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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밖에서> 리뷰-한국독립 애니메이션

골목 밖에서

유진희/ 1996/ 4분

 

박선영

 

 나는 빵을 좋아한다. 팥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팥 앙금에 귀여운 붕어 모양까지 갖춘 붕어빵을 좋아한다. 4개에 천 원 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동네에 따라 10개에 천 원 하는 곳도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가격이란 말인가. 맛도 없으면서 하나에 천 원 이상을 받는 빵들보다 직접 보는 앞에서 만들어 주는 붕어빵은 따뜻하고 바삭한 것을 바로 먹을 수 있고 믿음이 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그래서 붕어빵 매니아인 나는 <골목 밖에서>라는 애니메이션이 아무 이유 없이 좋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대사도 없고, 4분이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이렇게 특별할 건 없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1평 남짓한 천막 아래 공간에서 하루 종일 붕어빵을 굽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말없이 주전자에 담긴 밀가루 반죽을 붕어 모양 불판에 따르고 팥을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불판을 돌려 또 다시 반죽을 붓는다. 그렇게 할머니의 하루는 지나간다. 그러면 또 다시 똑같은 하루가 돌아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자그마한 가게를 가진 뒤부터 매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붕어빵은 단순한 백 원짜리 빵이 아닌 그녀의 모든 것이 담긴,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소중한 붕어빵을 배고픔에 지친 한 소녀가 조용히 삼킨다. 그 소녀에게 역시 그것은 단순한 백 원짜리 빵이 아닌,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는, 현재를 버티기 위해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절실함이었다. 그 모습을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다. 그 사이에는 외로움과 따뜻함이 흘렀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있었다, 말없이.

 나는 이상하게 붕어빵 굽는 모습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 젊은 총각이건, 경희대 앞 50대 부부이건, 주전자 드는 것이 벅차 보이는 밑 동네 할머니이건 말이다. 그 중에서도 배가 부르더라도 꼭 하나라도 사 먹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석관 우체국 앞 붕어빵 아주머니였다. 그 곳의 붕어빵은 10개에 천 원이다. 왜소하고 어딘가 모자란 듯해 보이는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소중하게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들여 꿋꿋하게 붕어빵을 찍어냈다. 백 원이란 가치가 무색하게 말이다. 아주머니는 백 원을 내고 한 마리를 사 먹는 나에게 싫은 표정도 한 번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너무나 미안해지면서, 다음번에는 한 마리를 사먹어도 이백 원을 내야지 다짐하곤 한다.

 아주머니의 결과물들은 대부분이 시커멓게 타거나 앙상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때가 잔뜩 낀 손으로 방긋 웃으며 붕어빵을 전해주는 아주머니의 모습. 나는 그 순간, 백 원을 주고 붕어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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