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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15
    버릴 것
    나은
  2. 2006/02/14
    yesterday.(1)
    나은
  3. 2006/02/11
    나은
  4. 2006/02/08
    나은
  5. 2006/02/05
    드라마 시청 소감(4)
    나은
  6. 2006/02/05
    솟구친다(1)
    나은
  7. 2006/02/01
    네트워커
    나은
  8. 2006/01/31
    마디
    나은
  9. 2006/01/31
    하루
    나은
  10. 2006/01/28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나은

yesterday.

  • 등록일
    2006/02/14 00:59
  • 수정일
    2006/02/14 00:59


서울 낮 최고 기온 영상 10도.

온몸을 감쌌던 환한 오후 햇살과 따스한 기운.

but.

마음 속은 온통 먹구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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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11 08:56
  • 수정일
    2006/02/11 08:56

뿌연 안개 속에서 발갛게 떠오른 해를 보았다.

가까이에선 열기와 화염으로 모든 것을 태워 버릴 테지만,

오늘 본 해는 참 말갛고, 동그랗고, 이뻤다.

일어나긴 힘들었지만, 덕분에 가볍게 시작하는 아침-

새터 홍보를 위한 신입생 연락처 공개 여부로 시작된

고대 입학처 점거농성이 타결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가볍다.

대중행동의 승리-

 

 



주문(呪文) ..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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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08 01:14
  • 수정일
    2006/02/08 01:14

자신(自信).
자위(自慰).
자책(自責).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갈피를 잡으려 애쓰다

 

어쨌든

자뻑은 절대 경계

자만은 나의 적

자부심은 조금 줄여도 될 터

 

이를 위해

자기 수양에

힘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사실 진실은,

믿음으로 충만한

동지들을 얻는 것이

더 큰 과제.

그것이 내가 얻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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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청 소감

  • 등록일
    2006/02/05 23:58
  • 수정일
    2006/02/05 23:58

오랜만에 드라마를 봤다. 서울1945.

울었다. ㅠ.ㅠ

한 혁명가를 탈출시키려다가 죄없는 소녀들이 일본 헌병들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

 

함흥 제련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본 노무자들과의 임금차별 철폐,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공장점거파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파업투쟁의 배후에는 문동기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콤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직원들은 유혈침탈을 우려해 문동기를 미리 피신케 하려 하지만 그는 파업현장에 눌러 앉는다. 비장한 얼굴로 파업노동자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는 것. 여기까지가 토요일 밤에 본 부분이다. 사실 그 장면 보면서 저거 좀 아닐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뜻은 가상하나 조직이 자칫 궤멸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후선은 보위가 되어야지. 쁘띠 출신들의 소부르주아적 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수다한 에피소드들에서 겪지 않았는가.

 

그리고 오늘 10화. 헌병대는 배후에 대한 무조건 사살 방침을 가지고 공장을 침탈한다. 겨우 공장을 빠져나오긴 했으나 이미 함흥 전역에서 삼엄한 체포망이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배를 타고 청진으로 도피하려 하나 결국 부두에서 발각되어 사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탈출을 돕던 한 가족-아버지와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은정, 그녀의 어린 두 여동생-이 희생된다. 아버지는 총에 맞아 의식불명이 되고, 헌병대의 무차별 사격에 어린 두 여동생은 끝내 숨지고 말았던 것. 혹시나가 역시나였던 것이다. 판단오류가 너무나 큰 희생을 불러왔다. 얼마 전 읽었던 경성트로이카에서도 이재유의 순간적인 판단오류 혹은 망설임이 조직의 붕괴라는 결과를 낳았었다.

 

어쩌면 개인은 너무나 약한 지도 모른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끊임없이 교훈을 각인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지혜와 노력을 모으는 것.

그게 진정한 대안이겠지.

나머지는 운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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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친다

  • 등록일
    2006/02/05 00:53
  • 수정일
    2006/02/05 00:53

짜증이 솟구친다.

한 동지의 자기평가서를 읽었다.

