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상당히 재밌는 현상이 발견된다.

 

첫째, 정당정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의문. 그나마 유일하게 정당체제를 운영하고 있는듯이 보이는 곳은 한나라당인데, 그나마도 안풍에 정줄을 놓은 듯 하고.

 

둘째, 그 와중에도 정치지형을 만들어가는 두 세력이 보이는데 하나는 검찰,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혁신과 통합'. 근데 이 구도가 상당히 흥미롭다.

 

먼저, 검찰의 행보인데, 정치검찰로서의 위상을 지금만큼 극명하게 드러내는 시기가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검찰이 정국을 창출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과거의 정치검찰이라는 것이 정권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양치기 개정도의 수준이었다면, 현재 상황은 정치권보다 한 발 앞서 정국 자체를 자신들이 운영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곽감사건.

 

사실상 이 사건의 핵심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및 이를 기반으로 향후 전개될 2012의 정국을 정치검찰들이 의도한 방향대로 전개하고자 하는 시나리오가 먹힐 것인가 좌절될 것인가 하는 것. 결론만 말하자면 그 의도는 처음부터 잘못된 수순을 밟았다고 보는데, 예컨대 곽감이 이렇게 버틸 줄 모르고 검찰이 위력을 발동했다고 한다면 검찰 수뇌부의 개념은 거의 바닥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뻔히 눈에 보이는 행보를 보이는 검찰의 정치적 행보는 종국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공안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이 아예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직 대통령이 검찰 독립 운운했던 것은 순박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아예 검찰을 법무부에서 뽑아 내 법원의 지휘 아래 두던가 해도 모자랄 판국에 시스템적인 조치를 선행하지 않은 채 검찰 독립 어쩌구 할 때 아이구, 이거 망했구나 했더랬다. 과거야 흘러갔으니 이야기 더 붙여봐야 손가락만 고생이겠다만, 이 검찰을 그대로 놔뒀다가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검찰이 벌이게 될지 깜깜하다.

 

다음으로 '혁신과 통합'인데, 이들의 정체성이 뭔지 도대체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당신들이 현실정치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정치인으로서 제 본색을 실현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정치판을 만드는 역할까지만 수행하겠다는 건가 묻고 싶을 정도. 혁신과 통합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정치인 혹은 정당인은 기껏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김기식이나 조국 같은 부류들을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언제까지 실질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위치에 머무르고자 하려는가 이다. 사실 그동안 정치판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의 주된 비판지점 중 하나가 바로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책임정치'라는 것이 그것이고, 정치인들의 무책임함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을 하던 집단이 바로 이들 시민단체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이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노는 신선들이 하계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워하는 외관을 띠면서, 실제로는 단일화니 통합이니 하면서 중간에 끼여 거간꾼 노릇을 마다하지 않다가, 정작 일이 지들 뜻대로 성사되면 모든 게 자신들의 덕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뒤로 물러나 욕이나 실컷 하다가 때되면 다시 모이고...

 

뭐하자는 수작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정치판에서 직업적 정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손발에 똥 묻히며 더러운 꼴 다 보고 스스로도 더러운 구덩이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혁명이 아닌 제도적 전환의 더디고 더딘 발자욱을 띠게 된 것은 밖에서 큰 소리 아름다운 소리 냈던 사람들의 덕분도 있지만, 바로 그 똥통에서 드잡이질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과정을 거친 다음에 보면, 정치인들이야 욕을 처먹는 정도에 그칠지라도 그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밖에서 선수질 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지만서도 스스로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때가 되면 뭉치고 뭉쳐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뭘까, 이 사람들은...

 

정치 하지 않으면 정치를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치인 이상의 범위에서 정치를 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도덕적 혹은 윤리적 행위인 것처럼 포장하고, 결과에 대해선 책임에서 자유로우며 과실의 취득권은 그대로 누리는 이 기이한 집단들의 정체성이 뭔지 알 수가 없다면, 이들이 비난하는 정치는 그럼 뭐란 말인가?

 

아닌 말로, 혁신과 통합이 내세우고 있는 주된 내용은 '반 MB, 반 한나라당'으로 요약되는 수준인데, 이거야 뭐 2012에서 승리하게 되면 바로 해소되는 문제이고, 따라서 주장하기도 쉽고 결과를 얻기도 쉽고, 만일 주장한 대로 되지 않으면 또다시 국개론이나 20대 개객끼론으로 피하면 될 일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준에서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긴 하나, 그럼 정권을 바꾼 다음에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건 도대체 뭔가? 

