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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2
    새만화책 - 감독不적격
    젤소미나
  2. 2005/12/20
    단젤로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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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별이 왜 생겼는지 아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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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0/31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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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10/31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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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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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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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10/31
    [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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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10/31
    [브레히트] 오디세우스와 시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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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10/31
    [브레히트] 약할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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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화책 - 감독不적격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일본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새롭고,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 두사람이 있었다.

 

한사람은 해피매니아라는 이상한 만화를 그린 안노 모요코이다.

이사람의 만화는 뭐랄까 코믹은 분명 맞는데 소재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지만 어쨌든 분명 순정만화이고..음...코믹은 맞는데 정상적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변태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에 엽기적이지는 않고, 속도도 무지 빠르고 그림들이 불쑥불쑥 칸을 넘어다니고...오타쿠스럽기도 하고...그림체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안보기 쉽상인데 그렇다고 인디만화처럼 음울하고 삐죽하지 않다. 그렇지만 적응하면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묘한 만화를 그린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 순정만화가 파죽지세로 성장했던 90년대를 접하면서,  안정적인 그림체와 이야기 구조를 가진 한국만화와 탄탄한 그림실력을 자랑하는 워낙 유명한 일본만화를 봤던 나의 만화읽기를 넓혀준 사람이다. 내개인적인 평가로 순정계의 '멋지다 마사루'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신간인 슈가슈가룬은 그런 의미에서 좀 실망스럽다. 너무 얌전하다고요!! )

 

또 한사람...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야키...말해 무엇할까. 난 아직도 에바의 전투신과 에바의 동물성과 에바의 표효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쌰해진다. 오타쿠여 현실로 돌아오라고 일갈하는 마지막은 나와는 좀 상관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여하튼 에바게리온을 만나고 몹시 진지하게 일본 애니메이션들을 하나씩 마스터 해갔다.

(초중딩 시절의 TV방영했던 코난, 은하철도 999, 베르사이유의 장미, 캔디, 천년여왕, 하록선장, 로봇물들을 제외하고...)

에반게리온을 기점으로 여타 수많은 작품을 B자로 굽고 구워서 봤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한양문고에 들렀더니..흥미를 끄는 만화책이 한권 나왔다.

이 두사람을 만난지 10년이 넘었는데..성이 같은 이 두사람의 관계가 부부였다는 것을 몰랐다.

물론 두사람이 부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그 사실 자체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사실이 흥미를 끄는 것은 안노 모요코의  신간 '감독不적격'이라는 만화가 오타쿠의 제왕인 안노 히데야키와의 부부생활을 그렸다는 것이다. 크흐흐흐....표지부터가 어찌나 웃기던지..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오늘 밤 요것을 보면서 키득거릴 것을 생각하면!!!!

아껴서 봐야지...

광고글에 엄청난 만화캐릭터와 드라마/만화주제가들이 넘쳐나기때문에 당신의 오타쿠 지수를 알 수 있다는 둥...뭐..그렇더군..

얼마전 녹차의 맛에서 잠깐 카메오로 나왔던 안노 히데야키가 굉장히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러운 이미지여서...이만화속에서도 굉장히 열연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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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젤로트의 시

나는 검다. 나무로 되어 있고 늘 잠겨 있다.

그들이 던진 돌에 맞은 이후로

내안에는 수천 개의 흐릇한 렌즈들이 들어 있다

내 머리가 사라져버린 후로는

어떤 약도 도움이 안 된다.

나는 닦지 않은 안경들로 가득 찬 궤짝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미텐메츠의 대부 시인 단젤로트의 시..

베스트셀러라서 무시하고 안봤다. 거기다 1권의 절반은 좀 지루했고, 부흐링족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읽는 속도가 무지 빨라지고 재밌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식사가 된다면...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비만이 되고, 그러면 하루에 서정시 3편 정도로 다이어트 독서를 해야 한다는 기가막힌 설정...흐흐..

과거형으로 미텐메츠가 기록한 것이어서 분명 그 지하미로에서 살아나왔다는 얘기인데...

