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자전거, 이야기

잡기장
모처럼 따뜻한 날.
광주에 갔다왔는데 남쪽이라 따뜻한가보다.. 했는데 서울이 더 따뜻하다.

"테크놀로지와 미디어교육" 어허.. 이런 난감한 주제로 어케어케하여 교육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테크놀로지와 미디어활동" 혹은 "..운동" 이건줄 알고
jonair 가 방대하게 수집해 놓은 걸 조금 시범 보여주고 적절히 앞뒤로 그럴듯한 말을 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육날 코앞에 닥쳐서야 제대로 눈꼽을 떼고 다시 보니 "..교육"이다.

하.. 도망가기엔 이 바닥이 너무 좁다. -_-

어떻게 촛점을 맞춰야 하나? 무지 고민했다. 1. 테크놀로지를 미디어운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있어서의 원칙과 방법. 2. 미디어 테크놀로지 그 자체에 대한 고찰. "미디어는 메시지다" 3. 그냥 최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동향 소개와 상상하기 ...
생각끝에...
다 하기로 했다. -_- 학교 다닐때도 잘 안하고 담담히 추락을 받아들였던 "날치기"를 정말 오랫만에 했다.
정말 하루 동안에 엄청나게 글자들을 읽어들였다. 이 책 저 책 생각나는대로 바로바로 뽑고, 인터넷 검색하고 해서 죽어라고 키워드들을 뽑은 후 그걸 마인드맵으로 만들었다. 못본책은 가방에 넣어서 광주로 내려가는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계속 봐가며. 그리고.. 다행히 선방.

홀가분해지긴 했는데 최근 에너지를 너무 뽑아냈는지 기력이 없다. 날은 따뜻하고 참 좋은데 마음이 자꾸 흔들리니 힘들다.

자전거를 갖고 가서 교육 마친 저녁부터 그 다음날까지 광주 일대를 돌아다녔다. 광주는 이번이 세번째인데, 처음은 아마 2000년쯤 설문조사 알바를 하러 전국의 국공립대를 돌아다닐때 전남대를 간 것이고, 두번째는 올 추석 자전거여행때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갈아타러 들른 것이다. 알바하러 왔을때는 빨리 빨리 돌고 돈을 세이브하려고 최적화된 경로로만 다녔고, 두번째는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식당이 연데가 별로 없어 찾느라 여유 시간을 다 보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내가 연결된 망을 잠시 벗어나고자 하루 이틀 정도 더 광주에 있으며 돌아다닐 참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긴장은 풀리고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내게 남은건 자유뿐. 어차피 모르는 지리, 재워줄 친분이 있는 사람은 없고, 시간을 박아둔 다른 일정도 없다. 그냥 발길.. 아니 바퀴 닿는대로 광주의 밤거리를 다니기 시작했다. 풍암지구에서 백운교차로 쪽으로 가다가 무등시장을 가로질러 위쪽으로 가다가.. 다시 오른쪽, 남쪽, 다시 오른쪽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다녔다. 그러다 남광주역에서 지도를 보고 다시 대남로로 해서 풍암지구쪽으로 돌아와 찜질방을 찾아 들어갔다. 매일은 아니지만 농성장 생활 아니면 밤샘 컴퓨터 작업을 하던 몸이 간만에 뜨끈뜨끈한 물과 방과 바닥을 만나지 푹~ 퍼지는게 느낌이 아주 좋다.

