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창간 2주년을 맞으며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왜 ‘축하’가 아니고 ‘위로’냐고 발끈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2년 동안 <진보정치>가 겪어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어찌 물색 없이 ‘축하’만 할 수 있겠는가. 보수와 진보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그렇게 구분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이 사회에서 <진보정치>를 만들어 내기란 모르긴 몰라도 쉽지는 않았을 게다.

 

그럼에도 ‘축하’ 또한 아니할 수 없겠다. 어찌어찌 <진보정치>가 2년 동안 형태를 갖춰 나와줬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의 2년, 또는 20년, 또는 계속해서 <진보정치>가 ‘진보정치’를 앞당겨올 것이라는 희망을 지난 2년 동안 보여줬기 때문에 ‘축하’한다.

 

<진보정치>에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며, 때론 엊그제 옷깃을 스친 민중이며, 또한 ‘함께 가지 않겠냐’고 손 내밀어 봄직한 ‘동지’들이다.

 

<진보정치>에는 ‘진보’가 있다. 그것은 이 세상 밝은 한 가운데나, 뒷골목 어둡고 냄새나는 쓰레기더미에나 있고 또 모든 곳에 있으며, ‘보수’와 투쟁한다.

 

그리고 <진보정치>에는 ‘정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무수히 보아와서 이제는 냄새조차 못 맡는 그런 더러운 ‘정치’는 아니리라. 그런 거 말고, 민중이 이야기하고 바라는 ‘정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불행히도 그런 ‘정치’를 풍족하게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한다.

 

<진보정치>가 그런 ‘정치’를 알려달라. 그래서 무례하게 한가지 더 바라자면, <진보정치>가 민주노동당적(的)이지만 말고, 진보 정치적(的)이었으면 한다.

 

이황미/<노동과 세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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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45 2005/06/0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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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 <텍스트> 기고글

 

이거 너무 유식(遊識)한거 아니야?

 

텍스트를 읽다보면 주눅이 든다. 창간준비호에서 텍스트는 분명히 자기네들이 ‘지식이나 인식의 깊이란 것도 한낱 평범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의뭉을 떨었었다. 거, 사람들 참 겸손하네, 나 자신은 평범에서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자각한 터인데도, 텍스트의 말만 믿고 “음, 가히 같이 읽고 같이 고민할 만 하겠군”이라 믿었다.

 

어느덧, 창간호하고도 벌써 두 권의 텍스트가 점점 불어나는 두께를 자랑하며 내 책꽂이에 꽂혔다. 텍스트가 책꽂이에 늘어갈수록 나 자신의 ‘지식이나 인식’이 평범보다 얕아도 한참 얕다는 점만 분명하게 확인해갈 뿐이다.

 

빌어먹을~ 기자들이 미워진다.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었다는 것도 얄미워 죽을 지경인데, 그것을 읽고 소화도 마쳤는지, 그럴듯하게 ‘리뷰’하고 있다. 추켜올리는 듯 하다 메다꽂고, 한없이 쓰린 감수성을 따라가다 느닷없이 현란한 수식어들이 춤을 춘다. 차라리 단순하게 ‘주장’만 하고 물러난다면 좋으련만. 그토록 난해하다면, 재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제목이나 편집에 이끌려 이쪽 저쪽 펴봐도, 내용으로 들어갈라치면, 또다시 느껴지는 ‘지식이나 인식’의 얕음.

 

‘영화매거진’은 ‘영화’라는 게 당초 재미있기 때문에 절로 재미있는 걸까? ‘북’이 재미없어서 ‘북 매거진’도 절로 재미없는 걸까? 아니, 이게 정말 ‘재미’만의 문제일까? 영화잡지를 보고 어떤 영화를 영화관 가서 혼자 볼지, 누군가와 같이 볼지, 비디오로 빌려다 볼지, DVD가 나오기 기다릴지 따위를 정리한다.

 

책이 있다. 그리고 가끔 지면을 조금 나누어 그럴듯하게 소개해주는 신문이나 잡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거야 원, 기갈스러워서. 책을 사볼지, 빌려볼지, 밑줄 쳐가며 볼지, 친구랑 강독이라도 할지, 아니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딴 사람들도 못 보게 말릴지, 그런 것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북 매거진’의 위상을 너무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나?

