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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02
    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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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음악] 트로피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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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08/26
    지율 스님, 57일만에 결국 병원으로 옮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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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등록일
    2004/09/02 10:00
  • 수정일
    2004/09/02 10:00

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이주노동자 인터뷰프로젝트 눈길…인터넷으로 동영상 볼 수 있어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미디액트, 미디어참세상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 중인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코리안 드림’을 품에 안고 이 땅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 장시간 노동 속에서도 온갖 욕설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은 결국 불법체류자로 내몰려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죽어도 떠날 수 없다’는 그들의 절박한 생존의 외침 그리고 300여일 간의 천막농성. 하지만 그들은 ‘죽거나 혹은 떠나야만’ 한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농성단 천막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서로 보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보면서 독립영화를 하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무엇일까.”

 

총괄 프로듀서인 이마리오를 비롯한 미디어 운동가들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됐고 이마리오는 “카메라로 이주노동자의 삶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 그것이 우리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식 중에 하나였다”고 답을 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작업에 착수했다. 총연출을 맡은 주현숙씨도 홈페이지를 통해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이어서 주저했지만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이 프로젝트에는 독립영화인, 사회단체활동가, 일반시민,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 햄씨는 “외국에 나가 돈 많이 벌어 가족들을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기 와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국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소회했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인 선주씨는 “새를 잡아서 새장에 가둬 놓는 것처럼 묶어 놓고 착취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깊은 시름은 우리 사회가 그 만큼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작업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치유과정이자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6월부터 기획 및 제작을 시작해 17일부터 공개한 이번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는 인터넷(http://interview.jinbo.net)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앞으로 RTV를 통해 케이블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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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음악] 트로피칼리아

  • 등록일
    2004/09/02 01:58
  • 수정일
    2004/09/02 01:58

Tropicalismo 또는 Tropicalista라고 불리우는  노래운동은 브라질에서 60년대 말에 일어난 노래 운동입니다. 당시 브라질은 군사 독재 정권이 있었고, 이를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통해서 비판하였지요.


이 운동은 Caetano  Veloso(까에따누 벨로주?)와  Gilberto Gil(지우베르투 지우?.. 발음엔 자신이 없군요) 이 두 사람이 이끌었습니다. 둘다 작사, 작곡, 연주, 편곡 등 음악의 전 방면에  능한 가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967년  "Tropicalia" 라는 앨범을 내놓음으로써 기성 음악계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전세대 가수들이 보사노바를 주로 한,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든 반면, 이들은  당시 영미 록과 비슷한 스타일로 전기 악기들을 도입해서 획기적인  음악을 했지요. 록큰롤 뿐 아니라, 전통 브라질 음악, 카리브 음악,  등등 광범위한 장르들을 격력한 내용의 가사와 혼합시켜서 당시 사회를 비판했고, 곧  젊은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읍니다. 전기기타와 오르간 소리가  크게 울리는 이들의  음악을 두고 기성세대들은 반브라질 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요.  들어보면 꼭 초기  산울림 노래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고운 발라드 쪽하고는 거리가 멀더군요. 다소 전위적입니다.



Caetano Veloso는, 흔히 MPB(Musica  popular brazileira)라고 일반적으로 표기 되는 브라질 대중  음악계에서는 이 운동으로  혁명을 일으켰다고들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양성연애자라서 데이빗 보위처럼 화장하고 여자옷 입은체로 무대에 나와서 노래하기도 하는등, 60년대 말  브라질 음악계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하는 군요. 그를  MPB계의 존 레론이니, 밥  딜런이니 하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Gilberto Gil는 Dorival Caimmy, 지미 헨드릭스 등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뛰어난 보칼이 두드러집니다. 엠티비 언플러그드에 나온 걸 봤는데 보통이 아니더군요. 인터넷에서는 http://www.gilbertogil.com.br에 가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의 두 사람을 선두로 해서, Gal Costa, Maria Bethania 등 쟁쟁한 가수들이 여기에 참여를 했습니다. 이들의 영향력과 인기가 커지자, 이를 두려워한 군사정권은 Caetano와 Gil을 2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도록 했고, 그후 4달 동안 가택 연금을 하였습니다. 급기야 이 두 사람은 1969년 런던으로 망명을 가게 되어 그곳 에서 2년을 보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사람은 영어로 노래를 썩 잘합니다.