둘째날은 센터에서 점심을 얻어 먹고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광주천을 만나서는 천을 따라 하류쪽으로 따라갔다. 날은 따뜻하고.. 역시 정한 일 없고 정한 목적지 없이 선선히 다니니 기분이 썩 좋다. 한가지.. 자전거 길 바닥이 오래됐는지 피부가 거칠다는 거. 쭉 따라가니 영산강이 나오고,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물이 많진 않지만 제법 분위기가 있다. 4시가 넘어 해는 어느새 붉어지며 저쪽 산허리를 바라고 내려가고 있고 강물엔 그 붉은 해가 비친다. 물 주위엔 하얀 갈대밭이 듬성듬성 있고 가끔씩 큰 나무가 물 바로 옆에 서 있는데 그걸 보니 영산강 물이 줄어든지 꽤 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늘은 파란데 살짝 아이스크림같은 구름이 붉은 해 주변에 있어 그 빛을 부드럽게 해준다. 바람도 잔잔하고 조용한 가을 강가.. 아직 광주 시내일텐데 이런 곳이 있다니. 서울에서 왠만한 곳을 자전거로 계속 다니다보니 광주에선 지도상의 점이 금방 금방 나타나는 것 같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니 해가 졌다. 다시 전날처럼 정처없이 달린다. 어제는 밤도 늦었고 처음이라 그랬는지 좀 황량하더니 막 저녁이 된 시내는 역시 활기가 있다. 떡볶이를 먹었는데 삼천원. 윽. 제길. 광주에서 안 좋은 기억이 하나 생겼다. 시켜놓고 알았는데, 그 때문인지 맛도 별로 없었다 -_- 그래도 대체로 기분은 양호. 하지만 역시 몸은 생각보다 피곤한가 보다. 에너지가 낮은 수준에서 돌아가고 있다. 기운이 딸리면 감상에 젖기도 쉬운 법. 생각들을 떨치려 다시 달리다 보니 5.18 기념공원이 있다. 밤이라 잘 볼 순 없지만 광주 사람들에게 이제 5.18은 어떤 의미로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역시 자전거를 갖고 오기 잘했다. 앞으로 어디 갈때는 기차보단 버스에 자전거를 실어가는 걸 택하겠다. 일을 마친 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처음 가는 길은 무거운 차보단 가벼운 자전거가 확실히 좋다. 혼자 간다면 특히.

하루 더 있다 올까했지만 그냥 저녁에 서울행 버스를 탔다.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사람들도 만나고 싶다. 그런데 사실은 새삼 두려움이 몰려온다. 감기 기운도 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닌가보다. 뭔가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는 만큼 그만큼 두려워진다. 이틀 동안 서울을 벗어나 있으며 숨 좀 크게 쉬고 오려고 했고, 그런 줄 알았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 돌아와서 한강을 달리는 길에서 난 단지 계속 도망치고 있다는 진실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자신을 쫓던 그림자를 역으로 사냥하고, 결국엔 극복해내지만.. 그건 소설속의 이야기일 뿐야.뭔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내 사랑하는 능력을 계속 소진시키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내 블로그에 우울한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때이다. 회복을 위해서. 아무에게나. 무슨 얘기던지.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움 없이 그나마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늘 인터넷, 내 블로그를 언제고 찾아올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였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안쓰다 보니 또 막상 뭘 쓸지 잘 모르겠네. 이런 포스팅의 경우 제목 붙이는게 꽤 힘들다 -_-

이젠 희망적인 얘기좀 해볼까? 간만에 수입이 생겼으니 책을 사들일 거다. SF소설들. 이번에 교육 준비하면서 와구와구 우걱우걱 정보들을 끌어모아 삼키다 보니, SF를 다시 파고들어 보고 싶어졌다. 뜻밖에도 말이지. 가을 옷이 없는데 바지랑 신발도 필요하고. 흠. 캔테나 다른 모델을 만들기 위해 납땜도구를 사는 것도 고려중이다. makker는 이제 다시 도와주기 힘들테니.

일단 감기 좀 낫고, 몸 상태가 좋아지길 기대. 요게 지나고 나면 아마 좀 더 신나는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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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17:08 2007/11/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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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2007/11/08 17:29 URL EDIT REPLY
수입이 생겼으면 함 쏴야지 -ㅅ-)
지각생 2007/11/08 17:34 URL EDIT REPLY
누구..?
꼬미 2007/11/09 01:34 URL EDIT REPLY
디디/ 동의
지각 2007/11/09 04:00 URL EDIT REPLY
이런 거지들 -_-
makker 2007/11/09 09:12 URL EDIT REPLY
당신도 거지여~
지각생 2007/11/10 00:48 URL EDIT REPLY
예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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