방해를 해도 늘 자신의 마음이 있는 살과 피가 있는 그곳으로 자신의 생각도 몸도 향하게 되어있다.
 
반면 사람은 인자의 살과 피를 통해 의롭고 거룩하게 되며 육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마지막에는 이방인들처럼 헛된 사망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영혼과 육체의 강건함을 누리다 결국에는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을 들어도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으면 살과 피가 있는 그곳에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못한다.
 
물론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주린 마음을 가지고도 혹은 자신의 안에 있는 죄를 이기려는 마음이 없어도 그저 때가 되면 성찬에 습관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에게는 그 의롭고 거룩한 인자의 살과 피를 배부르게 주시되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영혼에게는 원수의 목전에서 전혀 상을 베푸시지 아니하시니 그런 영혼은 먹고 마실수록 오히려 약해지고 병들고 잠들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인자의 살과 피를 통해 사람이 의와 거룩에 이르며 또한 의와 거룩에 이르렀으니 썩어질 육신의 장막을 나왔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 이유다. 그리고 예언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십자가 이후의 초대교회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산 제사를 드린 후 부활의 생명에 이른 것처럼 교회시대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 환난 때에도 자신의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의지한 자들은 반드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한 농부가 봄이 되자 달력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일주일 후에 밭에 나가 한 알의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어떤 사람은 그 씨가 어떤 씨인지를 몰랐으며 또한 농사도 모르니 농부를 보며 ‘씨를 너무 늦게 뿌리는 거 아냐? 나 같으면 6일전에 뿌렸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농사를 지어본 농부는 추운 날씨와 땅이 언제 풀리고 봄비가 언제 오고 병충해는 언제 오거나 오지 않고 여름과 장마는 언제 오고 추수는 언제 해서 곡식을 어디에다 어떻게 보관할지 달력에 있는 날짜를 볼 때 이미 다 계획했다. 즉 그 씨앗은 그때 심어야 가장 좋은 곡식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씨앗이었다. 이제 파종 후 3개월이 지나자 농부는 비료를 들고 나가 곡식주위를 파고 뿌리에 닿지 않게 넣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똑한 자는 농부를 보고는 ‘작물이 저렇게 컸는데 비료를 너무 늦게 주는 거 아냐? 좀더 일찍 주었으면 더 빨리 더 크게 되어 수확량이 더 많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농부가 기르는 작물의 줄기와 잎사귀만 보였기에 그렇게 생각했으나 농부의 눈에는 땅속에 심겨있는 뿌리가 보이기에 그때가 바로 그 작물의 뿌리가 양분을 가장 잘 빨아당겨 소화할 수 있는 때임을 알았다. 그러나 만일 비료를 더 일찍 준다면 뿌리가 아직 약하기에 양분을 먹지 못하니 비료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작물이 힘들어하므로 오히려 해가 된다. 농부는 또한 장마기간이 되기 전에 곡식의 주위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길을 내주었으며 때로는 태양과 광풍을 피할 수 있는 천막도 쳐주었다. 그리고 작물의 잎사귀가 조금이라도 검게 변한 것은 일일이 따서 불에 태워버렸으며 해충도 생기자마자 잡아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병충해예방의 중요성을 몰랐으며 게으르기까지 했으니 ‘왜 저렇게 고생을 하나? 나중에 병과 해충이 많아지면 한꺼번에 약을 뿌리면 될 텐데.’라고 말했다. 이에 농부는 그 어리석은 자에게 씨앗 하나를 심어준 후 한번 잘 길러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일년 내내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 농사를 지으며 수고했으나 처음부터 한번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가을에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씨가 좋은 열매를 풍성히 얻기 위해서는 정해진 때를 잘 맞추어 가꾸어야 하듯 한 사람의 영혼이 말씀의 씨를 얻어 거듭난 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로 여기심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거룩하게 되어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그 과정에도 역시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때들이 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을 택하시거나 부르시거나 정하시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에게 말씀의 기초를 주시거나 그가 심령이 가난하거나 애통하거나 온유한 때를 지나 다음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들이 오직 구원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때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가길 좋아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육체의 기회가 있을 동안 아버지의 뜻에 이르지 못했기에 새 생명가운데 행하며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보여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는 자는 무엇이든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미 모든 것을 선하시고 공평하고 완벽하게 정해놓으셨음을 믿는다. 또한 거룩의 길에서 무엇이든지 그렇게 친히 이루어 가실 것도 믿는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는 영혼은 사람인 자신이 이루려고 하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아버지의 그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며 게으름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말씀 단 하나나 혹은 두 가지에라도 충실하게 순종하며 그 때를 기다리니 그가 바로 온유한 마음을 가진 영혼이다.

