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기

2005/06/05 00:25

### 2002년 6월29일~7월1일

 

월드컵 4강 진출의 혜택을 나까지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 훌륭한 정부는 노동절을 5월1일로 바꾸는 것보다 흔쾌하게, 그리고 시원스럽게 7월1일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그것도 ‘결승 진출할 경우’라는 치사스러운 단서조항까지 과감히 삭제해 버림으로써 나에게 한국팀 준결승전 응원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 동시에 연휴라는 엄청난 보너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내 주위에 있는 선수들이 대개는 바쁘거나, 게으르거나, 낚시를 더 좋아한 관계로 산행팀 규합은 공휴일에 집회 조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단독산행이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잠퍼자기냐 기로에서 고민하다 결국 달랑 두명이서 덕유산 종주를 감행키로 했다.

6월29일 밤 11시30분, 영등포역에서 전주행 열차를 탔다. 선배 부친상에 얼굴 내밀러 갔다가 소주를 한병 반이나 들이킨 덕에 열차 안에서 나는 쿨쿨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나의 코를 비틀 것인가, 깨울 것인가 고민 끝에 그냥 참았다고 전한다. 술마신 날 저녁 내가 코를 골더라는 증언은 이전에도 여럿이 한 바 있다. 어쨌든 정신없이 자던 나는, 정신 차리고 있던(엄밀히 말하면 소음 때문에 잠들지 못한) 동료 덕에 무사히 전주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새벽 3시5분. 주위는 캄캄하고, 도착한 열차가 쏟아낸 인간들을 실어나르러 온 택시만 정류장으로 속속 들어왔다. 어쨌든 터미널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우리는 택시에 올라탔다. 장계로 가는 첫차가 아침 6시10분에 있다는데 3시간이나 남은 셈. 기다렸다가 첫 차를 타자니 남은 시간도 애매하고, 그만큼 산행을 늦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았다. 택시 운전수에에 따르면 장계까지 택시요금은 3만5천원. 우리는 내친 김에 장계까지 갔다. 장계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고, 운전수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육십령은 어디 붙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읍내 한가운데 내려주길래 “하다못해 터미널까지라도 가자”고 했드니, 터미널이 따로 없단다. 헉. 다행히 그 택시를 내리자마자 또다른 택시가 지나간다. 불러세워 육십령을 불렀더니 1만5천원. (나중에 덕유산에서 만난 또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은 1만원 냈다며 우리더러 바가지 썼다고 불쌍해 했다.)

육십령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곳. 큰 도로 가에 덜렁 휴게소가 하나 있는데,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스스한 아저씨가 나타나 “대간 타세요?”라며 묻는다. (이 선수, 나중에 덕유산 오르며 계속 만나게 된다. 산행에 앞서 야영을 하다 일어난 순간이었단다) 백두대간을 타는 것은 아니고, 그냥 덕유산에 온 것이라 설명하고 산행 준비를 갖췄다. 큰길로 다시 나와 육십령 입구로 들어가려고 보니 휴게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슈퍼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물과 오이를 사서 채우고 진정한 산행을 시작했다.

 


6월30일 새벽 5시. 아직 주위는 어둡다. 30분 가량 산을 타다보니 주위가 서서히 밝아온다. 그런데 일기예보대로 날씨는 맑지 않아서 주변이 온통 안개 뿐이다. 울창한 나무들은 이슬에 흠뻑 젖어 서서히 신발과 옷이 젖어든다. 지도에 따르면 할미봉이 나타날 때가 됐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안개와 구름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가파르게 오른 봉우리에 앉아 이게 할미봉이려니 하고 앉았는데, 주변이 하얗다. 구름, 안개,,, 그런데 어느 한순간, 바람이 휘익~ 불더니 주변의 안개가 금새 걷혔다. 정말 장관이다. 어느순간 드러난 산자락과 그 아래 풍경. 그러나 잠시. 다시 안개는 그들을 숨긴다.