다 내탓이오 헤벌레 하면서 자학하는 못난 심성은 나에게도 있으니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몇 개의 문구를 마주하고서는 짜증이 닥치지 않을 수가 없다. '있는 사람도 쳐 낸다', '정리시키는 과정이 폭력적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학을 뗀 것은 상식이 안 돼 있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그 누가 '완벽'을 말했던가? 요구했던가? 절대기준을 요구했던가? 아니다. 솔직히 소박하게 말하자면 딱 두 개였다. 맺은 약속은 지키자.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 한 두 번 참아주었나? 도대체 사회생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을 놓고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심히 걱정되기 짝이 없다. 운동을 안 한다 해도 사회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애도 아니고, 나이도 이십줄이나 쳐먹은 것들이 하는 짓거리라고는. 역으로 성실히 활동에 임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무던한 상처를 입었다. 부인할 수 없는.

 

할 만큼 했다. 나도 살아야겠기에 내가 살아 있을 만큼만 남겨 두고 할 만큼 했다.

절대 그런 일 없으리라고 믿었던 동기마저 전화 안 받는 거 보고 비웃음도 픽 던졌다.

 

예전처럼 자학하지는 않는다.

더럽고 속쓰려도 가는 거다.

다만, 좀더 치밀하게- 능구렁이의 허물을 태워버리고.

 

 

p.s : 나한테 조직가의 기질은 지금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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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 등록일
    2006/02/01 00:00
  • 수정일
    2006/02/01 00:00

어느 포스트에서-

 

"네트워커는 조직가이고 활동가다. 고립된 사람들, 고립된 사회의 단편들을 엮어 소통시키려는 사람이다. 자본은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인 관계를 상품관계로 대체하기 위하여 상호 소통을 단절시키고 분절화시킨다는 점에서 네트워커는 자본에 대항하는 활동가다. 서로 분절된 것을 엮어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매우 창조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책표지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계급주체의 네트워크

 

얼마만큼,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너의 모든 능력을 다 쥐어 짜내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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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 등록일
    2006/01/31 23:54
  • 수정일
    2006/01/31 23:54

...님의 [미래는 누구에게 있는가.] 에 관련된 글.

가끔씩 이 동지의 한 마디는 날이 바짝 선 

비수(匕首) 처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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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등록일
    2006/01/31 01:12
  • 수정일
    2006/01/31 01:12

약간 알딸딸한 상태다. 술자리에 등장했던 술의 양은 맥주 2000cc * 3에다 마지막에 500 한 잔씩을 나눠마셨으니 어쨌든 1.5리터 들이 한 병은 마신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상태임에 틀림없다. 좀더 많은 동지들과 함께 할 수도 있었으나 개의치는 않는다. 조촐한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가슴팍에 다가오는 그 무엇은 부재한 느낌일 지라도 큰 부담없는 편안한 자리였음에는 틀림없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으나 중간중간 결의가 함께했다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린 아직 젊기에 더 괜찮은 미래가 있을 수 있기에 또 무언가를 약속하고 결의했나보다. 지금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나누어 가지고 있겠지-

 

아침에 잠이 깨고 눈을 감은 채 관계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동지적 관계라는 말만큼 애매모호한 것도 없지 싶다. 동지라는 호칭의 이중성.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편의상 동지라고 칭하나 우리는 동지라는 단어에 또 많은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무심코 동지라고 부르지만, 또 기실 아무나 동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 사람 앞에서 동지라고 부르는 것을 떠나 뒤에서도 동지라고 부를 때, 일관된 동지라는 호칭만이 진심으로 신뢰를 담고 있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과연 동지적 관계란 무엇일까. 어쩔 때는 정말 그런 듯 싶지만 나중에 되돌아 보면 사무적 관계 이상 아닌 것을 느낄 때의 허탈함과 비애, 그리고 후회로 덮쳐오는 느낌들을 수년 째 몇 번 씩 반복하면서도 아직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내가 동지라고 호칭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말 동지적 관계인가. 우리는 동지적 신뢰를 상호 확인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런 동지와 그렇지 않은 동지의 차이는 또 무엇인가. 그렇지 않은 관계는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또다시 아쉬움이 발목을 잡길래 다만 마음 속에 한 문장 새겨넣는다. 친구여, 집착을 버리세.

