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12/31 23:52

2022/12/31 나에게 쓰는 편지

2022년 한 해동안 시도는 참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물론 바라는대로 다 되지는 않았던 것같아.

그래도 나는 조금 나아진 것같기는 해.

일희일비하는 얄팍한 성정이 어디 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예 낙담만 하거나 그냥 좋아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여지를 두는 것이 변한 지점이다.

나는 지금보다 촬영을 더 잘하고 싶고

편집도 더 잘하고 싶다. 

그래서 카메라도 새로 사고 

편집 템플릿도 여러 개 사서

여러 시도도 해보았다.

여전히 나의 실력은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변화를 도모하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만은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은 끈기와 인내심.

늘 결심하고 그것을 길게 끌지 못하는 게

나의 단점이라는 걸 아니

이제는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고

다시 목표를 정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한 치 앞을 봐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

죽는 날까지 계속 변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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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 23:52 2022/12/3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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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24 14:36

2022/12/24 붕대감기

23쪽. 어린이집에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은정은 서균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요, 말하며 울어버렸다. 엄마들 사이에서 어떻게 소문이 돌았을지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소문 같은 건 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걱정하며 말을 아끼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누구 한 아이의 엄마라도, 인사치레로라도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많이 힘드시지요? 서균이는 좀 어떤가요? 하고 말을 걸어준다면 좋을텐데.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은정은 그런 적립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적립과 인출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고, 노골적인 이해관계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친분을 쌓는 사람들을 남몰래 폄하했다. 학부모가 되면 더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도태되거나 정보에서 소외되는것을 예방하기 위해 옷을 잘 차려입고 학부모 총회에 나가고, 굳이 친해지고 싶지 않은 엄마들과도 모임을 만든다고들 했는데, 은정은 그런 작위적인 인간관계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얻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 웃어 보이는 일은 회사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으므로, 아이 엄마들하고까지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건 공교육의 실패일 테고 은정은 그 실패에서 비롯되는 부차적인 노력을 떠맡고 싶지 안았다. 자신에게는 그런 관계를 통해 얻을 것도 줄 것도 별로 없었다. 인간으로서 필요한 감정의 교류는 남편과 아이에게서 충족하면 되고, 정보는 책과 인터넷에서 얻으면 그만이었다.

60쪽. 세연이 달라진 것은 3년쯤 전부터였다. 아마도 율아에게 갑작스레 수족구가, 그리고 곧바로 장염이 찾아와 진경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 여름부터였을 것이다. 세연이 갑자기계정을 닫았다. 몇 주 후 다시 계정을 연 세여는 더이상 일상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 공유하는 글들의 성격이 달라졌고, 자주 댓글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달라지더니,쓰는 글들의 결도 달라졌다.

물론, 아이 때문에 추모 집회에 나갈 수 없었고, 그 어떤 행동도 할 수는 없었지만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일어난 그 사건 이후 진경의 내면 역시 만만찮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세연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는 아니었다. 에너지 코어를 흡수한 캡틴 마블이 분노로 불타는 불주먹을 갖게 됐다면, 세연이 흡수한 무언가는 세연의 말캉말캉한 부분, 풍부하던 감정, 미성숙한 생각들, 마음의빈 공간들과 어떤 너그러움까지 모조리 태워 없애버린 것 같았다. 세연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지극히 적어졌고, 타인의 글에 대한 반응도 줄어들었다. 좋아해도 될 글인지 아닌지 몹시 신중하게 따져보고 위험하지 않은 글에만 반응을 했다. 진경은 자신이 올바름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세연에게는 진경과 나눈 시간보다 올바름이, 자신의 원칙들이 더 중요했다. 대단히 건조한 어조로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책과 출판사에서 앞으로 나올 책들의 소식을 전하거나, 여성주의 관련 글들을 공유하거나, 이슈들에 관한 이력을 피력하거나, 하고 싶은, 지금 당장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그래서 짜증나는, 그래도 죽도록 하고 싶은, 그래서 우울한, 일들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했고 앞으로 분명히 할 일들에 대해서만 짧게 또박또박 적어 올리는 세연을 보면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미스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칙칙 소리가 나게 미스트를 뿌려주고 싶었다.

62쪽.세연처럼 똑바로 노려보고 매 순간 진지하게만 대하기에 진경은 자기 삶이 너무 팍팍하고 바싹 말라 있다고 생각햇다. 강해지라는 말을 들으면 혈관을 억지로 쫙 늘려서 강철 바를 밀어 넣으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았다. 

받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고 싶기도 했다.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 될 것같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이아. 너는 안타까워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너는 놀랐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는 없다는 걸 네가 이해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들어가면 그 자리는 꽉 차버리는 걸.

