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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좌담회 <청소노동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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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들의 투쟁”, “어머니들의 권리”…. 청소노동자 투쟁에는 유독 ‘어머니’라는 수사가 따른다. 이 맥락에서 그녀들은 노동이 아닌, 가사 일을 하는 사람이다. 또 노동자이기보다 어머니이다. 사실 ‘어머니’라는 호칭은 곧잘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이 호칭이 가족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계급성을 약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활동가들도 이 호칭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녀들과 유대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그렇다. 부모님 연배인 청소노동자분을 ‘조합원님’이라 부르기엔 살갑지 않고, ‘동지’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하다. 심지어 ‘어머니’라는 호칭을 더 달가워하시는 청소노동자분도 있다. 그러니 정치적인 올바름과 실제의 상황 사이에서 고민만 더해진다. 소위 딜레마다.
 지난 3월 16일, ‘어머니’라는 호칭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던 네 명의 학생활동가들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 먼저, 유대가 깊어질수록 ‘어머니’라는 호칭을 버리기 어려운 까닭을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청소노동자 투쟁에 흔히 사용되는 ‘어머님’이라는 프레임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이후엔 ‘어머니’라는 호칭에서 비롯됐을 지도 모를, 파업 현장에서의 성별 분업과 청소노동이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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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포인트(이하 G) : 반갑습니다. 학생활동가로서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진행된 노조투쟁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희강 : 2011년부터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던 활동가들과 인연을 맺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혼자 집회에 나갈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연대하는 곳의 노조는 2010년 12월 즈음 한 학술 조직을 주축으로 조직됐대요. 그리고 곧바로 투쟁이 터졌어요. 첫 투쟁이 일단락된 그 해에, 손해배상 투쟁이 다시 터졌습니다. 투쟁이 거듭 이어지니까 상시로 연대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래서 몇몇 단체들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해체됐습니다. 다시 단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모여서 지금은 <손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함께 미술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요.

 

다솜 : 학내 교지에서 청소 노조 취재를 담당한 이후, 그분들의 노동환경을 좀 더 자세히 알았어요. 알고만 있을 순 없어서 학생 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했어요. 제가 연대하는 곳은 3월 초부터 투쟁이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거의 막바지에요. 임금 타결이 되었으니 이제는 파업기간에 받지 못한 임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협의만 남아 있어요. 파업 기간에는 학생 대책위원회에서 주로 연대하는 학생 활동가들이 노조의 간부들과 회의를 하며 의견을 나눴어요. 선전전 등의 사업이 있을 때 그 사안을 공유하여 학생 인력을 충원하는 식이었죠.

 

성우 : 학생회 집행부를 하며 <살맛>이라는 학생조직에 참여했어요. 청소노동자분들이 처한 사안에 동의했기에 활동에 적극적으로 몸담았습니다. 제가 활동한 곳은 2008년에 노동조합이 출범했어요. <살맛>에서는 학내 청소노동자 노조 출범부터 노동자분들과 활동을 맞춰나갔어요. 투쟁 이후엔 일상적으로 노동조합과 연대하기 위해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이하 시작교실)을 운영했어요. <시작교실>은 노동자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는 단체예요. <시작교실> 외에는 학생 단체들, 지역단체, 정당들 등이 모여서 연대체를 만들었어요. 일종의 공동 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인데요. 투쟁 상황이 발생할 때 즉각 대응하고 학내 비정규직 문제를 좀 더 주기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꾸려졌습니다. 현재 이루어지는 다른 학교 투쟁에도 공대위 차원에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나루 : 저는 노조 조직화 사업에서 함께 실태조사를 하며 참여했어요. 처음엔 단순한 동정이던 것 같지만, 지금은 그분들도 동지라고 생각해요. 제가 있는 곳은 노동조합의 역사가 길지 않아요. 작년에 만들어졌으니 거의 신생 조직이네요. 노조가 조직된 이후에 비정규직 서포터즈 <비와 당신>이 만들어졌어요. <비와 당신>에서는 투쟁 당시 노조의 인원충원이나 사업 구상 등을 같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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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호칭을 조심해야 하지만….” : ‘어머님’이자 동지인 그녀들

 

 

G : 각각 다른 투쟁현장에서 연대하셨던 네 분이 와주셨네요. 투쟁 현장에서 노동자분들을 부를 때 어떤 호칭을 사용하셨나요? 아마도 ‘어머님’ 혹은 ‘조합원님’이라는 호칭 중 하나를 택하셨을 텐데요.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어땠나요?