 

아직 한산하게만 느껴지는 도심으로 나와 농성장을 찾았다. 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않다. 현수막이 거두어진 깔끔한 회사 건물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반 년을 넘게 자리를 지켰던 천막은 혹시 이미 거두어지고 없는 것은 아닐까. 혹시 있다 하더라도 텅빈 천막 안을 들춰 보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쓸쓸한 풍경을 카메라에라도 담아 두어야 하나.

얼굴을 아는 몇 몇 동지들이 보이고 - 그러나 결코 환히 반갑게 웃을 수만은 없는, 하지만 사람을 미워할 이유야 별로 없다 - 아무것 아닌 것처럼 능숙하게 외교적 태도로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아쉽게도 나는 여전히 표정연기를 잘 못한다) 천막은 조금씩 조금씩 정리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내일, 모레 또 무슨 일이 생길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다려 본대들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다. 소주 한 잔 진하게 하면서 달게 비판해 달라던 그의 말을 진심이라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자신들의 투쟁력에 기반하지 않고 지위를 활용해 권력에 기대어 투쟁을 정리한 어용짓거리들과 다르게 보여줄 수 없는 능력이 한스러웠다. 대책을 만들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뼈아팠고, 안이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을 쿡쿡 찔렀다. 어쩌면 이런 상황과 결과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굼떴던 것은 아닐까라는 기분나쁜 생각들을 하면서 언덕길을 올랐다.

 

동지에게 선물받은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진 속의 녀석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너의 사상과 실천은 대체 이 세상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땐 어른들에게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입에 발린 칭찬을 곧잘 듣곤 했었는데, 저 녀석의 눈깔은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그래도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포토샵으로 장난질을 친다고 해도, 뿌연 배경에 비해 선명하게 잡힌 피사체가 그래도 나의 정신을 파고들면서 단련을 요구하고 긴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어쨌든 또 하루는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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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 등록일
    2006/01/28 14:35
  • 수정일
    2006/01/28 14:35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조현문

 

 


감옥에서 나온 지 벌써 3개월
쉴 만큼 쉬었다
그러나 눈썹 밑을 파고드는 이 불안함은 무엇인가
활동은 온전하게 내 것이었는가?
칠순 아버지는 갈수록 술주정이 심해지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시간을 보내려던
칠순 어머니는 매일 양발 공장으로 출근한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아내는 간호사,
오후 3시 병원으로 출근한다
아들 강욱이, 여동생 딸 민이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돈 몇 푼 번다고, 부업을 그만두라고 해도
어머니는 한사코 양발 공장으로 출근한다
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운동은 단순한 결의가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고만고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땀과 피로와 아이의 투정을 견뎌야 하는가
지하실에 털어 박혀 종일 술을 드시던 아버지는
기어코 물건을 집어던진다
벌써 이 고만고만한 삶에 지쳐 간다
생활은 자꾸 변명이 되어 간다

 

어느새 40줄에 들어선, 감옥에 몇 번 갔다 왔던 이형은
술을 몇 잔 들지 않았는데 벌써 혀가 꼬부라지고 있다
10여 년간의 활동,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 가두에 대한 매력은 내 청춘을 소진시켰어. 투쟁의 全科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질 수 없었지. ―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었어 ― 기관지의 문필가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 떠나갔고 전통은 수립되지 않았어. 난 ― 가두투쟁의 기술만을, ― 정권타도의 ― 슬로건만을 앙상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야 ― ― 부모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내는 집을 나가고, ― 보증금 100에 월 13만원.

 

정말 이런 게 아니었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어
말없이 이형의 손을 잡는다
이형, 나이 사십에 더 비참한 것은
혁명을 꿈꾸지 못하는 거야
활동의 지울 수 없는 상처는
관념이 아니라
오직 새로운 실천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온전하게
넘어설 수 있어

 

일상의 우연한 계기가
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 강욱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탄다
강욱이는 지하철 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정리해고 반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벽보가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벽보를 지나쳐 간다
벽보를 지나쳐 가는 것은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서 떨어진 벽보를 다시 붙인다
눈썹을 파고드는 불안과 변명을 함께 떼어 붙인다
아들 강욱이가 머리띠를 묶은 노동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모둠발, 강욱이의 발목에 힘줄이 선다
떨어진 벽보를 다시 붙인다

