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배달에 대한 이념적 소비의 가능성은?
사람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며 인도 위를 무한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두 가지 감정이 있다. 하나는 신경질 난다는 거, 다른 하나는 저 남도 사투리로 "짠하다"는 거.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감정은 내 경우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동시에 발동한다. 이러다 사람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라는 화딱지가 왼쪽 가슴에서 일어난다면 그와 동시에 먹고 사는 게 참 힘들구나 하는 측은함이 오른쪽 가슴에서 일어난다.
얼마전 교정에서 음식배달을 하던 오토바이와 자전거타던 학생이 충돌하는 사고를 목격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어쨌건 배달하던 사람은 연신 사과를 하면서 학생의 상태를 살피는데 신속하게 나타난 교내 관리인 아저씨가 관리본부에 전화를 하더니 사고를 일으킨 음식점의 교내 배달을 당분간 금지하라고 명한다. 즉 이 음식점 배달 오토바이는 교내출입이 금지되는 거다. 다친 학생도 아는 학생인데다가 그 음식점 배달원도 낯이 익은 사람. 참 답답하기도 하고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지난 세월 하염없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대던 영삼옹의 선견지명때문이었는지, 이 땅에 오늘날 하루 평균 120여만 마리의 닭이 유명을 달리한단다.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약 15kg의 닭을 먹어 치운다는데, 오호라, 영삼옹의 후예들이 도대체 몇이나 된다는 말인가?
암에푸 터지고 나서 이 땅 40대 이상 직장인의 절반이 프랜차이즈 동업자의 길로 나섰다는 뜬금없는 농지거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진출한 업종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닭집이었는데, 아무튼 동네 방네 우후죽순 격으로 치킨집에 피자집에 온갖 잡다한 외식업이 골목마다 간판을 걸었더랬다. 지금도 사정은 여하히 변한 바가 없어서 그렇게 눈만 뜨면 어제 있던 치킨집이 오늘 피자집으로 변하고, 얼마전 개업했던 분식집은 어느날 내부수리중이다.
이 상황에서 재밌는 건 야식배달인데, 평소 배달요청을 별로 하지 않는 처지기도 하려니와 야식이라고는 집에서 끓여먹던 라면이 주종목이었던 행인의 입장에선 이건 한 번 학술적으로 연구를 해볼만한 사회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24시간 심야 배달하는 야식 전문업체가 어떻게 이렇게 많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가끔 하룻밤 숙식을 해결하는 후배녀석의 집에 가보면 야식업체 리스트가 하나로 묶여져 있는 두툼한 광고책자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카탈로그를 보면 배달되는 야식의 종류가 수도 없는데, 하다못해 햄버거 하나까지도 배달이 된다. 닭고기 종류만 하더라도 치킨만 다루는 업체가 대여섯 군데가 되고 한방 닭이니 닭한마리니 하는 곳까지 치면 어림잡아 열 군데 정도가 된다. 거기다가 족발에 보쌈에 막국수에 감자탕이며 중국요리까지... 어쒸... 밥먹은지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허기져...
암튼 이렇게 수많은 야식업체들이 불야성을 이루면서 호시탐탐 배달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데, 아니 도대체 이 밤중까지 잠 안자고 야식을 청해먹는 사람들이 어찌 이리 많단 말인가? 그 가운데는 불철주야 산업현장에서 조국근대화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산업역군들도 있겠으나 어디 그 사람들뿐일까? 겜방에서 MMORPG 캐릭터에 온갖 정렬을 바치는 사람도 있겠고, 밤샘 당구치는 사람도 있겠고, 아니면 그냥 자다 께서 갑자기 주린 배를 채우고파 야식 배달을 시키는 사람도 있겠으나...
서설이 넘 길었는데, 정작 하고픈 말은 도대체 한국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군소 자영업자들은 도대체 언제 밥먹고 언제 잠을 자는가 하는 거다. 새벽같이 문 열고 재료장만하고 낮동안 내내 손님접대하고 배달뛰고 그것도 모자라 24시간 영업중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오밤중에 오토바이 땡겨서 배달까지 해야하는 그들은 도대체 철인28호쯤 되는 사람들일까?
비정규직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쟁점이 된 지 오래되었다만, 영세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삶은 사실 언론도 잘 타지 못한다. 물론 이상하리만큼 유행에 민감한 한국사회에서 치킨집 대박터졌다고 하면 갑자기 치킨집이 죽 들어서고, 피자집 돈 좀 번다더라 하면 피자집들이 번쩍 번쩍 등장하는 현상도 있다만, 어찌되었든 간에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피말려가며 24시간 야식배달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 상황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거다.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피를 뿌렸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같으면서도 실상 오늘날도 중소기업 현장에서 8시간만 달랑 일해가지고 먹고 살기는 여전히 빠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법정 근로시간이 8시간으로 정해져있다한들,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잔업수당을 바라보게 되어 있고 노동시간을 자발적으로 늘려간다. 이게 공장 다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바로 언급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문제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닭모가지를 비틀어잡고 24시간을 달려서 재벌이 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어떤 바램을 충족하는데 우째 24시간이 모자란단 말인가?
결국 영세자영업자들은 오토바이에 불이라도 날 듯이 달려야 하고 인도와 차도를 불문한 채 따끈한 배달통 안의 온기를 목적지까지 유지하고자 모든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재수없으면 숨어있던 교통경찰들에게 딱지라도 떼어야 하고 더러는 보행자와 티격거리기도 해야 한다. 낮이고 밤이고 그런 거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배달을 해야 하고 배달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 신세계 부회장이라는 정용진이 트위터에 4가지 없는 문장 하나 올렸는데 이게 발단이 되어 몇 사람이 목소리를 내었다.
