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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06
    스크린 쿼터 ??? 젠장...
    경자-1
  2. 2006/02/03
    KTF적인 생각??? 꺼지라고해라!!
    경자-1
  3. 2006/01/31
    어김없이 올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
    경자-1
  4. 2005/06/07
    바벨탑
    경자-1
  5. 2005/06/02
    [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경자-1
  6. 2005/05/30
    교육투쟁에 대하여 두번째
    경자-1
  7. 2005/05/30
    학교 교육투쟁 첫번째
    경자-1
  8. 2004/12/25
    사랑의 리퀘스트속 희망과 쓴웃음...
    경자-1
  9. 2004/12/24
    성탄절 행복해지기...
    경자-1
  10. 2004/12/21
    그래 당신이 나보다 용기가 크다.
    경자-1

스크린 쿼터 ??? 젠장...

스크린 쿼터 축소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쓰잘때기 없는 생각들...

 

분명한건 스크린 쿼터는 축소하면 안되는거 같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영화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추상적인 문화주권의 확보도 맞는것 같고, 남한 영화산업의 자생력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영화산업에 줄줄이 딸려있는 저임금의 영화생산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해서이란 것도 알만하다... 그런데 영화인들의 스크린 쿼터 사수 움직임은 그들의 의도와는 다른 효과를 창출해 내는 것만 같아 아쉽기 그지 없다.

 

미국의 한 미 FTA협약 체결 목적의 스크린 쿼터 축소 요구는 우리 사회의 감정적 반미 의식을 다시한번 어리벙벙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다. 미국은 마냥 못된놈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제국주의 내지는 금융독점자본주의의 표상)이 마냥 나쁜것으로 판단하는데 그렇게 심한 반대의견을 낼 생각은 없으나, 우리네의 부적절한 열정은 다시한번 반성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제발 못된 놈인거 알면 좀 알아보고 찾아보고 파병할때도 반대하고, 북한한테 시비걸때도 혼즘 내주고, 기지 이전한다고하면 죽자고 반대좀 하잔 말이다...

 

장동건을 안성기 박중훈 다음에 1인시위에 내보내는 것은 영화계(스크린 쿼터 축소에 반대하는)의 좋은 전략이라고 판단하지만 단순히 인긴 연예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지와 요구를 표출하고 그 '인기'라는 것으로 공감대와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방법은 지적을 받을만하다. 결국 장동건씨는 5분도 채 서있지 못했다.

 

내가 청와대앞에서 근무할적에 신해철, 안치환, 이병헌 등이 피켓을 들고 무궁화 공원쪽으로 올라가는데 수많은 인파를 끌고 갔던 것을 기억한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썬 처음으로 청와대에 입성할때 효자로(A로)를 도보로 지나가서 효자동, 청운동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것에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사람들 특히 언론이 파리떼 마냥 들러 붙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미디어라는 골빈 권력자들의  생각없는 행동이 많은 것을 그르친다는 생각이다. 장동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들을 생각이 별로 없다. 장동건이 추운날에 1인시위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인이나 과학자나 영화인이나 모두 쑈를 하고 있다...

 

일부 스크린 축소 찬성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근래에 한국영화가 국내 영화 시장에서 50%이상의 점유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며, 국내영화산업의 경쟁력이 성장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다. 또한 후속 협상에서의 실질적 이득을 위함이라고 하는데 씨댕 미국과 관계에서 도대체 민중들이 기대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라는 것이 있기난 한건가? 이는 항공사 조종사 노조가 파업을 하면 미친 것들이 골프땜에 파업한다는 공격보다는 매우 예의를 갖춘 것이기는 하나 매한가지로 싸기지 없기는마찬가지다. 반대로 물어서 세계 영화산업 떡주무르듯 주무르는 미국이 코딱지만한 영화산업(미국영화 산업규모와 비교하였을때) 잠식해서 어쩌자는건가? 그리고 40%이상을 이미 점유율 가지고 있는것 아닌가... 조종사들 많이 번다고 뭐라고 할꺼면 조종사 많이 육성하시던가 공적인 재원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운행보장하던가...

 

가장 가슴이 아픈것은 영화인들의 문화사수(?- 사실 이러한 표현이 그리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 영화가 나름의 독창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영화가 이사회의 문화를 표상한다거나 문화의 사수로 인하여 공평한 영화산업의 이익내지 문화의 내용이 모든이에게 균분되지 않기때문이다.)의 노력이 대중들의 움직임에 적지않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이다.

 

딴나라당의 개지랄 덕분에 임시국회가 가능해지고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 보호 입법안을 처리할 예정이고 노동계는 또 총파업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매우 강조했고, 한국방송공사 1텔레비젼 정관용씨가 진행하는 심야토론에 나온 열우당 대표후보들은 하나같이 국회 제1여당으로서 국민들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 반성하고 거듭나는 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반장선거에나 나올만한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실제로 생존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투쟁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한다면 영화인들의 싸움또한 걸리적 거리지는 않을텐데...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뿐만아니라 전체 계급의 이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진심으로 연대하고 전선을 형성해준다면... 국민들의 관심은 얄굳은 미디어 선생의 시선에 맞추어 영화인들의 일인시위에 가있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찌 될 것인지...

