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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기사 중에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처음에 참세상 기사로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일단 들었던 생각은 가해자가 정말 미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위원장이 체포된 다음날..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대체 어떻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감정이입을 해야 적절한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여러가지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날 당시의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두려운 감정이 앞서게 된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내 의견을 꺾어놓기 위해 누군가 나를 저렇게 짓밟으려 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피해자는 그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을까. 성폭력 사건을 겪으면서 피해자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더 이상 예전처럼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 혼자서 끙끙 앓고 있지는 않을런지 걱정이 되고 마음이 정말 아프다. 노동운동내의 여성활동가들은 이번 일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주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기도 하고 입을 여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답답하고 궁금하다. 난, 솔직히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다.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변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너무나 크고도 깊은 좌절감이 나를 휘감았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조용히 울고 싶었다. 실제로 인터넷 기사를 읽으면서 모니터를 앞에 두고 한참을 울었지만. 돈 있으면 여성주의 책이나 한 권 좀 사보던가 100인 위원회 글 한 편이라도 좀 진지하게 읽어볼 것이지 그 동안 우리가 피를 토해내며 뿜어냈던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얼마 전 한 여성활동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성주의적 문제를 부차화하고 자신의 삶을 뿌리째 성찰하지 않는 한 이 운동은 반쪽짜리 밖에 될 수 없을 거라고. 그 말이 현실화될까봐, 정말 맞는 말이 될까봐 사실 너무 두렵다. 뿌리가 뽑혀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일다 기사 중에서>----------------------------------------- 셋째, 가해자 김씨의 성폭력과 강간 미수 행각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이석행 위원장이 A씨의 자택에서 검거된 바로 다음 날, 대책을 논의하자며 만난 김씨는 귀가한 A씨의 집에 침입해 성추행하고 강간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합니다. 성폭력은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범죄이고, 가해자들은 여러 의도에서 범행을 저지릅니다.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성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분풀이로 가해하기도 하며, 입막음을 하거나 자기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적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정황을 통해,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됩니다. 위원장이 검거된 바로 다음 날이라는 정황도 그렇고, A씨를 설득하고 같은 편으로 포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A씨로 하여금 조직을 순순히 믿고 따르도록 회유하는 임무를 띤 가해자 김씨가 어떻게 그 와중에 자신이 설득해야 할 대상인 A씨에게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정치인의 이른바 ‘정치적 스킨십’의 실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여성단체장 성추행 사건을 통해, 선거를 앞두고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여성단체의 대표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추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적이 있었습니다. 또 작년에 보도된 ‘스포츠 성폭력의 실태’에서도 지도자(교사)들이 학생들을 자기 선수로 만들기 위해,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성폭행을 가하고, 감독교사들끼리 ‘코칭(가르치는)의 수단으로’ 성폭력의 방법을 사용해볼 것을 권하는 얘기도 서슴지 않는 것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을 성폭행함으로써 자신과 특별한 관계로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어 순순히 따르도록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는 ‘이상한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 스킨십’이란 한국의 가부장적인 정치문화 속에 자리잡은 것이고, 스포츠 지도자들의 성폭행 역시 교사들 사이 공유되고 전수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제도적인 문제까지 아울러 봐야 합니다. 성폭력 범죄와 사건 은폐의 배경이 된 조직문화 필요할 땐 갈급하게 요청하며 헌신을 요구하고, 공무원 신분이 위협받는 희생을 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지로서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으며, 위원장 검거 이후 대책을 이야기하고 조직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만난 당일 집으로 찾아가 강간을 시도했던 민주노총 중앙간부의 범죄행위는 여성을 비하하고 동등한 주체로서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혹은 도구로 바라보는 조직문화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도, 민주노총 지도부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도와주지 못한 채 오히려 감시를 하거나 조직을 생각하라고 압력을 넣는 일이 가능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운동의 주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 도움을 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조직, 동지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조직, 중앙간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조직. 이렇게 먼저 신뢰를 저버린 조직에 대해 A씨가 믿음을 가져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의문은 비단 A씨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이 사건을 통해 갖게 된 의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민주노총은 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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