66쪽. 진경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단정하고 올바른 여자도, 꼿꼿하고 강하고 바쁘고 카리스마 있는 여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진경은 가능하면 닳고 닳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진저리가 쳐질 만큼 통속적인 여자가 되어 엄마의 가슴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사랑했고, 인생을 낭비하기 싫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진경은 자신이 엄마의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똑똑하고 재치 있으면서도 다정하고 생기발랄한 사람임을 알았고,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햇다. 하지만 엄마는 진경에게 결코 충분한 사랑을 준 적이 없었기에, 진경은 결국 목바른 사람이 되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연애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맸다. 한 연애가 끝나기 전에 다른 연애가 시작되는 일도 잇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계속 진경의 발에 맞지 않는 단정한 모카신을 신기려고 들었다. 진경은 집에서 도망쳐 나오기 위해 결혼했다.  

  

 

160쪽. 너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걸로 강해지려고 하지.

자신을 드러내는 건 징징거리는 것이고, 

그건 곧 약자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나도 과묵해지고,

멋있어지고 싶어.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내가 싫지만,

미움받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거나,

이리저리 단어를 검열하는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져.

나는 바보같은 말을 하면서 견딜 거야.

농담이라는 것의 위대함도 잊어버리고,

바보 같은 말을,

직설법이 아닌 문법으로 된 말들을 

더이상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주지도 앟는 세상한테,

모두가 올바르고 심각하고 훌륭한 말들만 하게 돼서

여유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끔찍한 세상한테, 

계속 같이 놀자고 멍청한 소리를 하고

헛발질을 할 거야.

난 바보고 멍청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화를 내나 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한가하냐고

자꾸만 물어보나 봐.

하지만 미안해, 이게 나야.

이렇게 웃음이 없고 똑바르기만 한 세상을

난 못 견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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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4 14:36 2022/12/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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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23 20:33

안녕하세요

온라인공간에 처음 발을 디딘 건 1993년 이었어요.

그때 '잠깐만!' 하고 좋았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같아요.

그렇게 몇년을 잠수하고 지내는 동안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아주 긴 시간동안 하이텔에서만 지냈어요.

하이텔 대화방 '자유인' 에서 만났던 분들.

나중에 독일로 건너간 태권도 사범, 방사선사, 경제학과 대학원생

다 좋았던 분들이었고

나중에 저희 언니가 결혼하는데 언니 또한 저처럼 사람들하고 왕래가 없이 지냈던 터라

신부측 하객이 없어서 그 때 그 대화방 분들이 와주셨어요.

저는 또 신부측 친구가 없어서 여동생인데 부케도 받구요.

사람의 인성? 성격?이라는 게 20대 이전에 다 완성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몇년 전에 상담을 받으면서 20대 초반,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경험들도

한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걸 알았어요.

아마도 그래서 늘 이렇게 

책상서랍 속의 일기장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같아요.

나의 이름도, 직업도, 소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나의 글만으로 나를 알고 나와 교류하는 공간,

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저는 외부로부터의 모든 연결을 끊었어오.

이 곳으로 오는 길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요

아주 오래전 길 하나를 남겨두긴 했지만 그 길을 찾아서 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진보넷 블로그에도 공개가 안되게 해두었는데

이 곳을 찾아오는 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첫번째 블로그를 닫고 두번째 블로그로 온 건 스토킹 때문이었습니다.

두번째 블로그를 닫은 건

그 블로그에 오는 사람 중에서 감시자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한 걸 뒤늦게 아는 경향이 있죠.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런데 세상에 나를 너무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정확히 알게 되고 나니 그 공간에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온라인공간에서 글을 쓰는 저는

집이 없는 달팽이같은 상태거든요.

그냥 말랑한 무방비상태 거든요.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게 편하다는 걸 압니다. 

 

윤이형의 '붕대감기'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어요.

160쪽. 너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걸로 강해지려고 하지.

자신을 드러내는 건 징징거리는 것이고, 

그건 곧 약자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나도 과묵해지고,

멋있어지고 싶어.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내가 싫지만,

미움받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거나,

이리저리 단어를 검열하는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져.

나는 바보같은 말을 하면서 견딜 거야.

농담이라는 것의 위대함도 잊어버리고,

바보 같은 말을,

직설법이 아닌 문법으로 된 말들을 

더이상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주지도 앟는 세상한테,

모두가 올바르고 심각하고 훌륭한 말들만 하게 돼서

여유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끔찍한 세상한테, 

계속 같이 놀자고 멍청한 소리를 하고

헛발질을 할 거야.

