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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학살2

2000년 5월 18일..20주기에 광주에 갔다가..죽을 만큼 아파버렸다.
그 원인이 되었던..518을 박제로 만든 신관 건물 어디메에 이런 문구가 있더라.."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건물 번듯하게 짓고, 무덤을 대리석으로 휘감는다고 청산되는 역사가 아니다.



마음과 정신이 헝클어진 어느날 문득 광주로 가는 차를 타고, 구묘역에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앉아있을지도...그게 내가 그들을 기리는 방법이다..
오늘은 적어도 그날 그자리에서 죽었던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그들의 죽음이 그저 기억에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나 역시 처음 알았던 그때의 충격과 울분과 분노를 잊지 말고 가슴에 새겨둘 것을 확인하며..
(2005.5.18)

학살2

김남주(金南柱)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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