 


한참을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계속했다. 두명의 남자가 우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7시. 우리는 간만에 나타난 널따란 곳에 깔판을 깔았다. 두명의 남자는 결국 우릴 앞서갔고, 우리는 라면 끓여먹고, 담배 태우고 여유를 부리다 8시에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8시45분쯤 덕유교육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다시 15분쯤 가니 헬기장이 나타났다. 하염없이 구름 위를 걷는다. 육십령 휴게소에서 봤던 아저씨도 만났다. 일행은 세명인데 삿갓봉을 지나 향적봉 직전에서 빼재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10시20분에 드디어 첫 이정표를 만났다. 남덕유 2Km, 육십령 6.8Km. 육십령에서 벌써 7키로미터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따져보니, 무지하게 게으름을 피운 것 같다. 우리는 남덕유가 아닌 남덕유 서봉, 즉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서 삿갓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갈 계획이다. 남덕유 정상보다 장수덕유 정상이 암반이 넓어서 쉬기가 더 좋다고 한다. 이정표를 본 다음 5분가량 더 지나니 전망좋은 봉우리가 나타나서 또 담배 한까치... 사실 너무 잦은 휴식이다. 하핫,,,

11시. 드디어 장수덕유산 정상에 올랐다. 헬기장을 지난 이후 갑자기 몸이 퍼지는 듯 하며 산행이 힘들어졌던 터라 우리는 ‘진정한 휴식’을 결정하고 정상에서 바위 하나씩을 장악하고 잠을 청했다. 찬 바람이 쌩쌩 불다가 어느순간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듯도 했다. 눈을 뜨니 12시다. 빠른 사람들은 육십령에서 장수덕유산까지 4시간이면 된다는데, 우리는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벌써 7시간이 지났다. 쩝...

이젠 좀 열심히 가보자고 결의를 다시고 또 구름위를 둥실둥실 걸어 오후2시에 월성치에 도착했다. 이게 웬걸, 육십령 휴게소에서 만난 바 있는 세명의 아저씨들. 빼재로 내려간다는 계획을 들은 바 있는데, 이 곳에 술판을 벌렸다. 여기서 바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한다. 강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고급 술안주 육포에 소주를 서너잔씩 얻어마셨다. 겨우 열심히 걷기로 결의를 다진 지 불과 2시간만에 우리는 ‘술’의 유혹에 어영부영 30분이나 눌러앉았다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술기운에 허걱거리며 2시30분부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삿갓봉을 지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산로는 삿갓봉 옆으로 비켜서 있다. 힘들기도 할 뿐더러, 천지사방이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서 봉우리에 오른다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삿갓봉에서 7백미터 가량을 지나 4시30분에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향적봉은 내일로 미루고 짐을 풀었다. 삿갓재대피소는 공사중이지만,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사람은 제법 잘 수 있을 것 같다. 요금은 5천원, 담요 1천원이다.

한층을 내려가서 마련된 취사장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오늘 산행 시작해서 아침 7시에 라면 끓여먹은 것밖에 없는 터라 배를 주먹으로 치면 등에 멍이 들 정도로 배가 고팠다. 간간히 먹은 참외나 오이, 사탕 덕에 그나마 버텨온 것이다.

밥을 짓고 있는데 옆 사람들이 이래저래 아는 척을 한다. 어떤 아줌마는 우리가 갖고 있는 ‘영진산악’ 주머니를 보더니, 영등포에서 왔냐고 묻는다. 자기가 영진산악 아저씨와 동갑이며 친하고, 일본인들 암벽선생이라고 소개한다. 또 다른 부부는 아현동 살고 아저씨는 당인리발전소에 다닌다며 멸치볶음이며, 상추 따위를 건넨다. 어떤 아저씨는 아이들 둘과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 계속 다른 팀들의 대화에 끼어서 덕유산이 어떻고 차편은 어떻고 약간은 잘난 척이다.(그런데, 이 선수 나중에 밥 먹고 나서 보니, 퐁퐁이며 치약이며 비누를 들고 설친다. 실망~)

정말 배불리 맛있는 밥을 먹고, 황도에 소주 한잔과 담배 한까치. 내일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로 굳게 결의하며 저녁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나 결의는 결의대로 끝나고 7월1일 아침 6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밥먹고, 짐싸고, 빠트릴 수 없는 화장실 업무까지 마친 뒤 6시50분에 삿갓재대피소를 출발했다.