난 바보고 멍청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화를 내나 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한가하냐고

자꾸만 물어보나 봐.

하지만 미안해, 이게 나야.

이렇게 웃음이 없고 똑바르기만 한 세상을

난 못 견디겠어.

 

제가 쓰지 않았지만

제 마음같은 말이예요.

그래서 저는 계속 장소를 옮겨가며

글을 쓸 겁니다.

 

이 곳은 방문자수 1인 블로그인데

오늘 갑자기 방문자수가 많아졌습니다. 

무섭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나를 발견한 걸까.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제가 세상에서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그 분이라면

알아주세요.

저는 그냥 조용히 살고 있어요

무해하고 연약하고 조용하게.

그냥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세요

이제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제가 세상에서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그 분이 아니라면

글쎄요

이 곳은 저만의 외딴방인데

어떻게 여기에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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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3 20:33 2022/12/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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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20 10:21

2022/12/20 연이

날은 추운데 연이가 안온다.

연이는 그동안 현관 안 따뜻한 방석이 깔린 상자 안에서

늘 지내고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야옹 하고 신호해서 나가고

밖에서 놀다가 야옹하고 신호해서 들어오며

그렇게 잘 지냈는데

주말에 용인에 가느라 밖에 내놓은 후에

연이가 집으로 돌아오지않는다.

전기방석 상자를 밖으로 내어뒀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걸 몰랐던 것같다.

밖으로 나가서 찾아보고 싶은데

걷는 게 힘들어서 못 나가고 있다.

밤이면,또는 새벽이면

연이가 어딘가에서 너무 추워서 못 움직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그래서 데크에 나가서

이 쪽 저 쪽을 보며

연이야 연이야 불러보는데

사흘째 오지 않고 있다. 

이럴 때마다 늘 후회가....

나는 그냥 여기 남아있어야 했을까.

그런데 주말에 학부모 참여행사가 두 개나 있어서

그러기는 힘들었다.

그러니까 사람 자식들과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다, 우리 연이는.

앞으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더 많이 일어나려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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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10:21 2022/12/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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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8 16:39

2022/12/18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72쪽.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자유를 미리 포기하거나, 아니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람을 진짜 미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겪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를 옥죈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입 다물거나 아는 사실을 알지 않기로 선택해야만 이기는 것이라는 소리를 든는 것이다. 이 난감한 궁지에서 어떤 사람은 실패와 위험을 선택함으로써 반항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순응을 선택함으로써 죄수가 된다.

73쪽.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남들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분한 기분을 나는 안다.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늘어놓는 이야기꾼이 되기 쉽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 그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써 저주를 풀어줄 때까지 그는 그 이야기를 계속 말한다. 나도 가끔은 그렇듯 직접 체험한 일을 말하는 이야기꾼이었지만, 다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도 나의 체험이었다.

78쪽. 그래서 나는 슬쩍 빠져나가거나 사라지거나 도망치는 법, 긴장된 상황을 모면하는 법, 원치 않는 포옹과 키스와 손길을 피하는 법, 버스에서 옆자리 남자의 다리가 내 좌석으로 넘어오는 동안 내가 차지한 공간을 점점 더 줄이는 법, 서서히 손 떼거나 갑자기 증발하는 법을 익혔다.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기에, 존재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일단 그 전략이 몸에 배니,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버릇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십수년을 회피하며 살아온 뒤에 어떻게 갑자기 누군가에게 마음과 두 팔을 활짝 열고 다가갈 수 있겠는가? 오래 위협을 겪으며 살아온 탓에 이제 회피하기를 멈추고 상대를 진득ㅎ게 믿고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달아나는 것도 어려웠다. 가끔은 이러다가 내가 때 이르게 관에 드러누운 사람처럼 혼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82쪽.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는 나도 나를 믿기가 어렵다. 그래도 끝내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다른 모두와 대립하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미칠 것 같을 테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86쪽. 하지만 강간은 겪지 않았다. 그러나 내 친구 중에서는 많은 수가 강간을 겪었고, 직접 겪었든 아니든 모두가 그 위협을 피하는 일에 젊음을 허비했으며, 지금도 세상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고 있다. 설령 당신이 붙잡히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을 붙잡는다.