 

건 그렇고, ‘짧은 리뷰’는 제일 속 편한 꼭지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기자들은 원고지 두 장도 안될 이 ‘짧은’ 리뷰 쓰려고 그 책들을 다 읽었을까? 또, 출판을 둘러싼 상품, 유통, 시장, 그 모든 것에 대한 불만으로 똘똘 뭉친 듯 보이는 ‘텍스트’도 ‘짧은 리뷰’를 보면 다 칭찬(?)인데, 진짜로 좋은 책들일까. 좋은 책만 골라서 쓰는 것인지, 아니면 ‘짧으니까’ 딱 한번 눈감고 추켜주는 것인지. 난 사실 그 ‘짧은 리뷰’로는 텍스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다.

 

텍스트는 언젠가 ‘연애든 소설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컴퓨터 게임이든’ ‘팽팽한 지적긴장’을 오래도록 같이 즐기자며 노골적으로 독자를 유혹했다. 좋다. 그렇다면 질문 있다. 지금 마지막 권을 읽고 있는 장편소설을 끝내고 나면 난 그 다음에 어떤 책을 집어들어야 하는가. 아니, 내가 집어들어야 할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

 

이황미/<노동과 세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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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43 2005/06/0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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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2월 <노나메기> 기고글

 

백기완 선생님께

 


오늘, 2002년 2월25일. 드디어 발전, 철도, 가스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벌여냈습니다. 물론 가스는 낮에 교섭을 타결 지어 파업을 끝냈지만 발전과 철도노조의 파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두 노조 역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나서서 교섭을 벌이고 있으니 곧 성과를 안고 타결되겠지요.

국가기간산업이라고 하는 공공부문 주요노조들의 동맹파업을 보며, “우리 노동자들이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새삼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들의 동맹파업은 결과가 좋으면 금상첨화고, 결과와 무관하게 동맹파업을 벌여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노동운동 역사의 중요한 장을 차지할 것입니다. 게다가 파업중인 이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기 위해 기아, 현대, 쌍용 등 완성차를 비롯한 금속노동자들이 내일 오후1시부터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습니다. 속된 말로 ‘그림’이 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런 가슴 뭉클한 순간에 저는 또 다른 한편 조금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납니다.

25일부터 벌일 파업을 사수하기 위해 하루 전인 24일 오후6시, 침낭과 깔판 따위를 챙겨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발전노조와 가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대학교 노천극장으로 속속 집결했습니다. 5천여 명의 국가기간산업 노동자들이 모인 노천극장은 ‘연대’의 깃발과 ‘단결’의 함성으로 물결쳤습니다.