그림자 제왕은 진짜 존재하는가? 레겐샤인은 살아 있는가? 그를 미로로 쳐넣었던 스마이크의 자본을 이용한 숨겨진 권력은 어찌 되는 것인가?

빨리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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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이 왜 생겼는지 아니?

 

대학생 1학년 학생회관 로비에 전집류를 팔고 있는 아저씨의 말에 혹해서 구입한 미술화보집 이후로 전집을 내손으로 샀던 적은 없었다.(결국 화보집은 부모님이 내주셨다..히히히. 그리고 서울로 오면서 들고 왔는데 무겁긴 하지만 가끔 펼쳐보면 바보짓 한 것은 아니다 싶다.)

 

그러다 작년에 미친척하고 황금가지에서 공들여서 내놓은 세계민담전집1~10권을 샀다. 이건 그야말로 미친짓에 가까운 것이다. 책을 구입하긴 했거만 읽지는 않으니 그야말로 장식물!!

겨울 들어서서 한권씩 읽고 있는데 러시아것은 번역이 좀 어색하고 몽골은 거짓말쟁이 이야기만 절반이어서 실망...한국의 민담은 다 읽었는데 거기 나와있는 것보다 내가 다른 곳에서 읽고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합치면 더 많이 다양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평이한 수준이다.

여성신이 등장하는 숨어있던 민담도 좀 드물고, 끽해야 삼신할머니 정도라서...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민담을 읽는 중인데, 요게 재밌네.

옮긴이가 말한 것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이지만(민담은 다 옛이야기들이라 다 가부장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어느나라이건)여자와 아이들이 문제해결하는 등 이야기 속에서라도 소수자가 영웅이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은 그나마 이런 얘기속에서 억눌려 살았던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담들도 바보, 게으름뱅이, 반쪽이, 박색의 여자, 할머니 등 이런 소수자들이 문제해결의 주인공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일 듯. 내가 그래서 민담을 좋아한다.

 

여하튼 우리의 남아프리카 줄르족들의 민담들...귀엽고 재밌다.

'우리는 이미 도마뱀이 전해 준 창조주의 말씀을 들었다' 제목 죽인다. 이 민담은 왜 인간이 영원히 살지 못하는 가에 대한 이유를 전해준다. 카멜레온이 딴짓을 하는 바람에 창조주가 '인간은 영원히 살것이라'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에 도마뱀이 '인간은 어느 기간 살다 죽는다'라는 말을 새롭게 전했다. 그이후 카멜레온이 창조주의 말을 전하러 갔으나 사람들은 그를 믿지 못하고 '우리는 이미 도마뱀이 전해 준 창조의 말씀을 들었다'라고 말했다는 것...

그리고 '하늘에 별이 생긴 이유'를 들어봤나? 에구 귀여워..

요것은 짧아서 그대로 옮겨놓는다.

 

하늘에 별이 생긴 이유

 

은코시(하늘의 왕)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나라 외양간을 갖고 있었다. 그 외양간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소가 살고 이었다. 왕은 외양간 앞에 앉아 크고 작은 소를 세며 하루하루 그 수가 불어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왕은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꾼들을 불러 소 떼를 몰고 나가 산과 들에서 풀을 뜯게 했고, 해가 넘어가는 어스름 저녁 무렵이 되면 배가 부른 소들을 불러 모았다.

소가 많다 보니 그 모양도 참으로 다양했다. 뿔이 가시처럼 위로 향해 날카롭게 솟은 황소도 있었고, 아름답게 굽은 뿔을 가진 암소도 있었다.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말려 올라간 뿔, 파도처럼 굽은 뿔. 색깔 또한 다양했다. 검은 소와 흰 소, 점박이 소, 누렁이 소, 이처럼 은코시의 외양간은 항상 각양각색의 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소들이 외양간에 모여 있으니 외양간 바닥은 그야말로 소 발자국 천지였다. 황소가 찍어 놓은 커다란 발자국, 암소가 찍어 놓은 아담한 발자국, 예쁘장한 송아지가 찍어 놓은 아주 작고 귀여운 발자국.

