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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칼텍스, 공포의 노조파괴 공작

  • 등록일
    2005/02/01 17:55
  • 수정일
    2005/02/01 17:55
노사 전문가 영입해 민노당 탈당 강요까지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남쪽 끝의 여수. 그러나 겨울 아침 바람은 송곳처럼 옷깃을 파고든다. 현재 시각은 1월 6일 오전 7시 20분. 엘지칼텍스 여수공장 정문에는 출근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차들은 천천히 공장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군화를 신은 사내들이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보는 등 분위기는 사뭇 삼엄했다. 그들이 쓴 모자에는 '특경'이라 씌어있다. 회사가 고용한 사설경비대다. 질서정연하던 그 공간이 느닷없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정문 옆에 어떤 차량이 멈춰서면서부터 였다. "수고하십니다!"


경비대를 향해 기운차게 아침 인사를 날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난 해 말 "불법파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엘지칼텍스 정유 노동자들이었다. 굳은 표정의 경비대원이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해고자들이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출근행렬에 끼어있었던 직원들이었다. 경비대원이 부자연스런 폼으로 경례를 붙인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럼요. 내일도 올겁니다. 하하" 해고자들은 차에서 현수막을 꺼내 펼쳐들었다. 현수막의 문구는 '인권말살․노조탄압 중단하고 부당해고․강제사직 철회하라'였다. 이들의 구호가 아침 하늘 속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던 이들의 이목이 한번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금새 고개를 돌려버린다. 출근버스에 타고있던 사람들은 창문에 얼굴을 붙인 채 옛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해고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야간근무자들의 퇴근 버스가 공장 밖으로 나왔다. 버스 속 한 두명은 해고자들에게 살짝 손을 들어보이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버스는 금새 지나쳐버렸다. 한참 전부터 불안한 듯 기자 주변을 탐색하던 경비대원 한 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이름을 물었다. 흔쾌히 소속과 이름을 알려줬다. 그 대신 기자는 정문 앞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경비대에 요구했다. 경비대 외에 십여명의 사내들이 어깨띠를 두르고서 해고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이라고 알고있는데, 잠깐 만나뵐 수 있을까요?" "절대 안됩니다." 정문 쪽으로 가는 듯한 포즈를 취하자 경비대원은 위협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50미터 쯤 떨어진 그곳에서,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웃으며 이쪽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해고자인 한재훈 씨가 디지털 카메라로 그들을 찍으려 하자, 경비대원들이 달려들어 제지하기도 했다. 숨도 크게 못 쉬는 '파업 생존자' 아침 7시 50분, 해고자들의 '출근선전전'이 끝나고 공장정문 근처의 방문객 대기실로 들어갔다. 언손을 녹이며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뽑아든 해고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로 구내전화를 했다. 현재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했지만,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와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다. 노조 사무실 출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노조에 전화하던 신범식 해복투 의장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월간 『말』 기자가 함께 있다"는 말에 노조측이 방문을 거절한 것이다. 해고자들도 일순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해고자들이 번갈아가며 전화해서 설득도 하고, 을러보기도 했지만, 어림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노조측과 통화를 시도했다. 상대는 위원장 직무대행인 박주암 씨였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한사코 취재거부 의사를 밝혔다. "해줄 이야기는 없다. 일체의 취재를 거부하는 게 노조 방침이다." 박 직무대행에게 “해고자들도 조만간 노조출입을 못하게 할 것이냐”고 묻자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는 "다음 기회에 바깥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미안하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이날 엘지칼텍스 공장으로는 끝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지난 여름 파업 이후 5개월이 흐른 지금, '파업 생존자'들은 이렇게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구속되어 수감중인 전 노조 지도부를 면회하는 조합원이 단 한명도 없을 정도다. 전날 저녁 기자는 이미 잔인한 풍경을 목격했었다. 해복투 사람들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한 조합원이 해고자들을 보자마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게 아닌가. 반갑게 인사하는 옛 동료를 보는 그의 눈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히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괴감이나 미안함 탓이라 해석하기에는 지나치게 위축된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공포에 질린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파업복귀 프로그램'의 야만적 실상 파업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노조는 처절하게 깨졌다. 여론에서도 밀리고, 힘싸움에서도 밀렸다. 2004년 8월 6일 회사측의 '선 복귀 후 대화'라는 요구를 노조가 수용하게 된 것에는 이런 외부적 요인도 한몫 했다. 그러나 그 후 3개월간 '대화'는 없었다. 대신 10월 29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국에 알려졌다. 