 

나루 : 저희는 노조가 만들어지지 얼마 안 됐다 보니, 당장은 파업 문제가 급했어요. 그래서 호칭에 대해서 처음부터 합의를 보진 못했어요. 마땅한 호칭이 없으니까 노동자분들을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이후에 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동지’의 의미를 공부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어요. 그래도 호칭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한 노동자분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나루야, 나는 동지라는 말이 부담스러워. 네가 딸 같으니 나를 엄마라고 불렀으면 좋겠다.”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씀을 들으니 강요하듯 ‘조합원’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분들께 “동지라는 말이 나쁜 의미는 아니에요.”라고 얘기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어요.

 

다솜 : 학생 대책위원회의 예전 회의 문건을 찾아보니 “‘어머니’라는 호칭을 조심하자”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오래도록 지속된 논쟁거리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듯해요. 학생 대책위원회에 4년에서 5년 정도 몸담은 학생활동가들이 있는데요, 그중 몇몇은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해요. 물론 청소노동자분을 조합원님이라고 부르는 활동가들도 있어요. 호칭이 뒤섞여 사용되다 보니 대책위에서 호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죠. 그런데 노동자분들께서 학생들 앞에서는 ‘엄마’라고 자칭하셔서 조합원님이라고 부르기 어려웠어요. “엄마들이~”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어머니’로 규정하시더라고요. 유대관계가 깊어질수록 조합원님이라고 부르기가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에는 걸리지만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G : 다른 분들은 어떠셨나요?

 

성우 : 분회를 조직화할 때는, 청소노동자 투쟁이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었어요. 학내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고요. 저는 당시 이랜드 여성노동자 투쟁에 참여하다가, 학내 비정규직 실태 조사 사업을 했어요. 결과를 확인하니 상황이 열악하더군요. 체불임금이 3억 5천 정도 됐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설립해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그분들을 뵙기 위해 휴게실부터 방문했어요. 처음엔 청소노동자분들께 “밥 먹으러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렸죠. 노동조합의 개념이 아예 없었을 때라서 유대가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다 보니, ‘어머니’라는 호칭도 자주 사용했어요.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공대위가 만들어진 이후에야 ‘어머니’라는 호칭에 대한 지적을 받았네요. 당시 공대위가 함께 모인 테이블에서 총여학생회가 문제를 제기했어요. 여성노동자들을 사적 영역에 국한하는 호칭을 쓰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었죠. 그 이후부터 조합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작교실>에서는 초기부터 충분히 논의해서 학생활동가와 조합원님들 사이에 ‘학강님’, ‘강학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실 밖에서는 노동자분들을 조합원님이라 부르자고 합의를 보았어요.

 

희강 : 제가 속한 투쟁현장에서는 한 학생단위가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외의 단위들은 일상에서나 발언 자리에서나 조합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회의 노동자분들은 서로를 지칭하실 때 ‘언니’, ‘아저씨’,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세요. ‘조합원’이라는 말은 발언자리가 아니면 잘 쓰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나마 동지라는 말은, “학생동지 어디가!” 이런 상황처럼 희화화할 수 있는 맥락에서만 주로 쓰였어요. 저도 <시작교실> 활동을 했었는데요. <시작교실>에서는 호칭에 대한 합의가 처음부터 잘 이루어졌어요. 지금 활동 중인 <손 프로젝트>에서도, 초반부터 호칭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논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저는 조합원님이라 부르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다른 학생활동가들은 “조합원님이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지만, 일상에서 그렇게 부르는 건 애매하지 않으냐”라는 말을 하더군요. 청소노동자께서도 자식과 부모 관계 설정을 원하시기도 하니까. 또 청소노동자분들도 서로를 조합원이라 부르는 게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니까요. 그래서 학생활동가끼리 회의할 땐 ‘조합원님’이라는 호칭을 쓰지만, 다른 상황에선 융통성 있게 호칭을 쓰자고 결론을 냈어요.