조금 가다보니 퐁퐁 따위를 들고 돌아다니며 치약으로 양치질을 일삼았던 바로 그 일가족이 앞에 나타났다. 조금은 힘들지만 우리는 그 팀을 따돌렸다. 히히. 삿갓재에서 2Km가량 가면 있는 무룡산 정상에 오른 것은 7시50분. 오늘은 어제보다 이슬이 더욱 많아서 바지는 거의 다 젖고, 웃옷까지 젖어든다. 다시 50분쯤 가니 돌탑이 나타났다. 향적봉까지 6.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다. 음... 오늘 산행은 나름대로 순조롭군... 흐뭇해하며 내친김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9시30분에 드디어 동엽령. 2시간 40분동안 4.2Km 가량 걸은 셈이다. 역시나 주위는 안개와 구름. 안개비가 계속 안경과 뺨에 달라붙는다. 웃은 물론 몽땅 젖었고, 신발 속까지 물이 차서 철벅거린다.

15분쯤 더 가다가 10시까지 참외를 깎아먹으며 쉬었다. 10시5분에 칠연삼거리(동엽령에서 0.9Km)에 도착했고, 10시50분에 송계삼거리(칠연삼거리에서 1.3Km)에 도착했다. 계속 오르막길이니, 그리 늦지는 않는 셈이다. 계속 내달려 중봉(송계삼거리에서 1Km)에 오르니 11시30분이다.

중봉은 꽤 넓은 듯 한데,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중봉을 조금 지나니 덕유평전이 나오고 향적봉대피소에서 100m가량 오르니 중봉에서 1Km거리에 있는 향적봉이다. 시간은 낮 12시 정각.

산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향적봉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대개는 백련사쪽으로 올라오기도 했지만, 배낭도 없이 샌들을 신은 채 선그라스를 낀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무척 많다. 구천동에서 곤돌라가 다닌다고 하더니만, 조금 황당하다. 향적봉 정상에 ‘향적봉’이라 새긴 바위가 있는데,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치들은 대부분 샌들을 신고 (산이 아니라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자들이다. 떠들기는 또 어찌나 떠들던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자들은 일순간 어디로 가는지 금새 또 어디론가 몰려가 사라졌다. 그 중에 한명은 “야, 필름 몇 방 남았냐? 중봉도 바위 많아서 괜찮다든데, 거기가서도 찍자”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마치 진정한 산악인인양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을 일별한 뒤 라면을 끓여먹었다.

오후 1시에 향적봉을 출발해 백련사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곳 길은 장난이 아니다. 양말과 신발이 온통 젖어서 내리막길이 더욱 힘든데다, 온통 급경사에 계단들이다. 그렇지만 덕유산 종주가 끝나간다는 으쓱함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가야 하냐는 걸 물어올 때마다 자신있게 조언해주며, 여유롭게 산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선다.

오후2시10분쯤 백련사에 도착해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발도 씻고, 오이도 깎아먹고, 2시30분쯤 삼공리 매표소를 향한다. 이제는 구천동 계곡을 따라 포장된 길이다. 가끔 계곡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무척 지루한 길이다. 대개는 덕유산 종주를 할 때 삼공리에서 출발해서 남덕유를 거쳐 영각사로 내려간다는데, 삼공리에서 출발해 이 길로 산행을 시작하려면 무척 지겨울 것 같다.

삼공리 매표서에 도착하니 오후4시다. 드디어 덕유산 종주를 마쳤다.

오후4시30분에 버스를 타고 무주로 나가(구천동-무주 2,700원, 25분가량) 무주에서 다시 동대전행 버스를 탔고 (4,800원, 2시간30분 소요) 대전에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름위에서의 36시간,,, 산위에서 코밑에 펼쳐질 산자락들과 저 아래 아득한 깊은 산골들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조금 안타깝지만, 온통 구름위에서만 36시간동안 떠다녔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할미봉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순간이나마 안개와 구름이 걷힌 뒤 느닷없이 드러났다 숨어버린 수줍은 산자락도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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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25 2005/06/05 00:25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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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12월22~25일

 

연말여행 첫날(12월22일)

2001년 연말, 너무도 정신없이 핑핑 돌아가는 하루하루였다.

엄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날을 지새고, 이어지는 수련회, 송년회 등등...

설악산에 오르기 위해 22일 오후2시 청량리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기로 약속해둔 터였지만, 과연 내가 그 시간에 맞추어 나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21일 밤부터 시작된 신문조판은 다음날 아침 9시가 돼서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얼추 일이 끝나자마자 민망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 집으로 뛰었다.

배낭을 어떻게 챙겼지는지 모르겠고, 겨우 2시를 몇분 남긴 시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어찌어찌,,, 정신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고, 며칠 째 잠을 못 잔 탓에 서둘러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열차의 가장 큰 맹점은 시끄럽다는 것. 바로 옆자리에 앉은 아이 둘이 낀 일가는 계속해서 울고, 소리지르고, 전화통화를 하고, 징징댄다.

