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제목을 달고 나니 좀 이상해졌습니다. 요즘 알라딘에서 "성"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걸 보고 저도 한 번 동참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어슐러 르귄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마치 신앙인들이 힘들 때 그들의 성서를 펼쳐들둣, 저도 뭔가 안풀이거나 힘들면 가끔(아주~ 가끔)펼쳐 들고 무작정 타이핑을 합니다. "빼앗긴 자들"이라고 번역된 이 책은 사실, "소유하지 않은 자들"(The Dispossessed)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의 한 축인 아나레스(Anarres)에는 성과 종교를 빗댄 욕이 없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 "지옥에나 가라" 등. 사실, 대부분의 욕이 성적 비유나 종교를 빗댄 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없는 아나레스에서 아이들은 대개 사춘기가 되면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집니다. 단지 자제가 권장되긴 하지만요. 얼마나 멋진 곳입니까? 아, 제겐 천국의 다른 이름이군요. 그냥 소설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즐감하시길~


그는 그녀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집적거렸고, 이번에도 그는 간단히 응수했다. 그들은 밤에 평원으로 나갔고, 거기서 그녀는 그에게 살갗의 자유를 선사했다. 그것이 그녀의 선물이었고, 그는 받아들였다. 아나레스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도 소년 소녀 양쪽과 자유로운 성경험을 나누었지만, 그나 그들이나 어렸다. 그 때 누린 쾌락이 전부라고 여겼고 그 이상의 것은 경험하지 못했다. 베션은 희열의 전문가였다. 그녀는 그를 성행위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원한도 어리석음도 없는 곳, 서로에게 합쳐지기 위해 싸우는 두 개의 육체가 싸우는 순간 자체를 파괴하는 곳, 자아를 넘어서고 시간을 초월하는 곳으로.
이제는 바깥 별빛 아래 따뜻한 먼지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편하고 사랑스러웠다. 낮은 길고 뜨겁고, 밝았으며 먼지에서 나는 냄새는 베션의 살내음 같았다.
...
쉐벡이 쓰는 언어이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언어에는 성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데 있어 소유적인 관용구가 없었다. 프라어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진다>는 말이 뜻이 통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어휘는 <성교하다>에 가까운 의미였고, 그와 비슷한 두 번째 용례는 <저주>라 할 수 있었고, 특수한 경우에 쓰였다. 바로 <강간>을 의미하는 경우였다. 오직 복수형만을 취하는 보통 동사는 <결합하다>와 같은 중도적인 말로만 번역할 수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뭔가를 의미했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하거나 가지거나 하는 일을 뜻하지 않았다. 이런 언어 구조는 다른 언어만큼이나 경험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고, 쉐벡은 제외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분명치는 않았지만. 분명 그는 더스트에서 별이 빛나던 그 밤들 중 어느 순간에는 베션을 소유했다고 느꼈고, 그녀는 또 자신이 그를 소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 다 틀렸고 감상적이기는 했어도 베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미소지으며 그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보내주었다. 그녀는 그를 소유하지 못했다. 처음 터져나온 성인다운 성적 열정 때문에 사실상 그의 육체가 그를, 그녀를 소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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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3:22 2012/01/0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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