 

101쪽. 나는 내 몸이 실패작이라고 확신했다. 키 크고, 마르고, 흰 내 몸은 우리 문화가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전반적인 잣대에 따르면 최선으로 여겨지는 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몸을 잘못된 점, 실패한 점, 확인된 수치스러움, 잠재된 수치스러움의 집합으로 여겼다. 세상은 여성의 몸에게 무릇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규칙들을 적용한다. 모든 여자는 자신이 그 이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늘 잴 수 있다. 그 거리가 설령 아주 멀진 않더라도 말이다. 마약 형태 측면에서의 미진함을 해결하더라도, 인체의 기능과 체액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은 늘 이상적 여성성에 배치되는 것이거니와 온갖 분비물과 농담과 비웃음이 우리에게 늘 그 점을 상기시킨다. 여자는 늘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면 여자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현실을 만드는 조건들을 거부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139쪽. 타인이 되어보라는 요구를 그렇게 자주 받으면, 자아 감각이 훼손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만큼은 반드시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나오 비슷한 사람,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 나와 같은 꿈을 꾸고 나와 같은 싸움을 싸우는 사람,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함께해야만 한다. 또 가끔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 타인이 되어보는 시간이 너무 적은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며 상상력이 발달하지 못하는데, 자아를 바꿔보고 자아에서 벗어나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은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법이다. 상상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이 겪기 쉬운 병 중 하나다. 대부분의 남자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만을 저바는 유년기 초부터 그런 증상을 발전시킨다. 

이중의식은 백인 문화에서  흑인이 겪는 경험을 가리킬 때 곧잘 쓰이는 용어다. 이 표헌은 W.E.B. 두보이스가 19세기 말에 쓴 글을 통해서 유명해졌다.(그런데 두보이스는 대부분의 남자 작가들이 그보다 더 나중까지도, 이를테면 제임스 볼드윈까지도 그랬듯이 인간을 남성으로, 심지어 한 명의 남자로 지칭했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일곱번째 아들이다. 베일을 쓰고 태어난 자, 투시력을 타고 태어난 자다. 이 세상은 그에게 진정한 자의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도록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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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16:39 2022/12/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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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6 20:08

2022/12/16 미처 하지 못한 말

5쪽. 언젠가가 아니라 늘 쓸 수 있어야 하는 말, 한마디로 존중을 표현해 줄 말을 인권의 문장들에서 찾아보았다. 존중의 언어를 발견할 때 더이상 미처 하지 못한 말은 없을 테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뉘우침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은 ‘미처 듣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말해 왔는데, 때론 절규해 왔는데 듣지 못했고 듣지 않았는지 돌아보려 한다. 이 돌아봄의 동행이 이제야 마주하는 인권의 문장들이다.

6쪽. 애도는 그것에 대해 단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골방에서 나와 서로의 고통을 연결하려는 것이 애도다. 서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던 사람들이 애도를 통해 우리 삶을 짓누르는 폭력에 대항할 힘을 찾는 것이 애도다.

22쪽. 용역폭력은 현 정권 들어 더 자주 더 심하게 등장했다.... 일부 세력만을 위해 봉사하는 공권력은 사적 폭력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리라.... 한 신문 사설에서는 그런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근원적 토대는 현 정권이 “국가를 사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29쪽. 국가들은 군사 및 보안 활동에서 외주 계약이 저대 금지돼야만 하는 유형과 외주 계약 가능한 유형에 적합한 한계선을 그어야만 한다. 일단 외주 계약하는 기능들이 한정되면, 그런 활동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입법과 장치 뿐 아니라 국내적 규제가 수립돼야만 한다.

41쪽. 겉보기에는 똑같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그것을 시혜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서 존중받는다는 데 사회권의 의미가 있다..... 문제는 어떤 것을 존엄한 삶에 필요한 목록으로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인권으로서 사회권에 무엇을 어느 수순으로 넣을 것인지는 인권 분야의 오랜 고민이다. 최소 기준을 주장하는 의견과 도달 가능한 최상의 수준을 주장하는 의견 사이에 지나친 최소화와 지나친 웅대함에 대한 염려가 있다.

44쪽. 사회권에 대한 밴스 개념

49쪽. 민주주의에 반하다. 저자 하승우. “나는 당신과 다르다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공통성. 그렇기에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한다. 결국, 이 우울한 얘기가 던져주는 깨달음은 ‘너도 당할 거야’라는 협박이 아니라 ‘고통에 손 내밀라.’라는 간절함이다.

59쪽. 환경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를 때 환경일 수 있다.

72쪽. ‘첼로의 성자’라 불리는 그는 훌륭한 예술인일 뿐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인류 양심의 문제”라 말하는 인간애의 소유자였다. 그는 조국의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저항의 표시로 10년간이나 연주를 하지 않았고, 독재 정권을 돕는 어떤 나라에서도 연주하기를 거절했다.