원주를 지나 빈자리가 곳곳에 생겨날 즈음 ‘민영화 저지’라는 투쟁조끼를 입은 승무원 아저씨, 엄밀히 말하면 철도노조 조합원과 말을 텄다.

우리가 건넨 음료수와 ‘꼭 민영화를 저지시키라’는 한모의 약간의 주책맞은 멘트 덕에 그 철도노동자는 아예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민영화저지투쟁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기차타는 별의별 인간군상에 대한 품평까지 이어지고, 어느덧 우린 정동진을 지나 밤 9시가 가까운 시각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당초 이번 여행에 끼기로 했던 철. 둘째형 결혼식과 전공련 일이 겹쳐서 결국 합류하지 못하게 된 철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오라는 엄명이다.

낙산가는 차를 탔고, 철이 다시 양양으로 오라며 지침을 변경했고, 우리는 도중에 내릴 곳을 지나쳐 결국 낙산에서 내렸고, 다시 양양가는 버스를 기다렸고, 버스를 잘못타서 길 한가운데 다시 내던져졌고, 워낙에 버스 기다리던 곳으로 다시 걸어갔고, 어찌어찌 겨우 양양가는 막차를 탔고, 드디어 양양에 무사히 도착했다.

철이는 공무원이라는 다른 친구와 함께 판을 벌려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서 처음 먹어보는 도루묵과 도치, 도치는 강원도에서 신퉁이라고 한다. 철과 그의 친구는 귀하고 맛좋고 비싼 것이라며 계속 권한다.

끈적끈적한 알들, 영화 에일리언에 나왔던 괴물들의 알같기도 하고, 이것들이 내 배속에 들어가서 에일리언으로 부화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불안감을 숨기며 겨우 한 숟가락...

요상한 알과 함께 소주는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고, 우린 다시 낙산으로 옮겼다.

철이 사촌형이 예약해두었다는 모텔은 무지하게 깨끗했다.

철과 그의 친구에게 진 신세는 꼭 갚아야 할 순번 1호로 머릿속에 저장한다.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내일아침 6시반에 일어날 것을 굳게(?) 결의하며 곯아떨어졌다.

 


연말여행 둘째날(12월23일)

아침일찍 일어나기로 했지만, 결국 우리는 7시가 넘어서야 부스스 눈을 떴다.

씻는다, 짐을 새로 챙긴다, 버스를 어디서 타냐, 아침밥은 먹어야 된다 등등 수선을 떨다가 결국 우리가 표를 내밀고 설악동 매표소를 지난 시간은 9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속초에서 설악동 들어가는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틈에 차부 옆에 있는 가게에서 가스며, 과자부스러기며, 국거리며, 커피 따위를 장만했고, 설악동에서 표를 끊은 뒤 우동과 라면, 김밥으로 아침을 떼웠다.

진짜, 산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짐을 몇 번씩 다시 꾸리는지... 한선주는 배낭이 상당히 작은데도 무겁다고 투덜거린다. 박문진은 몸집에 비해 배낭이 굉장히 큰듯하다. 그러나 정작 내용물은 옷가지여서 그닥 무겁지 않다는 것을 안건 그 이후다. 또다른 박인서의 배낭, 대단히 크진 않지만 무게는 상당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기헌의 배낭, 크기도 무게도 장난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 가운데 소용닿는 게 얼마나 있는지는 배낭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나의 배낭? 누가 뭐라든, 난 그냥, 무겁다.

아스팔트길을 지나 비선대에 이르렀고, 이제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듯 한데, 벌써부터 다리가 뻐근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착각인가.

서두르는 박인서를 향해 계속 투덜거리며, 잘난척인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내려오는 다른 산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중청가서 자야 하는데, 금방 갈 수 있죠?” 대개는 “아이구, 충분합니다”라고 안심을 주는데, 가끔 “서둘러야겠네요”라며 겁을 주는 사람도 있다.