칠흑같이 캄캄한 밤하늘에 크고 작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바로 하늘나라 외양간에 살고 있는 소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을 통해 하늘나라의 빛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크고 유난히 반짝이는 별은 커다란 황소의 발자국이고, 작고 아담한 별은 예쁜 암소의 발자국, 가물가물 희미하게 보이는 별은 송아지의 발자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은하수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침저녁으로 하늘나라 외양간을 드나드는 수많은 소들이 외양간 입구에 찍어 놓은 발국이다.

 

 

소들의 발자국을 통해 빛이 내려와서 그걸 사람들이 별이라 부르고, 하늘나라 외양간 입구의 수많은 소발자국이 땅에서 보면 은하수로 보인다는 이 상상력이 귀여워서 바닥을 떼구르르 굴러다녔다. 지금도 실실실 웃고 있다...히히히히히...

 

웅...1년 반 사이에 11권이 나왔네..것두 미국으로..

1편 한국, 2편 러시아, 3편 몽골, 4편 남아프리카, 5편 스페인, 6편 태국/미얀마, 8편 프랑스, 9편 이탈리아, 10편 폴란드/유고, 11편 미국..

신화와 요정이 가득한 노르웨이 등 북유럽과 한국과 밀접한 일본, 중국 것이 안나와서 그것까지는 나오면 사야 할 것 같다. 제일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정리하기가 힘든 가보다. 얘기가 워낙 많으니까.

한국만 해도 창작과비평사에서 어린이문고로 한국전래동화집이 15권까지 나와있다.

(요놈을 열심히 읽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그 책들의 절반이상은 이미 할머니 무릎에서 듣던 얘기들이었다. 할머니가 해준 얘기가 활자화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민담들을 정리하고 선별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과 편집자 머리카락이 꽤나 빠졌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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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

와우북 페스티발에 가서 얻은 단하나의 수확! 1,2권을 각 천원에 팔고 있어서 얼른 샀다. 하긴 99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오래된 책이라 떨이로 팔아치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보부아르는 미국의 작가 넬슨 앨그렌과 20여년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때 그녀는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였고,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인 그녀의 면모와는 상당히 다른 언어와 넘쳐나는 사랑의 고백에 사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리고 절절한 사랑의 언어와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문단과 영화, 예술 등 문화예술, 지식인 세계에 대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읽는 재미는 있다.

서툰 영어로 써야했으니까 문장을 까다롭게 다듬지 못했을 것이라는 조건이 있다 해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써내려가는 보부아르의 모습은 경이롭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작가로서 살아가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절대적으로 지켜갔고, 넬슨이 결혼을 신청하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정확하게 거부를 했다.

보부아르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즐겁게 읽었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분위기와 읽으면서 상상했던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책은 '타인의 피'이다. 연애편지를 읽다보니 사춘기때 읽어서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타인의 피'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

 

흐흐...사실 페미니스트들의 교과서라는 제2의 성은 읽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구의 백인 페미니즘에 대한 묘한 반감? 질투?

오히려 제 3세계의 현실을 아우르며 고찰한 페미니즘에 대해 더 흥미있었던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 현실도 있겠고..

현실에서 30여년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늘 나의 내면과 외면의 현상에 대해서 가장 질긴 고민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온 것이 이론서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 것도 있다. 흐흐..(이 택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야!!)

버지니아 울프의 혼자만의 방도 작년에서야 읽었는데, 그녀가 한 얘기들은 내가 20대에 들어서 고민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던데..

앞서 살았던 페미니스트들이 열어 젖힌 사유들이 있어서 나도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지금 뒤늦게 제 2의 성을 읽는다고 해도 별 새로운 고민을 던져줄 것 같지는 않다. 읽어보고 할 얘기여서 요즘은 제 2의 성도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다시 책얘기로 돌아오면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는 제 2의 성을 쓰면서 여성에 대해 고찰하던 그녀가 한편으로 모순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절절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솔직함에 경외감을 갖게 한다.