73쪽. “우리는 매 순간순간마다 우주의 새롭고 진귀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 순간은 전에도 없었고 다시 오지도 않을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뭘 가르치나?.....너의 존재가 무엇인 줄 아니? 너의 존재는 놀라운 거야. 너는 유일한 존재야,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너와 똑같은 아이는 없었단다. 그렇다. 너는 경이로움이다. 그러니 네가 자라서 다른 사람, 너처럼 경이로움인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겠니? 너도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값진 것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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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6 20:08 2022/12/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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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1 16:14

2022/12/11 겨울방학

290쪽. 1882년, 빈세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화가의 임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고흐는 그것을 '의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의무가 무서웠다. 온 힘을 다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처절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놓지 않던 고흐의 희망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다. 나와 같은 인간은 그것을 손에 쥔다 하더라도 금세 잃고 말리란 걸. 희망은 손에 쥐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뭉개지고 절망하며 형성된 감각의 심지를 한데 뭉쳐 몸속 깊이 심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297쪽.세상에 소설가가 왜 필요할까?

우리는 어제 겪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오늘에야 어렴풋이 알아차리며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가가 세상에 왜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을 때마다 최진영이라는 이름이 내 마음 속에 떠오른다. 내가 뒤에 두고 걸어온 미안함과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그의 소설이 주섬주섬 챙겨와 주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읽으며 거듭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나 입체적인 어린이들이 이 책에 있어서다. 최진영이 그려 낸 어린이들처럼 나도 일면 나약하고 치사한 유년을 지나왔다. 나약해서 치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랄수록 심해진 나약함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손쓸 수 없이 치사해진 채로 사는 최진영의 소설 속 어른들과 닮았다. 치사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해지자고 나는 다짐한다.

이제 내겐 방학이 주어지지 않는데 그렇다면 '겨울방학'의 고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가 아홉 살 조카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 주는 방식을 보며 어떤 과시도 없이 내 삶을 소개하는 법을 배운다. 초라하고도 찬란한 고모처럼 말할 수 있다면,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고모의 얼굴을 닮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또다시 겨울방학의 계절이 다가온다. 어리고 나이 든 겨울방학이다.  

299쪽. 의자 모양의 희망

자신이 죄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한 소설가가 세상의 모든 기준치를 의심하며 혼자 깃발처럼 서있다.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생을 스쳐가는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 마음 속의 가장 오목한 부분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가 없다. 부당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ㅏ길 거부하는 장난감 회사 직원과 가난하지만 조카 앞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고모, 미국 대륙만한 돌덩이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절멸 직전의 순간에도 출근을 하는 감정 노동자와ㅏ 카드 값을 걱정하는 프리랜서 작가의 오목한 마음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그러니까 히사의 부당한 돈벌이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신, "그런 돈으로 나를 살아가게 히자 말"('돌담')라고 조용히 절규하는, 혹은 겨울방학 동안 헌신적으로 돌본 조카에게서 집에서 신발 냄새가 난다는 말으말을 듣고도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 만은 아니면 좋을 텐데"(겨울방학)라고 줄얼거리는 그 화법은 최진영의 인물만이 구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소설 바깥에서는 이런 문장을 읽을 수 없으없는 것이다. 인물의 심장을 통과한 문장이므로 솔직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때로는 독자를 아프게 하지만, 결국엔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거"(어느 날)라는 독백으로 나아가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문장들.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놀라운 첫 장편소설로 처연한 비관의 세계를 열어 보였고 '해가 지는 곳으로'를 통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지옥이 된 세계에서 절망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갔던 최진영은, 그의 두번째 소설집 '겨울방학'에서는 자신과 독자를 위해 의자 하나를 만들어서 보여 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부드러워 몸을 알맞게 감싸는"(의자) 의자, 누군가에는 희망이 그런 의자 모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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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1 16:14 2022/12/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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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0 11:00

2022/12/10 튜브,내가되는꿈

튜브 145쪽. 뭐든지 한번에 한가지씩만 하는 겁니다. 밥 먹을 땐 먹기만, 걸을 땐 걷기만, 일할 땐 일만. 그렇게 매 순간에 충실하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은 성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등을 쭉 펴고 어깨를 여는, 목적 없는 단순함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비결이었다는 걸 김성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그것만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박실영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우린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다보면 자꾸만 소모적인 생각이 날아들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돼요. 생각이란 건 자신만의 선글라스 같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스위치부터 꺼야 하죠. 그다음은 쉽습니다. 낙엽은 낙엽으로 보고 전봇대는 전봇대로 보는 겁니다. 빨간 건 빨갛게 노란 건 노랗게 받아들이면 되죠.  