 

G : 혹시 어머님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설득한 경험이나 노동자분께서 '어머님’이라고 불리는 걸 꺼리셨던 사례가 있나요?

 

성우 : 몇몇 분들께선 오히려 스스로 지칭하실 때 '엄마'라는 호칭을 쓰셨어요. 학생들은 호칭에 대한 합의를 봤으니 조합원님이라고 불렀지만요. 호칭은 다르지만, 그에 관한 마찰이 있지는 않았어요. 조합원들과 학생들이 맺는 관계에서 그분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신 적은 없었거든요. 학생들은 운동권 문화에 대한 학습이 빠르지만 조합원님들은 고령의 여성이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호칭에 대한 논란은 주로 학생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졌어요. 한편으로, 경비노동자분들은 오히려 조합원이라는 호칭을 더욱 좋아하셨어요. ‘아저씨보다는 차라리 조합원이 낫다.’ 이런 생각이셨던 거 같아요.  

 

G : 성우님이 활동하신 곳에서는 ‘어머니’라는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 과정이 있었고, 합의를 보았다고 하셨죠? 그런데 학생활동가들끼리만 합의를 봤던 건가요?

 

성우 : 노조가 막 출범한 당시에 문제를 제기한 거였어요. 노조가 생기기 전에 조합원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요. 그렇다고 노조가 생겼다 해서 “너라고 부를게.”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조합원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어색하죠(웃음). 노조가 막 생긴 그때에 그런 논쟁을 했었고, 그 이후에 들어왔던 학생들은 조합원님이라고 부르자고 의견이 수렴된 거예요.

 

G : 그럼 ‘어머니’라는 호칭은 주로 친근감을 표현하려는 상황에서 사용되고 있는 건가요?

 

성우 : 노동조합에서 교육하는 자리를 가졌더라도, 조합원님들은 노동현장에 대한 의식을 어려워하셨어요. 동지라는 단어도 불편해하셨고요.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하실 때는 주로 사적인 영역에서였어요. 아무래도 유사 가족 관계가 쉽게 형성되는 한국 문화의 영향이 있었을 테죠. 밖에 나가더라도 아무나 ‘형’이 되고 ‘누나’가 되니까요. 또 인간이라는 게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기도 어렵기도 하잖아요? 집회 등의 공적 영역에서는 ‘조합원님’이라고 호명하지만, 사적으로 만날 땐 ‘어머니’가 되는 것 같아요.

 

나루 : 맞아요, 청소노동자분들도 집회현장에서는 동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세요. 타 대학 집회에 연대할 때, “동지들 투쟁 승리해야 합니다.” 이러시거든요. 그런데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세요. 문득 생각이 났는데, 미국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름을 부르잖아요. 하지만 한국은 문화가 다르죠. 손윗사람에게 이름을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그러니 ‘어머니’라는 호칭에만 너무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어머니’라는 상을 그리게 한 모순적인 가족 구조라고 생각해요.

 

G :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엔 모호한 호칭인 것 같네요. 한편으론 선택할 수 있는 단어의 폭이 좁은 탓도 있을 텐데요. 조합원님과 '어머니' 말고 다른 호칭은 없을까요? 

 

성우 : 그런 언어가 있었으면 진즉 썼을 것 같아요. 저희는 ‘최선’의 경우로 조합원이라는 말을 쓰자고 합의를 봤지만, 대안적인 호칭을 고민하려는 시도는 없었어요. 일단 투쟁 사안이 중요하거든요. 모이면 실무를 뭘 할지, 집회에서는 뭘 할지 이런 것들을 주로 얘기하게 돼요.