이제 이런 것도 삐딱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20대의 뾰족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일까? 언어에 당황하기는 했어도 그다지 반발심이 일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기도 하다. 긁적긁적..

 

오래전 내가 썼던 몇년동안의 연애편지들은 어찌 되었을까. 일주일에 2~3통씩 보냈던 그 편지들...아마 다 불태워졌겠지. 형이 편지만 한상자였다고 웃으면서 얘기했었는데..

사랑의 말과 나의 생활과 고민들이 없어진 그 편지들에 가장 상세하게 씌어져 있었을 텐데.

아, 물론 보부아르의 연애편지에 비견해서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녀처럼 훌륭한 작가도 아니고,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 요즘보다 더 형편없는 글쓰기를 했었으니까 뭐 얼굴이 붉어질 것이 뻔하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가장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일기라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처음 운동에 입문하던 당시에 그와 사랑을 하게 되고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편지를 쓰면서 정리가 안되던 것들도 정리했던 기억도 나는구만.

답장을 내가 쓴만큼 안보낸다고 책망하곤 했는데, 보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빠지면 비슷한가보다 싶어서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밤에 그런 책을 읽으면서 이런 독서일기를 쓰고 있으니 몹시 그가 그립다. 아, 정말 그립다.

 

누군가와 편지로 주고 받으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오래된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그것이 사랑이면 더 좋고, 친구라도 좋고...

21세기에 걸맞게 이메일이어도 상관없으리라..아날로그로 연필로 끄적거리면 더 정서적으로 좋겠지만..

 

초저녁 잠에서 깨어나 보부아르를 질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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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열차

루이스 세풀베다..한언니의 소개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푹 빠져버린 작가이다. 이사람의 자전적 소설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망명해서 돌아다니며 만난 남미 구석구석의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슬프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괜히 가슴 뻐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서 짧은 애피소드 몇개만 옮긴다. 한참 전에 읽으면서 배껴놓았나 본데 메일함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자극되어서 보시는 동지들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시라..같이 얘기해보자고..

 

"<콜로노>호가 한 번 더 속도를 늦춘다. 배는 뭍에서 약 8킬로미터 이내의 거리로 들어와 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갑판으로 나온다. 나 역시 그들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남극의 고래들이나 돌고래들이 수면 위에서 펼치는 묘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고래 떼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올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는 한 척의 작은 배다.
그 배는 칠로에 선적의 작은 범선이다. 길이 8미터, 너비 3미터쯤 되는 작은 배는 돛을 부풀리는 가벼운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우리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나 역시 그 배가 잘 보이는 갑판 쪽으로 다가간다. 그 작은 배가 지구의 남쪽 끝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중의 하나임을 생각하면서.
칠로에 사람들은 말한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자가 먹을 것을 얻는다>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뱃사람은 선미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자기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키를 잡고 있다. 그는 칠로에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떡갈나무, 낙엽송, 포플러, 유카리나무에 서로 다른 중량의 돌을 매달아 놓고서 그 나무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보다 신축적이고, 보다 탄력적인 돛을 구하기 위해서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뱃사람이 <콜로노>호를 향해 손을 흔든다. 파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 준<콜로노>호의 선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시다. 나는 그 범선 역시 코르코바도를 향해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뱃사람은 무시무시한 페나스 만과 메시에르 협만이나 인디오 협만을 지나 열린 바다를 향해서 레이더도 없이, 무전기도 없이, 항해 도구도 없이, 보조 엔진도 없이 오로지 바다와 해풍에 대한 자신의 경험으로 항해하고 있다.
그 바다의 뱃사람은 나의 형제다. 그는 지금 나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환영하러 나온 것이다."

