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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9
    정은임으로 빠져들기(3)
    난타
  2. 2004/08/08
    맘 내놓고 크게 소리칠 날이여(4)
    난타
  3. 2004/08/08
    정은임씨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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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8/08
    오늘은 어머니 졸업논문(1)
    난타
  5. 2004/08/05
    8/05 병원진료(4)
    난타
  6. 2004/08/05
    아~~ 무릎이여 ㅠ.ㅠ(2)
    난타
  7. 2004/07/27
    진보넷 블로거되기(3)
    난타

정은임으로 빠져들기

블로그 들어올 때마다 들려오는 19만 3천원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항상 스르르 빠져들고, 어느새 내 머리속에서는 김주익씨가

 

생활하던 고공 크레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연찮은 기회에 오르게 된 고인의 마지막 장소,

 

태풍 매미가 찾아와 주위 크레인이 전복되고 본인의 크레인이 180도가 넘게 돌아가도

 

내려오지 않고 버텼다는 그 장소,

 

180이 넘는 키에 내가 들어가 눕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그 오랜 기간을 농성했다는 그 장소,

 

어느덧 그 장소가 떠 오른다.

 

정은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다시 나를 그 때의 부산으로 돌려 놓는다.

 

끝갈 데까지 치열한 누가 툭 건드려도 울컥 눈물을 쏟을 것 같던 그 장소로 돌려 놓는다.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지만 박창숙씬가?께서 외치던 그 소리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습니까?", "민주노조 안할걸 그랬습니다." 그 말에 모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던 그 장소로 돌려 놓는다.

 

정은임의 감수성에 어느덧 쭈우욱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주먹을 나도 모르게 불끈 쥐게

 

된다. 이대로 당하진 않겠다. 이대로 물러서진 않겠다라 다짐하던 그 날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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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내놓고 크게 소리칠 날이여

 

너무나도 갑갑할 때가 있다.

 

내 꿈은 뭐다. 근데 이 꿈을 큰소리로 외칠 수 없다.

 

심지어 밖으로 내놓기조차 힘들다.

 

항상 안으로 더욱 더 안으로 그 이름을 삭힐 뿐이다.

 

60, 70년대 자유라는 이름이 그리도 애절했을까? 민주주의란 말이 그토록 애절했을까?

 

민중들의 꿈은 언제나 그렇게 그렇게 애절하고 갑갑해야만 하는 것일까?

 

언제나 밖으로 표출되면 안되는 항상 위험한 것이던가?

 

때로는 술 진탕 마시고 크게 외치고 싶다. 내꿈이여 내꿈이여

 

하지만 역시도 안으로 삭일 뿐이다. 결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나도 한 땐 복종을 찬양하고 복종을 당연시했던 한 인간이었다.

 

한용운의 '복종'이란 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한 인간이었다.

 

왠지 모를 엘리트적인 위치 속에서 이 사회의 이끄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아래 이 사회의 유지(개선, 보수가 선행하는 이었지만)를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무의식속에 엘리트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사회 유지를 최우선시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대학에서의 시간들은 그런 나를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밎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 꿈을 민중들의 꿈과 동치시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민중들의 삶 속에서, 민중들과의 만남에서 내 꿈이 새순 돗 듯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사회에 막혀버린 묻혀버린 그 민중들의 꿈, 그 꿈이 즉 나의 꿈이라는 것을...

 

이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선 그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눈 돌리고

 

눈 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꼿꼿이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 사회는 그 꿈을 향해

 

달릴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거리낌없이...

 




♪ 피엘쏭 타는 목마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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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씨 놀랍다.

정말 모른채 살아왔다.

 

그이름 석자가 생소할 정도로

 

우연찮게 유이 블로그에서 아니 그 전에 영화보기 위해 유이 만나서 그에 대해 들은 후에

 

일부로 블로그에 찾아가서 그의 음성을 들었다. 생각을 들었다.

 

듣기 전의 마음은 신기함 정도라 할까? 어쨌든 별 기대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듣고서는 너무나도 비통했다. 그토록 감수성이 뛰어난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갔다는... 또한 그가 활동하고 생활하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 시기를 내가 알지 못했음에 너무나도 안타까왔다.

 

정말 그의 팬이 됐을텐데. 팬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긴 한데, 하지만 그의 팬이 될 수 있었다면..

 

잔잔한 그의 음성이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다.

 



19만3천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몇일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 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힐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만3천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만3천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꾿꾿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 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힐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힐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영화 [빌리 엘리엇]중에서 T-REX의 음악
cosmic dancer띄워드렸습니다.
강정숙씨,양정선씨,김도균씨 잘 들으셨어요?
신청하신 곡이었는데요,

영화를 보면요.
빌리가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을 보려갈때
여비가 없으니까 다른 파업노동자들이
돈을 걷어서 여비를 많이 만들어주죠?
참 없는 사람들이 더 없는 사람들을
스스로를 생각하는 모습들,
가슴이 참 찡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강동훈씨,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오늘,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있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런지요.'하시면서
사연보내주셨네요.참, 정말 아이러니칼하죠?
그들 옆에 섰던 대통령이 그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동귀족이라고 지탄받는 대기업 한진중공업의
노조지부장이었죠? 고 김주익씨.
고 김주익씨가 남긴 지갑 한 번 볼까요?
파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재산을 다 가압류당하구요.
그에게 남은 돈은요.
세 아이들의 인라인스케이트도 사줄 수 없는 돈.
13만5천80원이었습니다.
어떤가요?귀족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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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 졸업논문

하루종일 이리저리 끌려다님

 

국회 도서관까지 가서 한참 헤매고...