엘지칼텍스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것이다. 회사측이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파업조끼 화형식'과 '머리띠 절단식'을 하는 등 본격적인 ‘노조 길들이기’에 나선 결과였다. 공장 정문에는 노조 명의로 '지난 잘못된 활동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죄를 드립니다'라는 플랭카드가 내걸렸다. 해복투의 정점식 씨는 "'선복귀 후대화'가 아니라 '선복귀 후학살'이었다"라고 당시를 묘사했다. 조합원들의 복귀 후, 그들에게는 회사의 강도 높은 '복귀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서약서와 경위서, '나의 각오' '앞으로의 나의 마음가짐' 등 굴종적 내용의 '반성문'들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다.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저해하는 불순한 어떠한 외부세력도 거부하며 불법적인 파업 및 집회 등 행위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나의 각오')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어떠한 언행도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각오') "본인은 2004년도 노사간 임금협상 과정에서 회사 초유의 공장가동 중단과 시설물 점거 등 불법적인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항을 이행, 준수할 것을 서약합니다."('서약서') "회사의 모든 규정과 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업무수행과 관련된 각종 지시사항과 인사명령을 성실히 준수하겠습니다"('서약서') 위의 내용들은 대부분 개인의 양심을 문서로 검열하고 있다. 더구나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겠다" "회사의 모든 규정과 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업무수행과 관련된 각종 지시사항과 인사명령을 성실히 준수하겠습니다" 등의 구절은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의 포기를 사실상 강요하는 내용으로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이미 발전노조 파업 당시 서약서 작성 강요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2004년 7월 6일 서울행법) 민노당 탈당증명원(?) 요구한 조합원 민주노동당 여수지구당 이준상 위원장은 "지난 5개월간 이 여수땅에서 인간의 기본권들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헌법에 엄연히 보장된 정당가입의 자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합원들 상당수가 당원들이었다. 회사측의 탈당 강요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당원도 아닌 조합원들 여러 명이 지구당에 전화해서 '내가 혹시 당에 가입했었냐'고 묻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회사가 탈당을 강요한 정황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누가 당원인지, 누가 탈당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차별적으로 조합원들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상 위원장은 "심지어 이미 탈당한 사람이 '탈당 증명원'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적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많은 증명서가 있다지만, 탈당 증명원은 난생 처음 들어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파업이 끝난 후의 '개별면담'은 회사가 조합원들을 확실히 '길들일' 수 있었던 계기였다. 징계가 결정되지 않았던 시점이므로, 사실상 자유의사에 따른 답변은 불가능했던 상황이다. 엘지정유노조 인권실태조사단의 보고서를 보면 "누구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는가" "이동장소로 누가 인솔했는가" "활동 중 무슨 말을 했는가" "(사진에 찍힌 사람을 지적하며)이 사람 강성이냐?" 등과 같이 동료를 '고자질'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있는가 하면 "민주노동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같이 정치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다분한 질문들도 섞여있었다. 또한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회사가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경우 "면담 준비가 안되어 있다.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라"며 일방적으로 면담을 중단하기도 했다. 회사는 '전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을 다른 조합원과 철저하게 격리시키기도 했다. 회사로부터 '강성'으로 분류된 한재훈 씨는 "징계결정이 나기까지 공장 내 창고에서 사실상 '구금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씨는 "10월 1일부터 83일 간 창고에서 생활하면서 '사직서 쓰라'는 말 외에 회사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식사할 때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창고 밖에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사협력팀장은 대우차 출신 노무관리 '전문가' 엘지칼텍스의 '파업 이후'를 살펴보면 몇 가지 미스테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엘지칼텍스의 파업대처 방식이었다. 40년 가까이 파업다운 파업을 경험하지 못한 회사 치고는 노무관리수법이 너무나 정교하다. 노동계 인사들도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찍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엘지칼텍스 파업 전후로 회사측 대응방식을 보면 한 마디로 '프로'의 냄새가 난다"고 밝혔다. 특히 파업복귀 프로그램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과정을 보면 과거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사례나 발전노조 파업, 현대중공업의 노무관리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업경험 없는 회사가 노조와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노무관리 전문가를 외부에서 스카웃해오는 것이다. 엘지칼텍스의 경우는 어떨까. 현재 엘지칼텍스의 노무관리를 담당하는 부서명은 '노사협력팀'이다. 