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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리산 좀 냅둬 둘째 날, 산악열차 필요없어 2023/10/16

너른 공터에 작은 천막 여러개, 큰 돔형 천막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천막 사이로 나무 몇 그루가 있고 몇몇 사람들이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울타리가 있고, 뒤쪽으로는 차량 몇 대가 주차되어 있으며 그 뒤쪽으로 높은 산이 보인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다소 쌀쌀해진 아침에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함께 캠프 둘째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는 회의를 한 뒤, 참가자가 준비해온 부르주아 체크리스트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 중 누구도 부르주아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여러 종류의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지런히 도시락을 싸서 산악열차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정령치 고갯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낮은 울타리가 있는 산길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자 피켓과 배너를 들거나 몸에 매달고 있다. 피켓과 배너에는 ‘산악열차 백지화’, ‘지리산을 그대로’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뒤로는 큰 산이 보이고 하늘은 푸르고 약간의 구름이 있다.

 

작년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남원시를 ‘친환경 산악용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한 뒤, 남원시의회는 시범사업을 위한 예산 배정을 완료했으며 뒤이어 사업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확정된 시범사업은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일대 약 1km 구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범사업은 구룡계곡 인근부터 정령치 고개까지 총 13.2km로 연장하여 국립공원 권역을 포함해 산악열차를 설치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산악열차 사업이 추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안한 뒤 ‘산악관광진흥 법률’이 제정되고 올림픽 준비라는 명목과 맞물려 적극적인 규제완화 정책이 추진되며 전국 산지에서 각종 개발사업이 난립하기 시작합니다. 설악산에서는 케케묵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지리산 권역의 지방정부들은 앞다투어 대규모 사업 계획을 들고 나왔습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산악열차 사업은 이 때 남원시가 계획한 사업의 일부입니다. 정령치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천은사, 성삼재를 지나 달궁까지 연결되는 노선과 이어져 총 34km 구간에 걸쳐 백두대간 핵심지역과 국립공원 권역,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를 관통하는 사업입니다. 현재는 13km 구간 사업만 거론되고 있지만, 이후 공사가 시작되면 매몰비용과 사업연계성을 들먹이며 구간 확장의 타당성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리막 도로 옆으로 몇몇 사람들이 걸어 내려오고 있다. 사람들 손과 몸에는 ‘지리산 그대로’, ‘산악열차 백지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배너가 있다. 도로 옆으로는 풀과 나무가 우거져있다.

 

캠프 참가자들은 전날 저녁에 각자의 몸에 붙일 배너를 만들었습니다. 정령치 고개에 도착하여 산악열차반대대책위 분과 만난 뒤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2시간에 걸쳐 산악열차 노선 공사가 예정된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산악열차 사업에는 1km 구간마다 적어도 1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적게는 천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들어가지만 사업의 경제성은 물론 최소한의 안전성 조차도 면밀하게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시범사업은 정령치로 향하는 도로 옆 숲을 베어내고 확장하여 궤도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해당 도로 구간은 지반이 불안정해서 매년 산사태와 도로 꺼짐 등에 의한 통행 제한이 빈번하며, 지금도 적재 중량에 따른 차량 운행 제한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중에도 도로 보수 공사로 통제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50톤에 가까운 산악열차 통행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남원시는 1km 구간 이외의 노선에 필요한 예산을 어디서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마땅한 대책도 없습니다.

 

산악열차 처럼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누구를 위해서 마구잡이로 추진되는지 알 수 없는 사업의 예시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 남원시에 개장한 테마파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을 확보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남원시는 약 400억원을 들여 모노레일, 짚라인 등 시설을 포함한 테마파크 개발사업을 진행해 작년에 개장했습니다. 단 일 년 만에 시가 지불 보증한 부채 400억원은 600억원으로 늘어났고, 시공과 운영을 맡았던 민간사업자가 운영을 포기하며 직원들은 수개월째 임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매달 수억씩 늘어가는 부채는 고스란히 공공의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산악열차 사업이 강행될 경우 그로 인해 남겨지는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대체할 수 없는 국립공원 지역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파괴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펜스에 작은 배너들을 걸고 있다. 배너에는 ‘산악열차 멸종열차’, ‘산악열차 이제 하차’ ‘ 지리산을 그대로’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멀리 뒤로는 산이 보인다.

 

펜스에 여러 개의 작은 배너들이 걸려있다. 배너에는 ‘STOP 산악열차 그만’, ‘산악열차 극악무도’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뒤로는 저수지와 산이 보인다.

 

몸에 달았던 배너와 책방 토닥토닥에서 보내주신 연대 메시지를 길 옆 울타리에 걸어두었습니다. 간식을 팔던 상인 분께서 수고가 많다며 군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작은 밤톨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하늘과 산이 보인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과 무지개가 있다.

 

걷기가 끝난 뒤 사포마을로 돌아와 참가자들이 준비한 몇 가지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전거 자가정비, 팔레스타인에 있는 친구의 편지 읽기, 나만의 투쟁 상징물 만들기 등을 함께하며 각자의 유용한 기술과 경험, 마음을 나누며 캠프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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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4:01 2023/10/16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