 

뻔한 예측이긴 하나, 2012에서 정권이 바뀌면 이 사람들, 2017에 가서 다시 수구세력의 위협을 들먹거리며 비상한 시기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진보의 위기를 '혁신과 통합'으로 극복하자고 하면서 통 큰 단결, 구동존이,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어쩌구 하는 데 한 목소리 내며 또다시 뭉칠 것이다. 2012에서 정권을 바꾸지 못해도 마찬가지. 2017에서는 사라지지 않은 타도의 대상을 다시 구호의 전면에 내세우며 예의 그 '혁신과 통합'을 부르짖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훌륭하신 분들인지는 잘 알겠으나 그 훌륭하신 분들이 기껏 모여서 한다는 소리가 쪽수가 딸리니 함 모입시다 하는 정도라면 그건 대실망. 쪽수 딸리니 하나로 집합하자는 소리 하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가 그 쪽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만 요원하기 이를 데가 없다. 뭐하러 그 짓을 하겠나? '똥통에 밀어 넣을 넘, 한 넘만 만들어 밀어봅시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똥통에 들어가겠다고 하진 않는 분들에게 기대할 것이 따로 있다는 건지...

 

여하간 답답한 것은 소위 진보세력이라는 집단, 혹은 진보 정당들이 이런 사람들의 이빨에 질려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는 거. 한가위 지나고 나면 뭐 좀 달라질라나 모르겠다만,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으로 판 자체가 뒤집어지고, 이렇게 갑작스러운 뉴페이스의 등장만으로 정당들이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운동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 되겠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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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1:01 2011/09/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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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답답... 이 글은 e노트로...

  2. 결국 곽 교육감 구속이네요....

    근데 정말이지 '혁신과 통합'류의 인간들(조국, 김기식, 백낙청, 박석운 등등)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이 사람들을 보면 조선시대를 주름잡은 산림(송시열, 송준길 등등)들을 다시 보는 기분이네요.
    이른바 '훈계 정치' 내지는 일본 식으로 말하자면 '막후 정치'..
    이런 빌어먹을 인간들이 한국 정치를 더욱 막장으로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은 이런 현대판 '산림'에게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게 뭐하는 꼴인지.....

    • 구속은 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다가 결국 이렇게 되고 나자 사방에서 욕만 들어먹고 있습니다. ㅠㅠ

      어쨌든 새삼, 그러면서도 지긋지긋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은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답보상태죠. '무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들이 무능력하다고 이야기할 거 같으면 구체적인 부분을 짚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군요. 그게 매번 그러기에는 넘 번거로워서요. ㅡ.ㅡ;;;

      '진보-좌파'라는 이질적 단어의 조합이 언제나 낯설지만, 적어도 이쪽 판에서 뛰는 분들이 이젠 얼굴에 철판을 좀 깔았으면 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혁명할 거 아니라면, 그넘의 리더쉽이라는 거라도 제대로 좀 발휘했으면 싶은데, 이분들은 아직 그 정도로 뻗대고 깃발들고 뛸만큼 낯이 두꺼워지지 않았는가 봅니다.

      이젠 정당정치를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그 허울뿐인 정책정당이니 평당원이 주인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젖혀 두고, '나를 대통령으로~!'라고 선언하면서 뭔가 보여줄 때도 되었는데, 이게 무슨 명망가가 어쩌구 하는 소리 한 번 나오면 죄다 깨갱하고 면피하기 바쁘니...

      그러다가 인물 하나 툭 튀어나오면 정당이고 나발이고 순식간에 초토화되구요, 아유 그냥 요샌 볼만 합니다. ㅎㅎㅎ

  3. 안녕하세요. 옛날(주로 2004년)에 뻥구라닷컴 블로그 자주 들락거리며 좋은 글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블로그 접는다고 하셔서 많이 아쉬웠는데 오늘 검색으로 들어온 링크에서 낯익은 URL이 눈에 띄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진보정치(조국의 진보집권플랜 할때의 진보 말고..:)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무기력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만의 비전과 전망은 실종된채 반mb 연합 프레임에 갇혀 이리저리 휘둘리는 형국이랄까. 정신줄부터 잘 챙기지 않으면 휩쓸려가는건 시간문제일듯하여 깝깝합니다. 여하튼 행인님 글을 다시볼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 종종 들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