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이트클럽 화재로 소방관 3명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형 참사건 소형 참사건, 인재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적어도 한국에서 죽음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어제 경향신문의 <여적>을 읽다, 갑자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제목은 "소방관"이었다. 나는 소방 공무원의 급여 수준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 이들이 화재 1건당 받는 수당이 불과 3,600원이라고 한다. 필자인 김학순 기자는 "목숨을 걸고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예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사실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똑똑이 콤플렉스와 둔재 열등감이 지배하는 사회다. 다들 자기 아이는 영재라고 생각하거나 영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들도 똑똑한 아이들을 좋아한다. 둔한 아이들은 상대하기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학원 안 다니는 아이는 이상한 아이 취급받는 사회(아이 학원 안 보내는 부모는 더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한다)라 누구나 할 거 없이 다들 아이들을 학원 보내는 것이 상식이 된 사회. 학교에서는 더 가르칠 게 없기 때문에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할 수밖에 없는 기이한 교육 현실을 가지고 있는 나라.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못 다니는 소수의 아이들은 학교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머리가 좋고 학교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나와 고시라도 볼 정도가 되어야 사람 취급을 받는 나라. 그 중에서도 검사나 판사 정도는 되어야한다. 경찰 공무원이나 소방 공무원은 저 밑에 널려있는 둔재들이 그나마 악다구니 쓰며 머리 굴려야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좋은 직업이 되었다. 직업의 위계가 그 나라 정신구조의 위계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지난 5월인가 서울대학교에서 "인문대학 진단평가"라는 걸 실시하고 그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진단평가 보고"라는 보고서의 "시간강사"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자료1>을 통해 볼 때, 실제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학생의 수는 전체 수강생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행정실에 따르면, 비겸직(전업) 시간강사들은 시간당 42,500원 겸직(비전업) 시간강사들은 시간당 30,000원의 강사료를 지급받고 있다.
열악한 처우를 받는 강사들 보다는 정당하고 적절한 보수와 좋은 근무 환경을 보장 받는 강사들이 학생들의 교육에 더욱 더 헌신할 것이며, 헌신적이고 동기 부여된 시간강사들이 훨씬 더 양질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시간강사들을 우리들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동일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며 우리들의 학문활동의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인식에 부합하는 실제적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관점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대학의 규정집에서 실려 있는 '위촉장'이다. 대학의 비정규교수인 시간강사는 대학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부산대학교의 경우 "시간강사에 관한 규정"을 보면 이런 항목이 있다.
②시간강사를 위촉할 때에는 [별지 1] 서식에 의한 위촉장을 교부한다.
규정집에 실려 있는 "위촉장"은 아주 단출하다. 맨 위에 "위촉장"이라고 되어 있는 그 아래 "귀하를 ○○. ○학기 시간강사에 위촉합니다. 년 월 일 부산대학교 총장" 뭐 물론 나는 한 번도 이런 위촉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에 고용된 자이면서 고용과 관련한 어떤 권리와 의무 조항을 들어본 기억이 없고, 그런 규정도 없다. 경북대학교는 비정규교수노조와 학교가 단체협약을 맺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비정규교수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명시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많은 시간강사들은 자신의 고용조건뿐만 아니라 타 대학의 강의료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는 시간강사의 강의료가 다른 국립대와 달리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비정규교수노조가 없는 국립대의 경우 강의료는 동일하게 42,500원이다. 다른 업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급여의 50%에서 70%를 받는 반면 대학의 시간강사는 전임교수의 급여에 비해 5배에서 8배까지 차이가 난다. 전임교수의 평균 연봉이 4천500에서 5천이다(명시된 부분만 고려할 경우). 대학 시간강사가 전임교수 급여의 50%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최소 8만5천원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지금 국립대 시간강사 강의료는 2배로 인상되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차별이 존재한다. 시간강사는 대학에 연구실이 없다. 공동연구실은 말이 연구실이지 독서실 수준이다. 부산대 인문대에는 300여명의 시간강사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자재는 컴퓨터 2대, 프린터 1대, 복사기 1대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서울대에서는 요즘 시간강사를 모두 1년에서 2년 단위의 계약직인 “비정년트랙”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안이 공개되어야 시비를 가릴 수 있겠지만 대학의 치부와 같은 문제를 또 다른 형식의 차별로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