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주의는 동일성의 논리를 통해 작동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모든 유용한 것들이 시장을 통해 화폐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시장은 동일성이라는 용광로에 다름아니다. 물론 유용하지 않은 것, 심지어 인간의 삶에 해로운 것들조차 자본의 이윤을 위해 시장에서 화폐가치를 획득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다. 한 개인이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 과정은 동일성의 논리에 포섭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신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한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만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즉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것을 '개인의 구체적 노동이 추상적 노동(화폐)으로 환원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물신주의의 첫 번째 테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은 사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전환된다. 이것은 물신성의 두 번째 테제이다. '한 개인의 사적 노동은 사회적 분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될 때만 사회적 노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서는 '개인의 사적 부가 사회적 권력으로 전화된다"는 것이다. "Money is power, power needs money"라는 말이다. 만일 정몽준이나 이건희가 단지 돈이 많은 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그저 순진한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믿음은 일반적이다.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두환이나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개인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물신주의에 사로잡혀있고 물신주의는 굿을 한다거나 우리의 강력한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환경을 잘 보살피고 채식을 하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국가라는 기구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하고 눈을 부라릴 정도가 되어야 겨우 국가기구의 존재를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국가권력이며 국가기구의 억압을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실제적으로 "국가란 경제적 지배집단의 정치적 지배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의 등장은 한국 사람들이 이제야 겨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김종철, 경향신문, 2012. 9. 6)


옛 중국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수많은 백성 위에 관료가 있었고, 관료조직의 정점에 대신(大臣), 그리고 그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존재를 후세인들은 일민(逸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권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주의 권력행사는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일민’이란 말하자면 그 신하됨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동시에 온갖 시련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일민’은 아마 시인 도연명(陶淵明)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진(東晋) 사람으로 지방 여러 곳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41세에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가 평생 농사를 짓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가 쓴 것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 지금 내 어찌 아니 돌아갈 것인가”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는 “쌀 다섯 말 때문에 (상사에게) 허리 굽히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쌀 다섯 말이 봉급으로 주어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쌀을 직접 지어서 먹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리라고는 하지만, 대대로 벼슬살이를 한 가문의 후손인 도연명에게 농사는 낯선 경험이었다. 따라서 그의 농사일은 서툴 수밖에 없었고, 항시 곤궁을 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농사를 짓고 살다가 62세에 시 130편을 남기고 죽었다. 다작(多作)이 아니었던 것은 그가 단지 자연을 즐긴 음유시인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몸소 노동해야 하는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연명이 택한 ‘일민’의 길은 한가로운 은둔자의 생활이 아니라 끝없는 고투의 삶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정작 임금 곁을 떠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입으로는 늘 ‘귀향’을 말했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관념적인 ‘탈속’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도연명이 속세를 초월한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에 예민했던 인간이었음을 명확히 지적한 것은 노신(魯迅)이었다. 노신은 완전히 초탈한 인간이라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신의 생각으로는, “사귐도 어울림도 이제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 게 무엇이냐”라는 ‘귀거래사’의 구절에 이미 세상에 대한 도연명 자신의 ‘분노’와 ‘저항’이 내포되어 있었다. 동시에 거기에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겠다는 준엄한 윤리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노신이 1500년 전의 시인 도연명에 각별히 주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 그 자신 불의(不義)한 세상 속에서 한 자루의 붓에 의지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지식인으로서의 강한 자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인이란, 따져 보면, 자신의 역할이나 재능을 인정해주는 권력자·후견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매우 불안한 존재이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성공을 바란다면, 변덕스러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또한 모든 현대의 작가, 예술가, 철학자, 지식인들의 기본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아첨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권력자나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지식인의 생존상황이다. 노신이 도연명에 관해 언급한 것은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심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작가·지식인으로서 좋은 삶, 혹은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노신 자신의 고뇌가 담긴 언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상호 기자 X파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2005년 7월에 MBC 방송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삼성녹취록사건’이 보도되기까지의 전말이 세세히 기록된 일기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담당기자가 처음에 제보를 받고, 관련된 취재를 하고, 그것이 실제로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리고 그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해명하는 게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삼성녹취록사건’이란, 간단히 말해, 이 나라 최대의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좌우해왔거나 하려고 해온 내막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폭로된 사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금권정치라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삼성녹취록사건’이 보여준 것은 그 금권정치의 방식이 너무나 비열하고 음습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공질서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로부터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상호 기자 X파일>을 보며 새삼 전율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다른 문제 때문이다. 즉, 지금 자본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국가의 공권력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 전체에도 걸쳐 있다는 가공할 사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노조위원장이 방송사 사장이 되어 있던 시절임에도, 이 중대한 사건이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나 걸린 이유는 외부압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미리 자기검열을 하는 방송사 내부 분위기였다. 이 책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게 뭐냐면 본의 아니게 선후배, 동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봤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떠했을까. 나 역시 내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이상호 기자를 십중팔구 미워했을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생애 말년에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 강의했다. 그는 진리를 말하는 데는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 혹은 적어도 남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손상시킬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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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0:24 2012/09/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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