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12/18 16:39

2022/12/18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72쪽.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자유를 미리 포기하거나, 아니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람을 진짜 미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겪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를 옥죈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입 다물거나 아는 사실을 알지 않기로 선택해야만 이기는 것이라는 소리를 든는 것이다. 이 난감한 궁지에서 어떤 사람은 실패와 위험을 선택함으로써 반항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순응을 선택함으로써 죄수가 된다.

73쪽.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남들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분한 기분을 나는 안다.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늘어놓는 이야기꾼이 되기 쉽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 그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써 저주를 풀어줄 때까지 그는 그 이야기를 계속 말한다. 나도 가끔은 그렇듯 직접 체험한 일을 말하는 이야기꾼이었지만, 다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도 나의 체험이었다.

78쪽. 그래서 나는 슬쩍 빠져나가거나 사라지거나 도망치는 법, 긴장된 상황을 모면하는 법, 원치 않는 포옹과 키스와 손길을 피하는 법, 버스에서 옆자리 남자의 다리가 내 좌석으로 넘어오는 동안 내가 차지한 공간을 점점 더 줄이는 법, 서서히 손 떼거나 갑자기 증발하는 법을 익혔다.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기에, 존재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일단 그 전략이 몸에 배니,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버릇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십수년을 회피하며 살아온 뒤에 어떻게 갑자기 누군가에게 마음과 두 팔을 활짝 열고 다가갈 수 있겠는가? 오래 위협을 겪으며 살아온 탓에 이제 회피하기를 멈추고 상대를 진득ㅎ게 믿고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달아나는 것도 어려웠다. 가끔은 이러다가 내가 때 이르게 관에 드러누운 사람처럼 혼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82쪽.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는 나도 나를 믿기가 어렵다. 그래도 끝내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다른 모두와 대립하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미칠 것 같을 테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86쪽. 하지만 강간은 겪지 않았다. 그러나 내 친구 중에서는 많은 수가 강간을 겪었고, 직접 겪었든 아니든 모두가 그 위협을 피하는 일에 젊음을 허비했으며, 지금도 세상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고 있다. 설령 당신이 붙잡히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을 붙잡는다.

 

101쪽. 나는 내 몸이 실패작이라고 확신했다. 키 크고, 마르고, 흰 내 몸은 우리 문화가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전반적인 잣대에 따르면 최선으로 여겨지는 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몸을 잘못된 점, 실패한 점, 확인된 수치스러움, 잠재된 수치스러움의 집합으로 여겼다. 세상은 여성의 몸에게 무릇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규칙들을 적용한다. 모든 여자는 자신이 그 이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늘 잴 수 있다. 그 거리가 설령 아주 멀진 않더라도 말이다. 마약 형태 측면에서의 미진함을 해결하더라도, 인체의 기능과 체액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은 늘 이상적 여성성에 배치되는 것이거니와 온갖 분비물과 농담과 비웃음이 우리에게 늘 그 점을 상기시킨다. 여자는 늘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면 여자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현실을 만드는 조건들을 거부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139쪽. 타인이 되어보라는 요구를 그렇게 자주 받으면, 자아 감각이 훼손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만큼은 반드시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나오 비슷한 사람,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 나와 같은 꿈을 꾸고 나와 같은 싸움을 싸우는 사람,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함께해야만 한다. 또 가끔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 타인이 되어보는 시간이 너무 적은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며 상상력이 발달하지 못하는데, 자아를 바꿔보고 자아에서 벗어나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은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법이다. 상상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이 겪기 쉬운 병 중 하나다. 대부분의 남자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만을 저바는 유년기 초부터 그런 증상을 발전시킨다. 

이중의식은 백인 문화에서  흑인이 겪는 경험을 가리킬 때 곧잘 쓰이는 용어다. 이 표헌은 W.E.B. 두보이스가 19세기 말에 쓴 글을 통해서 유명해졌다.(그런데 두보이스는 대부분의 남자 작가들이 그보다 더 나중까지도, 이를테면 제임스 볼드윈까지도 그랬듯이 인간을 남성으로, 심지어 한 명의 남자로 지칭했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일곱번째 아들이다. 베일을 쓰고 태어난 자, 투시력을 타고 태어난 자다. 이 세상은 그에게 진정한 자의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도록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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