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09/20 23:01

2022/09/20 하루2천자 시작

슬프든 기쁘든 외롭든 쓰겠다.

매주 화요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수업이 있다. 

오전 수업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텔래그램이 왔다.

내 영화의 촬영감독이었던 h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였다.

장례식 없이 내일이 발인이라고 한다. 

그 후로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후 수업 전에 잠깐 서점에 들러서 책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서점으로 가다가 교육장으로 곧바로 갔다.

수업 전에 안정을 유지하려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차단막을 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두번째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뭘 먹기가 힘들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 둘째 옆에서 나도 밥을 먹었다.

"우리 집에 왔던 그 이모 맞지?" 묻다가 밥을 먹고

또 한참 있다가  "왜 그런지 알아?" 물었고

나는 잘모르겠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다만 장례식없이 곧바로 발인이라면 .... 하는데 말을 더 못 이어갔다.

피하고 싶은 단어를 소리내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있다 둘째가 말했다. 

"정말 그런 거라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는 사람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거야"

라고 했다. 

좀있다가 큰애의 전화가 왔다.

비슷한 대화를 하고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기도하자, 라는 말을 했고

큰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얼마전에 학교에서 친구도 그랬다고 했다.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었더라도 같이 수업을 듣고 얼굴을 아는 친구라 했다.

정말 공기처럼 떠도는 것같다.

mi가 내게 피하라고 했던 사람이 있다. 

j에게는 우울증이 있고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니, 우울증이라는 건 말이야 맑은 유리컵에 물감 한방울 떨어뜨리는 것과 같아.

언니한테까지 퍼지기전에, 언니....피해.

2009년에 그 경고를 들었고 어제 j를 다시 만날 계획이었다. 

회의가 6시 30분에 끝났고 j에게 어디서 만날지를 물으니

이렇게 저렇게 동선을 고민하다가 차 때문에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늘 j를 걱정했는데 h라니. 놀랍고 슬프고 속상하다. 

먼 데 일이라도 오늘 같은 일을 들으면 나는 늘 j와 y를 떠올렸다.

j와는 절교를 했다가 화해했고 다시 만나는 첫날이 어제였다.

남편에게 j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좀 내어달라고 했다. 

"y는 내가 잘 연락할테니 j에게 가끔 연락을 하자,

어쩌면 아무도 연락을 안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남편은 한숨을 쉬더니 알았다고 했다.

남편은 j를 경계한다.

내가 j를 만나는 걸 경계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알게된 j의 비극과

내가 늘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던 첫 만남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수긍은 했지만 오늘도 내켜하지는 않는 것같다.

남편은 그에게 향하는 마음의 색깔이 무엇이든

연상의 남성에 대해서는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마음을 감지하면 나는 말이 많아진다.

많은 말을 하는 스스로를 느끼는 건 구차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구차함을 꿀꺽 삼켜서라도 후회할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k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j가 떠올랐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했다.

j는 차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1년 전에 나는 j에게 절교를 통고했고 j는 억울해했다.

그 때 말했다.

"그냥 멀어지는 방법도 있었어. 그런데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예의를 위해 나는 정식으로 이별을 통고하는 거야"

j는 이럴 수는 없다며, 일단 지금 더 얘기하는 건 힘들겠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 뿐. 나는 그의 번호를 내 전화에서 지웠고 그 또한 내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1년에 한 번 영화제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관계.

그리고 지난 2년동안 나는 영화제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2년동안 우리는 타인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k의 죽음 이후 만약에 j마저 절교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다면

못 견딜 것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영화제에서 j를 만났고

오랜만의 대화를 나눴고 그리고 말했다.

"k가 죽은 후에 형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

예전같지는 않겠지만 안부는 묻고 살자"

j는 고맙다고 하더니 저번 주에 월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너무 먼 길을 운전해야 하니 다음 주에 만나자고 했다.

1년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나는 너의 안부를 살피겠다,

라고 다짐을 했는데 만남은 순조롭게 성사되는 것같았다.

오늘 h 소식을 듣고 혼자 있는 게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견디기로 했다. 

일을 하자 일을. 기계처럼 일을 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 상태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무너진 마음 그대로 누군가에게 말을 시작한다면

마음 뿐 아니라 일상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저 매일 쓰고 매일 생각하고 매일 할 일을 하자.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미안 (2,25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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