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NGA 개념사전] 지구지역적 액티비즘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0년대 후반 이후, 우리에게 ‘지구화 시대’라는 말은 달리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빠른 속도로 발달한 통신 기술은 지구적 시공간을 압축시키고,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체제 변화와 자유무역,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세계적 확산은 자본-산업-생산-노동-자원의 고리를 지구적 차원으로 분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아프리카의 자연 자원과 주민들의 노동을 착취해 얻어낸 재료들을 가지고, 전 세계적인 하청 시스템 하에서 최악의 임금 수준과 노동환경을 견디며 아시아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스마트폰을 사용함으로써 초국적 기업과 자본의 이윤 창출에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다. 멕시코 마낄라도라에 있는 한국 기업의 공장들에서는 중남미 전역에서 목숨을 걸고 이주해 온 여성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종일 일을 한다. 자본 뿐 아니라 사람과 자원, 종자의 이동 역시 지구적 차원의 위계화에 따라 이루어진다. 공적 영역으로 진출한 1세계 여성들의 가사노동, 돌봄노동은 이제 3세계의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책임지고 있다. 이제 한 지역, 한 국가 차원이 아닌 지구적 차원의 성별분업과 위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영화 <구글베이비>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인공수정을 위한 난자가 거래되고, 이 시장에서 1세계 여성들은 인위적으로 난자를 생산하는 노동을, 3세계의 여성들은 대리모로서 출산노동을 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한편,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전 세계의 식물과 종자들을 모아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특허를 낸 후 경작 후에 동일 종자의 재생산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특정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거나 토착민들을 노예로 삼지 않아도 그곳의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전유가 가능한 것이다. 

한 때 ‘지구화’, ‘세계화’라는 말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유토피아처럼 선전되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는 지구화의 영향이 결코 균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평등과 착취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위계화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구화의 영향이 반드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개발국가에 저개발국가로, 1세계에서 3세계로 향하는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영향을 받더라도 지역과 지역 간의 관계에 따라, 지역의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맥락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지역적 맥락이나 상호영향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구화 시대의 ‘지역’은 기존의 고립된, 개별적 공간으로서의 지역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며 ‘지구화’와 ‘지역’의 상호관계와 맥락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생각하는 ‘지구지역성’,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은 바로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화 시대의 지역, 지구지역의 의미와 맥락

 

‘지역’ 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지리적으로 ‘지역’은 ‘특정한 자연 환경적 공통성과 역사-정치-사회-경제-문화적 특성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특징지어지는 공간’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지만 이러한 정의 역시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실상 지역은 인위적 구획이나 정치/경제적 관계, 국제 관계상의 상황 등에 따라 계속해서 영향을 받으며 그 정의 역시 변화한다. ‘모든 공간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포셰의 말처럼, 지역은 단일하게 규정될 수 있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황과 관계에 따라 파악되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안숙영, 2012)

특히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지역은 그러한 역동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국가’를 기반으로 한 헤게모니와 정치, 경제적 관계가 중심이 되었던 과거와 달리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는 자본과 사람, 상품과 서비스, 자원의 이동이 국가의 경계와 중심성을 흩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점령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원과 사람, 자본의 이동과 이윤의 확대를 꾀했다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는 각종 ‘협정’을 통해 자본과 사람, 자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이로써 전 지구적 차원의 분업과 이윤창출 시스템을 구축해 간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과정에서는 지구화를 위한 보편적 전략과 개별 지역에서 이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는 지역화 전략이 동시에 중요해진다.

 

’글로컬라이제이션 glocalization’은 일본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이러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과정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사용했던 ‘global localization’에서 유래한 말로, ‘지구적 관점을 지역적 조건에 적응 시킨다’는 경영 전략을 담고 있는 용어이다. 즉 지구적 차원에서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개별 지역에서는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소니가 세계적으로 동일한 제품을 출시하면서도 개별 국가나 특정 지역에서는 디자인이나 기능을 달리하는 것이라든가, 맥도날드가 지역별 특징을 담은 햄버거 메뉴를 개발하고 지역 문화에 따라 매장 운영의 방식을 조금씩 달리하는 것이 이러한 차원의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지역을 지구적 전략에 맞추어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사실상 ‘지구화’의 조금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최갑수, 2009 ; 이승렬, 2009)

