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물론, 오얏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친 격이거나
외밭에 앉아 신발을 고쳐신은 경우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선의'로 일반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못한 범위를 혼돈했다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
'아'와 '어'의 차이가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법학의 학적 의의이자 동시에 그 한계일텐데,
그 의의와 한계를 파는 것을 업으로 했던 사람이 이런 사건에 휘말린다는 걸 어찌 이해해야 할까?
이걸 일종의 기부로 봐야 하나, 아니면 증여로 봐야 하나?
어떤 것으로 보든 법적으로 여러 문제가 생길텐데, 이것이 선의라는 말 하나로 해결될 것일까나...
단일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며,
상대의 빈한한 상황이 저어되어 순전히 '선의'로 제공했고,
'선거와 무관한' '가장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다는 것,
이런 언술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모쪼록 거취표명을 명확히 해야할 듯.
그나저나 저쪽에선 벌써 십자포화가 날아오기 시작했는데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참...
어떤 사람이 표상하고 있는 가치를 신뢰하고, 그 가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그리고 당신의 근육을 보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타락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당신은 당연히 그럴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 타락을 단정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온 내 목소리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저 지나가는 확성기에서 무책임하게 반복되는 소리들을 내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그 타락이 정말 타락인지 아니면 그저 손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