양폭에 이르기도 전에 우리는 천불동계곡을 지나다 풍광좋은 큼지막한 바윗덩어리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이 곳이다. 우리가 라면을 끓여먹을 곳은 바로 이 곳이다.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은 차가울뿐더러 깨끗하고, 진정한 태초의 ‘물’은 이런 빛깔, 이런 맛이었으리라. 그 얼음사이 물을 떠서 라면도 끓여먹고, 커피도 한잔씩 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해 양폭, 양폭을 지나선 아이젠을 해야 한다는게 산에 오르며 만난 사람들 대부분의 충고였지만, 우리는 귀찮음 반, 자만심 반에 그냥 눈길, 혹은 얼음길을 마구 오르기만 한다.

희운각에 오르기 직전의 그 미끄럽고도 험한 계단길은 어찌나 지겨웠는가, 희운각을 지나 소청에 이르기까지의 그 얼음길은 어떻고.

다리에 쥐가 났다며 자꾸 뒤처지는 김기헌을 돕겠다며 그를 기다렸다 같이 오르는데, 이크, 결국 짐은 나다. 평지에서도 잘 비틀거리는 나는 얼음 경사길에 보기좋게 미끄러져 가슴팍과 무릎팍을 찧었고, 눈길에서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더 나자빠졌다. 소청을 지나서는 어둠마저 내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아이젠도 귀찮아서 안 낀 마당에 랜턴은 더욱 귀찮다. 허긴, 하얀 눈과 달빛이 길을 비춰주고 있지 않은가.

산에 오르며 힘들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며 걷는데, 저쪽에 중청산장 불빛이 보인다.

겨우 다 왔나부다. 산장에 다가서자 화장실 다녀오는 한선주가 우릴 맞고, 부지런한 동지들은 저녁밥을 짓는다. 게으른 나는 밥이 다 되길 기다렸다 숟가락질만 부지런히 한 뒤에 투덜투덜, 노닥노닥 하다가 겨우 지하에 있는 침상 2층에서 깔판을 깔고 몸을 누인다.

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데, 옆에 있는 박인서는 쌔근쌔근 잘도 자고, 실내는 왜그리 건조한지...

산장에서 잘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낯선 사람들 수십명과 같은 공간에서 내일 산행을 기대하며 눈을 감고, 안오는 잠을 청한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하고,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나를 둘러싼 온갖 어지러운 일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산 밑에서 생각했을 때처럼 심란하진 않다. 그런 기분은 참 흔치 않다.

 


연말여행 세째날(12월24일)

우리는 이미 일출시간을 확인해둔 터다. 7시반, 게으른 나로서는 그나마 이른 시간이 아닌게 다행이다. 새벽부터 부시럭거리는 다른 팀들 때문에 잠에서 일찍 깬 우리는 노닥거리다가 7시쯤 대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5~6백미터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나름대로 험한 길, 그나마 가까운게 다행이다.

대청 정상에는 20여명이 일출을 보겠다고 모여들었다. 드디어 저 멀리 바다 위에 산처럼 늘어선 구름 한쪽이 불그스레 해지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빨간 빛을 낸다. 난 그 순간 주머니에서 담배 한까치를 빼물었고, 보통 소설같은 데는 일출의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는데, 대청은 시끌시끌해진다. “하~” 감탄사부터 시작해서 “억수로 빨리 뜨네” “야, 사진한방 박자” 등등. 인간은 태어나서 몇 번의 일출을 보고 몇 번의 일몰을 보고 스스로 저물어갈까. 어쨌든, 담배 한까치 피우는 사이에 해는 덩그러니 하늘 위로 올라버렸고, 우리는 가지고 올라온 술 한잔씩으로 ‘일출 환영 행사’를 마감했다.

다시 중청산장으로 내려가서 밥을 해먹는다, 짐을 싼다, 커피도 한잔 해야 등등 예의 늦장을 피우다 9시가 넘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방향은 오색이다. 가파르지만, 길이가 길지 않은 덕에 단숨에, 아니, 엄밀히 2번인가 쉬고는 곧장 내려왔다.

길을 내려오자마자 시원한 아스팔트가 뚫렸고, 맞은편에 온천 간판이 보인다. 6천원, 조금 비싸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 탓에 뜨거운 물로 씻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볍다.

윤수근은 벌써 속초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내일 서울가는 차는 강릉발 11시40분 열차를 예매해두었는데, 너무 늦다는 불만들이 있어서, 우리는 윤수근에게 지침을 내렸다. “콘도를 장악하라” 그리고, “서울가는 차편을 쟁취하라”

목욕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우리의 윤수근은 두가지 지침을 모두 어김없이 수행한 뒤였다. 버스표는 4시 속초발이고, 잠잘 곳은 터미널 옆 콘도다. 게다가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윤수근이 ‘후지다’고 했던 콘도에 와보니, 창문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이 먼 곳까지 와서 산행도 못한 채 이것저것 지침을 수행한 윤수근이 딴사람같다.