154쪽. 감각 자체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인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김성곤은 아영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중한 깨달음을 잊었고 대부분의 것들을 지루하고 피로한 일상을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155쪽. 어느 새 성곤의 감각은 그저 생명 유지를 위한 퇴화기관에 지나지 않게 됐다. 몸이 감지하는 것들은 투박한 이유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빨간불 앞에서 멍해졌을 때 빵소리가 나면 출발하고, 위스키 잔이 미지근해지면 얼음을 떨어뜨려 넣고, 맘에 들지 않는 화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용도 따위로만 말이다. 

삶이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구성된 서랍장이라면 성곤은 계속해서 한가지 서랍만 열고 있었다. 분노, 짜증, 울분, 격분, 우울, 좌절이 가득 담긴 서랍. 어느새 그는 다른 서랍을 여는 방법을 망각했다. 참다운 기쁨. 단어 안에 담아놓기 힘들 정도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서랍은 꾹 닫혀 있었고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흐드러진 봄꽃이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언제 꽃이 폈는지도 몰랐는데 계절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못한다.

성곤은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봐도 보지 않고 맛봐도 맛보지 않으며 들어도 듣지 않는다.

막상 말로, 소리로 된 음성으로 그렇게 사실을 고백하자 뜨거운 슬픔이 밀려들었다. 김성곤은 자조 섞인 웃음으로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몸이가진 그토록 많은 감각기관을 그는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것들은 그에게 입력되지 않았다.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 맛있는 음식, 누군가의 절망이나 슬픔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세상 무든 게 시시했다. 다 알고 있었고 지겨울 만큼 충분히 겪었고 새로울 건 없었으며 삶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무대였고 그는 그 위의 먼지일 뿐이었으니까.

퇴화된 감각들은 토라진 아이처럼 안으로만 촉수를 뻗었다. 자연히 성곤은 자신의 슬픔과 절망에만 과도하게 집중했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특히 가족을 탓했다.

애통하고 애달팠다.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바보 같은 자신과, 그 바보가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자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렸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 숨겨뒀던 서랍을 찾아 열어야만 잃어버린 영혼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래야만 그의 표정과 말투, 남에게 건네는 칭찬에 진심이 실릴 거라는 것을. 그러므로 김성곤은 자신이 어단가에 어딘가에 하찮게 유기한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순수하고 새롭게.

208쪽. -안드레아, 네 마음 안엔 아직도 피어나길 기다리는 작은 싹들이 있는 것 같더라. 나도 언젠간 그런 걸 꽤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다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해. 가끔은,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이 끌려오면 좋겠어. 내가 운전대를 틀면 인생도 조금은 그쪽으로 와주길 바라. 내가 핸들을 쥐고 싶어.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는 인생에 내가 끌려가는 것 말고. 너무 큰 목표지? 네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는 건 조금 더 작고 사소하고 이루기 쉬운 것들인데......

271쪽.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침잠되고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견디게 한 건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괜찮다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거나, 이대로도 좋다는 말은 눈물을 그치게 했으나, 냉정히 말해 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곧 그런 말들은 공허하게 휘발됐다. 나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한 건 언제나 다시 해보라거나 응원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은 내 내면의 담담한 어조였다.

응원을 받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도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었고, 다시 해낼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괴로운 시간을 겪을 때 나는 지금의 상황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미래를 떠올렸다. 아무리 길고 힘겨운 시간도 언젠간 '그땐 참 힘들었지'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될 거라고, 그 문장 끝엔 짧은  웃음이 걸쳐져 있을 거라고 기를 써서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고된 현재도 분명 그렇게 될 것다, 분명.

물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뒤에도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영원토록 따뜻한 바닷물 위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둥둥 떠 있는 속 편한 삶이란 없으며, 혹여 그 비슷한 것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장담컨대 그 삶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일 것이다.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비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러면 또 헤쳐 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기술과 혜안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먼저 읽은 친한 지인이 말했다. 김성곤이 가진 초능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지점에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초능력이 숨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차피 우린 자신마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의 애씀은 언제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나는 안주하지 않고 힘을 다하는 영혼들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가의 말을 빌려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을 깊이 응원한다, 라고.

<내가 되는 꿈> 20쪽.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기분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를 가격하는 생각.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21쪽. 언젠가는 네가 못하는 거를 네 엄마가 할 거고 네 엄마가 못하는 거를 네가 할 거고. 그런 거다. 사는 게. 지금이 영영일 것 같지만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30쪽. 우리는 꽃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같이 사진을 찍는 사이도 아니다. 불행한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행복을 연기해 버린다면 진짜 불행해지도 몰라. 