 
 
"나는 목장의 여인네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나눈다. 수의사인 마르타, 이냐키의 아내 에스날로아의 새로운 세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사벨, 그리고 아구스틴의 아내 플로르가 그들이다. 그런데 아구스틴과 플로르는 파타고니아에서 전설적인 커플ㄹ로 알려져 있다.
결혼 전, 아르헨티나의 리오 마요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플로르에게 푹 빠져 있던 아구스틴은 한 해에 한 번쯤 대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감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플로르가 은행원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구스틴은 형들과 형수들에게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돌아올 터이니 신방을 단장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기타를 챙겨 들고 뗏목에 올라탔다.
결혼식이 진행될 일요일 리오 마요의 성당에 도착한 아구스틴은 신부복을 입은 플로르가 부모들과 함께 성당에 들어선데 이어 신랑이 등장하기 직전, 하객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기타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8음절 10행 시, 감미로운 기타의 선율에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시구에는 죽음이 둘을 갈롢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구구절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연가는 하객들이 신랑을 제지하는 와중에 무려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플로르가 손을 내민 것은 아구스틴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괴로워하며 손에 든 기타를 막 내리치려던 순간이었다. 두사람-플로르는 웨딩드레스 차람이었다-은 손을 맞잡고 성당을 빠져나와 그 길로 목장을 내달았다. 그때부터아구스틴은 그 지방에서 사랑의 연가를 연주하는 최고의 가우초가 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신부를 <백색 뮤즈>로 불렀다."
 
 
"맨 먼저 차에서 내린 사람은 코이아이케의 학교 선생이자 고집불통인 파타고니아의 역사가 발도 아라야이다. 암울한 칠레 군사 독재 시절, 그는 독재 정권이 국에 덧붙인 후렴-그대 이름, 칠레를 떠받친 용감한 군인-을 거부했다. 학생과 선생들이 월요일마다 국가를 부르는 동안 혼자서 묵묵히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그 일로 군부는 그에게 가공할 많나 폭력을 행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러 달의 구금 생활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꺼지 않고 버티자 끝내는 그를 학교에서 퇴출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가. 다음날 아침에 바케다노 부대 정문에 경비견의 목이 매달렸는데, 그 짐승의 송곳니에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우리를 잊고 있는 머저리 자식들에게 고한다. 너희는 부대 안에 있고, 우리는 밖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다시 경고한다. 아라야 선생님을 원상 복직시켜라.>
결국 군부는 선생을 쫓아내지 못하고 월급을 박탈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발도 아라야 선생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아낌없는 온정 속에서 14년 동안 꿋꿋하게 세계사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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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1887]

 

어제 공부방 아이들과 진짜 작별을 했다. 녀석들은 뭐가 뭔지 모르는 것인지..해맑게 안녕을 하더라. 녀석들과 이제 너희들과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니 모르니..눈물이 주륵주륵...
공부방 선생님이 수고했다고 주신 도서상품권으로 노문센터 회의하러 나오는 길에 행복한 왕자를 샀다.
어제 한겨례신문을 읽다가 행복한 왕자의 한 대목을 읽고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제비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왕자에게 한 말.
"제가 가는 곳은 이집트가 아니랍니다. 전 죽음의 집으로 가려 해요. 죽는다는 것과 잠이 든다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제비는 왕자의 모습에 매료되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왕자 또한 제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을 버린다. 제비의 죽음과 함께 그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둘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다.
왠지 동성애의 향기가..작가에 대한 편견때무인가..

내가 산 단편집은 9편의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가 모두 담겨있다.

어릴때 좋아하던 동화들인데 욕심쟁이 거인, 나이팅게일과 장미, 별아기..등등..모두 오스카 와일드 작품이라는 것에 놀랐다.

결말이 비극적이어서 기억에 오래남았는데..다시 찬찬히 읽고 또 읽어봐야지.



기억을 더듬어 어릴 때로 돌아가보면..