그런데, 노천극장 한 켠에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조합원 50여명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발전과 가스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저는 주책 맞게도 그 감격스러운 순간,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깃발과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보며 갑자기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정작 그들의 투쟁은 4백일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슴이 저려온 것은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투쟁이 마무리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역사가 쌓이면 쌓일수록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를 가로막는 벽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그 벽들이 높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벽은 정권과 자본이 만들어내기 시작했지만, 어느덧 우리 노동자들도 모르는 사이 그 벽쌓기를 돕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선생님! 이 세상은 정말 무수한 이유로 인간들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 없는 자와 가진 자, 장애자와 비장애자, 유색인과 무색인, 그밖에도 민족, 종교,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자본은 노동자들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갈라놓아서 ‘단결’을 깨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는 그에 맞서 단일한 노동자계급으로서 뭉쳐야 하며, 또 그러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노동자들조차 정권과 자본이 갈라놓은 패 가르기에 물들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큰 사업장과 작은 사업장, 제조업과 비제조업, 임금을 많이 받는 사업장과 그렇지 못한 사업장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발전, 철도, 가스 등은 온 나라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들 사업부문은 정부가 이야기하듯 ‘국가기간산업’으로서 매우 중요하고, 하루라도 공급되지 않으면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장 규모도 큽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파업은 온 나라의 신문, 방송 등 언론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주요간부들도 조합원들이 집결해 있는 거점과 지도부들이 대책을 논의하는 명동성당 양쪽을 오가며 투쟁과 교섭 전략․전술을 짜내기 위해 밤새도록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규모 있고 영향력 있는 사업장들의 단 며칠 파업에 온 나라가 이토록 몰두하고 있는 뒤켠에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몇 백일, 길게는 몇 년 째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번 투쟁에 제 일처럼 달려나온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성과보다는 고통과 외로움이 깊어질 뿐입니다. 전화국을 점거해보기도 했고, 자살소동이나 벌이는 곳으로 알았던 한강철교 위에 올라가 요구를 알려보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헌정사상 최초’라고 이야기했던 국회점거투쟁의 장본인도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언론과 사회의 조명은 늘 이들에게 미치지 않고, 어찌 보면 노조 내부에서조차 그렇습니다.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지난 2000년 3월31일에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4월2일 설립신고를 했지만 반려됐습니다. 한국통신노조하고 조직대상이 중복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한국통신노조에 직접 가입하고자 했지만, 노조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국통신노조가 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밝힌 이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직원이 조합원이 되면 계약이 만료된 다음에 회사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해고자가 될텐데 계약해지가 예상되는 계약직이 너무 많아 그 책임을 노조가 다 떠 안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통신노조 쪽으로부터 거부당한 계약직들이 어쩔 수 없이 따로 노조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조직대상이 같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 한국통신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바꿔 계약직을 조직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합법성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노조’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2000년 12월 회사쪽은 계약직 7천명을 계약 해지했고,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12월13일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투쟁이 벌써 4백일을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공공부문 투쟁에 가리워있는 노동자들은 또 있습니다. 지난 96년 12월 삼미특수강 강봉․강관공장이 포항제철에 팔릴 때 고용이 승계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그들입니다. 일터에서 쫓겨난 지 꼬박 5년이 넘은 이들은 지난 2월19일 다시 포스코센터 지하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벌였습니다. 그 성과로 대통령도 복직을 약속했고, 고등법원조차 복직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포항제철은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을 고용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땅의 자본에게 ‘대량해고’의 길을 터준 것입니다. 당시 판결을 듣고 쓸쓸히 발길을 돌리며, 차마 아무 말 못하고 담배만 태우던 그 동지들의 뒷모습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길거리는 제법 봄볕이 비추고 있지만 밤바람은 아직 찬 겨울인데, 60여명은 침낭 하나에 의지해 거리에서 밤을 세우며 ‘고용승계’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물론 주요한 사업장들의 파업 때문에 겨를이 없어서겠지만, 포항제철 고용특위 노동자들의 노숙투쟁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통신계약직,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그러나 이제껏 투쟁이 주목받지 못하는 데 대해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이 있을 때마다 농성장과 집회장을 사수하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습니다. 그런 동지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가슴 한 구석에 저려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과 정권에 맞서 힘겹고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이렇듯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모든 투쟁을 하나로 묶어서 싸울 수는 없을까요? 우리 노조, 너희 노조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이 바로 민주노총의 몫입니다. 저 역시 지난 1994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1996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출범을 거쳐 9년째 노동조합 전국중앙조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년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머리와 가슴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지난 96~97년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한 총파업투쟁이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합니다. 30만 명이 한가지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벌였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위력적인 투쟁의 뒤안에서 탄압의 강도도, 그 후과도 달랐습니다. 여전히 힘없는 노동자들은 어느 한 곳에 어려움을 호소조차 하지 못한 채 경찰, 구사대, 무관심 속에 깨져나갔습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와 집행부가 노동자를 조직해야 하고, 구조를 갖춰야 하고, 끊임없이 교육․선전하는 등 과제가 많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백선생님! 이제 우리들 마음만이라도 ‘노동자’를 갈라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특히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게다가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조를 표방하는 곳에서조차 비정규직의 문제를 자기 일로 느끼지 않고, 심한 경우 외면하거나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 역시 그런 부류에 끼어 은근히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도 이미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노동운동 경험이 풍부하고, 노동자의식 또한 뛰어나다는 창원지역의 한 노동조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을 통일하자는 안건이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부결됐습니다. 광주에 있는 한 사업장은 안전화를 보고 인사를 나눈다고 합니다. 정규직들이 자신과 똑같은 안전화를 신은 사람한테만 인사를 하고, 안전화가 다른 사람은 비정규직이므로 외면한다는 것이죠. 울산에 있는 한 규모 있는 사업장은 인원정리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용역을 두기로 노사가 합의한 적도 했습니다. 광주의 또 다른 사업장은 하청노동자들이 따로 만든 노동조합을 탄압해서 결국 상급연맹으로부터 제명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거나 투쟁에 나설라치면 어김없이 악랄한 탄압에 부딪혀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깨지거나, 무기력하게 싸움을 접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정규직들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특수한 경우들은 없어야 할 경우들인 탓에 노동운동이 다른 문제에 앞서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아닐까요.