 

성북역 개찰구에 붙어있는 신규인력 확충이라는 붉은색 스티커와 지난 목요일쯤 6호선 합정역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던 도시철도 노동자(꿈돌이형을 만났다... 다들 너무 엄숙한 표정이어서 살짝 쫄았다)들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인들이 지키고자 하는 영화산업은 안성기, 정지영, 박중훈, 장동건 등이 만드거 절대 아니다. 머가 좋은지 7000원이나 주고 영화보는 그것으로 엿같은 세상 시름을 걷어내는 대중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열정만으로 투신한 영화 미친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며 비록 지금 지킬것 그리많이 가지지고 못했지만, 그들이 가져갈 몫 되찾아야 한다.

 

스크린 쿼터 축소의 대가로 4000억을 영화발전 기금으로 내놓은 통근 정부의 배짱에 박수를 보내며 세금이나 제대로 관리하고 정신차릴길 말해주고 싶다. 그돈 있으면 문화주권 내지는 독립성 확보할 수 있도록 저예산 독립영화나 다양한 카테고리의 문화산업에 지원이나 해야 할 것이다. 문화 라는 것이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닐텐데...

 

돈없는 우리네가 그 잘난 영화인들이 찍은 영화좀 실컷 보게 해주어야 나라가 할일 하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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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적인 생각??? 꺼지라고해라!!


 

 

 

ktf광고 기업이미지 광고 요즘에 나오는것을 보면 500원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껌한통과 에디오피아에의 굶주리는 아이가 일주일 먹을 식량을 살수 있는 돈이라 비교한다.

 

과연 사기업 KTF는 지구의 빈곤 문제에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하고 있기에 그따위 광고를 낼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존재자체 그게 KTF와 같은 것들 아닌가?

 

삼성의 광고를 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의료지원활동 지뢰에 의해 다리가 잘려나간 어린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뢰제거활동 및 지원(축구공을 보내는것은 아니겠지...)를 선전한다...

 

지뢰를 만드는 자는 누구이냔말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이 무상으로 치료받지 못하게한 자들이 누구이건데 그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체게바라를 상품화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착취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 또한 매우 세련되어 간다...

 

하지만 너무나 어이 없다... 실상 밥먹고 입가심으로 500원 짜리 껌을 씹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 세상에는 밥먹고 입가심으로 얼마인지도 모르는 양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자본가들이 있으며 입가심으로 얼마인지도 모르는 제철아닌 과일과 차를 마시는 사모님들이 있다...

 

에디오피아의 굶주린 아이들이 걱정된다면... 당장 착취를 멈춰라...

 

밥먹고도 소화가 안되는 이유는 에디오피아의 아이들이 KTF적인 생각이라는 어처구니에 이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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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올해도... 무엇을 할 것인가?

 

학교 게시판은 장학금수혜범위와 등록금 대폭인상에 관한 논의로 후끈하다. 실제로 각 가정의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실정에서 각 사립대학의 등록금 상향 상정은 큰 파장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부학자금 대출을 통한 등록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에서 각 대학의 등록금 인상은 철저하리만큼 가계상황에 무관심하다.