그러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지구지역성’의 개념과 운동 지향으로써의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은 이렇게 ‘지역에 지구적 관점/전략을 적응시키는’ 차원의 ‘글로컬라이제이션’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각 지역의 주체들이 지구화의 영향 속에서 개별적인 공간에 고립되거나 특정한 지구적 의제/지역적 의제에만 한정되어 연대/연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구화와 지역, 지역과 지역의 대안적 힘을 만들어 내면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통해 지구화의 일방향성에 맞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당연히 ‘지역’의 의미와 위상도 다르게 본다. ‘지역’은 단지 이와 같은 지구화의 영향 아래에서 일방적인 적응의 과정을 겪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지역’은 경계나 구획에 따라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이 이동에 따른 정치경제적, 문화적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또한 이러한 지구화의 과정에서 개별 지역들에 특정한 정치/경제적, 문화적 역할을 부여하거나 관련 영향이 집중되면서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 간 위계와 계층화가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개별 국가나 지역 내에서의 이주 현상도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지역 자체가 가진 특수성이 지구화의 영향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동일한 전 지구적 흐름에 있어서도 개별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자연적 조건이나 종교, 원주민 문화, 정치사회적 상황, 경제적 조건, 성적 위계 등에 따라 다양한 작용과 반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지구화의 영향을 지역이 개별적으로 흡수하거나 재해석하여 새로운 특수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또는 튕겨내면서 대립의 전선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볼 때, ‘지역’은 ‘지구적인 것의 지역화’만으로는 적응되지 않는 역동적인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또한, ‘지역’은 특정한 구역의 공간적 개념만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이 될 수도 있다. 국경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시장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구화, 지구지역화 전략은 전 지구적으로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를 만들어 내면서 ‘고용 없는 성장’을 통해 개인들을 파편화하고 있으며, 국경을 넘어선 이주/노동의 확대와 통신기술의 발달은 특정 공동체나 지역, 국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개인들을 이제 문화적 혼종성을 지닌 하나의 ‘지역’으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개인들 역시 지구화의 일방향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굉장히 역동적인 주체라는 점이다. 이들을 파편화시키는 조건인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화와 극단적 양극화는 전 지구적 차원의 시스템을 통해서 진행되는 착취의 동일한 조건들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이 개인들이 국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구적 이동과 실시간 온라인 통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인들의 직/간접적 경험은 개별 주체들을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지구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구화 시대라고 해도 당연히 이러한 ‘지역’의 역동적 변화가 동일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 자원, 통신/이동의 조건, 정치/경제적 조건, 국제 관계상의 조건 등에 따라 지구적 경험이나 지역적 역동성의 발현이 제한되기도 하고, 통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과 개별 주체들에게 미치는 국가의 영향이나 국가 또는 대륙 간 헤게모니의 영향력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불균형성과 복합적인 교차지점들이 바로, ‘지구지역적’ 차원의 분석과 액티비즘이 요구되는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지역성과 가부장체제-적녹보라 패러다임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고려하는 데 있어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동된 문제설정은 현재의 세계를 ‘가부장체제’로 파악하고,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통해 분석해내는 것이다. 여기서 ‘적녹보라 패러다임’과 ‘지구지역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분석하는 틀이자, 행동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지구화의 과정과 특징, 신자유주의 지구화에서 지역이 가지는 관계와 의미, 역동성은 ‘가부장체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석했을 때 보다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지점들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시대 설정 외에 ’가부장체제’로서 현재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본의 생산관계에 따른 계급투쟁의 장이기 이전에 성적투쟁의 장이라는 설정을 전제로 한다. 자연의 생산물을 전유하고, 노동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출산/돌봄 노동을 위계화하며,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통해 성적 위계를 강화하는 것,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여 성별 분업과 젠더 차별을 정당화하는 지속적인 과정들이, 사실상 자본주의 계급 관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이 체제를 지속시키는 착취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정갑희는 이를 ‘성체계’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성체계’는 성적 생산관계, 성적 거래관계, 성노동, 성장치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보면 상품의 생산이나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임금 관계의 노동 역시 근본적으로 ‘성적 생산관계’의 구조 안에 놓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재생산’으로만 규정해왔던 출산이나 양육, 돌봄 노동 등도단지 임금 노동 관계에서의 노동력 생산을 뒷받침하는 재생산 노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산’ 노동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 성적 생산관계에 따라 성노동 역시 이렇게 성별화, 성애화 된 관계 안에서 성별노동과 성애노동으로 분류해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가사노동이나 출산노동 등 뿐만 아니라 성별-성애화 된 임금노동과 성적 서비스 노동까지 포함된다. 고정갑희는 이러한 성체계가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군사주의-제국주의와 함께 연동되어 작동하는 것이 ‘가부장체제’라고 본다. (고정갑희, 2009 : 2010)