90쪽. 모욕감은 남한테서만 받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나를 모욕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92쪽. 마음을 글자로 전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수의 편지를 사랑한다. 한수의 편지를 읽으면 나란 존재가 (잠깐이나마) 좋아진다. 한수의 편지는 주사 같다. 읽을 때는 아픈데 읽고 나면 어딘가 나은 것만 같다. 지금보다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 

98쪽. 내게 편지를 쓰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 관해서만 가득 썼다. 이것이 지금 내 상태를 말해준다.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124쪽.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외갓집으로 이사 오고 중학생이 된 다음부터 종종 하는 질문. 어떤 그림에서 나란 사람을 오려 낸 다음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도록 내벼러 둔 것같았다. 난데없는 곳에 뚝 떨어진 나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원래 난 어디에 있었더라,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150쪽.나는 이 사람에게만큼은 비겁하지 않았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나를 나쁜 채로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나의 좋은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 둔 이 사람까지 지운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내 인생에서 20년 정도는 내 뜻대로살 수 없었던 시기였다쳐도 나머지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153쪽.나는 아직 이별이 서툴고 이런 식이 아니라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모두가 납득하는 이별 방식이 과연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맑게 떠났다. 할머니가 남긴 2백만 원 이야기를 듣고도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도 그 마음은 내게 없었다. 뒤늦게 엄마의 말이 크게 다가왔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165쪽. 대체 무슨 소용이지? 물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는 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는 게? 물고기는 물고기로만 살고 새는 새로만 사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자 너무 갑갑했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지? 신은 신으로만 살까? 신은 우주인가? 신은 우주인가? 우주는 우주로만 존재할까? 우주조차 우주로만 존재한다면 우주도 갑갑하다. 너무 따분하다. 세상은 칙칙한 해변과 먹먹한 하늘과 거대한 바다와 곧 바다가 될 빗줄기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살면서 봤던 찬란하고 눈부신 것들은 모두 환상 같았다.

167쪽. 나도 정말 몰랐다. 이별이란 이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일이란 걸. 이별은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 아닌가?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이별 중일까? 벌써 이별했을까? 남과 남이 만나서 사랑하는 사이로 지내다가 다시 남과 남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별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겠지만......완전히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젖은 채로 바람을 맞으니 추웠다.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계속 바라보고도 싶었다. 물이 물이 되는 정직하고도 허무한 광경을. 분노의 춤을 추는 비내리는 바다를. 정국이와 만나는 동안 행복해하던 이모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못된 말에도 꿈쩍 않던 이모를 이제는 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행복해본 이모는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170쪽.여전히 비가 내릴까?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180쪽. 엄마는 형편없어.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의 글자가 이어지는 걸 바라봤다.

아빠도 형편없지.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는 뭔가를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핑계가 필요해.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핑계. 네가 핑계가 되어 주면 좋겠어.

그렇게 쓰고, 엄마는 자기가 쓴 문장을 지우개로 천천히 지웠다. 엄마가 쓴 문장보다 그것을 굳이 지우는 행위가 엄마의 마음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모는 엄마를 '추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상대를 차갑게 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92쪽.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거 야광이다.

말해 주려고.

204쪽.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지나갔다. 나 말고는 전부 화목한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 부모님은 싸우지도 않고, 텔레비전에서 숱하게 본 다정한 가족처럼, 아빠 엄마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거라고.

210쪽. 미지는 천천히 길을 건너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차고지로 돌아가 버스를 탔다.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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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0 11:00 2022/12/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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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06 10:29

2022/12/06 끝나지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끝나지 않는 노래>

263쪽. 1997년말, 최악의 외환위기를 겪던 한국은 결국 IMF관리 밑에 들어갔다. 위태위태하던 명호의 사업도 단번에 무너져버렸다. 기업의 연쇄 부도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일부 부유층은 고금리혜택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살기 어려워지자 전장 후와 비슷한 이유로, 사회는다시금 강한 어머니와 현모양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은 억누르고 자식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쏟아졌다.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는 먼, 수다스럽고 욕심 많고 억척스럽고 무식한 엄마들에겐 '아줌마'라는 이름을 덧씌우고 무시하며 욕했다. 사회가 원하는 건 아줌마가 아닌, 오직 헌신과 희생밖에 모르는 엄마였다. '보리밥이 더 맛있다'고 말하던 엄마는 '자장면은 싫다'고 말하는 엄마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엄마랑, 나눠 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엄마가 아니라 오직 내 자식에게만 모든 젖을 먹이는 엄마였다. 