짐을 풀고, 장을 보러 나간다, 밥을 한다, 국을 끓인다,,,, 분주하더니 곳곳에 널부러져 몇몇이 잠든 사이 장보러 간 선수들이 돌아왔다. 맛난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서.

이런, 그 좋은 콘도에서 다들 화투짝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수가... 다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신났다.

할 일없는 난 커피도 타줘보고, 과일도 깍아주고, 그래도 할 일이 없더. 회를 사먹자며 묻어둔 돈을 내가 관리하겠다며 챙겨넣고, 계속 술을 홀짝홀짝, 윤수근도 한잔, 나도 한잔, 또 박인서도 한잔, 나도 한잔,,,, 얼마나 마셨을까?

어렴풋이 대포항으로 회를 사러 나간듯도 하지만,,,, 가물가물.

일어나니 다음날이다. 우쒸~~

 


연말여행 넷째날(12월25일)

눈을 뜨니 침대 위에 내가 퍼질러 자고 있고, 창문밖은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것도 보인다. 엥?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 대포항에 회를 사러 갔다오면서 약간의 주접을 떨었던 것 같고, 침대에서는 3회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술에 곯아떨어져 퍼져있는 때, 다른 선수들은 함박눈을 지겹도록 맞으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나? 바닷가에 나갔었다고도 하고. 우쒸~ 배가 조금 아프다. 억울해도 어쩌나. 다 내가 술을 퍼부은 탓인데,,,

어쨌든 우리는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대오를 집결해 콘도를 나선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이후 일정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데,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시내관광을 하자, 간성엘 가자, 강릉엘 가자, 당구를 치자 등등등. 우린 결국 버스를 타고 속초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기대와 달리 버스가 달리는 길은 바다 옆이 아니다. 얼마쯤 갔을까.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박인서가 “내리라”고 명한다. 모두들 왜? 여기 어딘데? 진작 말하지 등등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배낭을 짊어지고 내렸는데, 박인서는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한다. 눈이 쌓여 발이 폭폭 빠지는 길을 멍청히 걸으며 박인서 뒤를 쫓는다. 투덜거렸지만, 결국 우린 동명항 전망대까지 왔다.

뿔난 우리와 달리 박인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보고 있으면 뛰어들고싶지 않냐?”라는 어울리잖게 멘트를 날린다.

우리는. 이날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한다. 그래, 박인서가 원한다면 소원을 들어주자. 즉각 독선적 지도행각에 대한 징계위를 소집한 뒤 잇달아 처벌을 집행키로 결의했다. 그러나, 마음은 맞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다시 ‘밥’을 먹어러 나왔다.

예의 독선적인 박인서. 이후 지침없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탄다. 행선지가 어디냐 물어도 대답도 않고 타더니만, 어디어디 무슨할머니순두부집으로 오라나? 으이그~ 웬수.

결국 박인서, 박문진, 한선주가 떠나고 윤수근, 김기헌과 다른 택시를 잡아탔다. 무슨할머니순두부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중요한 귀뜸을 한다. 순두부집은 ‘정영숙할머니집’이 원조란다.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음~ 다음엔 거기로 가야겠구먼.

택시를 타고 한화콘도 인근에 있다는 밥집에 가는 동안 저 멀리 설악산의 능선이 보인다. 우리가 묵었던 중청산장이 손톱만하게 능선에 날아갈 듯 걸쳐있는 것도 보인다. 산이 하얗다. 우리가 내려온 뒤 설악산에는 눈이 엄청 내렸고, 곧바로 입산금지가 됐다는 뉴스를 콘도에서 들었다. 눈쌓인 산을 밟지 못한 건 아쉽지만, 산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어쨌든 눈쌓인 설악산은 힘들었던 산행을 다 잊게 하고, 다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순두부전골에 동동주 한사발씩 하며 우리는 산행을 정리했고, 고속터미널로 돌아와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벌어진다. 버스기사가 비디오를 트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야~ 이렇게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비디오 보는 것 처음이야. 신난다~” 참고로 우리 일행의 좌석은 1번부터 6번. 드디어 비디오가 돌아가고, 제목이 떴다.