한편, 발 플럼우드나 마리아 미즈와 같은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문명과 야만을 이분법적 위계화의 틀로 나누면서 끊임없이 타자화를 기반으로 한 억압과 착취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온 역사적 과정으로써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성격을 드러내는 논의를 진척시켜 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가치-위계 하에서 남성-지식-합리성-문명-개발-생산과 같은 것들은 공적인 것들로 가치화되는 반면, 여성-감정-자연-미개발-재생산과 같은 것들은 사적영역, 미개의 영역으로 비가치화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가치화 된 영역들을 계속해서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며 착취, 전유함으로써 ‘생산’과 ‘발전’의 가치를 절대화해 온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이러한 관점의 분석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화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착취의 패러다임은 자연의 생산물에 대한 전유와 성적 위계화, 이분법적 가치-위계화에 따른 타자화를 근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 개발과 자유무역을 통해 서구식 근대화와 발전 모델을 따라가도록 강요함으로써 필연적으로 현지 자연 자원의 막대한 착취와 사유화/민영화를 통한 전유, 여성을 비롯한 주변부 노동력의 착취, 농업과 지역 공동체의 파괴를 동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시대는 가시적/비가시적인 모든 자연 자원과 종자 및 생물 종, 생명체 안의 유전 정보와 세포 핵까지도 특허와 상품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기존에 공적-사적 노동으로 분류되었던 영역의 대부분의 서비스와 노동을 시장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지구적 분업 시스템 속에서 재위계화 함으로써 고정갑희가 분석한 성적 생산관계와 거래관계, 성노동, 성장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상품생산과 이윤추구를 통한 발전의 패러다임 뿐만 아니라, 계급적-성적-생태적 착취와, 생산과 노동에 대한 가치 위계화를 근간으로 하면서 이를 더욱 극대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가부장체제’와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위한 중요한 분석 요소, 운동의 요소로 고려하는 이유이다.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것들

 

