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우리는 대형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거제도 노자산을 향해 갔습니다.
첫째날에는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에 함께하고 있는 분들의 안내로 노자산 답사를 했습니다. 전체 면적의 40%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지정된 노자산은 거제도 유일의 원시림으로 50여 보호종의 서식지이자 한려해상국립공원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팔색조 보호지역인 '천연기념물 학동동백숲 팔색조 번식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5월 말에 노자산으로 돌아오는 팔색조는 보통 6월 초순에 알을 낳아 2주 정도 품어 부화하면 2주에 걸쳐 새끼를 키웁니다. 두 달여 동안 머물던 팔색조들은 9월 말쯤 월동하러 남쪽으로 떠납니다. 팔색조는 전세계에 약 5천 마리 정도가 서식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막 봄이 시작된 노자산 자락에는 지난해에 팔색조가 머물렀던 둥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둥지는 바닥에서부터 약 1미터 정도 높이의 바위 위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청설모의 식사자리로 쓰인 듯 주변에 먹고 난 솔방울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시민 자체 조사에 의하면 이 바위에서 세 번이나 둥지를 튼 것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개체가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대에 좋은 서식환경이 갖추어진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또 다른 둥지는 큰 나무의 줄기가 갈라진 사이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새끼가 자라는 시기에 암수 팔색조는 매일 12시간에 걸쳐 교대로 먹이를 물어다나르며 매우 바쁘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식은 지렁이와 곤충입니다. 노자산은 오래된 나무와 암석으로 숲이 울창하고 습도가 높으며 양분이 풍부해 서식하기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둥지는 땅 바닥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축구공만한 크기에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굴과 같은 구조를 200여 개의 큰 나뭇가지로 형태를 잡아 부드러운 가지와 풀로 내부를 마무리한 모양새였습니다.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입구는 이끼로 덮여 있었습니다.
계곡 근처 바위 옆에서 충무띠달팽이와 거제외줄달팽이의 껍데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제외줄달팽이는 멸종위기종 중 유일하게 '거제'라는 지명이 붙은 종으로 국외에서는 일본 남부 일부 지역에 적은 수의 개체가 서식하며, 국내에서는 노자산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숲이 오래되어 활엽수가 우점종이며 부엽토가 두터운 암반지형인 노자산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1년 환경부 국가생물종 목록에 신종으로 등록된 거제도롱뇽은 전세계에서 오로지 거제도에서만 서식이 확인된 거제도의 고유종입니다. 바위밑틈에서 겨울을 보내고 막 산란을 시작한 거제도롱뇽을 계곡의 작은 연못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을 벗어나 임도를 향해 내려오는 길목에는 길의 경계면과 위쪽 사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빨간 깃발이 꽂혀있었습니다. 사면 위쪽에는 '진(좌)', 경계면 쪽에는 '진(우)'라고 적혀있고 해발고도인 듯한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으며, 골프장 진입로 공사 전 사전작업을 해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아직 사업허가도 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둘째 날 아침에는 거제시청 앞 골프장 개발 중단 피켓팅에 참가했습니다. 거제시는 경동건설과 거제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업 초안에는 위락시설 몇가지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몇 차례 변경된 후 현재 사업안은 27홀 규모의 골프장과 그 부대시설이 거의 전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이 사업은 해상 39만 제곱미터를 포함하여 노자산과 가라산 일대 369만 제곱미터에 걸쳐 4277억 원을 들여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날 답사한 노자산 곳곳에는 시행사인 경동건설에서 사업예정지임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업 추진의 주요 근거가 되는 환경영향평가에는 우리가 분명히 같이 만났던 팔색조 번식의 흔적, 거제외줄달팽이와 거제도롱뇽의 서식 사실이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용역업체의 현지 조사는 멸종위기종인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대홍란과 애기송이풀, 애기뿔소똥구리가 출현하는 시기를 회피하여 이루어져 이들의 존재가 지워졌습니다. 평가서에는 일부 법정보호종들도 골프장 부지 밖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었으며, 훼손산림의 규모는 실제의 3분의 1 이하로 축소 평가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에 반발하며 수년간 자체 조사에 나서 사업예정지 내의 대홍란 군락지, 팔색조의 번식지, 살아있는 거제외줄달팽이 등 50여 법정보호종의 실제 서식을 확인했습니다. 조사내용을 근거로 지방정부와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골프장 사업 추진에 책임이 있는 모든 공공기관에 제대로 된 재조사를 촉구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 번식지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이 작년에 실시한 현장조사에서 팔색조 번식 둥지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허위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용역업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어 작년 말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마구잡이 개발사업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오히려 개발사업의 구색맞추기 역할을 수행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판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의 근거가 되는 환경영향평가의 위법성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골프장 사업은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사업자 측은 대홍란을 이식하고 거제외줄달팽이를 이주시키는 등 멸종위기종들을 사업지 밖으로 옮기는 것을 대책이라며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계 골프 없는 날'입니다. 토지와 공적자원을 수탈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골프장 사업에 맞서는 움직임은 전세계적입니다. 건설 중인 사업을 제외하고도 한국에는 이미 514개의 골프장이 있습니다. 골프장 사업을 새로이 추진할 때마다 사업자와 지방정부는 한 목소리로 지역경제에 이익이 될 거라 말합니다. 우리는 이 거짓말을 지겹도록 들어왔습니다. 한 줌의 소수에게 돌아갈 이익보다, 농약을 들이부어 지역수자원을 고갈시키며 유지되는 녹색 황무지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여름이면 팔색조와 긴꼬리딱새가 돌아오고, 거제외줄달팽이와 거제도롱뇽이 기어다니며, 삵과 수달이 뛰어다니고, 솔개와 새매, 두견이와 솔부엉이, 소쩍새가 날아다닐 수 있는, 온전한 170만 그루의 나무가 살아갈 오래된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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