그래서 이 운동의 수명은 1967-1969년으로 아주 짧지만 그 파장은 MPB에 크게 남아서 다른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이 시기엔 브라질 말고도 영미 록, 꾸바 등지에도 명곡이 쏟아져 나왔지요. 저도 80년대 이전 노래들이 더 맘에 듭니다.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그당시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어떤기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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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겨레] 영화100년, 영화100편

  • 등록일
    2004/08/31 14:30
  • 수정일
    2004/08/31 14:30

94년 9월 7일부터  96년 3월 13일까지(쉬는 기간동안 아래 영화나 봐야 겠습니다.)

 

         <<한겨레신문 영화100년 영화100편 목록>>

 

#1. <인톨러런스 Intorelance> (1916) / 감독: D.W. 그리피스
#2.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 (1919) / 감독: 로베르트 비네
#3.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 (1922) /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
#4. <마지막 웃음 Der Letzte Mann> (1924) / 감독: F.W. 무르나우  
#5. <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 (1925) / 감독: 찰리 채플린
#6.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 (1925) / 감독: 세르게이 에이쩬슈테인  
#7. <어머니 Mat> (1926) / 감독: 프세볼로트 푸도브킨  
#8.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 감독: 프리츠 랑
#9. <황금 시대 L'Age d'or> (1930) / 감독: 루이 브뉴엘  
#10. <장군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11. <잔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1928) / 감독: 칼 데어도어 드레이어
#12. <대지 Zemlya> (1930) / 감독: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13. (1931) / 감독: 프리츠 랑
#14.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 (1936) / 감독: 찰리 채플린
#15. <올림피아 Olympia>(1938) / 감독: 레니 뤼펜쉬탈
#16. <커다란 환상 La Grande Illusion>(1937) / 감독: 장 르누아르
#17. <게임의 규칙 La R gie du jeu>(1939) / 감독: 장 르누아르
#18. <판타지아 Fantasia>(1940) / 제작: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19. <시민 케인 Citizen Kane>(1941) / 감독: 오손 웰즈
#20. <폭군 이반 Ivan the Terrible>(1944/1946) / 감독: 세르게이 에이쩬슈테인
#21.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 / 감독: 존 휴스톤
#22. <인생유전 Les Enfants du Paradis>(1945) / 감독: 마르셀 까르네
#23. <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1945)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24. <품행 제로 Zero de Conduite>(1933) / 감독: 장 비고
#25. <파이자 Paisa>(1946)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26.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1947) /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27. <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1948) /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28.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1949) / 감독: 캐롤 리드
#29. <라쇼몬 羅生門>(1950)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30.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1952) / 감독: 진 켈리·스탠리 도넌
#31. <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1952) / 감독: 미조구찌 겐지
#32. <도쿄 이야기 東京物語>(1953) / 감독: 오즈 야스지로
#33.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1954)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34. <길 La Strada>(1954)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35. <바람에 쓰다 Written on the Wind>(1956) / 감독: 더글라스 서크
#36. <추적자 The Searchers>(1956) / 감독: 존 포드
#37. <파테르 판챨리 Pather Panchali>(1956) / 감독: 쇼티아지트 레이
#38. <제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1957) / 감독: 잉마르 베리만
#39. <현기증 vertigo>(1958)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40.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41. <재와 다이아몬드 Popiol i Diamont>(1958) / 감독: 안제이 바이다
#42. <오발탄>(1961) / 감독: 유현목
#43. <히로시마 내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 감독: 알랭 레네
#44. <정사 L'Avventura>(1961) /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45. <네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1959) / 감독: 장 뤽 고다르