 

아내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는 내게 두렵다고 한다
그래,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족을 지키고 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 두려운 것은
싸움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다
혁명을 꿈꿀 용기조차 없는 것이다
이 고만고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피로와 땀을 견뎌야 하는가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가건물 같은 생활에 전혀 새로운 관계의 햇살 한 뼘 들어찬다
노동조합 속에서 새로운 일을 찾은 아내는 웃는다
그래 이게 '내 삶이다'
잊고자 하는 패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 내 삶이다
때늦지 않은 걸음으로
저토록 확실하게 피는 생활―혁명 속으로
내 마지막 삶의 불꽃으로 간다

 



아! 봄이다

 

 

초록으로 물오른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새파랗게 싹을 틔울 때
애인은 내게 말했다

쁘띠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서 무슨 운동을 하겠어요
당신은 어느새 룸펜이에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더 이상 경제적으로 당신을 못 도와줘요
당신의 생활비는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좋아요, 자본주의는 공짜가 없다고 당신은 말했어요
돈 버는 시간 이 땅의 노동해방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노동해방을 위해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모든 투쟁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지도 못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정력적으로 선전·선동하지도 못하고
당 건설의 흐름을 조직하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당신은 매일 새벽이 되서야 자고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겨우 저녁때가 되서야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그것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비디오나 빌려 보다가 잠만 자고 있어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먹어서 살만 찌고 있어요
전위를 이야기하면서도 당신 몸 구석구석에는
게으름이 코딱지처럼 붙어 있어요
세상을 처음 본 새싹은 아름다웠다

운동은 선언이 아니에요
남을 조직하기 전에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초록으로 물오른 바람이 나뭇가지에 새파랗게 싹을 틔울 때
내 가슴속에서도 싹이 돋고 있었다
관성으로 늘어지는 내 활동의 바로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지의 눈빛,
아! 봄이다

 

 

 

현장에 뿌리내리다 2

 

 

현장 조합원을 만나러 가는 길
난 택시 값 2만원을 준비한다
오늘도 그를 만나지 못하고
택시 값을 날릴 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겨울나무는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갔던 빛을
서둘러 거두어들이고 있다

현장 조합원을 만나기 위해
벌써 수십 차례 전화 연락과
약속을 잡았지만
그는 항상 바쁘단다
현장 투쟁이 바쁘단다
조합을 떠나는 조합원들을 설득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단다
나는 급기야 그의 집 부근에서
자정이 가까워 오도록 기다린다

아주 오랜 시간
그의 생활에 좀더 가까이 갈 것이다
― 현장 속으로!
그가 쌓아 올린 학출에 대한 불신의 탑에
돌 하나를 보태지는 않을 것이다
― 생활·투쟁, 바로 그의 곁으로!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 기다림에 지쳐 돌이 되어도 좋다
그러나 난 그가 동지라는 말 한마디로 날 호명할 때
― 집 부근이 아니라 파업 투쟁 속에서, 바로 그의 곁에서
돌이 된 내 몸은 사르르 젖이 돌 것이다
돌 속에서 마침내 꽃을 피울 것이다

 

자정은 가까이 오고
자정은 그처럼 말이 없다
그를 기다리는 끈기만큼
자정은 새벽으로 가는 통로가 되고
그 끝에는 악수가 준비되어 있다
난 이 어둠 속에서 손을 따뜻이 한다
저 쪽에서 그가 오고 있다

 

from 해방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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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2 (부제: 수면의 3대 법칙)

  • 등록일
    2006/01/28 12:47
  • 수정일
    2006/01/28 12:47

이것도 옛 기록을 살펴 보다가 발견한 것-

 

 

<< 수면의 3대 법칙 >>

(참고로 이 모든 현상들은 고딩 교실에서 가장 확실하게 발견됨)

 

1. 도미노 법칙

-옆 사람이 자면, 나도 자고 싶다.

 

 

2. 뉴튼의 관성의 법칙

-한 번 자고 나면, 계속 자고 싶다.

 

 

3.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잠을 잘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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