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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22
    변두리 영화제
    간장 오타맨...
  2. 2004/09/22
    그는 내게 언제나 거기 있어 좋은 사람이었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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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 오타맨...
  5. 2004/09/22
    Lenin Addressing Workers
    간장 오타맨...

변두리 영화제

  • 등록일
    2004/09/22 20:57
  • 수정일
    2004/09/22 20:57

변두리 영화제열립니다.




- 일시 : 2004년 9월 24일 금요일 7시
- 장소 : 풍동철거민 대책위원회 사무실 앞
풍동철거민 대책위원회 사무실앞 에서 변두리 영화제가 열립니다.
자본의 폭력과 탄압으로 변두리로 밀려난 자들과 함께하는
변두리영화제는 이번에 풍동 철거민 대책위원회와 함께합니다.

 

상영작

 

1. 우리에게 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풍동 철거민들의 기자회견 (2004/05/13)-참세상 방송국

 

2.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 / 1988 / 27분 / 야마가타 영화제 특별초청작품

작품내용

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라는 가진자들의 잔치에 쫓겨난 상계동 주민들의 철거투쟁기록입니다.
1988년 이후 2004년 16년동안 무엇이 얼마나 발전했고 얼마나 살기좋아졌는지 철거촌을 보십시요.

 

3. 계속된다
-주현숙/ 2004/ 73분/ 다큐

작품내용

'불법 체류자'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이주 노동자로의 정체성을 획득한 국내 이주 노동자의 험난한 투쟁 과정을 담았다. 더불어 영화는 "왜 이주가 반복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여전히 진행 중인 이주 노동자 투쟁에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한다.

 

4. 그외 상영작들
위 작품들 외에 주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영화들도 몇편 준비 했습니다.
와서 확인해 보세요. 심야상영도 합니다.

이번 변두리 영화제는 오랜 고립투쟁을 하시고 계시는 풍동철거민 대책위원회 동지들과 일산지역의 이주노동자 동지들에게 추석이라는 명절을 맞이하여 작은 휴식의 자리를 갖기위함입니다.


일시는 추석연휴가 시작하기전인 24일 금요일로 하였습니다.
작게나마 음식을 준비 하였습니다.
명절은 투쟁과 함께!!


장비지원 : 영상미디어센터 http://www.mediact.org
함께하는 이 : 투쟁과 밥, 피자매연대, 노브레이크, 두리하나 공부방, 고양시 평화바람


찾아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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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언제나 거기 있어 좋은 사람이었다

  • 등록일
    2004/09/22 14:38
  • 수정일
    2004/09/22 14:38

그는 내게 언제나 거기 있어 좋은 사람이었다 
故 정은임 아나운서 49재에 다녀오며…애청자의 꾸지람에 취재수첩을 닫은 까닭
 
모두들 말을 아꼈다.
소란스러운 통성명도, 떠난 이를 부르며 목놓아 통곡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이 그를 부르기 시작한 이름, ‘정든님’처럼 그렇게 그는 우리 앞에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정은임을 찾아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9월 21일, 엠티촌이 밀집한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역. 에서 맞은 편의 샛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오르고서야 그의 유골이 묻힌 ‘북한강공원’에 이를 수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산 12-1번지. 멀리 흐르는 북한강을 내려다보이는 ‘납골묘지’가 그의 새로운 안식처였다.
 
이날은 MBC 아나운서이자, 이제 전설이 된 프로그램인 ‘FM 영화음악’의 진행자 정은임씨가 지난 8월 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꼭 49일째 되는 날이다. 그는 단지 FM라디오 진행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노동자의 분신 소식에 슬퍼하고, 민중의 삶이 유린당하는 사회현실에 분노하던 우리 시대의 누이요, 동지같은 존재였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 속에서 그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북한강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은 49재를 기리는 사람들이 한명씩 찾아올 때마다 일일이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그는 “장례식 이후부터 날마다 한두 명 이상은 꼭 찾아왔었다”고 알려준다. 그는 정은임씨 팬카페에 가입한 회원이기도 하다. 
 
이날 가장 먼저 정은임의 묘를 찾은 것은 팬카페의 한 회원이었다. 그는 새벽 다섯시 반, 자전거로 서울을 출발해 북한강 공원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묘소에서 그는 녹음해간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들으며 눈물 지었다. 그는 생전에 정은임 씨가 보고싶었다던 ‘은사시나무’ 사진을 묘 앞에 붙여놓고 다시 홀로 돌아왔다. 

49재 참배객들은 저마다 하나씩 준비한 선물들을 꺼냈다. 형형색색의 꽃들과 캔커피, 참이슬 소주, 포도쥬스 그리고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그림들.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은 물론, 이윤재, 홍은철, 차미연, 김정화 등 그의 직장동료인 MBC 아나운서들도 모두 절을 하고 술잔을 채웠다. 30여명의 참배객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여년 이상 어둡고 소외받은 이들에 대한 정은임의 따뜻한 목소리에 함께 젖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참배의 절차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에 온 이들이 모두 1990년대 ‘정영음’(정은임의 영화음악)의 애청자들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접했다는 대학 2학년생은 “은임 누나를 알게 되면서 ‘파업전야’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전태일 열사를 알게 되었는데 은임 누나가 묻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란공원에 전태일 열사가 묻혀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은임은 갔지만, 이렇게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기억의 끈을 잇고 있었다. 
 
