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아저씨의 딸

토요일날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동행했던 녀석 하나가 몸이 피곤하다고 택시를 타고 가잔다. 택시를 타고 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결국 먹고 사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뭐 요즘 취업난이 어쩌구 하던 차였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이번에 자기 딸 둘이 모두 모 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둘 다 떨어졌다며 입을 열었다. 큰 딸은 4년제 대학을 나왔고 둘째 딸은 전문대를 나왔단다. 큰 딸은 공부를 좀 하는 반면 조용하고 둘째 딸은 공부는 좀 떨어지는데 사회성이 매우 좋단다. 당신이 보시기에 기업체 같은 곳에서는 첫째 딸보다 둘째 딸 같은 성격이 훨씬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한단다.

 

이분이 말씀을 이어 나가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첫째 딸은 4년제를 나왔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둘째 딸은 전문대 나왔으니 괜히 사무직 시험 치지 말고 생산직이나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단다. 세상살이 많이 하신 어르신이다보니 워낙 학벌이 우선인 사회 속에서 체화된 어떤 경험을 통해 그런 생각을 하셨으리라고 짐작은 된다.

 

하지만, 사무직이냐 생산직이냐는 차이에 대해 학벌이 이를 결정해준다는 사고를 보는 듯 하여 숨이 막혔다. 행인이 공장다니면서 겪었던 그 차별과 수모들이 한꺼번에 회상되기도 했고... 속으로 과연 이분에게 그런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4년제고 전문대고 간에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냐는 말씀을 드린다면 어떻게 반응을 하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해준 다음 말은 더 기가 막혔다. 생산직에 가는 것이 어떠냐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 둘째 딸이 이렇게 이야기하더란다.

 

"아빤 딸자식 신세 망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세요?"

 

생산직을 가면 신세 망친다... 무슨 뜻이었을까? 단순히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에 과도하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이 이루어지는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신세 망치는 것과 직결될 수 있다는 이 사고는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것을 신세 망치는 것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이 사고방식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예전에 봤던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 중에 한 선생이 학생들을 훈계하면서 밖에서 일하는 소사를 가르키며 "니들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또 엽기 급훈 중에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문구도 기억난다. 왜 소사는 기피직종이 되어야 하는가? 왜 대학의 미팅은 낭만이 되는데 공장의 미싱은 저주가 되는가? 공장다니면서 미팅은 못하는 건가?

 

아저씨는 신세타령조로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칠순을 코앞에 두고도 또 봉제공장에 나가시기로 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 시대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다 허상이 되어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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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20:07 2006/11/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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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나라를 때려 엎으려면 정말 많은게 필요할꺼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군요 ㅠ 안타까워요.

  2. 김진숙지도위원이 전교조 교사들 앞에서 그랬다지요. 판검사 제자보다 파란색 작업복 입은 제자를 더 자랑스러워했냐고...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때로는 우리에게조차 허상일때가 있습니다. 그려.

  3. 에밀리오/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비올/ 김진숙 지도위원의 그 말, 저는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웠었답니다. 지금까지 그런 말 해주는 분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공고를 다니면서도 자기 자식 실업계 보낸 선생님 본 적은 없어요.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진보적이라는 선생님들이 애들 대학 보내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했죠. 진보적인 교수라는 분들조차 대학 없어도 사람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세상을 이야기하는 분들 드물더군요.

    청년 실업 문제라고 떠들어 대지만 정작 고졸이나 또는 그 이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청년'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구요. 직훈 나온 '청년'들은 언론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죠.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아직 변하지 않았구요.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죠.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화가 많이 풀어졌죠. 그래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정말 적절하게 이런 말을 해주는 분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세상을 다시 보기까지 했다는...

    여담이지만 사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이나 글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요. 그분 쓴 글이나 발언을 보다보면 너무 먹먹해지거든요. 마치 병든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그 아이의 고통과 그 부모의 고통을 계속 보여주는 어느 티비 프로그램을 본 후 밤잠을 못이루게 되는 그런 심정이 들어요. 그래서 그분의 글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이면서도 너무 부담스럽더군요.

    어쨌든 노동자의 푸른 작업복이 더 이상 허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밤입니다...

  4. 신세망치는 일 맞습니다. 생산직엘 가든, 소사를 하든 '돈'만 많이 준다면 아마도 신세망치지는 않을듯해요. 현대자동차나 포철 등의 정규직 되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일듯 해요. 그니까 생산직이나 소사 들에게 사무직 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환경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5. 땀을 흘리는 노동이 점점 더 굴욕만 당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 하긴 ... 저부터 아주 예전에 쇠가루 풀풀 날리던 현장을 손쉽게 떠났어니 ... 할 말이 없지만 ... ...에겅 ... 쩝 ... ...

  6. 산오리/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의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소득차별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거든요. 돈도 돈이지만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면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풍토가 필요할 듯 합니다.

    손윤/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쇳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던 모든 노동은 다 땀을 흘리게 되어 있죠. 그런데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현장 노동을 낮춰보는 풍토가 있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노동자의 계급성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이겠죠. 저도 현장을 떠난 입장에서 언제나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죠...

  7.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 아저씨'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네요.

  8. abby/ '택시운전사 아저씨'라는 표현... 저도 첨엔 택시 기사라고 할까 하다가 기냥 이렇게 표현한 것인데. 뭐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