#46. <쥘과 짐 Jules et Jim>(1961) /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
#47. <8과 2분의 1 Otto E Mezzo>(1963)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48.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Teni Zabytykh Predkov>(1964) /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49. <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1965) /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50. <무셰트 Mouchette>(1967) / 감독: 로베르 브레송
#51. <페르소나 Persona>(1966) / 감독: 잉마르 베리만
#52. <적과 백 Csillagosok, Katon k>(1967) / 감독: 미클로슈 얀초
#5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1967) / 감독: 아더 펜
#54. <저개발의 기억 Memorias del Subdesarrolo>(1968) /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55. <만다비>(1968) / 감독: 우스만 셈벤
#56. <만약에... If...>(1968) / 감독: 린제이 앤더슨
#57.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essey>(1968) / 감독: 스탠리 큐브릭
#58. <루시아 Lucia>(1969) / 감독: 움베르토 솔라스
#59. <죽음의 안토니오 Antonio-das-Mortes: O Prag o da Maldade Contra o Santo
#60. <콘돌의 피 Yawar Mallku>(1969) / 감독: 호르헤 산히네스
#61. <순응주의자 Il Conformasta>(1970) /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62. <이지 라이더 Easy Rider>(1969) / 감독: 데니스 호퍼
#63. <떼오레마 Teorema>(1970) /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64. <대부1·2·3 The Godfather partⅠ,Ⅱ,Ⅲ>(1972∼1990)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65. <아기레,신의 분노 Aquirre, der Zorn Gottes>(1972) / 감독: 베르너 헤어쪼그
#66. <내슈빌 Nashville>(1975) / 감독: 로버트 앨트먼
#67. <길의 왕 Im Lauf der Zeit>(1976) / 감독: 빔 벤더스
#68. <칠레전투 Batalla de Chile>(1975) /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69.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1976) / 감독: 마틴 스콜세지
#70. <애니 홀 Annie Hall>(1977) / 감독: 우디 앨런
#71. <파드레 파드로네 Padre Padrone>(1977)/ 감독: 비토리오 따비아니 & 빠올로 따비아니
#72.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1979)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73. <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1978) / 감독: 데이비드 린치
#74.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Die Ehe der Maria Braun>(1979)/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75. <양철북 Die Blechtrommel>(1979) /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
#76. <성난 황소 Raging Bull>(1980) / 감독: 마틴 스콜세지
#77. <메피스토 Mephisto>(1980) / 감독: 이슈트반 자보
#78. <욜 Yol>(1982) / 감독: 일마즈 귀니
#79.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 감독: 리들리 스코트
#80. <향수 Sacrifice>(1983) /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81. <황토지 黃土地>(1984) / 감독: 첸 카이거
#82.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1984) / 감독: 짐 자무쉬
#83. <마기노 마을의 이야기>(1985) / 감독: 오가와 신스케
#84. <녹색광선 Le Rayon Vert>(1986) / 감독: 에릭 로메르
#85. <메이트원 Matewan>(1987) / 감독: 존 세일즈
#86. <붉은 수수밭 紅高粱>(1988) / 감독: 장 이모우
#87.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1989) / 감독: 스파이크 리
#88. <비정성시 悲情城市>(1989) / 감독: 허우 샤오시엔
#89. <십계 Dekalog>(1989> / 감독: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90.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 감독: 배용균
#91. <안개 속의 풍경 Topio stin Omichli>(1989) /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92. <바톤 핑크 Barton Fink>(1991) / 감독: 조엘 코엔
#93.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Zendegi Edame Darad>(1992)/ 감독: 압바스 키아슬로타미
#94. <올란도 Orlando>(1992) / 감독: 샐리 포터
#95. <패왕별희 覇王別姬>(1993) / 감독: 첸 카이게
#96. <서편제>(1993) / 감독: 임권택
#97. <피아노 The Piano>(1994) / 감독: 제인 캠피온
#98.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1993)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99. <스모크 Smoke>(1995) / 감독: 웨인 왕
#100.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1995) /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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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진보누리] 삼나무 위의 그녀

