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12/10 11:00

2022/12/10 튜브,내가되는꿈

튜브 145쪽. 뭐든지 한번에 한가지씩만 하는 겁니다. 밥 먹을 땐 먹기만, 걸을 땐 걷기만, 일할 땐 일만. 그렇게 매 순간에 충실하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은 성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등을 쭉 펴고 어깨를 여는, 목적 없는 단순함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비결이었다는 걸 김성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그것만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박실영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우린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다보면 자꾸만 소모적인 생각이 날아들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돼요. 생각이란 건 자신만의 선글라스 같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스위치부터 꺼야 하죠. 그다음은 쉽습니다. 낙엽은 낙엽으로 보고 전봇대는 전봇대로 보는 겁니다. 빨간 건 빨갛게 노란 건 노랗게 받아들이면 되죠.  

154쪽. 감각 자체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인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김성곤은 아영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중한 깨달음을 잊었고 대부분의 것들을 지루하고 피로한 일상을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155쪽. 어느 새 성곤의 감각은 그저 생명 유지를 위한 퇴화기관에 지나지 않게 됐다. 몸이 감지하는 것들은 투박한 이유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빨간불 앞에서 멍해졌을 때 빵소리가 나면 출발하고, 위스키 잔이 미지근해지면 얼음을 떨어뜨려 넣고, 맘에 들지 않는 화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용도 따위로만 말이다. 

삶이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구성된 서랍장이라면 성곤은 계속해서 한가지 서랍만 열고 있었다. 분노, 짜증, 울분, 격분, 우울, 좌절이 가득 담긴 서랍. 어느새 그는 다른 서랍을 여는 방법을 망각했다. 참다운 기쁨. 단어 안에 담아놓기 힘들 정도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서랍은 꾹 닫혀 있었고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흐드러진 봄꽃이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언제 꽃이 폈는지도 몰랐는데 계절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못한다.

성곤은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봐도 보지 않고 맛봐도 맛보지 않으며 들어도 듣지 않는다.

막상 말로, 소리로 된 음성으로 그렇게 사실을 고백하자 뜨거운 슬픔이 밀려들었다. 김성곤은 자조 섞인 웃음으로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몸이가진 그토록 많은 감각기관을 그는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것들은 그에게 입력되지 않았다.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 맛있는 음식, 누군가의 절망이나 슬픔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세상 무든 게 시시했다. 다 알고 있었고 지겨울 만큼 충분히 겪었고 새로울 건 없었으며 삶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무대였고 그는 그 위의 먼지일 뿐이었으니까.

퇴화된 감각들은 토라진 아이처럼 안으로만 촉수를 뻗었다. 자연히 성곤은 자신의 슬픔과 절망에만 과도하게 집중했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특히 가족을 탓했다.

애통하고 애달팠다.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바보 같은 자신과, 그 바보가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자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렸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 숨겨뒀던 서랍을 찾아 열어야만 잃어버린 영혼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래야만 그의 표정과 말투, 남에게 건네는 칭찬에 진심이 실릴 거라는 것을. 그러므로 김성곤은 자신이 어단가에 어딘가에 하찮게 유기한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순수하고 새롭게.

208쪽. -안드레아, 네 마음 안엔 아직도 피어나길 기다리는 작은 싹들이 있는 것 같더라. 나도 언젠간 그런 걸 꽤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다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해. 가끔은,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이 끌려오면 좋겠어. 내가 운전대를 틀면 인생도 조금은 그쪽으로 와주길 바라. 내가 핸들을 쥐고 싶어.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는 인생에 내가 끌려가는 것 말고. 너무 큰 목표지? 네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는 건 조금 더 작고 사소하고 이루기 쉬운 것들인데......

271쪽.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침잠되고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견디게 한 건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괜찮다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거나, 이대로도 좋다는 말은 눈물을 그치게 했으나, 냉정히 말해 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곧 그런 말들은 공허하게 휘발됐다. 나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한 건 언제나 다시 해보라거나 응원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은 내 내면의 담담한 어조였다.

응원을 받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도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었고, 다시 해낼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괴로운 시간을 겪을 때 나는 지금의 상황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미래를 떠올렸다. 아무리 길고 힘겨운 시간도 언젠간 '그땐 참 힘들었지'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될 거라고, 그 문장 끝엔 짧은  웃음이 걸쳐져 있을 거라고 기를 써서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고된 현재도 분명 그렇게 될 것다, 분명.

