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뿌리내리지못한'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여의도 국보법철폐 농성에 참여하기 (4) 2004/12/23
  2. 못나서 죄송해요 (6) 2004/10/18
  3. 선택은 없다 - 녹음대본 200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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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날씨에

매스미디어에선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한 공익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밥을 굶어가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사적인 모든 것을 유보하고 거리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출장과 상영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도 마음만 아팠지 함께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전화를 했다가 문득

거기서 영화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각종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 단식에 참여하기는 힘들어도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방금 독립영화협회 회원인 한 사람과 통화를 해서

여의도 농성현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인권탄압에 관계된 영화는 많다

동참할 감독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늘 우리들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단 며칠 만이라도

같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마음 훈훈해지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인의 농성참여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영화틀기

출발!

 

2004/12/23 12:07 2004/1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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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가 그랬다

-애가 왜 그렇게 애살이 없냐

애살, 이란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오기+승부욕+의욕+의지+기타 등등...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특히 애살이 부족했던 건 체육과목이었는데

철봉도 뜀틀도 달리기도 피구도 너무 못해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딱 한 사람, 나 혼자

체육에서 미'를 받았던 전설(?)을 남겨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누구와 경쟁하거나 눈 앞에서 바로 바로 점수를 따야하는 일에서

늘...너무 느리고 너무 자신없어 한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천천히 공부해서 찬찬히 이해하는 일은 느릿느릿 해내는데

곧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는 젬병이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허탈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시작하기 전에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애살이 없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7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마쳤다는 것 만으로도 기특한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없는 작업, 이를테면 음악이라든가 컴퓨터 그래픽이라든가

편집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을 옆에서 척척 해결해준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감독으로서 부족한 게 너무 많은 모양이다

마스터 테잎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질책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팠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저 스쳐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옹이도 만들고 뿌리로도 뻗어가서

나중에 뭔가 조금 더 푸릇푸릇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새 이파리 같은 것이 돋아나게 되지 않을까

 

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구로구청에서 모여 2박3일동안 열심히 부정선거 항의농성에 참여했던

이름모를 많은 시민들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준 사람들과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 분들 덕분에 이 어리숙한 한 사람이

감독이 되었고

감독이 되느라 열병을 앓으면서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다시 배웠고

결국 혼자서 다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못났고

앞으로도 못난 인생을 엮어갈 테지만

그래서 기대했다가 실망한 분들께는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 천천히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한꺼번에 실망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실망하세요

이 길에서는 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께요

 

하여간

드디어 한 편 완성했습니다

모든 것 다 접고, 그냥

축하해주세요

 

 

 

 

2004/10/18 10:25 2004/10/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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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 전체구성안,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 대본...
<선택은 없다>는 유난히 갈등도 많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5개월 동안 내가 작성한 문서량은 A4 용지로 300장을 넘어선다
그러나 내가 공들인 시간의 흔적은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성우의 목소리로만 남아있다
아주 오랜만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해서 작성한 나레이션이었지만
엄마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선 부끄러운 대목이 많다
작년 10월에 완성해서 올해 2월에 KBS <열린채널>에 방영되었고
지난 2년간 방영했던 모든 영상물 중에서
우수작으로 선정한 6작품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방송사를 떠나고 나니 방송프로그램으로 상을 받네,
씁쓸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

아래는 대본에서 인터뷰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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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선택은 없다-일과 양육 (한국여성민우회 제작, 이혜란 연출)

[1]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와 내 시간을 이끌어 가는 건 이제 내 아이다

가끔 삐걱거리는 몸뚱이처럼
내 마음도 집안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분주하지만 어쩐지 외롭고
익숙해졌지만 어딘가 어색한 하루하루,
엄마라는 존재로 서서히 적응하는 동안
둘째를 가졌다

아이를 낳기 전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시간의 주인은 나였다
남편과 같이 일하던 시절 내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저만큼 멀어질 세상
세상의 엄마들은 지금 행복할까

[2]

저녁 7시, 옆자리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부장님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마음은 벌써 문턱을 넘어서는데

몇 걸음만 늦어도 아이는 전화를 하고
보고 싶어? 그래 나도 보고 싶어
안쓰런 얼굴 품어주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돌아와도 쉴 틈은 없다
내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건
아이도 집안일도 마찬가지...

아빠한테 갈래, 아이는 칭얼거리고
오늘도 남편은 야근 중
종일 헤어졌다 만나도 고단한 우리
나도 가끔은 등을 돌리고 싶다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일까
오늘따라 잠투정이 유난하다
차가 붕 가버려, 친구도 붕 가버려
늦기 전에 유치원 가자

잘하고 있나? 거울 속의 내가 묻고
조금만 참자, 거울 밖의 내가 답하고
어제와 같은 아침
씁쓸한 마음 자물쇠로 채워놓고
일하는 엄마는 집을 나선다

[3]

막내와 함께 나서는 아침
그 작은 손 종일 손바닥에 맴돌고

아이 셋을 이끌고 혼자 서울에 온 지 3년
둘째 낳고도 미싱을 잡았던 나
낯선 이 곳에서 간병인이 되었다

남의 아픔을 돌보다 보면
내 아픔도 덜어진다지만
구청에서 지원받는 생계비로는
네 식구 살림이 빠듯하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둘째
아침에 미리 해둔 밥 한 그릇 볶아 먹고
술래잡기하듯 골목길로 나선다
막내가 돌아올 시간
집까지 데려오는 건 날마다 언니 몫이다

책가방도 숙제도 던져 놓은 채
만화영화 보느라 허기를 잊었던 아이들
엄마 발소리에 달려나오면 해가 저문다

오늘도 찌개 하나로 둘러앉은 저녁상
잘 먹어서 고마워, 잘 커줘서 고마워...
방 한 칸에 넷이 누우면 밤이 깊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저희들끼리 크는 아이들...
2004/03/30 07:33 2004/03/30 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