  • 등록일
    2004/08/26 13:58
  • 수정일
    2004/08/26 13:58

계속되는 지율스님의 단식에 부쳐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힐이다. 이미 5년이 흘렀으니 이미 그녀도 우리 나이로 보면 삼십 줄에 턱걸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3년 전 초봄에 신문 기사를 몇 개 벽에 스크랩해두었는데,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스크랩 골판지가 떨어지면서 이 신문 기사도 방바닥에 떨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사진은 노랗게 색이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다. 그녀는 97년 12월에 삼나무 위에 올라가 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 삼나무는 높이가 60미터쯤 되었고 수령은 2천 년이 된 나무였다. 그녀는 그 위에서 동료들이 올려보내는 걸로 밥을 먹었고, 그 위에서 싼 똥을 동료들에게 내려보냈다. 그녀가 그 위에서 바라본 것은 삼나무 숲이었다.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있는 레드우드라고도 불리우는 삼나무들의 숲. 수령이 보통 1천 년에서 1만년이 된, 생물학의 기적이라고 불리워지는 자연 그대로의 보고였다. 게다가 나무 그루마다 희귀종의 생물들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녀가 추운 겨울 날 이 나무 위에 올라간 것은 이 헤드워트 숲을 소유하고 있던 퍼시픽 럼버라는 개인 목재회사가 이 숲을 수십 년 간 벌채해 목재로 가공해온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당장 벌채를 중단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나무 위에 올라갔다. 퍼시픽 럼비사는 줄리아 힐의 식량보급을 번번히 방해하는가 하면 연기를 나무 위로 피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뛰어내리겠다고 외쳤다.

그녀의 이 상징적인 투쟁은 각처 환경운동가들의 연대를 끌어모았고 결국 연방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존 캠벌 사장은 '사유재산권 행사에 정부가 관여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 당국과 퍼시픽 럼버사의 협상은 한동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종내 1999년 3월 2일 퍼시픽 럼버사의 캠벌 사장은 이 헤드워트 숲을 정부에 넘기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줄리아 힐은 그 소식을 듣고 마침내 나무 위에서 내려와 자신이 투쟁으로 지켜낸 그 신비의 숲속 땅에 발을 디뎠다.

그녀의 이 목숨을 건 투쟁은 이후 많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바위 틈 사이, 나무 위, 허공 위에 매달린 채 자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삶을 내걸고 있다. 그들은 나무와 바위와 풀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실제로 숲속에 벌목꾼이 들어와 나무 한 그루만 베어내도 이 나무가 쓰러지면서 지르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는 숲속 나무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나무들은 비명에 전염되어 죽어가는 나무와 함께 비명을 질러댄다.

줄리아 힐의 사건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칭송한 클린턴이나 그녀 이야기를 앞다투어 언론의 가십으로 삼았던 백인들은 자기 집의 질 좋은 목재 가구를 쓰다듬으면서 한편으론 감동적인 환경운동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

2002년에 쓴 글 중에서....

권력은 아직도 말이 없고, 지율 스님은 그렇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계신다. 소위 '메이저급' 환경단체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이런저런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생명의 소중함,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들의 책임의 윤리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여전히 개발 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힌 이들의 책임 윤리 말이다.

책임의 윤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지구 운명에 대한 책임, 아울러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물려줄 책임을 공히 아우르는 생태철학의 원칙을 의미할 터다. 이미 훼손할 대로 훼손해버린 땅과 하늘에 대한 참회의 원칙.

현재의 편리와 물질문명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어 책임의 윤리를 망각하는 일, 천성산의 비명과 홀로 책임의 윤리를 몸의 고통으로 육화하고 있는 지율 스님의 생명을 갈취하여 이기를 축적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운위되는 이 세계의 표정은 참으로 악위적이며 음란하다. 천성산과 도룡뇽에게, 지율 스님에게, 자기 후손들에게 못할 짓을 지금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게다.

다시 한 번 줄리아 힐의 사진들을 보면서, 지율 스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그녀의 투쟁으로 지켜낸 천성산을 맨발로 걷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밤, 도룡뇽과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소호하기를 기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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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57일만에 결국 병원으로 옮겨져

  • 등록일
    2004/08/26 11:58
  • 수정일
    2004/08/26 11:58
환경부장관, 26일 시민사회단체 면담 갖기로 
 
지율 스님이 결국 단식 57일만에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율 스님은 병원에서 몸 상태에 대한 진단을 받은 후, 단식을 풀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율 스님 결국 병원으로...
  
