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보금자리가 되었던 텐트를 정리하고 마을회관에서 닫는 회의를 가졌습니다. 낯선 이들에게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고 맞아주셨던 사포마을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구례군 문쳑면 중산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이들이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조금씩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구례 읍내를 지나갔습니다. 읍내에서부터 중산리로 가는 길에는 온통 “친환경에너지 양수발전소 유치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가득했습니다. 중산리로 향해가는 계곡 길로 들어서자 다른 목소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울림이 생생히 느껴지는 현수막들을 지나 천천히 길을 올라가 중산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지리산 사람들과 주민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장소는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 수몰될 구역의 위쪽 가장자리였습니다.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규 양수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사업 후보지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례군은 5월부터 양수발전소 유치 활동에 나섰습니다. 제대로 된 사업계획 설명이나 주민 의견 취합 과정도 거치지 않고 친인척 관계를 이용해 받아온 주민 동의서 하나를 근거로 군은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댐건설로 삶터를 잃게 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중부발전과 구례군, 그리고 지역의 미래보다 땅값에만 관심을 쏟는 자들은 귀를 막고 있습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해 양수발전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양수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은 작년에서 올해 사이 수립된 새로운 에너지 정책안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부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안정적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한 탈화석에너지원의 주요 구성요소로 신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어들고 원자력 발전의 비중은 확연히 증가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정책 발표 시기에 발맞춰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꼽히며 이를 위해 “양수발전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떤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도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수립될 수는 없습니다. 발전소와 송전선로 등을 짓는 전원(電源)개발사업은 전원개발촉진법에 의거해 시행됩니다. 이 법은 군부독재정권 말기인 1978년에 제정된 것으로 도로법·하천법·수도법·농지법 등 19개 법령에서 다루는 인·허가 사항을 모두 생략하여 강제수용을 가능하게 하고, 입지 선정에 대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됩니다. 밀양에서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법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구례군과 여러 지자체가 일단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사업지로 선정만 된다면 어떻게든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마구잡이로 양수발전소 유치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와 환경정의,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는 함께 가야만 합니다.
현재 구례군이 계획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산 위쪽으로 424m 길이의 상부댐, 중산리 일대 쪽으로 281m 길이의 하부댐,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이 지어질 예정입니다. 계곡 아래쪽에서 보이는 송전선 철탑 중간 부분까지 댐이 들어서고, 철탑을 더 위쪽으로 이전 설치할 거라고 합니다. 기존의 도로는 수몰되기 때문에 새 도로도 지어질 예정입니다. 수몰 지역 외의 인근 주민들 역시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공사와 이후 댐으로 인한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요 수원인 중산천은 유량이 적은 편이기에 댐으로 인한 수질 악화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양수발전소는 일반적으로 사업성이 낮으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부발전 역시 구례군 양수발전소에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이에 맞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중산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근 주민들, 그리고 사업에 관계된 결정권자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양수발전소 백지화를 위한 집회가 열립니다. 구례군 뿐만 아니라 양수발전소 유치가 추진되고 있는 곡성군에서도 함께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같이 목소리를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