 

또한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의롭고 지혜롭게 여기니 자신이 제법 많이 알고 있으며 제법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버지와 원수가 된다. 그러나 마음이 여린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아시고 계심을 믿는다.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모든 선과 악 의와 불의와 거룩과 죄를 정확히 구별하시어 정직하시고 공평하신 심판을 내리시니 오직 아버지만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고 강하신 분 이심도 믿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여린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거나 강하게 여기지 아니하니 오직 아버지께서 연약한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실 것을 믿고 아버지의 그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음이 여리고 약한 영혼도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 하지 않고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며 한두 가지의 말씀에 충실하니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온유를 배운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온유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들이 전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온전한 구원의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때에 맞게 친히 온유한 자들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온유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쓴 자들이 그리스도의 의롭고 정직한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온유한 자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천 년 동안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땅을 아버지와 맏아들께로 나누어 받는다. 게다가 본향인 셋째하늘에 올라가서도 끝이 없는 땅과 의로운 백성들을 받아 공의와 사랑으로 영원토록 다스리는 것은 그들에게 다스릴 수 있는 땅을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년왕국과 그 천국의 끝에 맏아들을 따라 올라가는 셋째하늘에서 영광의 자유에 이르러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단 하나나 두 개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때를 기다린 영혼들이요 하나나 두 개에 순종했기에 다른 말씀들에도 계속적으로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로 중생한 후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의 마음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겨버린 자가 어떻게 한 말씀에라도 순종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첫사랑을 잊은 자들은 다른 말씀들이 아무리 주어져도 순종치 못하되 오직 사람의 규례는 열심히 행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순종하며 아버지께 불순종한 그 영혼에게 어찌 다스릴 땅과 백성들이 주어지리요?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 온유하지 못한 많은 자들이 땅은커녕 자신의 신랑이 다시 오시는 그 중요한 때도 기다리지 못하고 또한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애쓰라는 그 단 하나의 말씀에도 순종치 못하여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빠져 어둠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떤 아이 둘이 깊은 산속 길을 걷다 너무 배가 고파 주변을 보니 그 길의 왼쪽에 먹음직스런 포도들이 주렁주렁 달린 아름다운 포도나무 한 그루가 심겨있었다. 그런데 둘 중 한 아이가 그것을 처음 따먹을 때 매우 두려웠지만 먹을만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따먹을 때는 두렵긴 했지만 맛있었고 세 번째는 별로 안 무섭고 그냥 맛있기만 했다. 그러므로 다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따먹으며 기쁘고 즐거웠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와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가 따먹고 있는 포도는 건강에도 안 좋고 빨리 죽는단다. 그러나 오른쪽에 있는 저 포도를 먹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단다.” 이에 그 아이는 오른쪽 포도를 맛보았으나 별맛이 없었으니 늘 왼쪽 포도만 따먹었다. 그러다 왼쪽 포도를 심은 사람이 나타나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내 포도를 참 좋아하는구나! 내가 이 포도열매가 많은 곳을 알고 있는데 알려줄까?” 그러자 아이는 그것을 자유롭게 실컷 먹어보고 싶어서 왼쪽 포도나무의 주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주인은 그 길에서 아이의 등에 손을 대고 밀어주거나 잘했다고 두드려주고 또한 귀에다 대고 이런 저런 흥미롭고 헛된 말을 해주었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그 길에서 자기가 원하는 고통스런 포도를 마음껏 따먹고 늘 헛된 일을 하며 죽을 때까지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다. 반면 다른 아이도 똑같이 왼쪽 포도를 맛보았으나 입과 배가 시고 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또한 매우 무섭고 더러웠다. 그러므로 아이는 아프고 쓰린 배와 시린 입을 움켜쥐고 후회하며 큰소리로 울었다. 잠시 후 처음 왔던 사람이 울고 있는 아이에게 와서 왜 그러냐고 묻자 아이는 이유를 설명한 후 다시는 저걸 먹고 싶지 않지만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이를 불쌍히 여기며 첫 번째 아이와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 이에 아이는 오른쪽 포도를 맛보자 꿀과 송이 꿀처럼 맛있고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는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넌 내 포도를 참 좋아하는구나! 내가 아주 달고 물이 많은 포도열매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 넌 그런 포도를 맛보기 원하니?’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곧장 오른쪽 포도나무의 주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는 그 길에서 아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아이의 오른손을 잡고 끌어주며 때로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주었다. 또한 달고 물이 많은 그 포도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도해주었다. 그러므로 아이는 거기 도착해 자기가 좋아하는 포도를 마음껏 따먹으며 그 주인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 안에 선악과가 심겨있다. 그러므로 그 죄악된 나무의 뿌리로 인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범죄 하게 되어있다. 마치 땅속에 박혀있는 보이지 않는 뿌리로 인해 땅 위에 서있는 눈에 보이는 그 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일한 죄와 허물의 열매들을 보며 각기 다른 마음을 품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한 죄들을 볼 때 처음에는 한두 번 싫어하고 양심의 가책이 있고 두렵지만 세 번째를 넘으면 괜찮아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며 즐긴다. 마치 아주 쓰고 신 포도열매를 맛보고는 ‘이 포도는 참으로 달고 맛있다.’라고 하며 계속 집어먹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양심을 가치 없이 버린 자들이다. 그리하여 깨끗한 마음을 버리고 선악의 죄를 창조한 그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은 그 죄의 사슬에 더욱더 꽁꽁 묶여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으로 더욱더 깊이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어리석고 담대한 자들이 십자가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중에도 있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아버지를 알고 주님을 사랑하며 믿노라 고백하되 침상에서 일어나 다시 침상에 누울 때까지 마음과 생각과 몸과 혀로 담대히 범죄하고 있는 자들은 안타깝게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 중생하고도 마음속 책망을 멈추게 하고 죄들을 멈추지 않는 자들은 이미 한번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버렸으니 누가 그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리요?
 