 

273쪽. 한 반에 두어 명은 꼭 따돌림을 당했다. 똑같거나 비슷한 것에 위안을 얻는 아이들은 상대의 다름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쟤 너무 뚱뚱해. 쟤는 목소리가 이상해. 쟤는 말을 왜 저따위로 해? 존나 재수없어. 생긴 게 왜 저래? 짜증나. 존나 빈대야. 잘난 체 쩔어. 아, 역겨워. 쟤 나한테는 9시도 안 돼서 잤다고 해놓고 성적 열라 잘 나왔어. 미친년.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존나 내숭이잖아. 착한 척하는 것 좀 봐. 아, 토 나와. 적당함을 지키지 못하거나 만만한 아이는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를 흉보고, 다음 날이면 그중 한 명을 다시 따돌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오해와 허물은 말 한마디로 쉽게 만들어졌다. 서너 명의 무리가 한 명을 따돌리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암묵적으로 그 아이를 상대하기 꺼려했다. 따돌림당하는 한 명을 이해하기 보다 무리에 흡수되는 게 몸도 맘도 편했으니까. 

 

324쪽.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언제나

'행복하다'는 말이어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에 조카가 태어났다. 오래된 친구도 아이를 낳았다. 너무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쳐드는 미안함과 걱정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미래를 긍정할 힘이 내게도 있을까. 동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두러웠다. 섣불리 상상할 수 없어다. 그렇다고 걱정과 불안만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내 감각의 끝은 끈질기게 그 세계만 가리켰다. 지금, 여기, 이 곳만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으나 자꾸 눈이 감겼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데, 고인 물에서나 풍기는 썩은 내가 났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긴 싫은데, 그것 아닌 냄새는 기억할 수 없었다. 글을 쓸 때면 내 손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나를 형성하는 감각이 죄다 이 모양인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가 고단하면 남들도 다 그럴 것 같고, 내가 안온하면 남들 역시 그런줄 아는, 난 아직 그 세계에 머물러 있다. 세계의 틈이 조금 벌어질 때마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글자로 옮겼다. 틈은 점점 벌어질 테고, 이곳의 공기 역시 변해갈 것이다. 틈인 줄 알았던 그것이 결국 전체가 되는 순간,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2011년 12월 최진영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144쪽. 사랑은 병이다. 이것은 문학적 수사나 낭만적 비유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몸고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 없던 것이 생긴다. 혹은 잠복해있던 것이 드러난다. 침투하고 분열하고 증식한다. 증식하기 위해 무언가를 끊이멊이 잡아먹는다. 착각. 오해. 욕심. 집착. 기만. 상상. 기억. 기대. 실망. 허상. 환상. 잡아먹을 것은 많다. 타인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만큼 해친다. 해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닌, 나와는 다른, 완벽히 다른 이물질이 몸과 정신에 들어와 나를 뒤흔들고 흩트린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격렬하게 반응한다. 조각나고 합쳐지고 작용하여 전혀 다른 것들이 새로 생긴다. 결국 내 안의 모든 조각과 요소가 재배치되는데, 그래서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고야 마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던 내 모습'이라고 말한다. 당연하다. 모를 수밖에 없다. 내 있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니까.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육체와 정신은 살짝 미치면서 강해진다. 싸우려는 것이다. 내 안에 침두한 그것, 나를 해치려는 병균, 흔히들 사랑이라고, 당신이라고 부르는 그것과, 사랑에 빠져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증상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열, 두통,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인들, 이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다. 때로는 그것에 완벽하게 삼켜지길 바라는데, 결국 완전히 삼켜지지 못하고 팔이나 다리나 머리통만 씹힌 채 뱉어지고 만다. 불구가 되어, 다시 나를 삼켜줄 또 다른 괴물의 입 주변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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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0:29 2022/12/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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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04 07:57

2022/12/04 스트레스

할 일이 너무 많아지면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이럴 때 가족이 옆에 있는 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좋은 건 혼자 가라앉지 않게 돕는다는 거고

나쁜 건 사소한 일에 화를 낸다는 거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동그란 구 안에 단단한 핵이 있고

그 핵을 둘러싼 젤리층 같은 게 있어야하는데

그 젤리층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게 여유가 없는 마음상태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해져도

마음의 진피가 영향받고 상처받는다.

나의 능력은 예전같지 않은데

동료들이나 타인들은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도움을 부탁해온다.

밤을 새워서라도 마감 안에 일을 끝내왔던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로

나는 그 일들을 꾸역꾸역 받는다.

그리고 지금처럼 젤리가 다 빠져나가버린

구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내게 상담을 받아보라 했다.

다시 상담을 받아볼까.

의지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인정을 해야할까.

의지를 가져야하는데

그 의지를 가지려는 노력 조차 안하고 있는

스스로를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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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07:57 2022/12/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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