그런데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지역적 주체들을 그저 가부장체제에서 타자화 되고, 착취당하는 대상으로서만 보는 관점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들 스스로 지닌 대안과 운동을 발견하고 연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가치-위계화의 선상에서 보면, 그간 근대적 관점에서 ‘지역’은 ‘세계’, ‘국제’, ‘국가’의 반대쪽에 놓인 개념으로써 지배의 대상, 타자화의 대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글로벌’과 ‘로컬’이 젠더화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즉, 글로벌은 공적이고 보편적인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남성화되고, 로컬은 사적이고 개별적인, 특정한 장소들로 간주되면서 여성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칫 로컬은 보편적인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지구화의 과정에서 그저 타자화되고 착취당하는 대상으로만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안숙영은 이렇게 젠더에 따라 이분화 된 지구화의 예로 ‘다보스 맨’과 ‘마낄라도라 우먼’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관점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글로벌리티의 담지자로서 상징되는 ‘다보스 맨’은 해마다 ‘세계경제포럼’을 위해 스위스의 다보스에 모여 지구화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이들이다. 반면, ‘마낄라도라 우먼’은 자유무역지대에 몰린 글로벌 자본의 하청 공장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을 하는 로컬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을 의미한다. 흔히 ‘다보스 맨’을 국경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글로벌의 상징으로, ‘마낄라도라 우먼’을 지역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로컬의 상징으로 재현하고는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상징화는 ‘마낄라도라 우먼’의 노동이 없이는 실질적인 지구화가 불가능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가리게 된다.(안숙영, 2012) 즉, 지구화를 분석하면서 글로벌과 로컬을 단지 적대의 관계로만 분리하고 지배-착취의 관계로만 둘 경우 글로벌의 헤게모니가 딛고 있는 실질적인 배경, 로컬과 로컬의 주체들이 지니고 있는 역할과 가치를 다시 한 번 비가시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젠더적 관점에서 지구화를 분석할 때 빠지기 쉬운 이분법적 오류를 다시 보고, 삶의 기본적 공간이자 역동적인 힘이 창출되는 공간으로서의 로컬을 재의미화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은 단순히 지구화 과정의 타자로서가 아니라, 지구화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지역의 역할을 제대로 분석하고, 지역이 가진 대안적인 힘을 찾아내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새로운 지구화’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을 위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견지해야 할 관점은 서구와 비서구, 글로벌 헤게모니와 지역 전통의 가치를 절대적인 이분법의 틀에서 보는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식민화 과정과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서구적 가치관이 비서구 지역에 미친 영향만큼, 비서구의 것들 역시 서구의 중심부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지역 역시 가부장체제의 자기 속성을 가지고 지구화의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움직여 왔다. 때문에 이제는 오랜 식민화의 과정 속에서 자리 잡아 온 가치관이나 문화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지역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 문화나 가치관과 혼종되어 있기도 하며, 이러한 지역의 가부장체제가 지구적 차원의 가부장체제의 움직임과 만났을 때에는, 더욱 억압적인 힘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가속되면서 지역에서 실업과 양극화가 심화되자, ‘비전통적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성적 소수자들과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 탄압하면서 혐오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러시아나 아프리카, 중동 지역 등의 사례는 지구적 가부장체제로 인한 착취가 지역의 가부장체제와 만났을 때 어떻게 더욱 심각한 모습으로 극단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의 방향을 제대로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구화와 지역, 지역과 지역의 상호작용 뿐만 아니라, 지역이 지구화에서 요구되는 것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이를 흡수 또는 재-체제화하는지를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의 실현을 위해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이러한 지구지역적 관점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의 흐름을 만들어 낼 지구지역적 행동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모든 분석적 관점들을 제대로 견지하면서 현재의 세계를 파악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 운동은 지구지역적 행동의 네트워크에 함께 할 주체들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며, 이 주체들이 자신이 기반한 지역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에 함께하는 다른 지역들에 대해서도 지구지역적 분석과 이해를 가지고 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에 더욱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지구지역적 네트워크를 통한 액티비즘의 방식은 하나의 사안에 동일하게 연대하는 방식이나,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움직이는 방식과도 다르다. 각각의 주체들은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의 공동 주체이며, 동일한 사안이나 의제라 할지라도 각 지역의 주체들은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지구지역적 상황에 따라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액티비즘의 방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또한 각자의 지구지역적 맥락 속에서 그간 근대적 이분법의 틀 속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대안들을 찾아내고, 또 이를 연결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가부장체제에서의 지구화가 가진 착취의 흐름을 바꾸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2014년 2월 멕시코에서 진행되었던 4차 설립위원회 회의를 통해, 현재 네트워크하고 있는 한국,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올 한 해 동안 ‘이주와 여성/노동’을 주제로 하여 이에 대한 지구지역적 분석을 진행하고, 공동의 전략을 모색해보는 시도를 시작하기로 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만 본다면 이 네 지역들은 지구화의 과정 안에 특정한 위치와 역할이 있고 그에 따라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만 파악되기 쉽다. 그러나 북미와의 자유무역협정 이후 멕시코에서 벌어진 지역적 위계화와 양극화 속에서 노동의 이주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복합적 위치에 있었으며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또한 멕시코의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들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착취를 겪었으며, 멕시코 원주민 공동체의 여성들과 성적 소수자들은 ‘지구적 가부장체제-북미-라틴아메리카-멕시코-원주민 공동체’가 복잡하게 연계된 구조 속에서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근대적/식민적 패러다임을 넘어 지역의 문화 속에서 어떠한 자립적 대안들을 찾아나가고 있는지 등을 분석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구화의 일면으로 분석했던 내용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맥락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경우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는 한국 자본의 생산시설들과 한국의 글로벌 자본들이 현지에서 행하고 있는 착취, 한국에 들어온 해외 초국적 자본들의 영향이 한국의 노동자들과 해외로 이주하는 한국 노동자들, 한국으로 오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규직 임금노동-비정규직/불안정 임금노동-임금 노동 영역의 가사/돌봄노동-혼인 관계에서의 쾌락/출산/돌봄 노동-성적 서비스 영역에서의 쾌락/돌봄 노동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위계화되고 여성 이주 노동의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해 본다면 한국에서의 이주-여성/노동이 가진 지구지역적 성격이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지구지역적 관점으로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여성/노동’의 맥락을 분석해 들어가면 멕시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기 매우 다른 상황과 새롭게 모색해 볼 수 있는 대안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지구지역적 분석과 전략들이 모이고, 여기서 공동으로 행동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을 찾아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의 흐름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이는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응’하고 맞서는 방식으로서의 국제연대와는 다른, 새로운 대안의 흐름들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지구지역적 액티비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복잡한 분석과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안 모색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흐름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지금까지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을 묶어 왔던 근대적 이분법을 깨고, 신자유주의 가부장체제의 지구화에 대한 ‘대응’이 아닌 지구지역적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힘들지만 힘껏 뛰어들어 볼만 하다. 물론, 함께 뛰어들 이들이 많아진다면 더욱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에 참고한 자료들]

고정갑희, ‘페미니즘과 글로컬리티 : 성체계, 지구지역성, 지구지역 액티비즘’, 연세대학교 문화학협동과정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2010. 11
고정갑희, ‘지역, 액티비즘, 페미니즘-페미니즘에 기반한 지구지역 액티비즘’, <여성학연구>제19권 제1호, 2009.12
안숙영, ‘글로벌, 로컬 그리고 젠더-지구화 시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하여’, <여성학연구>, 제22권 제2호, 2012.6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좌담회 ‘로컬리티, 글로컬리즘을 재사유화다’, <로컬리티 인문학>제3호, 2010.4
이승렬, ‘글로컬리제이션, 세계화의 지역적 구현인가 세계화의 대안인가-글로컬리제이션, 민주주의, 대학’, <인문연구> 57호, 2009.12
최갑수, ‘글로컬라이제이션의 역사학’, <인문연구> 57호, 2009.12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