한편 어떤 자들은 거듭난 이후에 자신이 계속 맺는 죄의 열매들을 보되 아버지께서 주신 그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이제는 거룩하신 영께서 주시는 책망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범하고 있는 죄들을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 회개한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의 뿌리로 인하여 또다시 범죄 한다. 그러므로 또다시 회개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반복한다. 마치 나무에서 나쁜 열매만 따내고 그 뿌리는 그대로 두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하지만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비록 다른 짐을 지기 원치 않는다 하여도 거듭난 후 계속적인 죄들의 회개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얻은 그 거듭남의 은혜 하나만이라도 잘 지키고 있는 자들이다.
 
반면 인치심의 은혜를 입은 자들 가운데 그 동일한 허물들을 보며 자신의 안에 있는 죄를 애통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악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그 무섭고 더럽고 강한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죄로 인하여 또한 그것을 이길 수 없음을 늘 깨닫고 경험하면서 심히 슬퍼하며 운다.
 
하지만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원수가 심은 선악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아들을 따를 때 그에게 무엇보다 진리를 허락하시니 그는 새 생명의 복음과 천년왕국의 복음과 그 천국의 끝에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그 소망의 복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자신의 몸에 품어주시면 그는 비로서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악과 싸우니 아버지께서는 결국 그 뿌리를 뽑아주신다. 그리하여 죄를 이기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거룩한 자(聖徒)가 이제는 더 이상 불의와 죄의 열매가 아닌 거룩한 열매를 맺고 또한 이 땅에서 맺은 만큼의 생명나무의 상급을 하늘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속에 있는 그 죄악과 싸우는 자는 그가 비록 죄로 인하여 심히 슬퍼하며 울지만 그 애통함으로 인하여 그 영혼이 셋째하늘에 계신 선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로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이 마땅하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은 누구나 뼈를 중심으로 그 위에 살과 피로 덮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짐승도 마찬가지이니 짐승도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위가 음식물로 차서 누르면 힘을 주지 않아도 그것이 자동으로 열려 배설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인생의 목적 아버지의 그 뜻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되고 깨달아도 이루지 못하면 그 소중한 단 한 번의 인생을 짐승처럼 살다 무의미하게 마치게 된다. 물론 짐승보다 못한 삶을 이루고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는 짐승과는 달리 영원히 살게 되는 생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 불어넣어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과 느낌만 있는 짐승과 달리 마음도 가지고 있으며 그 깨끗한 장소 안에 거룩한 영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보고 인격체라고 칭한다.

