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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박선영


사람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사악할 수 있을까?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들은 왜 목숨을 버려야만 했을까?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

공장에서, 공장 화장실에서 목 매달아 자살

강제추방 당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뛰어 내려 실종

쇼크사로 사망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것일까?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들. 답은 없었다. 해결책은 없었다. 정답은 있지만 정답이 될 수 없었고,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법이 있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 통하지 않는 곳. 힘으로 우기기만 존재하는 그곳, 대한민국, 우리나라.

 


야, 나 권리 있어.

나 권리 많아.

나 권리 말할 수 있어.

알아? 개새끼들아?

그들이 가장 먼저 배운 말, 부끄러운 말, 천박한 대한민국의 얼굴, 욕. 갓난 아기들이 기역, 니은으로 한글을 알아갈 때, 그들은 개새끼, 씨발놈을 시작으로 한글을 알아갔다.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나쁜 사장님들. 사장님, 나빠요.

 


때리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잡고 서 있던 젊은 청년은 외친다. 그들이 참혹하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면서도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제대로 말려 보지도 못한 채, 때리지 마세요 만을 외칠 뿐이다. 그들의 소리를 담아야 했기에 잡고 있던 카메라를 놓을 수 없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그 현실을 알면서도 이해하면서도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앞서 같은 사람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의 편이 되어 방망이를 휘두르는 대한민국 전경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나쁜 전경님들. 전경님들, 나빠요.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라고 타국인 이곳, 대한민국에서 탄압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본국에 돌아가서도 자기나라 욕보인 놈이라고 탄압을 받는다고 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어디가서든 탄압 받는 거야, 탄압 받아야해 라며 스스로를 죄인 취급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인정하면 상처를 덜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맑았던 눈망울은 어느새 죄인의 눈처럼 어두워졌다.

 


이제는 돈 많이 벌 생각 없어요. 그냥 이 세상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뿐.

샤만은 네팔 사람이다. 그는 40만 이주노동자들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외모로 대표가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남이다. 나는 그가 배우를 했어도 성공했을 거라 생각해본다. 그런 그가 머리를 삭발해가며 40만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을 막기 위해 투쟁한다. 샤만이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렇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나라에서 평범한 청년으로 평범하게 살았겠지. 아님 티벳 스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찾은 한국에서 운동가가 되었다. 20년 간을 평화로운 마을에서 조용히 살아왔을 그가 잘난 것 하나 없이 오만한, 번잡한 나라 한국에서 투쟁에 앞장서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동지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한국 민중가요를 우리네 젊은이들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부르게 된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의 힘찬 목소리에서, 굳은 결의에서 슬픔이 밀려온다. 우리의 모습과 꼭 닮은 네팔인의 얼굴에서 서러움을 본다. 그들은 단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할 뿐인데,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아예 말 자체를 잘 하지 못하는 것 마냥 여긴다. 그들을 생각 없는,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 취급을 한다. 다만 억울한 그들은, 멍청하지 않은 그들은 자신들 속 안에 가득차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수많은 생각들을 추스르고 추슬러 그들이 내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말로,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들을 언어라는 것으로 서툴게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멍청한 한국인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오히려 멍청한 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들인 것이다.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식한 말만 내뱉는 바보들.

 


이주노동자들은 온 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따윈 닳아 없어져 버린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투쟁한다. 그들은 외친다. 온 몸 다해, 온 정신을 담아, 낼 수 있는 온 목소리를 다해.

그들의 목소리는 울리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울리지 못하고, 애꿎은 나의 마음만 울린다.

 


나는 이주노동자와 대한민국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술래를 자처하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힘들게 술래를 치고 들어왔으면 됐지 다시 술래를 피해 술래가 있던 곳을 치고 다시 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단다. 그래야 게임을 끝내주겠단다. 그들이 술래가 있던 곳을 다시 치고 와야 한다면 술래 역시 또 한번의 수고를 해야하므로 술래를 치고 도망오는 것으로 끝내면 될 것을. 이겨서 남는 것도 없으면서 꼭 그래야 한다는, 이기고야 말겠다는 심보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이렇게 귀찮은 놀이이건만, 돈 벌기 위해 어렵게 온 그들, 돈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자국으로 갔다가 다시 오면 받아주겠다는 고약한 심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얻게 되는 이득은 무엇인가. 대인구 인천공항 이용세? 항공료? 대한민국의 심보를, 심술을 이해할 수 없다. 일개 국민인 나로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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