 

다솜 : 저희도 내부에서는 없었어요. 그나마 ‘어머니’라는 호칭 대신에 조합원을 사용하자는 식으로 정리됐어요.

 

희강 : 제 생각으로는, 함께 투쟁하는 관계니까 ‘동지’라는 호칭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호칭을 편하게 받아들이시는 청소노동자분이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드물 거예요. 대중적인 용어가 아니니까요. 하물며 학생 활동가 입장에서도 그래요. 요즈음엔 학내 교육투쟁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함께 투쟁하는 선배나 동기들을 동지라고 부르고 싶어도 막상 부르려면 좀 어색해요. 평범한 20대는 동지라는 말을 희화화하는 상황이 아닌 한, 자연스럽게 쓰기 어려워요. ‘수업 대리 출석해주는 동지’ 이런 식의 맥락이 아니라면(웃음).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에서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껄끄러운 뉘앙스가 담겨 있는 건 사실인 듯해요. ‘어머니’는 호칭에서 좀 더 나아가, 동지에 대한 대안적인 호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우 : 사실 저는 동지가 좋은 말인지 모르겠어요. ‘쟤랑 나랑 뜻이 같은지 어떻게 알아.’ 뭐 이런 생각 때문에요. 저 스스로 동지라는 말이 입에 잘 안 붙어요. 그래서 동지라는 말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나루 : 물론 동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좋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죠. 북한 말로 알기도 하고. 학교에서 노조 조직부장님이 “강나루 동지!”라고 부르시며 오신 적이 있어요. 옆에 친구들이 있어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래도 저는 동지란 말을 좋아해요.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위계가 생기잖아요. 하지만 동지라는 호칭에는 서로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불편하다고 해서 대안적 언어를 찾기보단,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 보여요.

 

 

“눈물을 무기로 삼지 말라” : ‘어머니’가 그리는 이미지

 

 

G : 호칭을 사용하실 때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거란 예상을 했지만, 정말 예상하셨던 대로 머리가 복잡하셨겠네요.

 

성우 : 활동할 때는 막상 호칭 문제를 고민할 여지가 없어요. 관련해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G : 그런데 청소노동자분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익숙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학내의 학생들이라든가요. 언론에서도 ‘어머니’라는 수사를 사용해서 청소노동자 투쟁을 알리기도 하죠. 청소노동자 투쟁을 공론화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게 옳을까요?

 

성우 : 저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 적은 없어요. 하지만 ‘청소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일반 학우들이 받아들인 인상은 달랐겠죠. ‘우리 어머니들 문제는 해결되어야지.’ 라고 생각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다른 학교 투쟁에 연대하며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학교에서는 “어머님들은 지지하지만, 민주노총은 나가라.”라는 구호도 나왔더라고요. 노동자분들을 ‘어머님’이라고 호명함으로써, 그분들을 민주노총으로부터 분리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분들이 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졌을 때는 ‘어머니’라는 호칭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입막음을 할 것 같아요.

 

다솜 : ‘어머님’이라는 프레임에 문제는 있지만, 일반 학우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에 유용한 건 사실이에요. 투쟁 과정에서 서명 운동을 했는데 ‘어머님’들이 부탁하시면 쉽게 응해줬어요. 대부분 학생들이 ‘어머님이니까 해 줘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반면 학생들이 서명을 부탁하면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성우 : 그 경우에 청소 노동자분들이 자신을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소개하시면 학생들은 서명을 안 해줄지도 몰라요. 학생들은 ‘운동권’, 청소 노동자들은 ‘어머님’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나루 : 하지만 어느 정도는 노조에서도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눈물을 무기로 삼지 말라고 해도 눈물이 무기가 되니 말이죠. 내부에서도 이 주제에 관해 얘기가 많았어요. 너무 강조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슈화할 때는 틀린 맞춤법이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전략적으로 활용돼요. 비판해야 하는 지점이지만, 무작정 비판하기는 힘든 지점이에요.