 

사람은 이처럼 인격체로서 짐승에게 없는 마음과 영혼이 있으니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싶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목숨을 아끼니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그리하여 이것을 깨달은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영과 그 깨끗한 영을 먹여 살리는 양식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니 돈과 세상에 비교할 수 없으며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비록 인격체라 할지라도 육신이 가난한 사람은 하루에 필요한 세끼의 양식보다 더 많은 돈을 얻기 원함은 썩어질 것들을 더 늘려가며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아내와 남편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음욕을 품기도 하며 실제로도 간음을 행한다. 또한 불의와 죄를 행하면서까지 사망의 심판을 향하고 있는 이 세상의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러한 육적인 요구와 욕심이 자신을 와 심판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잘 깨닫고 있다. 또한 자신이 육신의 죽음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썩어질 육을 취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음은 영혼이 떠난 후 나무통 안에 맨손으로 누워있는 영혼 없는 몸들을 돈을 내고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가난한 마음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썩어질 것들을 따라가되 끝까지 좇아간다. 다른 영혼들을 더럽히며 또한 자신도 더러워지는 것을 알아도 또한 고통을 주고 있음을 겪어도 그리고 세상 것들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보면서도 세상을 헤엄쳐 다닌다. 그러므로 사람이 두려움가운데서도 그 사망의 음침한 길을 걸어 다니며 허무하고 힘들어도 그 죽음의 망망대해를 헤엄치고 있는 것은 썩어질 육의 욕심을 이루며 또한 헛된 영광을 붙들고자 함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아버지께로 온 그 거룩하고 영원한 영(心靈)이 가난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이제는 그 썩어질 육의 욕심과 육적인 요구를 버린 자이다. 그것을 버리는 이유는 다윗처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하므로 사람에게 오직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동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하기 때문이다.

 

누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인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곳을 보며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살기에 좋다는 미국의 서부도시인 캘리포니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차를 타고 가다 배가 고파서 주위를 둘러보니 McDonald's 햄버거가게가 많이 보였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중 한 곳에 들어가서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시켜서 먹으며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역시 똑같은 가게만 찾아 들어가서 먹었다. 하지만 한 번은 햄버거를 다 먹고 나와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BURGER KING이 더 맛있는 것 같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귀가 솔깃해져서 다음에는 BURGER KING 햄버거가게에 들어가서 먹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 사람들의 말대로 좀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부터는 BURGER KING에서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BURGER KING에서 햄버거를 다 먹고 나오는데 옆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반대로 McDonald's가 더 맛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는 자신이 그 햄버거를 둘 다 먹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맛있는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주로 BURGER KING에서 먹었지만 그 가게가 보이지 않으면 그냥 McDonald's에서도 먹었다. 그러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마음이 배고프니 In-N-Out Burger가 보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가 먹었는데 고기와 감자를 얼리지 않아서 그런지 자신의 입맛에 딱 맞았다. 게다가 In-N-Out Burger를 먹은 후로는 McDonald's는 더럽게 느껴졌고 BURGER KING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으나 In-N-Out Burger는 먹을 때마다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부터는 꼭 In-N-Out Burger만 찾아 들어가 먹었으며 그 가게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McDonald's와 BURGER KING을 지나쳐 네 시간 심지어 여섯 시간이라도 참았다가 그 가게에서만 먹었다. 심지어 한밤중에도 그것을 먹으려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 가게를 찾아 헤매는 날도 있었으니 그의 마음은 몸은 더 이상 캘리포니아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육신과 영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 육신이 가난할 수도 있고 마음이 가난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육과 영, 육적인 말씀과 영적인 말씀, 세상으로 이끄는 말씀과 셋째하늘로 이끄는 말씀, 사람의 의를 드러내는 말씀과 그리스도의 의를 증거하는 말씀 두 가지 중에 오직 하나만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가난함을 가질까 하는 기준과 결정은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살고자하는 마음에 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있는 진리를 자신의 온몸으로 전해주신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육적인 욕심과 육적인 요구를 버린 자에게는 한 가지 약속을 주셨다. 그는 아버지께서 계신 곳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가오는 천년왕국과 또한 그 천국이 마쳐진 후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갈 영원한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 계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본향에서 모든 영적인 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임하시는 성전은 이 땅에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몸이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이 임하였기에 불의하고 죄악된 이 허무한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에 기쁨과 행복과 평화와 만족을 얻는다. 이처럼 산상수훈의 모든 복은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에서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니 현세와 내세의 복이 둘 다 이루어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 더 많은 곳을 보며 즐기고 싶은 사람: 영혼의 양식을 찾기 원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
* 자동차: 영혼의 장막을 뜻하는 사람의 육체
* 고속도로: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번 사는 인생
* McDonald's: 유황불 못이 약속된 거짓선지자들로서 육과 세상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들
* BURGER KING: 자신을 스스로 정통이요 보수요 개혁이라 칭하되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른 적이 없으니 그리스도께 받거나 배우지 않은 복음을 사람들의 앞에 서서 가르치다가 마지막 때 대환난의 침상에 던져지는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
* In-N-Out Burger: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자들
* 얼리지 않은 고기와 감자: 천년왕국과 영원한 셋째하늘의 영광의 자유의 복음을 뜻하니 그들은 오직 아버지의 뜻과 거룩한 육체의 부활을 전하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침
* 한밤중: 그리스도께서 공중과 지상에 재림하시는 마지막 대환난의 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부터 십자가와 부활까지 행하신 세 번의 공적인 사역들 가운데 첫 번째를 인자로서 원수의 시험에서 이기신 후에야 비로소 갈릴리호수의 주변에 있는 작고 연약한 마을들을 다니며 시작하셨다. 그러다 얼마 안 되어 아버지의 그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미 택하여 놓으신 11명의 영혼들로 하여금 자신의 뜻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또한 그들이 원하는 뜻과 계획이 아니요 그들의 목숨까지 바쳐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도록 자신의 제자들로 한 명씩 한 명씩 순서대로 질서 있게 부르기 시작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 아버지께로 택하심의 은혜를 받은 두 영혼이 멀리서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보셨다. 당시에 나이가 서른하나요 오로지 혈기로 가득 차있던 성품의 베드로와 스물여덟이요 역시 때로는 혈기로 하며 때로는 자신이 했던 일들이 부끄러워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던 그의 동생 안드레를 보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대로 그 두 형제를 가장 먼저 부르시고자 그들에게 다가가셨다. 그리고는 ‘어부로서 고기를 낚는 기술은 어떻게 배웠느뇨?’라고 물으셨다. 그리스도의 질문에 형인 베드로는 ‘저희 아버지께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다시금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면 무엇이 가장 귀하느뇨?’라고 물으셨다. 이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것은 이미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니 자신 있게 동시에 ‘그물이 가장 귀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 후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사람을 낚는 자가 되길 원하느뇨?’라는 말씀을 건네셨다. 이 질문을 듣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음의 생각에 빠졌다. 사람이 낚는 것은 고기일진대 사람이 어찌하여 사람을 낚는지 또한 설령 낚는다 하여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뭐에 쓰려고 낚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어부는 고기를 잡아 그 고기를 시장에 넘기며 한 부분을 가족에게 가져와 그 잔칫상을 만드는 도다. 그렇지 아니하느뇨?” 이에 그들은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 ‘이처럼 너희가 사람을 먼저 배운 후 그것을 다른 자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너희를 좇고 너희는 나를 좇는 어부가 되려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었으니 그리스도의 비유와 설명을 듣자 자신들의 앞에 서계신 이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그들은 주님께서 부르실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겠노라는 마음이 깊은 곳에 늘 준비되어 있는 영혼들이었으니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썩어질 육이 아닌 생명의 말씀을 위하여 헛된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늘을 위하여 미련 없이 자기의 그물을 내려놓고 생명과 진리의 일을 위하여 곧장 그리스도를 좇아갔다.