 

다리 조금 나은거 같아 운전도 했는데, 역시 운전은 무릎에 무지 안 좋은듯

 

어느덧 완전 요양이 되어버린 요즘 너무나도 힘들다. 에구 에구

 

빨리 빨리 나아서 막 뛰어다녀야 하는데...

 

 

어머니 졸업논문 타이핑하느라 완전 밤샜네. 흑흑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느 새나라 어린이가 되어야 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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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병원진료

오늘 일은 무지 짧게.

 

병원 아침에 갔다가 밀려서 엄마 대학(방송 통신 대학) 도서관 가서 1시간 동안 한강 1편 한 40페이지 정도 읽다.

 

정말 재밌었는데 시간상 못 읽는게 너무 아쉬워서 에구구~~

 

ㅋㅋ. 이렇게 하루 일 쓰다 보니 예전에 일기 쓰던 생각이

 

굉장히 맘에 드는 결혼 꿈을 꾼 다음 나중에 그 여자 만날 거라는 확신에 편지 형식으로 1차 일기를 썼던 일도 생각나고...

 

군대 제대하고 여자 만나면 주려고 군대에서 있었던 일, 들었던 생각, 좋은 글귀들 만들어 2차 편지를 썼던 일도 생각나고...

 

나중에 쪽팔려서 다 버렸다는

 

암튼 글케 해서 2시쯤 진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씀

 

무릎반월연골인가 모시깽인가에 문제가... 나중에 MRI 찍어보자는 비싸다고 안 찍고 해결되면

 

그렇게 하자고... 다행 다행..

 

어쨌든 2주 지나고 나서 다시 보기로 했으니까 그 때까지 낫도록 기대해봐야지.

 

아구~~ 힘들다. 이런 이런. 나중에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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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릎이여 ㅠ.ㅠ

정말 아파보니까 알겠다.

 

이 세상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말하는 일반사람 위주로 되어있는지

 

무릎이 아픈지 벌써 6일째, 우리 집 현관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도저히 이 따위 무릎으로 내려가기 힘든 계단부터 좀 힘쓰다 보면 한 쪽에 과도한 무리를

 

줄 수 없도록 만들어진 싸구려 슬리퍼가 발바닥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모든 상점에 다 있는

 

턱들은(아마도 비나 흙 등 여타의 것들이 못 들어가도록 만든 것일테지만) 다시 한 번 내

 

무릎을 괴롭힌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8월 3일 동생 입대를 앞두고 안 좋은 다리 이끌고 피서가서 아픈 무릎에

 

신경만 죽어라 쓰고 오히려 물 밖보다 물 안이 좋아서 입술 시퍼래질 때까지 물 속에도 있어

 

보다가 좀 이라도 편할까 차에 들어가 의자 눕히고 쉬다가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하기도 하고

 

아퍼서 죽겠는 다리로 동생 입대전이라 병원도 못가고 얼음 찜찔만 죽어라 하면서 버티고

 

의정부 따라가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쉬어야 하는 데 쉬지도 못하고 통증을 키우는 짓을

 

하구~~

 

결국 오늘 병원 갔더니 연골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2주 약 먹어서 상황보고 괜찮아지면

 

약물 치료, 안 좋으면 MRI 찍고 수술을 하자는 의사 말에 당황

 

종종 다리 헛디뎠다 생각하면서 아픔을 인내하던 일들이 연골이 닳아서 생겼던 이상 행위라고...

 

쪽집게대.. 그 선생.. 흠~~ 내가 그런 일 겪었는지 어떻게 알았지?

 

달리다 무릎이 빠지는 것 같은 일이라든지, 한 참 굽혔다 무릎 펴기 힘들다던지..

 

놀라워 놀라워~~ 제길...

 

쩝 어쨌든 이 노무 힘든 세상에서 이 다리 가지고 어떻게 살아간다냐???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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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블로거되기

 

 

 

어느곳보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공간,

 

그 공간에서 다시 나의 공간을 구성하고자 한다.

 

자본에게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공간, 인권의 공간을 만들어 내자.

 

누구보다 열심히 급진적으로 투쟁하고 그 급진적인 투쟁을 치열하게 고민, 정리해내면서

 

계속적으로 내 자신을 투사로서 만들어내자.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고, 작은 일로도 다시 힘 받을 수 있는 올바른 투사가 되자.

 

나만의 골리앗을 만들자. 어떠한 강압에도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자기 보호의 기제로서가 아니라 급진적 연대가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골리앗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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