오후 4시경 49재를 봉행한 뒤 어스름이 찾아오는 시각까지도 사람들의 발길은 하나둘씩 계속 이어졌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386세대 직장인은 “아무도 없는 시간에 한번 찾고 싶어서 일부러 늦게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영화음악 프로그램이나, 정은임씨가 이야기하는 말들에 한번도 귀를 기울인 적 없던 언론들이 그가 죽자 ‘영화처럼 살다간 사람’이라며 요란스레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늘 이야기하던 것, 세상에 대한 따뜻함, 부조리한 것들에 대한 분노 같은 이야기들은 묻히고 말더군요. 반면에 어떤 이들은 또 그를 방송계의 진보적 투사 쯤으로 묘사하기도 하던데, 그것 역시 정은임씨를 욕되게 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는 그저 우리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던 누이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럼 조용히 보내줘야 안되겠습니까. 아마도 내년쯤 되면, 이런 호들갑은 금새 사라지고 정말 그를 기억하는 팬들만이 남아있겠지만요.”
 
그런 그의 말은 기자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49재 전날만 해도, 팬카페에 오른 한 애청자의 글- 영화음악 방송에서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과 “파병만은 막아야 한다”는 대화를 나누던 도중 박 감독이 “그러기에 권영길 후보를 찍었어야죠” 라고 말하자 정은임씨가 “그러게요”라고 답하며 미소 지었다는-을 보며 기자는 49재 이야기와 현실 정치의 이슈를 엮어 진보진영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무런 이해관계도, 계산도 없이 오직 그의 삶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들’을 보며 기자는 알량한 취재수첩을 덮어야 했다. 그 어떤 기사나 보도도 생전 정은임의 방송을 하나도 빠짐없이 녹음해 인터넷에 올려가며 그가 세상과 여전히 공유할 수 있게끔 하는 애청자들의 정성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날 ‘정든 님’과 그의 고운 이들은 그렇게 또 기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정은임씨가 사고를 당한 흑석동 삼거리엔 최근 한 애청자가 꾸며놓은 ‘추모전시물’<사진>이 서 있다. 49재 날, 이 전시물에 누군가 붙여 놓은 글귀를 소개하며 ‘기사는커녕’, 추모도 못되는 부끄러운 글을 맺는다.
 


 
▲ 흑석동 삼거리에 한 애청자가 꾸며놓은 정은임씨 추모전시물.(출처 cafe.daum.net/wjddmsdla) 
 


‘작은 인연조차 맺지 않았던 사람이 떠나간 것 때문에
이렇게 그 빈자리를 크게 느낄 줄은 몰랐다.
밤마다 그 습기 머금은 목소리를 되새기고
늘 아름답게 느꼈던 그 야무진 생김새를 떠올리면서
가슴저려하며 눈물을 흘려도 역시 그가 떠나간 현실은 매정하다
어찌 서로 알고 지낸 인연만이 인연이랴.
그와 나의 관계는 늘 일방적인 것이긴 하였어도
그는 내게 언제나 거기 있어 좋은 사람이었다.
세상 구석진 곳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정의로운 것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가 좋아하던, 내가 공감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으마.
비소식 없이 무덥기만 하던 서울 하늘에
그날 밤, 잠깐이지만 세차게 비내리다‘ 
 
이오성 기자  dodash@labortoday.co.kr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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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농성단 어울림한마당] 9월23일, 네팔만두 루띠 먹으러 오세요^^

  • 등록일
    2004/09/22 10:31
  • 수정일
    2004/09/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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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성매매방지법 시행직전 담아낸 현장일지

  • 등록일
    2004/09/22 10:26
  • 수정일
    2004/09/22 10:26

[기고]성매매방지법 시행직전 담아낸 현장일지  

- 윽박지르는 포주, 이 당당한 범죄자는 누가 만들었는가?


### 배우들 군산대명동 화재 당시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참사를 재현하고 있다.

 

희망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언니들의 발걸음



2004년 9월 18일, 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처참했던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4번째를 맞는 군산대명동 화재참사 추모식은 군산대학교에서 열렸고 그동안 전북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해온 실무자들은 물론 남성자원활동가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다소 어색한듯 쑥쓰럽게 우리와 함께 동행해준 사람이 있다.

 

성매매업소를 탈출해 지금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언니들이 어려운 발걸음으로 이 날을 함께한 것이다.

