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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송편대신 무전기

추석에 송편대신 무전기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가 어디일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워팰리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그곳이 어떻게 생겨먹은 집인지 전세 가격이 수십억이 된다고 하니 우리 같은 서민들의 상식으로는 상상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까이에 자연친화적으로 잘 가꾸어져 있는 ‘양재천’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집값을 비싸게 하는 한 요인일 것이다.

이런 부자 동네가 마주 보이는 건너편에 서울에서 가장 가난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포이동266번지 ‘재건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난 6월에 이곳 판자촌 재건마을에 불이나 그나마 살아가던 판자촌 집들을 잃었다.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되어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불이나면서 재건마을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다가, 불이 난지 100여 일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

군부독재정권은 79년 부랑인 넝마주이 등을 자활시킨다는 명목으로 자활근로대를 결성하고 경찰을 통해 통제해 왔다. 이들을 여러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양재천변 허허벌판에 뻘밭으로 버려진 땅이었던 하천부지로 45명을 강제이주 시켰다. 이들 자활근로대를 ‘재건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이곳이 ‘재건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 이곳에 월남전 상이용사 16가구, 동사무소 청사 부지에 살던 사람들 14가구를 강제 이주시켰다. 98년에는 양재천을 개발하면서 주차장 부지에 살던 사람들 36가구를 이주시켜 재건마을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강제 이주시키면서 정부와 구청은 “이곳은 너희들이 살아갈 터전이라고 하였다.” 고아로 지내다가 넝마주이에 끼어들었던 박동식씨에게 83년에 발급해준 재건대원등록증이 말해주고 있다.

장화 없이는 살 수 없고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들은 죽을 수는 없고 살아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판자를 주어다가 얼기설기 기둥으로 세우고, 벽을 만들고 하늘을 가리면서 집을 지었다. 쓰레기를 주워 팔면서 생명을 유지해 왔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때는 낮에는 마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출입을 통제하고, 밤에만 출입하도록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을 감시 감독하면서 여차하면 넝마주이로 생계를 유지해 오던 이들에게 ‘훔쳐온 물건’이라고 하면서 강제연행, 고문하며 삼청교육대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를 피하여 산에 토굴을 파고 지내기도 하고, 그 후유증으로 양재천에 빠져 죽기도 하는 등 여러 명이 죽어 갔다.

88년에는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포이동266번지로 바뀌고 도서관부지로 변경되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그곳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이들의 주민등록이 사라지면서, 유령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까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친척집으로 ‘위장전입’하여 한 두 시간 걸려 통학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주민들은 세금을 내고 자식들은 군대를 다녀오는 등 참으로 희한한 삶을 살아 왔다. 90년부터는 이들에게 국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토지변상금‘을 내라고 해서 지금까지 한 집에 수 천 만원에서 억대의 토지변상금이 부과되어 있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기회만 있으면 이들을 이곳에서 쫓아내고 학교를 짓거나, 도서관을 지으려는 등 개발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억울하게 살아온 주민들이 2003년부터 서울시와 구청의 부당함을 깨우치면서 ‘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를 결성한다. 주민들은 빈곤 사회단체와 힘을 합쳐 서울시와 구청을 향하여 당당하게 저항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주민등록이 없이 살아가는 자신들을 나타내기 위해 흰 천으로 온 몸을 가리는 유령복을 입고 유령시위를 이어갔다. 2009년에는 주민들이 ‘개포동 1226번지’로 주민등록을 등재할 수 있는 승리를 이루어냈다. 뒤이어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하여 토지변상금도 철회하기를 바라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불이 난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포이동 공부방 아이들에게 농사한 감자를 전해주러 갔을 때 “재건마을 개발계획이 한동안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좋아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올해 6월 12일 일요일 오후에 이곳에 놀러온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냈다고 한다.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되었다. 불을 아이가 내었다며 화재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수사도 미진하다.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도 불을 끄는 노력보다도, 인접한 주택을 보호하려고 그곳에 물 뿌리는데 치중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화재 후 구청에서는 인사 치례로 다녀가고, 아직까지 악취가 나고 흉물로 남아있는 화재잔재도 치워주지 않고 있다. 화재복구에는 관심이 없고 주민들을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다. 주민들은 뜨거운 여름 햇볕과 장마와 태풍 속에서도 좁은 마을회관과 천막 속에서 힘든 여름을 보냈다. 이제껏 잡초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온 주민들이고, 따뜻한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의 지원금과 물품 후원, 그리고 지지방문에 힘을 얻어 지금껏 버텨오고 있다.

서울시와 구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주민들은 장마 속에서도 화재잔재를 정리하고, 시민 사회단체 종교기관의 후원금과 노력 지원으로 집 지을 땅을 정리하고 주거 복구에 나서게 된다.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판넬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면서 집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거복구는 진행되고 있다. 이에 구청에서는 지은 집을 철거하겠다고 협박하고, 8월 14일에는 새벽에 140명의 구청 직원과 용역들이 마을에 침입하여 집을 부수고, 저항하는 주민들을 폭행하였다. 지금도 철거위협은 계속하고 있으며, 추석 전에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집을 부수라고 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저항하기로 하고 추석에도 고향을 가지 못하고 무전기를 들고 마을 경비를 서고 있다.

언론에서는 임대주택을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임대주택 보증금과 임대료를 낼 형편이 안 된다. 생업인 재활용품 수거를 하기 힘들고, 정을 나누며 살았던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마을공동체는 파괴되게 된다. 또 임대보증금을 압류 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지난 정권이 강제 이주시키면서 “이곳은 너희들이 살아갈 터전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이곳에서 정겨운 마을을 이루면서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 굳이 타워팰리스와 대비를 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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