으악. 제목인즉 ‘신냉혈십삼매’. 싸구려 중국 무술영화의 결정판이다. 코메디영화인지, 액션영화인지, 무술영화인지, 신파영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어쨌든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 대사, 영상 덕에 유쾌하게 1시간반 떼웠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박인서는 막차 끊어진다며 곧바로 택시타고 양재터미널로 떠났고, 남은 선수들은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서운해서 바로 그, 박인서 뒷다마를 까며 우동 한그릇씩을 해치웠다.

집에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도를 건넌다. 드뎌, 다리근육이 당겨온다. 다음은 눈꽃핀 산에 가자는 게 대체적 의견인 듯.... 음.... 언제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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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23 2005/06/05 00:23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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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맑았다

2005/06/04 23:54

### 2000년 11월3~5일

 

11월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리산은 따뜻했고, 햇살은 늘 내 머리 위를 따라다녔다.

목요일(2일) 저녁 밤차를 타고 진주로 내려갔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내가 예전 전노협에서 일을 시작하던 94년 가을에 혼자서 올라본 뒤로 처음이다. 여전히 길은 가팔랐고, 짊어진 65리터 짜리 배낭은 계속해서 내 뒤통수를 산 아래로만 끌어내린다.

게다가 3년전에 산 등산화마저 밑창이 떨어져나가 버렸다. 철퍼덕거리는 신발을 끈으로 조여 묶고 올라가는 천왕봉이라니... 남들보다 한두 시간은 더 걸려 올라섰다.

지리산 천왕봉!

360도로 뱅뱅 돌며 산자락과 구름낀 하늘이 보인다는 것은 그 어떤 비유도 모자라는 장관이다. 해가 그 중 한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만, 장터목에 도착하자 이미 사라졌다. 그래, 하늘에는 원래 저렇게 많은 별이 있는 거지. 별이 참 많고도 밝다.

랜턴을 켜고 세석산장까지 몰아가니 벌써 밤 8시. 새로 지은 뒤 처음 와보는 세석산장은 예전 만한 운치도 정도 없지만 내려다보이는 산들과 코앞에 닥쳐있는 구름들은 여전하다.

남들이 다 떠난 뒤, 떨어진 등산화를 고쳐보겠다며 본드를 바르고 수선을 떨다 아침 9시반이 넘어서야 벽소령을 향해 출발했다. 벽소령까지만 가면 지리산에 오기로 한 팀이 새 등산화를 갖다주기로 돼 있다. 그러나 웬걸, 선비샘도 채 가기 전에 신발은 다시 두동강이 났고,

난 그 신발을 신고 꾸역꾸역 지리산 자락을 밟았다. 벽소령에 도착했지만, 오기로 한 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기다릴 수만은 없어 다시 출발했는데, 형제봉에서 드디어 내 등산화를 들고 온 팀을 만난다. 이토록 반가울 수가. 세석에서 자기 전에 다 마셔버린 터라 목말랐던 소주도 한잔 얻어먹고, 새 등산화 끈을 조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젠 날아갈 수 있을까? 세석에서 뱀사골까지 20키로 거리인데,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저 세상은... ‘바다’다. ‘구름바다’였다가, 또는 ‘산바다’였다가. 꿈을 꾸는 듯 하늘을 나는 듯 산을 타니 아무 생각이 없다.

연하천에 도착하니 날은 또 저물고,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또다시 랜턴을 꺼내 뱀사골산장까지 내달린다. 날이 저문 뒤 저 멀리 보이는 산장 불빛은 얼마나 반가운지. 뱀사골산장은 꽤 쌀쌀하다. 반갑게도 그곳은 술을 판다. 소주를 마신다. 몸을 덥혀 침낭 속으로 미끄러진다.

다음날 아침 반선으로 내려왔다. 뱀사골산장에서 반선으로 내려오는 길은 95년도에 반야봉에 가느라 올랐던 길이다. 8키로가 가까운 기나긴 길인데, 끼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매표소를 2키로 정도 남긴 곳에서 막걸리를 판다. 굶주렸던 담배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니 볼은 붉어지고, 뒤돌아서 올려다본 지리산도 붉다. 단풍이다.

중산리에서 반선까지 40키로 남짓을 걸은 셈이다. 다음엔 뱀사골에서 반야봉을 오른 뒤 성삼재를 거쳐 덕유산으로 넘어가야지. 같이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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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4 23:54 2005/06/0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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