 

조촐하게 준비된 공연들을 묵묵하게 지켜보던 언니는 80년대 민중가요에 율동을 선보이는 대학생들의 문선공연을 보며“내 나이 또래 애들이 저런거 하면서 지내는 지 몰랐어요. 정말 쇼킹하네요."라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이 후 연극이 공연되자 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포주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풍자한 배우들의 대사와 과장된 몸짓이 때로는 너무나 선정적인 모습에, 때로는 너무나 도식화된 피해자의 모습에, 때로는 너무나 적나라한 모습에, 그리고는 너무 가슴아픈 모습을, 과연 어렵게 이곳까지 온 언니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건가? 내가 "연극은 어땠어?”라고 묻자 언니는 웃으며 “너무 적나라해네요” 라고 대답한다. 가장 깊은 곳의 상처이기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일 수 있는데 환한 대낮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까밝혀지게 되어 언니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성매매업소에서 탈출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써 노력하고 있는 이곳 쉼터의 언니들은 아마 나의 작은 걱정을 넘어 더 강인한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용기는 더 이상 상처를 곪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가두었던 울타리를 벗어나 도전과 기회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곪아터진 상처를 감당하는 언니들은 어떤가?
성매매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변화가 가능한 것인가?

 

생존권을 당당하게 부르짖는 범죄자

추모식을 마치고 성매매상담센터에 도착해 12명의 활동가들과 송편과 소식지 등 준비물품을 챙겨들었다. 1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두번 정기적으로 성매매집결지역의 언니들을 찾아 현장상담을 진행했지만 오늘은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특별한 방침을 계획했다.

 

성매매방지법 발효 후에는 경찰단속이 강화되고, 언니들이 언제든 상담센터를 찾아오면 보호와 자활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단속 과정에서도 언니들이 쉽게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해왔고, 강화된 단속 못지않게 보호, 자활 서비스에대한 정보를 언니들에게 충분히 알려 언니들이 언제라도 성매매업소에서 안심하고 벗어날 수 있게하자는 취지였다.

 

우리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에 포주들의 방해가 있을 수 있다는 예상으로 여느 때와는 다르게 더 다부진 각오로 나섰다.

 

현장으로 도착한 후 한 집, 한 집 돌아가며 방문하자 여느 때는 길어야 5분이었던 상담이 이날은 각 상담원이 한명의 언니와 10분까지의 상담이 진행됐다.

 

“언니, 23일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 이전처럼 일하기 힘들어져요.”

“그럼 어떻게?”, “나 도망갈까?”, “ 상담소도 어차피 업주랑 다 알고 지내는 사이 아니야, 경찰도 그렇고”

 

정보에서 차단된 언니들의 생활환경 만큼 이날 따라 언니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업소들의 방문을 앞두고 있기때문에 당장에 닥칠 수도 있는 문제부터, 앞으로의 보호와 지원에 관한 내용까지 많은 이야기를 단 10분으로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업주가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니 네가 뭔데 이러고 다녀",  "공무 중이면 신분증 내놔봐.", "칼로 쑤셔 버리겠다.", "불 질러 버린다." 우리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이들은 바로 범죄자다. 성매매 영업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누가 이들을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현장방문은 상담센터 고유의 업무라는 설명을 해도 포주들의 욕설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기세에 경찰을 부르려 하자 그때서야 더 이상 사건을 확대시키지는 않으려 물러서는 눈치였다. 상황은 진정됐지만 이후 머리 안에 분노가 가셔지지 않았다. 그 분노는 사실, 포주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성매매방지법 효과는 사회변화에 달려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각 언론사에서 취재를 한다. 업소의 실태나 피해사례들에 대해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이후 오히려 음성적 성매매가 판을 치지 않겠는가', '성폭력이 늘어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성산업 업주들의 생존권' 문제를 묻는다.

 

포주들은 더 나아가 경찰이나 담당 공무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가정집으로 들어가서 계속 영업할 것이라고 협박을 하며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짓밟고 올라섰는지는 감춘 채 생존권을 거론하는 것이다.

 

성매매 현장은 폐쇄공간이다. 더군다나 성매매 업소는 더욱 폐쇄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약자다. 1-2평의 방안에 여성을 가두고 하룻밤에도 수 십번의 성매매를 강요하는 자들은 중형 외제차에 몇채씩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 범죄자의 주장을 소수자의 이야기로 , 범죄수익을 가진자들의 생존권을 말하는 분위기가 용납되는 것은 아직도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음성적 성매매나, 풍선효과가 문제라면, 지금의 성산업 업주들은 특별히 요주의 대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100년만에 성매매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적 전환을 예고하는  법이 시행되는 시점이다. 성매매방지법과 또한 성매매방지 종합대책 등은 성매매와 관련하여 전방위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다. 일차적으로 성매매피해 여성지원, 알선 및 강요자 처벌 강화, 그리고 전 국민의 의식전환을 위한 예방교육 강화 등이 그것이다. 경찰조사과정에서 재판과정에서, 정책 담당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학인되지만 아직도 성매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용납되는  문화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하지도 특수하지도 않다.

 

그러나,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과, 성매매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법과 정책과 우리의 인식은 이중적인 혼란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은 단순히 성매매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바로 성매매가 범죄라는 전사회적인 인식과, 이 성인신매매범죄의 근절을 위한 강력한 실천의지에 달려있다.  

 

"성매매, 나부터 STOP!, 너에게 SPEAK OUT!"


전북성매매여성현장상담센터 "용감한여성들" 상담원 김지영씨 기고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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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4/09/22 03:47
  • 수정일
    2004/09/2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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