조국은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냈고, 얼마후 김규항이 "'착한 소비'와 진보정치"라는 글을 냈다. 둘 다 한겨레에 실렸는데, 뭔가 좀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거기에 블로거 EM님이 자기 블로그에다가 이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격문에 가까운 제목과는 달리 조국은 국가와 시민이 뭘 답할건지에 대해 "착한 소비"라는 조금은 민망한 대안을 제시한다. 반면 김규항은 "착한 소비"라는 말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결국 조국의 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재밌는 건 이 두 사람의 논의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저 정용진이 이야기한 바,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라는 드립 앞에서는 버로우 당하고 만다는 거.
아닌 말로 야식 배달 한 건에 목숨을 거는 영세자영업자들의 현실에서 "착한 소비"는 자신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 묵시록적인 공포다. 이건 단지 배달에 사활을 거는 야식업체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아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이 넘쳐흐른다. 아이스크림 50~70%세일을 내건 동네 마트들 널려있고, 듣도 보도 못한 희안한 자격증 시험들이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시행된다. 그렇게 아둥거리며 살려고 발버둥쳐봐야 대기업 마트들이 골목길까지 쳐들어오는 통에 동네 마트 여지없이 사라져버린다. 왜? "착한소비"에 반대되는 소비를 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앤드 그리고 그놈의 자격증이라는 거 따놔봐야 어디 가서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는 것들임에도 시험치룬다고 하는 시간에 그 장소는 장사진을 이룬다.
아무래도 이 이상한 사회환경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일반 직장 노동자들과 같이 8시간 딱 일하면 그나마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일듯 싶다. 좀 더 세세히 말하자면, 재료준비하고 영업하고 물론 배달도 하고 그러면서 하루 딱 8시간 뛰고 문닫고 집에 들어가 여가생활을 즐기고 매주 하루는 놀고 일년에 보름은 어디 휴가도 좀 다녀오고 뭐 그렇게 하면서 자영업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 예컨대 골목길마다 두어개씩은 들어서 있는 24시간 편의점 한 번 보라. 직영점 빼놓고 간판하나 얻어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은 본점에 물품대금 갖다 대기도 벅찬데, 까놓고 이들에게 하루 8시간 일하시고 남은 시간엔 알바 쓰시고 그 알바들 최저임금 대우 해주시오소서 해봐야 이건 씨도 안 먹힌다. 알바 권리찾기 운동도 좋지만 자영업자들 먹고 살게 해줄 수 있는 특단의 대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건 알바는 알바대로 착취당하고 자영업자들은 허리가 휘게 뛰어봐야 본사 배불려주다 볼장 다 본다.
여기선 착한 소비고 나발이고 개입될 여지도 없고, 진보정치고 뭐고 간에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저 시장주의자들이 미워요 앵앵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친절하게 대안을 고민해주는 행인의 입장에서 간단한 대책을 제시하자면 일단은 노동시간 단축 -> 고용증대. 뭐 이런 것들이 될라나? 어라? 이거 하려면 혁명을 해야 하나? 뭐야 이거...
조국이던 김규항이던 뭐 틀린 소리 했다는 건 아니지만, 정용진의 저 한 마디에 필적할만한 뭔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그건 조국이나 김규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지상주의에 반대한 모두의 문제지만, 문제는 문제다. 여기엔 모종의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이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시장지상주의논쟁만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다시 말해 경제환원론적 논의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어떤 문제들도 작용하고 있는데 조국이나 김규항의 논의에서는 전혀 이런 맥락이 엿보이지 않는다.
조국이 주장하는 바, 보란 듯이 실천해야할 "이념적 소비"라는 거 그거 너무 어렵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화통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24시간 배달의 한길로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저 야식배달현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는 어떤 이념적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사람이 10시 넘으면 자야된다는 어떤 고리짝 시간관념에 아직도 물들어있는 입장에서 내 이념적 소비를 위해 야식배달이라는 것을 지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를 내야할까?
김규항이 바라는 것처럼, 진보정치가 이 땅에 꽃피우게 되면 올빼미처럼 밤을 새우며 야식배달로 연명해야 하는 어떤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체시계가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그것을 온리 시장지상주의의 문제라고 치환하는 것은 또다른 어떤 삶의 방식을 배격하고 시작하는 논의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물고 물린 문제들, 예를 들어 야식을 시켜먹게되는 환경이 단지 시장지상주의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과감하게 생략해버린 논의라면 모를까.
그런 의미에서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EM님의 이야기와 더불어 더 다른 논의들이 여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그 논의를 하기엔 여력이 딸리니 여기서 종. 다만, 진짜 이거 한 번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다. 한국사회 야식배달 성업의 사회학적 의미. 아 뭔가 작품이 나올 듯도 한데,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뭐 이담에 시간 나면 한 번 해볼까 싶기도 하고.
행인님의 [야식배달에 대한 이념적 소비의 가능성은?] 에 관련된 글. 아놔... 제목이 넘 구려... 카피 뽑는 재주가 있으면 왠지 성공할 수 있을 듯 싶지만 카피 커녕 커피뽑는 재주도 없으니 일단 여기서 패스. 제목이 중요한 거이가 아니고 내용이 중요. 포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용이 중요. 그러니 다들 한 번 보시고 생각해주시기 바람. 행인이 오매불망 우러러마지않는 어떤 방랑객, 즉 "...", 혹은 "음쩜셋"이라는 아뒤로 천지분간없이 넘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