 

다솜 : 그러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연민’이 되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제가 연대한 투쟁 현장은 2002년부터 투쟁이 진행돼서 다른 곳보다는 노동환경이 조금 나았거든요. 혼란스러웠죠. 연대의 근거가 무엇이었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민은 주관적이잖아요. 이 감정이 들지 않았을 때는 연대의 프레임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G : 확실히 ‘어머니’라는 호칭은 묘한 감성을 일으키는 용어라서 쉽게 버릴 수는 없는 말 같네요. 특히 전략적인 차원에서는요.

 

성우 : 그런데 그 묘한 감성 때문에 민주노총과 어머니가 서로 다른 존재로 분리돼요. 사실은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요. 언제까지 낮은 임금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처럼 동정심을 자극하는 얘기만을 할 순 없어요. 간접 고용의 폐해 등 높은 수준의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안 되고 이런 상황만 반복된다면, 나중에는 ‘아직도 저러고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먹힌다고 안주할 수는 없는 거죠.

 

다솜 : 운동을 오래한 학생활동가들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그중 몇몇 분들은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청소노동자분들을 자립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학생들이 조합원님들을 통솔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노조의 역량을 위해서는 내부에서 사용하는 ‘어머니’라는 호칭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유용한 프레임이기는 하더라도, 노조의 역량을 위해서라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프레임은 아닌 것 같아요.

 

나루 : 네, 맞아요. 학생활동가는 연대하는 거지 계몽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어머님’들께서 경험이 부족하셔서 그런지 상근자 혹은 학생들에게 의지하신다는 인상도 있었어요. 제가 있던 투쟁현장에서는 분회장님이 분회장 학교를 다녀오신 후로, ‘여기서 우리끼리 짜보자.’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시려 했어요. 그런데도 회의를 할 때면, 분회장님 발언 기회는 점점 줄어드시더라고요. 학생, 연대 협의체가 주로 말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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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밥할게, 언제 너희가 하고 있어” : 투쟁 현장에서의 성별 분업

 

 

G : 노조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있군요.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조심해야 하기도 하지만, 투쟁현장에서도 그분들께 가사 일이 맡겨지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면, 남성노동자와 함께 있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가사노동을 맡는 식으로요. 투쟁 현장에서 노동자분들끼리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성별분업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나요?

 

성우 : 여느 중년 여성들의 모임과 다르지 않아요. 소위 말하는 ‘아줌마’들 모임이에요. 노조에서 야유회를 갈 때, 관광버스 안에서 트로트 틀고 춤추시며 가세요. 앉아서 갈 수 없을 정도로 즐겁게요. 또 그분들께서는 종일 같이 지내시다 보니 그 안에서 가족과 비슷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경비 조합원, 주차관리 조합원분들 사이에는 형님문화가 있어요. 같은 노동자니만큼 동등한 관계를 맺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사사건건 고치기엔 어려워요. 다른 학교의 파업에 연대할 때, 자연스럽게 성별 분업이 이루어지는 문화를 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연대한 투쟁현장에서는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당번을 짜서 역할을 분담했어요. 남성 노동자분들도 이런 일들을 하시고, 안 하면 밥 못 드시게 역할을 나눴어요.

 

다솜 : 남성 노동자분들께 역할을 분담할 때 충돌은 없었어요?

 

성우 : 학생들이 “우리 같이 해요.”라고 제안하면, “못 한다”고 말씀하시는 않았어요. 오히려 여성 조합원들이 가사노동이 워낙 몸에 익숙해 있으니까 그걸 설득을 하는 과정이 있었네요. 역할 분담을 해도 여성 노동자분들께서는 하시던 대로 일을 하시는 경우가 잦으셨거든요. “내가 할게, 언제 하고 자빠졌어.” 이런 반응을 보이셨어요.

