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패율제에 대한 다른 생각

자한당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더민당에서조차 정의당을 공격하면서, 공격의 한 소재로 삼는 것이 '석패율제'다. 더민당은 "예전에 우리가 도입하자고 했을 때는 반대하더니 이제와서 왜 하자고 우기냐?"고 한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그러면서 더민당과 자한당은 정의당이 주장하는 석패율제가 심상정을 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따져보면 그런 결과가 예측되니까. 그런데 과연 그런가?

석패율제의 내용과 도입논란에 관한 사항은 다음 글을 보면 잘 설명되어 있다.

NESWTOF: 석패율제, 과거엔 민주당이 추진하고 진보정당 반대했다

구미의 아이돌 김수민 전 시의원의 분석이다. 여담이지만 난 김 전의원의 입장이나 분석이 정말 재밌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고 그 정열이 부럽기도 하고. 각설하고, 이 글에 보면 석패율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에 따르면, 김수민은 석패율제에 일정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김수민은 "그 때 석패율제와 이 석패율제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목적과 내용이 다르다는 거다. 예컨대 과거에는 비례성을 낮추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이번에는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거다.

여러 측면에서 이번에 정의당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석패율제는 나름 긍정적인 것이라고 김수민은 이야기하지만, 난 예전부터 이 석패율제라는 건 불필요한 제도라는 입장이다. 김수민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저러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과연 이런 제도를 도입할 의미가 있느냐는 차원에서 회의적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김수민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비례대표경쟁이 치열함에 따라 능력있는 사람들이 낙선을 하게 되는 경우, 이들이 지역구 출마 등으로 당에 기여한 바 등을 고려하면 당선의 기회를 늘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건 민주노동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한당이나 더민당도 마찬가지고.

유권자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고 정치혐오를 심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그 정당에 국한된 혐오가 된다. 반대로 이런 과정에서 전체 정치판으로 봤을 때는 떨어져야 마땅한 사람이 당선된다면 정치혐오는 해당 정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 정치판에 미치게 된다. 더 광범위한 정치혐오가 우려되는 거다.

기실 이런저런 방식을 다 따진다면 소선구제고 비례대표제고 어차피 다 똑같다. 그럼 다 하지 말아야할 것 아닌가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굳이 선택의 여지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경우의 수를 수도 없이 따지게 만드는 방식들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간단하게 갈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간단한 건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가 가장 간단하지만 이게 워낙 문제가 많으니 바꾸자는 거고.

석패율제에 대해서 나는 김수민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만, 어쨌거나 이번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기실 석패율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패권을 쥐고 흔드는 거대 보수 양당이 결코 자기 지분을 내놓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무장하고 있다는 거. 이 상황에서 패권의 주축 중 하나인 더민당이 내세우는 '정치개혁'이라는 게 애초에 어떤 의미인지는 너무 뻔하게 감이 잡히는 거고.

물러설 수밖에 없는 정의당의 모습은 왜소해진 한국 진보정치의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슬프다.

 

<추가>

정의당과 더민당이 이번에는 이중등록제를 두고 밀당을 한다는 기사가 떴다.

뷰스앤뉴스: 민주-정의, 이번엔 물밑서 '이중등록제' 밀당

석패율제와 이중등록제의 차이는, 석패율은 지역구 후보 전원이 비례후보로 동시에 명부에 올라가지만, 이중등록제는 지역구 후보 중 일부만 비례명부에 올리는 거다. 왜 이런 꼼수가 등장하는가? 그건 더민당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맞춰주려는 이유때문인데 지역구 선거지형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수민의 글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더민당이 석패율을 물고 늘어진 이유는 지역구의 선거지형이 더민당에게 유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석패율 계산을 위해 필요한 건 지역구에서 얼마나 득표를 했느냐인데, 정의당의 경우에는 이를 위해 더 많은 지역구에서 출마를 해야 한다. 출마만 하는 게 아니라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다. 이게 자한당과 대립하는 입장에서 더민당은 정의당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므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거다. 즉 정의당이 더민당 표를 갉아먹게 됨에 따라 자한당과의 대결에서 불리해진다는 거다.

더민당 입장에서는 석패율제가 없으면 정의당이 지역구 출마의 유인이 줄어듦으로 인해 당 내의 비례후보 경선에 신경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고, 지역구 출마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단 지역구 후보들 간에 더민당과 정의당이 다툴 일이 줄어들게 되고, 선거운동에 있어서도 자한당과 정의당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보다는 자한당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어 선명하고 편리하다. 그러니 석패율제를 안 받겠다고 했던 것.

그런데 이제 독일식의 이중등록제를 한다는 건 정의당이 더민당에게 지역구 출마자 수를 줄여줄 여지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정의당의 입장에 좀 더 가까운 제도적 변환을 더민당이 허용하도록 유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중등록제는 오히려 심상정 당선보험이라는 혐의를 짙게 만든다. 어차피 당선이 목적이라면 전국적으로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 명부에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인데 지금 정의당에선 그 득을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심상정 뿐이다.

이래 저래 선거법은 '개혁'이라는 말이 우습게 될 정도로 걸레쪼가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패스트트랙 같은 거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뭐 어차피 뒷골목 서생이 하는 말 따위야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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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7 12:22 2019/12/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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