 


백기완선생님!

정작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는 젊은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까지 백기완선생님한테 말씀드리는 것은 무리일까요?

선생님은 썩은 자본의 문화가 우리 노동자들에 스며드는 것에 맞서 살아있는 우리 문화를 만들어내고 자리매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노동자들은 ‘노동자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넘어가지 않고, 단란주점에 가지 않고, 현란한 대중매체에 혹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노동자문화’를 지켜내고 있다고 자신하며, 정작 중요한 ‘노동자의식’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우리 문화’가 없는 탓에 ‘이기심’을 적당히 포장해서 개개인이 처한 조건에서 기득권을 지키고, ‘우리’의 이익보다는 ‘나’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 노동자들은 지난 몇 십 년의 노동운동 경험 속에서 소중한 노동자문화를 만들어냈고, 또 정착시켜내 왔습니다. 그런데 어째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요?

진정한 ‘노동자문화’, 곧 ‘노동자의식’은 공허한 이론으로만 붕 떠있는 채 우리의 삶과 머리와 가슴과 실천에 스며들지 못한 탓에 우리는 혹시 스스로를 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노동자를 가르는 벽을 허물고, 강을 메우는 일은 노동운동의 일선에 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진정한 ‘노동자의식’을 깨닫고, 모든 노동자들이 그 사상으로 무장토록 하는 투쟁 말입니다.

그러나, 백기완선생님도 해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이제 이 땅에 어르신들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당신들이 가진 지혜와 견결함과 전투성을 미처 우리에게 다 넘기지 못한 채 떠나고 계십니다. 때론 죽음이 때론 배신이 때론 노곤한 삶이 선배들을 우리로부터 빼앗아갑니다. 아직 젊은 우리는 미처 다 깨닫지 못했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백기완 선생님이 그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온 생을 내던져 그렇게 실천해 오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늘 서릿발같은 준엄함으로 빗나가는 우리 노동자들을 꾸짖어 주셨습니다. 노동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때는 가야할 길로 이끌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외람 되게도, 선생님은 ‘대중적’이지 못하십니다. ‘대중’에 맞춰달라는 속된 부탁도 아닙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 보면, 선생님은 어쩐지 노동자들과 다른 곳에 계시는 듯 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때로 어리석고, 헤매기도 하고, 또 때론 단결하고 투쟁하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대중’이라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선생님은 우리 노동자들이 볼 때 편하기보다는 너무 어렵습니다. 견결성을 버리시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낮춰서 현장에서 기름때를 묻히고, 컴퓨터 두들기느라 손가락이 짓무른 그런 노동자들과 같이 호흡해달라는 말씀입니다.

마음만 앞설 뿐 제 어휘가 모자라서 제가 전하려는 뜻이 제대로 표현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자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선생님의 풀먹인 옷고름처럼 꼿꼿해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라는 말씀입니다.

 


정권과 자본은 지금도 그렇고, 자신들이 망하는 그 날까지 우리 노동자를 편가르고 이간질하려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해지는 세상은 아직 멀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끼리만은 평등한 그런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훨씬 빨리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당장 그런 의식으로 무장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의 이익에는 눈을 돌리고, 평등한 세상을 일궈나가는 데는 가슴을 불태우는 그런 노동자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노동자들의 든든한 ‘빽’이 돼주십시오.

 


나이 어린 제가 감격스러운 동맹파업 현장을 보며 한편으로 드는 안타까움을 주제넘게 말씀드렸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2002년 2월25일 이황미(민주노총 편집부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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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38 2005/06/0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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