읽고 나서 아주 슬펐던 '행복한 왕자'. 제비도 왕자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느꼈다. 우리집 지붕 밑에 늘 찾아왔던 제비 모습이 오버랩 되었는지..여하튼 그랬다.
어린 분노를 느껴야 했던 '인어공주'. 내가 가서 왕자의 가슴을 찌르고 싶었다. 아직도 불끈!!! 열받는다.
읽어도 읽어도 참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너무 무섭고 끔찍했던 '분홍신'
이 4편의 동화에 대한 느낌이 아주 선명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해석판이 나왔다는데 그걸 읽고 싶고, 분홍신은 다시 읽어도 무섭다. 인어공주는 다시는 읽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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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평전

프란츠 파농 평전을 읽고 있는데..그에 대해서 옮긴이가 한 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는 검은 피부 때문에 백인사회를 증오했던 사람이 아니라, 검은 피부 덕분에 소수파에 대한 차별에 남다른 민감성을 진니고 지배문화와 지배세력의 부당한 폭력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다."
---> 이얘기를 다른 운동의 주제를 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폭력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혹은 같이 운동하는 남성활동가들에게 여성운동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주고 싶은데..위의 말을 변용해서 전하면 이해할까..

평전을 쓴 알리스 세르카는 프란츠 파농이 누구나 자기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으로 도달함을 강조함으로써 문화주의(특수성을 강조하여 서양철학의 특성인 보편주의에 이의를 제기한)와 시작부터 틀리다고 했다.
----> 여성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서양철학이 모두 해결해주지 않는 아시아의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 한국이라는 특수성..그곳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국가와도 변별점을 갖는다. 3년 전에 인종의 문제, 식민지의 문제를 다룬 파농을 처음 만났는데..제대로 저작을 읽지는 못했다.(사실은 게을러서 읽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위의 알리스 세르카가 평가한 그말이 변별점을 해소하고 뚫고 나가는 여러가지 요소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변역중이라는 도로시 앨리슨의 A Question of Class는 계급운동과 여성운동이라는 오래된 문제에 대해서..역시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줬으면 좋겠다..(근데 언제 번역이 끝날까?)
계급운동에 대한 무관심으로 점철된 미국이나 유럽의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왜 그렇게 얘기하는 가는 이해하겠으나..현실 특히 한국의 현실과는 어긋나는 점이 많아서 한두권 읽다 보면 질려버린다.
내가 원하는 것이 책 한두권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같은 고민과 같은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글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인다. 나는 그럴때에 전달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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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더 잘해 줄까요?"
K씨에게 그의 주인집 여자의 딸인 꼬마가 물었다.
"물론이지"하고 그는 대답했다.
"상어가 사람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식물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포함된 각종 먹이를 집어 넣은 거대한 통을 바다 속에 만들도록 하겠지. 상어들은 그 통의 물이 항상 신선하도록 할 것이고 어쨌든 각종 위생조치를 취하겠지. 가령 조그만 물고기 한 마리가 비늘을 다칠 경우, 때가 되기 전에 그 상어로부터 죽어나가지 않도록, 즉시 붕대로 싸매주겠지.
물고기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가끔 커다란 수중 축제가 벌어지겠지. 왜냐하면 우울한 물고기보다는 유쾌한 물고기가 더 맛이 좋거든.
그 커다란 통속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이 학교에서 물고기들은 상어의 아가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법을 배울 거야. 그들은 가령 어딘가에서 빈둥거리며 누워 있는 상어를 찾을 수 있기 위해 지리가 필요하게 되겠지.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물고기들의 도덕적 수련일 거야. 그들에게는 물고기 한 마리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과, 그들이 모두 상어들의 말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특히 상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말을 믿어야 한다는 걸 배우겠지.
물고기들은 또한 복종을 익힐 때만 이러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배우게 될 거야.
물고기들은 모든 저속하고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이고 마르크스적인 경향에 대해 조심해야 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면 즉시 상어들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배울 거야.
상어가 사람이라면, 그들은 새로운 물고기 통과 새로운 물고기들을 정복하기 위해 물론 서로 전쟁을 하겠지. 그 전쟁들을 그들은 자기들 소유의 물고기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할 거야. 그들은 물고기들에게 그들과 다른 상어들의 물고기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가르칠 거야.
물고기들은 알다시피 말이 없지만, 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침묵을 지키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은 발표할 거야.
전쟁에서 적군의, 다른 말로 침묵을 지키는 물고기 몇마리를 죽이는 물고기마다 그들은 해조(海藻)로 만든 작은 훈장을 달아주고 영웅 칭호를 수여할 거야.
상어가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도 물론 예술이 존재하겠지. 상어의 이빨이 화려한 색깔로 묘사도고 상어의 아가리가 화려하게 뛰어 놀 수 있는 순수한 공원으로 묘사되는 멋진 그림들이 있겠지. 바다 밑의 극장에서는 영웅적인 물고기들이 열광적으로 상어 아가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을 보여줄 것이고 음악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그리고 악대가 앞장서서 연주하는 가운데 꿈꾸듯이, 그리고 가장 행복한 생각에 젖어서 상어 아가리 속을 몰려 들어갈 거야.
상어가 사람이라면 또한 종교도 존재할 거야. 그들은 물고기들이 상어의 뱃속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살기 시작할 것이라고 가르칠 거야.
또한 상어가 사람이라면, 모든 물고기들이 지금처럼 서로 똑같은 일은 없을 거야. 그들 가운ㄷ 일부는 감투를 쓰게 될 것이고 다른 물고기들의 윗자리에 앉게 되겠지. 약간 더 큰 물고기들은 심지어 더 작은 놈들을 먹어 치울 수도 있을 거야. 그건 상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일일 뿐이지.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다음에 더 큰 먹이를 더 자주 얻게 될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더 크고 직함을 가진 물고기들은 물고기들 사이의 질서를 돌볼 것이고 교사와 장교 물고기 통의 건축 기사 따위가 될 거야.
요컨대 사어가 인간일 경우, 바닷속에는 비로소 문화가 존재하게 될거야."

