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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쓰는 편지,

 

 

있잖아, 너를 만나기 이전의 일인데, 나는 사람에 대한 조급증에 시달렸던 때가 있어.

사람이 제일 신기하고, 사람이 제일 고마워서, 바로 지금 내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과 가능하면 자주자주 만나서 함께 시간 보내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랐어. 하루에 밥은 어째서 3끼밖에 먹지 않는 걸까, 사람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계속해서 밥 약속을 잡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좋을텐데. 하루에 왜 24시간 밖에는 없는 걸까. 나는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시간도 많아야 하는데.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면, 지금 이 사람과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 이야기를 모두 다 하고 싶어 어쩔 줄을 몰랐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서, 내가 지치지 않는 건 아니었어. 사람들을 만나서 계속해서 시간을 신경쓰고, 이야기들을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그나마 지금 꼭 말해야 하는 것들을 골라내 보려고 하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 하나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지. 홀로 있을 때조차도 누군가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움직이게 했지.  

 

그런데 있잖아, 그때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면, 늘 내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던 걸지도 몰라. 내 조급증에 오히려 사람들이 가려졌을지도 몰라. 조급함과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너무 컸던 나는, 점점 버거워졌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사람도.. 만나고 싶은데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되잖아. 만났을 때,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드러낸다는 거, 마음대로 잘 안되잖아. 매번 아쉬워하고 아쉬워했지. 그래서 점점 더 두려워지는거야. 버거워지는 거야.

그때 난 왜 그리 조급했을까.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을 그리워했고, 그리워하면 할수록 아쉬움은 쌓여만 갔을까.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사람에 대한 아쉬움만큼이나 타인들에 대한 원망도 함께 쌓여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는, 놀랐어. 어쩌면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내가 나 자신은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나를 찾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만나고 있어. 하지만 나는 또, 내 안의 여러 ‘나’들과 다투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화해를 모색해보려고 하면서, 이전처럼 없는 척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조급증도 조금은 가라앉아서,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급한 마음이 오히려 사람을 멀리 하도록 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

 

가끔 내가, 너에게 집착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너를 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실망하지는 말아. 그래, 어쩌면 지금 나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여러 '나'들이, 불현듯 찾아와준 '나'로 인해 자기들 이야기를 너무나 시끄럽게 해대는 바람에, 혼자 있을 때도 쉬이 지치는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서 내 주위에 대해 이전보다 더 둔해보일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이제는 내가 타인들을 다르게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기도 했거든.  그 어떤 수식어로도 규정되지 않는, 나 그리고 너, 우리들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그러니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노력해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면, 변화란 것은, 내게도 네게도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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