취재 결과, 이 부서의 팀장인 윤 아무 씨가 바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출신 노무관리 전문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엘지칼텍스 노사협력팀은 "윤씨가 대우차 부평공장에 있다가 이곳으로 채용되었다는게 사실이냐"고 묻자 "맞다"고 인정했다. 그밖의 몇몇 팀원들도 현대중공업 등 타사에서 활약하던 노무관리 전문가들이라 알려져 있기에, 실명을 거론하며 추가질 문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회사의 담당자는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은 "회사 간에 노무관리 전문가들의 스카웃 관행은 최근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지적했다. 과거에는 그룹 내 계열사 간에 이루어지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실적'이 입증된 노무관리 전문가들이 여러 회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 소장은 그러나 "이런 경향이 기업간 공조체제같지는 않다. 다만 1990년대 초 노조파괴전문가로 악명을 떨치던 '제임스 리'와 비슷한 일종의 '프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복투는 엘지칼텍스 노조가 5년 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전환한 직후부터 회사의 노무관리가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노무관리 전문가들이 대거 신규채용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가입만으로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40년간 노조와 갈등을 피해오던 회사가 2004년에 와서 느닷없이 정면대결의 위험을 감수하게 됐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회사가 그 시기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모종의 동기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어느 보고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지칼텍스 여수공장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었다. 문제의 발단 : 보스턴컨설팅그룹 보고서 1999년 엘지칼텍스 여수공장은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 그룹에 보고서를 의뢰했다. 월간 『말』이 입수한 'RMIP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보고서는 무려 178쪽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보고서이긴 하지만 꼼꼼이 분석해본 결과, 요점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즉, "추가 설비투자나 고용 없이 어떻게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변서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전체 보고서를 통틀어 봐도, 지역 사회의 고용을 증진시켜 시너지효과를 얻는다거나 추가설비투자로 장기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조직감축과 노동자 1인의 'multi-skill'화(간단히 말해 지금보다 더 많은 업무를 감내하라는 의미), 노무관리업무의 강화가 보고서 전반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조정 안이 일단락되는 시기는 의미심장하게도 2004년 말~2005년으로 잡혀있다. 간단히 보고서 내용을 옮겨보자. 먼저 조직부문에 대한 컨설팅 내용이다. "추가적인 설비투자 필요없이…개선기회는 500여억 원에 달함"(23쪽) "생산관리부문은 포괄적 아웃소싱 통해 조직간소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110쪽) "기능감독직의 15%, 기능직의 20~30% 절감 등 전체인력 15~20% 절감 가능하지만 제약조건은 노조의 동의 필요하다는 점"(120쪽) 덧붙여 104쪽의 조직설계 가이드라인에도 "간접부문의 아웃소싱화"가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거 전환시키라는 이야기이다. 노경업무(노무관리)에 대한 조언도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보고서는 "임직원과 관리직이 노조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내부갈등을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120쪽)고 제안한다. 특히 여수공장의 장애요인으로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현장의 애로/고통사항을 해결하고 있다는 점"(161쪽)을 들고 있다. 급기야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노조의 존재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노경업무가 가장 비효율적인 부문"(98쪽)이라면서 "현재 노경업무 28명, 노경문화팀 14명을 모두 전문가들로 양성해야한다"(109쪽)고 조언했다. 엘지칼텍스는 2004년 여름의 파업을 능숙하게 '진압'함으로써, 이 조언을 얼마나 훌륭히 수행했는지를 증명해냈다. 과연 누가 '공공의 적' 인가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사실상 하나로 수렴한다. 바로 '주주이익 극대화'이다. 회사가 노조의 파업당시 요구사항이던 '지역사회발전기금'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에 완강한 거부입장을 보인 것도 저 보고서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회사는 지역사회나 노사화합과 같은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엘지칼텍스 주식지분의 과반을 점하는 건 외국계 자본이다(셰브론 텍사코 40%, 칼텍스 10%). 또한 주식공개를 하지 않은 비상장 기업으로서 2003년에는 일반 상장기업의 평균주주배당률의 10배에 가까운 98%의 주주배당을 실시했다. 비정규직은 2000년 82명에서 2003년 294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곧 보스턴 컨설팅 보고서에서 요구한 바 그대로다. 이쯤에서 과연 누가 '국가경제의 적'인지 되물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말하는 '귀족노조'가 '공공의 적'인가. 그렇지 않으면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해 노조를 탄압하는 엘지칼텍스인가. 엘지칼텍스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으로 몰렸다. 이유는 '국가기간산업'이어서였다. 그런데 정작 그 기업이 신규투자도 않고, 천문학적 이익을 해외로 반출시킬 뿐더러, 지역민들에 대한 고용도 줄이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엘지칼텍스를 '국가기간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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