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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활동6년차, 안식년을 보내다

 

안식년, 내 안에 비워지는 것들. 그리고 쌓여가는 것들에 대해

 



누구에게나 돌아봄, 휴식, 여유가 필요하겠지만,

이번 휴식을 통해 단체활동가들에게 쉼은 정말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모 활동가가 말한 대로 3년을 일하면 1달 정도의 휴가는 꼭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활동 공간 속에서의 일상적인 휴식과 여유가 자리 잡혀야 할 것이다. 더 멋진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마음과 몸에서 나오는데

그 몸과 마음이 피곤에 절어 있고, 원래 하던 일의 쉼 없는 반복이라면

그 안에서 나올 것은 뻔한 것 아닌가?

휴식의 당위성은 이 정도에서 멈추고,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제 어언 두 달이 되어간다. 충전을 했다고 하기엔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인가? 아니, 난 사실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달여의 방학을 일 년에 두 번씩 경험한 것 외에 한 번도 과업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지 않은 채 내 멋대로 지낸 적이 없다. 학교 공부를 마치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5년을 상담소에서 보낸 나. 그간의 두 달은 내가 살아온 시간 중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를 제외하고 가장 긴 휴식이었다. 그래서인가? 나에게는 소리 없이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 몸과 마음 안에 비워지는 것과 그 비움을 통해 쌓여가는 것들이 생기고 있다.

 

첫 번째 변화. 상담소 식구를 비롯해 나를 아는 많은 사람이 내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사실 난 상담소 활동을 하면서도 항상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그래서 난 쉬더라도 별 변화가 없을 줄 알았는데, 첫째 피부결이 달라졌다. 그리고 많이들 알고 있을 나의 탈모증상(^^)이 좀 기세가 수그러들고 있다. 쉼은 우선 몸이 말해준다. 쉼을 통해 몸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비워지고 있기 때문에 깨끗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몸 안의 노폐물이 조금씩 비워져 간다면, 내 정신 안에 있었던 것들도 서서히 비워져가는 것들이 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무엇이든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생기는 불안감,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다는 좌절감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갑자기 무엇을 새롭게 배우고 있거나 다른 활동을 시작해서는 아닌 것 같다. 워낙 내 안에 있었던 내 안의 힘을, 원함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활동을 쉬고 나서 바로는 주로 집에서 보냈다. 책을 읽고 밥을 해먹고 tv를 보면서. 왠지 이상했다. 지금 이 시간엔 상담소에서 뭘 하고 있었을텐데... 상담소에서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며칠씩 짬을 내어 간 남도 여행, 부산국제영화제, 몇몇 외부 토론회를 다녀오면서 조금씩 변모하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온 새로운 변화는 먼저 명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아니 명상은 좀 거창하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일하면서는 멍하게 있으면 안된다는 약간 강박증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재빨리 판단해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바로 다음 일을 계획하는,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여 스스로를 질타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마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리라.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사람들을 그렇게 조바심 나게 하며 재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도록 이끌고 있고 이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멍하게 있으면 그 멍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것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혹은 그저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평온해지기도 했다. 그런 경험은 묵당(그리스도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카톨릭 피정의 집입니다. 강원도 태기산 산 중턱에 있답니다)에서 열하루를 보내면서 더 깊게 다가오며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지금도 그 때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난 그곳을 가기 전에 지루할 것을 염려하는 친구들의 조언으로 책 여러 권을 바리바리 싸서 가져갔다. 물론 책들을 그렇게 차분하게 읽은 적도 없었지만, 읽은 책들보다 홀로 고요하게 자연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나에겐 감동이었고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느꼈던 많은 것들을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 때 썼던 일기 몇 구절을 옮겨 적는다.


‘볼펜 한 자루, 촛불 하나, 맛있는 식사, 깨끗한 방.. 새가 지저귄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이 흐린 날이다. 새들은 뭐라고 하는 걸까? 이곳에 있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고맙고 경이롭고 행복할 줄 몰랐다. 그러나 내가 가야할 곳은 더 오래 있어야 할 곳은 여기 이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나가서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살아야 할 지 고민한다. ...

이 곳에 오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무엇보다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인간위주의 생활에 내가 익숙해있었다는 것. 여기는 산 정상과 가까워 낮에도 추운데 난방은 하루 3시간만 되고, 따뜻한 물은 밤에 한 번만 나온다. 매번 필요할 때마다 따뜻한 곳에서 산 나로서는 고역이지만, 그동안의 풍족하다 못해 낭비였던 삶을 돌아보게 된다. ... 지난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진보는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이상을 이루기 위한 끈질긴 시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둘째 날 낮에 쓴 일기


‘... 그동안 나는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열정과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야 망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진정 내가 추구할 바, 가야할 바가 놓쳐지는대도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느끼며 견뎌오기도 했다. 나의 무능력함을 탓했고 바쁨을 핑계로 주변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외면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여성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진심으로 함께하기 위해 내가 많이 애썼다는 것을. 많이 애썼기에 더 실망하고, 더 많이 좌절했음을. 

   나의 방황, 고뇌, 좌절은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이제는 가슴으로 안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 잠시 쉼을 선택하게 했고, 나의 활동, 이상, 욕구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으니 말이다. 고통을 통해, 방황을 통해, 되돌아봄을 통해 삶의 더 깊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음을 믿는다.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고 명상하는 것, 나와 상생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 그러기 위해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과감히 버리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나 자신 항상 깨어있기를 바란다.’

- 셋째 날 밤에 쓴 일기


‘새벽 5시. 밤하늘을 빛내는 수없이 빛나는 별! 이렇게 많은 별을 방에서 보긴 처음이다. 감동!!! 밤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들이 있다니! 창문을 열고 나가 손을 들어 올리면 바로 잡힐 것 같다. 산이 높아서 그런지 정말 금방 잡힐 것 같다. 새벽에도 내가 모르는 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일곱째 날 새벽에 쓴 일기 


사실 내가 휴가 기간 동안 느끼고 있는 이런 감정들과 깨달음은 심오한 것도, 뭔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 안에 오랫동안 숨 쉬고 있었던 중요한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 일요일에는 우연하게 중학교 때 쓴 일기를 꺼내보았는데, 한참을 쳐다보고 웃음을 머금다가 이내 숙연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여러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사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기록이 없어서 그렇지, 그 전부터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안식년은 그동안 채워오기만 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꺼내보고 비워내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마음에 담아갈 것들을 다시 찾아가고 쌓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참 귀한 기회를 갖게 해준 상담소를 거쳐 간 많은 선배들, 그리고 지금도 일하는 활동가들, 회원님들,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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