물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뒤에도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영원토록 따뜻한 바닷물 위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둥둥 떠 있는 속 편한 삶이란 없으며, 혹여 그 비슷한 것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장담컨대 그 삶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일 것이다.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비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러면 또 헤쳐 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기술과 혜안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먼저 읽은 친한 지인이 말했다. 김성곤이 가진 초능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지점에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초능력이 숨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차피 우린 자신마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의 애씀은 언제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나는 안주하지 않고 힘을 다하는 영혼들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가의 말을 빌려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을 깊이 응원한다, 라고.

<내가 되는 꿈> 20쪽.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기분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를 가격하는 생각.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21쪽. 언젠가는 네가 못하는 거를 네 엄마가 할 거고 네 엄마가 못하는 거를 네가 할 거고. 그런 거다. 사는 게. 지금이 영영일 것 같지만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30쪽. 우리는 꽃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같이 사진을 찍는 사이도 아니다. 불행한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행복을 연기해 버린다면 진짜 불행해지도 몰라. 

90쪽. 모욕감은 남한테서만 받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나를 모욕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92쪽. 마음을 글자로 전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수의 편지를 사랑한다. 한수의 편지를 읽으면 나란 존재가 (잠깐이나마) 좋아진다. 한수의 편지는 주사 같다. 읽을 때는 아픈데 읽고 나면 어딘가 나은 것만 같다. 지금보다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 

98쪽. 내게 편지를 쓰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 관해서만 가득 썼다. 이것이 지금 내 상태를 말해준다.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124쪽.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외갓집으로 이사 오고 중학생이 된 다음부터 종종 하는 질문. 어떤 그림에서 나란 사람을 오려 낸 다음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도록 내벼러 둔 것같았다. 난데없는 곳에 뚝 떨어진 나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원래 난 어디에 있었더라,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150쪽.나는 이 사람에게만큼은 비겁하지 않았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나를 나쁜 채로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나의 좋은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 둔 이 사람까지 지운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내 인생에서 20년 정도는 내 뜻대로살 수 없었던 시기였다쳐도 나머지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153쪽.나는 아직 이별이 서툴고 이런 식이 아니라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모두가 납득하는 이별 방식이 과연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맑게 떠났다. 할머니가 남긴 2백만 원 이야기를 듣고도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도 그 마음은 내게 없었다. 뒤늦게 엄마의 말이 크게 다가왔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165쪽. 대체 무슨 소용이지? 물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는 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는 게? 물고기는 물고기로만 살고 새는 새로만 사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자 너무 갑갑했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지? 신은 신으로만 살까? 신은 우주인가? 신은 우주인가? 우주는 우주로만 존재할까? 우주조차 우주로만 존재한다면 우주도 갑갑하다. 너무 따분하다. 세상은 칙칙한 해변과 먹먹한 하늘과 거대한 바다와 곧 바다가 될 빗줄기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살면서 봤던 찬란하고 눈부신 것들은 모두 환상 같았다.

167쪽. 나도 정말 몰랐다. 이별이란 이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일이란 걸. 이별은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 아닌가?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이별 중일까? 벌써 이별했을까? 남과 남이 만나서 사랑하는 사이로 지내다가 다시 남과 남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별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겠지만......완전히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젖은 채로 바람을 맞으니 추웠다.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계속 바라보고도 싶었다. 물이 물이 되는 정직하고도 허무한 광경을. 분노의 춤을 추는 비내리는 바다를. 정국이와 만나는 동안 행복해하던 이모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못된 말에도 꿈쩍 않던 이모를 이제는 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행복해본 이모는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170쪽.여전히 비가 내릴까?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180쪽. 엄마는 형편없어.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의 글자가 이어지는 걸 바라봤다.

아빠도 형편없지.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는 뭔가를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핑계가 필요해.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핑계. 네가 핑계가 되어 주면 좋겠어.

그렇게 쓰고, 엄마는 자기가 쓴 문장을 지우개로 천천히 지웠다. 엄마가 쓴 문장보다 그것을 굳이 지우는 행위가 엄마의 마음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모는 엄마를 '추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상대를 차갑게 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92쪽.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거 야광이다.

말해 주려고.

204쪽.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지나갔다. 나 말고는 전부 화목한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 부모님은 싸우지도 않고, 텔레비전에서 숱하게 본 다정한 가족처럼, 아빠 엄마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거라고.

210쪽. 미지는 천천히 길을 건너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차고지로 돌아가 버스를 탔다.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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