지율 스님은 오전 문재인 수석을 만난 후 오후 1시40분께 동국대 강남한방병원으로 옮겨졌다. 지율 스님은 단식 55일째인 23일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 스님은 병원에서 몸 상태에 대한 정밀 진단을 받은 후, 단식을 풀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광서 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전남대 교수)는 "단지 장소만 옮겼을 뿐이지 지율 스님이 단식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라며 "청와대에서 그렇게 보도를 내보낸 걸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합의문 같은 게 없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행태는 지율 스님을 설득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광서 상임대표는 "오늘 몸 상태에 대한 진단 결과를 확인해, 지율 스님을 최대한 설득하겠다"며 "일단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더라도 시민ㆍ사회단체들이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지율 스님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대표는 "이번 기회에 환경단체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과연 시민운동을 순수하게 하고 있는가, 권력화하지는 않았는가, 스스로 모르게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이런 것들을 지율 스님의 외로운 싸움을 계기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결호 장관, "내일 다시 만나 얘기하자"
  
한편 지율 스님이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 곽결호 환경부 장관도 지율스님을 방문한 후,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시민ㆍ사회단체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며 "환경부가 지율 스님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곽 장관은 그러나 시민사회단체가 계속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자,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고 26일 오전 환경부와 시민ㆍ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만나기로 했다.
  
이날 곽 장관과의 간담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내일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고속철도 터널 공사가 천성산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재조사하는 문제를 요구하겠지만, 환경부에서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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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중생을 구제하여 찾아 온다는 미륵 부처... 지율 스님이 미륵부처 입니다. 그런 미측부처가 단식 57일이라는 고된 용맹정진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셨습니다.

천성산의 자연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고 하신 말씀을 신문지면에서 접한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생명과 공존하고, 이름 없는 풀, 곤충, 동물 들의 울음에 귀기울이라는 그 외침이 또렷한데... 그 당당하신 미륵부처가 쓰려지셨습니다.

 

인간들의 죄를 사하고자 자신 스스로가 단식으로 등신불이 되고자 결연한 의지를 밝히신 살아있는 미륵부처의 외침이 생생한데....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이제서야 기사를 보았기에...

 

특종이 되니 기사를 기재한 진보적 언론의 작태에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부처 장관이라는 녀석의 적법성 운운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개인이야 죽건 말건 경제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그들의 개발지상주의 정책으로 애꿎게도 사람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켰던 모든 자연을 훼손시킵니다. 이 어찌 분노치 않겠습니까....

 

생명보다 돈이 중요한 세상이라는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길래... 경제가 무엇이길래....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나고 내수경기 침체인데 그 많던 돈은 다 어디로 갔답니까? 그 돈 당신들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서 구린돈이 되었으니 천성산이 죽건 말건 당신들은 받은 돈에 대한 응당한 댓가로 공사를 강행시키려는 속이 보이는 행동에 치까 떨립니다.

 

서민들이 평생벌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을 자신의 금고에 쌓아놓고, 자신이 능력으로 어렵게 번것인양 떵떵거리는 당신들 같은 위선자가 정치와 국가 요직을 맞고 있으니 나라 꼴 안봐도 뻔하잖습니까?

 

모든 사업에 있어서 미국이 어름장만 놓아도 벌벌 떨고, 고물이라도 미제라면 사죽을 못쓰는 당신들이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알까요. 천성산을 울음을 알까요....

 

생명사상에 귀기울이며, 죽어가는 생명에 죄스러움을 혼자 앉고 그 고된 단식이라는 용맹정진을 하신 살아있는 미륵이 쓰려졌습니다. 

 

현실 세상을 구제한다는 미륵은 지율스님이 아닐까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지만 이 세상 평등하게 자연과 공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 없듯이, 인간도 자연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소중함.... 주변에 풀과 나무가 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국토의 명산과 이름없는 산들은 인간의 야욕에 의한 개발로 다 망가졌습니다. 이 곳에 살던 곤충이며, 식물이며, 동물은 다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새로 개발된 도로에서 동물들이 달리는 차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모습 그리고 달리는 차에 치어 죽은 모습을 보면서.... 우린 과연 자연에 대해 소중함이나 일깨우고 있는지 측은지심이 듭니다.

 

미륵부처 지율스님의 쾌유를 기원드립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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