 

G : 다른 분들이 겪으셨던 상황은 어땠나요?

 

나루 : 저희는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라 성별 분업이 두드러진 경우는 드물었어요. 그런데 파업을 해도 아주 자연스럽게 밥을 하시는 게 안타까웠어요. 파업을 하든, 하지 않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세요. 그게 몸에 익숙해져 있으시니까. 한번은, 학생들이 먼저 식사를 대접하려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분들께서 보기 답답하셨는지 그냥 직접 밥하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서경지부 상근자 동지가 “드시고 나면 각자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매번 조합원들만 하냐!”라고 지적하셨어요. 그다음부터는 성별 분업이 조금 완화됐어요. 파업이 오래되다 보니 설거지는 차차 학생들이나 남성 동지들의 몫이 되기도 했고요.

 

다솜 : 제가 연대했던 투쟁 현장에서는 성별 분업이 두드러지게 이루어졌어요. 남자 조합원들은 아예 앉아계시고, 여성분들만 식사 준비를 하시더라고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을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요. ‘6~70년을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우리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이 들었던 거죠.

 

희강 : 저희도 단합회 같은 걸 할 때의 분위기는 성우님이 계신 곳과 비슷했어요. 그런데 썩 편한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비슷한 예로, 대학의 학과 오리엔테이션에서 클럽 음악 틀고 놀 때 그 문화에 ‘맞춰’ 노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 공간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재현됐어요. 노조 간부들은 그런 문화에 익숙하시겠지만, 주도하시는 분들 외에 절반 정도는 적응을 잘하지 못하시거든요. 농성장 안에서는 ‘전원 해고’라는 큰 사안이 있어서인지 성별 분업에 대해서 큰 인식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 대부분은 여성조합원들의 몫이었어요. 학생들이 식사를 준비한 적이 있기도 했지만, 그분들께서 하지 말라고 말리셨어요. 보시기에 답답하셨나 봐요. 

 

G : 그에 대해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나요?

 

희강 : 다른 실무적인 사안들이 중요하다 보니 문제 제기가 잘 이루어지진 않았어요.

 

성우 : 아무래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노조 간부들에게 말하기가 좀 어렵지 않았을까요? 올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새파랗게 어린 애가 어떻게 그래.’ 이런 식의 자기 검열을 하게 돼요. 제가 활동한 <살맛>에서는 활동 초반부터 청소노동자와 연계가 이루어져서 문제 제기가 가능했어요. 하지만 이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어려워 보여요. 실제로 타 대학에 연대할 때는 성별 분업 문제를 지적하기 쉽지 않았어요.

 

 

“이젠 소리칠 수 있어서 좋다” : ‘어머니’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G : 어쩌면 그분들 입장에선 파업 현장에서의 가사노동이 당연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몸에 익숙하실 테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고령의 여성노동자분들은 권리를 찾는 과정 자체가 생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청소노동자분들이 투쟁에 직접 나서실 때 어색해하진 않으셨나요?

 

나루 : 그분들 스스로 주체화되는 과정이 쉽진 않아 보여요. 하지만 처음에는 조금 주저하셨더라도 점차 권리를 찾아가시는 것 같아요. 노조를 설립하는 초반에 다른 학교 분회장님께서 노동조합을 소개하러 오신 적이 있어요. 노동자들께서 그 학교 분회장님 이야기를 들으시곤 임금문제에 크게 공감하셨어요. “다른 학교는 얼마 받아요?”라는 질문도 하셨어요. 아무래도 생계와 맞닿은 부분들이니만큼 관심을 가지시는 듯했어요.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하신 이후론, “이젠 소리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씀하세요. “노조 초기엔 말도 못했고, 부당한 건지도 모르고 넘겼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당당해졌다.”라고 말씀하신 게, 참 기억에 남아요.

