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친절? 희생?

 

 

"친절하긴 친절한데, 그냥 친절한 게 아니라 뭔가 의도가 있는 친절같아."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내 단점이라며 이렇게 은근슬쩍(사실은 대놓고) 말해주었다.

 누군가에게서 내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것도 직접 해준다면 감사한거지. (라고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점차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그래도 기분은 좀 나빴는데 요즘엔 그냥 더 듣고 싶어서 궁금해질 뿐...)

 

아무튼 궁금해졌다. 내 어떤 행동에서 이렇게 느낀다는 건지. 알듯 모를듯.

 

'그냥 친절한 거'랑 '의도가 있는 친절'이랑 뭐가 다른 건지도 궁금하고..

 

내게 친절한 행동에 대한 의도가 있다면,

(사실 스스로는 내가 친절하다고 생각해본적 없다. 단지 소심할 뿐-_-.. 물론 나 스스로도 내가 내 마음 쓰는 게 괴로워서 날 위해 하는 행동들이 '친절'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건 불현듯 깨달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겐 사소한 문제가 아닌 일들이라 신경쓰는 건데 마치 내가 더 '착해서'라거나 '친절'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혹은 희생해서 하는 일이라 여겨질 때도 있어서.. )

그냥, 얘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 정도?  이런 것두 뭔가를 '바라는' 일이니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가?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딱히 좌절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좋아해주지 않으면 아닌거지. 그렇다고 내가 또다시 원망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더 소원해져야 하는 것도 아닐텐데.

암튼 잘 모르겠다. 나중에 더 물어봤는데 다른 말 하는 듯 해서 ..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말해달라고 부탁해봐야지 하는 생각.

 

그냥 드는 생각인데 친절과 희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어,

'엄마가 베푸는 친절', 이란 건 상상할 수 있나?

친절한 엄마. (친절한 금자씨 식의 그런 반어적 형용사의 뜻으로 말고....)

누군가는 엄마가 '희생'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그게 엄마의 '본래 마음(모성)'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야"란 말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어도,

"우리 엄마는 참 친절한 사람이야"라는 말은 어색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엄마라는 사람들은 '원래' 그래야 하는 사람 같거든. 대체 왜?

 

원래 그래야 하는 엄마이지만 동시에 또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대체 왜 그러고 살어, 란 느낌. 대체 왜 희생하는 거야, 하는 느낌.

본인들도 자기가 하고 싶어 그랬는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런 류의 구분이 스스로에게 필요한가?

 

이전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 하는 아빠' 라는 말의 괄호에다가

술 마시는 아빠

담배 피는 아빠

때리는 아빠 

하는 말을 넣는 것과

 

술 마시는 엄마

담배 피는 엄마 

때리는 엄마

라는 말을 넣는 것은 미묘하게 어감이 다르다고.

 

 

<내 남자의 여자> 드라마를 보다가 준표(김상중)가 지수(배종옥)에게

"당신은 너무 과잉친절이야. 그거 폭력이라고."라는 류의 이야기를 하는 걸 봤었다.

준표는 화영과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누라로는 딱인데, 재미없지?"

 

언젠가 강연에서 세상의 여러 게임의 룰은 여성이 어떻게 행동하든 욕먹을 수밖에 없도록, 혹은 질 수밖에 없도록 '누군가에게만' 유리하도록 짜여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나 부인이 친절(희생)하지 않으면, 애들이 삐뚤어지고, 남편은 바람나지만(여자가 사근사근한 맛이 없어서)

엄마나 부인이 친절(희생)해버리면, 애들은 삐뚤어지고(엄마가 너무 애를 감싸고 돌아서), 남편은 바람난다(부인이 귀찮아서, 구속해서).

 

내가 좋아서 한 일에 대해 내가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그렇지만 어느날 불현듯 내가 좋아서 하긴 했지만 내가 한 일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지 너무나 혼란스러울 때 나는 쉽사리 내가 희생한 거였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서 그런가. 덜 슬퍼서 그런가. 진짜 덜 슬픈가?

결국 나의 마음 혹은 나의 인성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내 주변의 관계와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내 행동,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을 다 주목해야 여러 의미들을 발굴해내고 읽어낼 수 있을텐데

 

'엄마'같은 것처럼

주변에 많은 것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버리는 거...

답답하다 어엄청.

 

내가 내 엄마란 사람에게 '당연시'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장난아니다.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아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