- 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중 <코이너씨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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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오디세우스와 시레네

신판 희랍 신화

오디세우스와 시레네

알다시피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노래로 사람을 유혹하여 잡아먹는 시레네 마녀들의 섬을 보았을 때, 자기 몸을 타고 가는 배의 돛대에 묶어 놓고 노젓는 뱃사람들의 귀를 밀납으로 틀어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밀납과 밧줄의 덕분으로 그는 아무런 심각한 결과도 가져오지 않으면서 예술을 감상했다는 것이다. 귀가 안 들리는 부하들은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서 우리의 주인공이 돛대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모습과, 유혹하는 여자들이 있는 힘을 다해 목청껏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따라서 얼핏보기에는 모든 게 약속되고 에언된 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희랍인들은 모두 그 교활한 오디세우스의 술책이 성공한 것으로 믿었다.
여기에 의문을 품는 것은 내가 처음일까? 요컨대 내 얘기는 이런 것이다. 모든 게 다 좋다. 그러나 돛대에 묶여 있는 사람을 보고 그 마녀들이 정말 노래를 불렀다고 말한 것은 오디세우스 혼자뿐이지 않은가? 이 천하무적의, 닳고 닳은 여자들이 아무런 행동의 자유도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자기들의 예술을 낭비했을까?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 마녀들이 뭔가 있는 힘을 다해 외치는 것처럼 뱃사람들이 본 것은, 실은 그녀들이 그 째째하고 소심한 촌놈에 대해 욕을 퍼부은 것이었으며, 우리의 주인공은 그래도 결국은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짐짓 몸부림친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 브레히트'상어가 사람이라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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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약할 수 있는 권리

약할 수 있는 권리
K씨는 어떤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었다. 그후 이 사람은 아무런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K씨는 큰 소리로 그 사람의 배은망덕함을 비난함으로써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K씨의 행동이 점잖치 못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자넨 감사를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었나? 인간이란 남에게 감사할 수 있기에는 너무 약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하고 K씨는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감사할 것을 요구할 만큼 약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고백하면, 마치 자신이 바보임을 고백하는 것처럼 생각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럴까?"

-브레히트 단편소설집 '상어가 사람이라면' 중 [코이너씨의 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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