 

성우 : 제가 연대하는 곳은 인격적인 무시 때문에 노조가 결성됐다고 해요. 한 용역업체의 현장소장이 교회 간사였고 주일에 교회 청소해야 하니까 오라는 식으로 그분들을 불렀대요. 노조 생기기 전에는 안 오면 찍힐까봐 눈치만 보셨어요. 한 조합원님이 몸이 정말 안 좋으셔서 못 가셨는데, 그걸 가지고 현장소장이 욕을 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과 함께 항의방문을 했어요. 그분들께서는 항의방문을 한 이후로 ‘이렇게 한번 하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셨대요. 다른 학교에서는 남성 관리자가 여성노동자를 성희롱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이것이 노동조합을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고 해요. 확실히,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개선뿐만 아니라 스스로 인권을 찾는 데 도움이 돼요.

 

나루 : 청소노동자분들을 ‘동지’라고 느끼게 된 계기가 생각나네요. 철도노동자 파업에도 함께 연대했는데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예전에는 파업이나 철도 뭐 이런 거 불편했는데 나 역시 바뀌게 되더라.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뉴스도 찾아보게 된다.”라고요. 또 철도노동자분들을 “공공 운수 산하 노조의 동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동지들 싸움이 꼭 승리하길 바란다.”라고도 얘기하셨어요. 그날 이야기 주제는 철도노조였어요. ‘어머님’들께서 모이셔서 그런 얘기를 하실 줄은 몰랐어요.

 

 

“어머니라는 고정관념” : ‘어머니’로 포장되는 청소노동

 

 

G : 그분들의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사회에서 청소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녹록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좀 전에 성우님이 “주일에 교회 청소해야 하니까 오라”라고 했다는 사례를 말씀하셨잖아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가요? 청소노동을 전문적인 노동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은 일례인 것 같은데요.

 

나루 : 대개 청소노동은 하찮게 여겨지고, 청소노동을 하는 여성은 하찮은 일을 하니 무시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어요. 처음에 파업하고 나서 소장과 분회장님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요. 소장이 악질이었어요. 노조 탈퇴하라고 협박하며 나이도 더 많은 청소노동자분께 “야 이 더러운 년아”라고 욕을 했어요.

 

성우 : 가사노동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까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도 좋지 않을 수밖에요. <시작교실> 활동을 할 때 청소노동을 직접 해봤어요. 새벽 5시부터 시작해서 건물 안을 청소하며 하루를 보내봤어요. 정말 힘들어요. 하루가 아주 느리게 가요. 한 오후 3시 즈음 된 거 같은데, 아직 오전 11시더라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도 청소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무나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가사노동이 사적 영역에서 저평가되니까 청소노동자들의 노동도 낮은 평가를 받는 상황까지 이어지는 듯해요. 실제로 가사 노동을 해봐야 그런 인식을 깰 수 있다고 봐요. 만만한 노동이 절대 아니에요.

 

다솜 : 맞아요, 정말 청소노동 자체를 쉽게 보기도 해요. 파업 기간에 학교에서 대체 인력을 투입했어요. 그리고 대학원생들에게도 자발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게 시켰어요.

 

성우 : 청소가 전혀 안 될 텐데요?(웃음)

 

다솜 : 네, 그러니까 청소노동을 어떤 기술 없이도 쉽게 대체될 수 있을 노동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일상에서 보이는 노동이 아니니까 ‘더러운 것만 치우면 된다.’라는 여기고 청소노동을 쉽게 봐요.

 

성우 : 파업을 하면 확실히 청소노동의 가치를 알게 돼요. 청소노동이란 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노동이다 보니 한 번만 청소 안 해도 난리가 나요. 하지만 일상에서는 깨끗하게 청소된 모습만 보니 청소노동이 보이지 않는 거죠. 전문적인 노동의 영역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요.

 

G : 그런데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청소노동자분들이나 식당의 차림사 분들에게 주로 쓰이잖아요? 한편으론 가사노동과 닮은 직업군이기 때문에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사용되는 것 같은데요. 가정 안에서는 어머니의 ‘어떤’ 역할이 있잖아요.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여성노동자의 노동을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의 연장선으로만 여기는데 영향을 끼칠까요?