 

그들이 비록 이전에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았으나 이제는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회개하고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사람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로 사람에 대하여 또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 길과 진리에 대하여 먼저 배운 후에 그것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또 다른 가난한 자들에게 가르치므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바라보고 새 생명을 소원하며 영혼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함이 아니요 오직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므로 자신도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오직 십자가를 통해 그 생명을 얻게 하고자 따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요 아버지의 일을 하는 자라는 마음을 품되 그의 마음에는 살고자하는 마음도 애통도 없으니 나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이미 알만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교만은 내 말이 정통과 진리요 저것은 건전하지 않고 잘못된 위험한 것이요 이단이라 정죄케 만든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자들이 어찌 자신이 먼저 사람과 진리에 대해 배우고자 하리요? 오히려 그들은 천국이 가까웠어도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즉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아버지께로 합당하게 받으시는 영혼이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니 늘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자신의 뜻과 계획은 이러한 것이라며 사람을 낚고자 한다.

 

그렇다면 새 생명의 복음과 거룩하게 회복된 자가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천년왕국의 복음과 그 천국의 끝에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그 소망의 복음이 아닌 것을 전하는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잘 낚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앞에 서서 사람의 생각과 방법을 말할수록 사람의 뜻과 계획을 보여줄수록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잘 낚인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것과 보고자 하는 것을 복음이라며 들려주고 보여주는 그가 과연 누구의 어부인지 그가 무엇으로 그들을 낚았는지 그에게 낚인 많은 자들이 어떤 고기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와 무엇을 따르고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