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가, 죽었어.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내 발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말 그대로, 정말로.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의 이 세 단어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도 불합리했다.

"어떻게?"

"뭐라고?"

아냐, 다시 말할 필요도 없어. 그 빌어먹을 세 단어가 뭘 뜻하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대성 통곡을 할 수도 있었다. 내 머리카락과 이빨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었다. 내 목청이, 식도가 터질 때까지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다. 관절이 드러나도록 손가락을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내 몸을 난도질하고 몸부림칠 수도 있었다. 분노로 미친 듯이 울부짖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너무나 무력했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을 느끼든 간에 이 끔찍한 일을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죽을 수도 있었다. 다시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에 다다른 터였다.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

목소리를 듣지도

볼에 키스를 하지도

머리카락을 만지지도

손을 잡지도

포옹을 하지도

함께 깔깔대고 웃지도

둘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도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지도

특별히 밑줄 친 부분을 함께 큰 소리로 읽지도

이제 다시는 의연한 걸음걸이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으리라.

 

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해주지도 못했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고백하지도 못했다.

 

(중략)

 

나는 흐느꼈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 내 안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고, 내 몸이 꼼짝없이 벽에 붙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긑가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로 나는 그 웅덩이 안에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울라 페레스 알론소 소설 [개를 살까 결혼을 할까] 中에서.

 

주인공 후아나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

연인같고 친구같았던 오빠가 죽은 직후에 이어지는 대목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토록 살아있는 표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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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8:27 2012/04/10 18:27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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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2012/02/16 10:41

지난해 희망버스에 이어, 올해는 희망텐트촌 투쟁이 이어졌다.

쌍차 정리해고분쇄투쟁 1천일을 하루 앞둔 2월14일 밤,

동지들은 곳곳에서 '희망'에 대해 고뇌하고 토론하고 기대하고 또 고통받고 있었나 보다.

그때 펼쳐든 루쉰의 소설집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 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수도 없고, 없다고 할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루쉰 소설집 「아Q정전」에 실린 <고향>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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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6 10:41 2012/02/16 10:41
Posted by 흐린날

해가 '또' 바뀌었다. 참 자주도 바뀐다...

양력으로 치자면 해가 바뀌고 한달 하고도 여드레가 지났고,

음력으로 치더라도 벌써 대보름이 지났으니, 대개의 사람들은 얼추 지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지는 일들을 마쳤겠지.

나이 들수록 해 바뀌는 데 심상해져 그냥 하루하루가 바뀔 뿐이라 여기고 세월을 넘겨왔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해를 보내고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은 날들은 줄면 줄었지 느는 것은 아닐 것인즉,,, 섭섭한 노릇이다.

 

1. 브레히트가 이런 말을 했단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우리가 걸어온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격동의 해'라고도 하더라. 2012년, 많은 일을 도모하고 실패하고 희망을 찾는 일이 반복될 터다.

이미 지난 1월, 3자통합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서명운동을 벌였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이 상정됐지만, 정작 제대로 된 토론조차 못해보고 회의는 유회됐다.

내가 몸담고 있거나, 발 담그고 있는 조직 역시 이런 정세에 직접적으로 얽혀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올해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열심히, 혹은 조금 더 센, 혹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활동의 질적 변화를 도모하고 싶고, 그러할 때인데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아...

 

2. 남 탓하지 말고 잘 놀아야겠다.

 

2011년에 그나마 잘한 일 몇가지를 꼽으라면,

얽힌 일정 속에서도 몇 번의 시간을 뽑아내 야구장에 간 것이다. 조용필 콘서트도 봤다. 더 젊었(어렸)을 때 갔더라면 좋았을 걸 잠시 생각했지만, 주변 관객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아! 주제파악하고 차를 처분한 것도 잘한 일로 꼽으라면 꼽겠지만 이건 좀... 지금 많이 아쉽다.

 

2011년에 잘못한 일도 많다.

88라이트가 단종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미리 사두지 않아서 꼼짝없이 당했던 것.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던힐, 마일드세븐, 디스 따위를 떠돌고 있다.

야구장에 더욱 자주가지 못한 것은 후회스러운 일에 속한다. 야구장에서 더욱 열광하지 못한 것, 자주 가지도 못하면서 간만에 갈때 지각한 것, 사직구장이랑 대구구장 못간 것, 집에 케이블을 설치하지 않아서 중계를 못본 것,,, 기타 등등

매년 그렇지만 내년에는 다른 일을 하리라 마음먹고도 결국 대비하지 않아서 같은 일을 계속 하고 있을거라는 상실감에 빠져서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것 역시 고질적 병폐다.

 

이젠 나만이라도 아직 나에게 가치가 남아있다 여기며 투자해 보려 한다. 무엇을? 생각해봐야지.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으려 한다. 무엇을? 물론, 노는 것! 야구장, 여행, 산,,, 기타 등등

 

3. 사람, 사람을 어째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괴팍한 성깔 때문에 인간관계는 꾸준하게 좁고 얕아져왔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뭔가를 공유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잘못인지 잘한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건 아직 각오를 다질 수가 없다.

'왕왕왕왕~ ' 소리와 함께 내 그림자가 점점 줄어들어 점이 돼버리기 전에, 가닥을 잡아야지.

다만, 내 주위에 몇 남지 않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하리라는 것 정도는 진심이다.

 

하핫, 좀 우스운 각오의 글 꼬라지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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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8 10:02 2012/02/08 10:02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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