 

성우 :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와 청소노동을 연결 짓게 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청소노동자’ 엄마는 신파를 자극하는 소재로 흔히 쓰이잖아요. ‘청소하는 어머니’가 가난한 생계를 상징하는 거죠. ‘청소노동자’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그려지는 인상과는 좀 다르게, 낮은 사회 계층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조합원들이 청소 노동을 하시는 이유는 다양해요. 생계에 쫓겨서가 아니라 그냥 노동을 하고 싶어서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청소노동자와 헌신과 희생인 상징인 어머니는 곧잘 등치 돼요. 그리고 ‘청소노동자’ 하면 우리가 어머니에 대해 그려내는 고정관념 때문에 연민의 감정이 따르는 것 같아요.

 

나루 : 그러고 보니 교수나 의사 등의 전문직 여성들은 ‘어머니’라고 불리지 않잖아요. ‘어머니’라는 호칭은 단순히 여성노동자라서 듣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 직군에만 집중되는 것 같아요. 또 같은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남성 노동자의 경우엔 ‘노동자’로 아울러서 부르잖아요? 앞에 수식을 단다고 해도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희강 : 주로 집회의 발언 자리에서 노조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쓰이는 것 같아요. 학교 학생식당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싶어서 들어간 적이 있는데요, 노동자분들이 서로를 ‘여사님’이라고 부르셨어요. 관리자들도 노동자분들을 지칭하실 때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이와 비슷하게, 청소노동자 대신에 다른 용어로 대체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미국에서의 나온 얘기를 가져온 것 같은데. ‘청소’ 말고 ‘깨끗함’, ‘아름다움’ 등을 부각할 수 있는 말로 청소노동을 다시 표현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전 이런 용어가 노동자의 계급성을 낮춘다고 생각해요.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의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추는 것 같아요.

 

성우 : 저도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상황을 접한 적이 있어요. 용역업체 사장님이 청소노동자분들을 ‘여사님’이라 불렀어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를 차리려 그렇게 불렀다고 해도, 그 호칭은 웃기다고 생각해요. 배달하는 알바 노동자를 ‘라이더’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일부러 포장하면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야한 제스처죠. 청소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을 ‘어머님’ 혹은 ‘여사님’ 등으로 바꾼다고 해서 가려진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어머니’라는 말이 문젯거리가 되는 이유는, 어머니가 정을 호소하는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잖아요? 가정에서의 노동이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오더라도 이런 인식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청소노동자 투쟁이 권리 투쟁처럼 점차 확장되고 있으니까 호칭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주체화와 연관된 호명은 중요한 문제니까요.

 

 

나가며

 

 

  각각 다른 투쟁 현장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고민의 골자는 비슷했다. ‘어머니’라는 호칭에 문제가 있지만 연대하는 과정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운동권 문화가 낯선 분들에게 학생들끼리 합의된 호칭을 강요할 수는 없다. 또 몇십 년 동안 가사노동이 익숙하셨던 분들에게 그 삶이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도 어려운 노릇이다. 학생활동가들은 “연대하는 것이지 계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마냥 청소노동자분들을 돕는 것, 시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연대가 아니다. 연대는 동일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걸음이며, 자본에 대처하는 방법을 투쟁 현장에서 함께 익혀나가는 것일 테다. 그래서 ‘어머니’를 대체할 “동지라는 언어에 대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 “동지라는 언어가 불편하지 않을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할지도 모른다.
 청소노동자 투쟁이 공론화되기 이전에, 청소노동자들은 ‘유령’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 대우를 넘어서나 싶더니 이후엔 ‘어머니’라 불렸다. “어머니라는 호칭을 조심하자”는 비판이 입에 오르내렸음에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들은 반복된다. 한 청소노동자분께서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신 이후로 “소리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지만, 사실 그건 노동자이자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니 느리고 더디더라도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그분들이 ‘어머니’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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