물론 등록금 고지가 정확히 나온 것이 아닌 상황에서 17%이니 15%이니 하는 논의는 실제로 실익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한 타 대학의 인상률을 미루어 판단할 때 우리학교 또한 두자리수 이상의 인상률이 고지될 수 있다는 것에는 모두들 긴장하는 눈치이다. 새로운 건물이 하나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학부생들의 공간을 오히려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씨추에이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확장된 공간은 실제로 대학원과 행정부서의 확장과 편의를 위해 대부분 제공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대학원생에게 공간이 돌아간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대학원 과정을 적대시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실제로 학교는 기초학문의 육성보다는 산업기술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문대학의 열악한 환경과 고립이 반증해 준다. 산업기술에 대한 지원과 산업체와의 협력은 실제로 교육 공간을 자본을 운영하는 사기업체와 같은 논리로 운영하겠다는 의도와 일맥상통하다. 이에 대하여 자본을 투하하는 학생들은 실제 주식시장에서 자본투자를 하는 주주보다도 못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등록금 인상은 전반적인 교육문제에 대한 것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것의 대표성은 매우 큰 것이다. 따라서 등록금과 관련된 싸움을 어떠한 형식으로 이끌어내고 만들어가는 가는 전체 교육투쟁의 문제와 결부된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시장 또한 충분히 개방 가능하다는 언질을 주었다. 이미 남한의 교육정책은 교육으로서의 역할은 방기하고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의 효과적인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러한 정책적 결정으로 말미암아 정책적 지원은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의 문제를 공공적 담론으로 품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우리는 작년의 경험으로 비추어 올해 또한 총학생회 선도의 교육투쟁이 큰 힘을 발휘하거나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님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지난해 학생회 중앙 간부 구성 또는 활동가 구성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수량과 질 면에서 확대를 가져오지 않은 현 중앙 집행부체제를 신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7000단위의 학생사회의 운동을 전개해갈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총학생회의 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운동방식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촌체전에 60명의 심판 지원자가 신청한 것에 매우 고무되어 소수의 중앙간부 체제에 대한 “대안”이 있다고 자신하는 대표자를 신뢰하기란 매우 힘들다. 실제 교육투쟁에 있어서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학생 총회는 재적인원의 1/10로 줄어들었으며, 마지막 교육투쟁 대회에서는 100명의 단위도 조직해 내지 못한 점들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지난해 교육투쟁에 대해 자평하면서 구체적 제안을 했으나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총학생회의 중앙 선도적인 교육투쟁의 방식이 매우 부실한 만큼 각급 자치단위의 대중적 결합과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각급 과학생회를 비롯한 모든 단위의 소모임과 자치단위는 교육투쟁에 대한 교육과 선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개강이후 투쟁일정을 구성해야 한다. 단순히 몇퍼센트의 등록금이 인상되었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투명하고 민주적인 등록금 책정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이루어져야 지난번 신임 총학생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이것에 대한 모호한 답변으로 그들은 실질적인 등록금 책정 절차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으나, 실질적 재정담당자인 학생들이 등록금 책정과 사용 확인 절차에 참여하고 적절한 의사발언과 결정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후 학교 발전 계획 등에 대해서도 실제 학생들의 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사소통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인 투쟁목표가 되어야한다. 개강이후 새내기들과의 이러저러한 문화행사에 집중하다가는 대중들의 정치적 불만들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투쟁 투쟁만이 최선이라는 제안이 아니다. 새내기들과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당구도 쳐라 하지만 교육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대중집회에서 조직해야 한다.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화창한 봄날은 이후 화창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보다 실질적인 낭만과 행복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위기와 공격으로부터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새내기와 함께 교육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같고, 새내기끼리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학교 측과 간담회도 성사시키고 그들의 대응방식을 확인시켜주어야 하며 전반적인 남한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의식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학생들과의 접합점이 넓은 자치단위의가 해야 하는 중대한 역할이다.


실제로 정부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등록금 납부거부 등의 운동 방식은 커다란 효과를 만들어 내기 힘들다. 정부대출은 직접 등록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이 등록을 보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 측은 무한정 인상된 등록금을 산정하고 일정정도 인하하여 돌려주면 그만인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수의 대중들을 규합하고 조기하는가에 달려있다. 몇몇 대중 간부들이 발언하고 투쟁을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방식이다. 가장 강력하게 의사전달을 이루어내야 한다. 점거와 항의방문이 효과적이려면 엄청난 대중의 동의와 연대투쟁의 수단으로서 이루어져야 하며 학사행정의 실질적인 마비를 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극단적인 방법일 수도 있으나 전체 학생 동맹휴업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것 보다는 각 사립대학의 동맹과 연대로서 이루어질 때 효과적이다.


교육의 공공적 성질에 기인하여 각 대학 투쟁세력들은 대정부투쟁 또한 진행해야 하면 정확한 의사표현을 이루어내야 한다. 단순히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학부모들에 대한 설득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부모나 자녀가 있다면 대학교육을 필요로 할 것이고, 내자식은 외국으로 보내겠다하는 반동적 반계급 정서의 학부모가 아닌 이상 비상식적인 등록금 인상과 일방적 고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할 것이다. 대중의 동의 없이는 운동을 성립 시킬 수 없다. 전체 학생운동의 대중 조직력과 정치적 설득력이 매우 침체되고 학생사회의 운동력이 매우 쇄퇴 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 강력한 압박Force로부터 적절하고 현명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학생운동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장기적이고 신중한 방법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아닐한 생각보다는 보다 의사소통의 창구를 확보하고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 방식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학생운동의 신뢰와 대중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이후 등록금 인하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질적인 대중 자치단위들의 연대체로서의 교육투쟁체를 건설하고 교육문제에 대한 교육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방중, 개강 후 투쟁 일정을 심도 깊고 현실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한발 늦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리함을 안고 있으나 대중적 공감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교육이 과연 돈 몇백만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인가를 판단한다면 해결책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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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결국 등록금 싸움은 패배했다. 교육의 공공성에 관한 싸움은 시비하나 부쳐보지 못했다. 무기력하다. 성의없다. 노력하지 않았다. 허울뿐인 구호였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바보같다.

 

인상된 등록금이 그대로 2학기에 적용되어 고지될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새우깡이 비싸졌으면 더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학생들인가? 새우깡 가격을 올린데로 줘놓고선 깍자고 발악을 하는 학생들의 잘못인가?

 

새우깡 그것 그냥 먹으면 안되나? 꼭 내돈 내고 먹어야 하나?

 

대학은 교육부장관의 깃발을 휘두르며 서슬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투쟁하지 않는 학교는 거세당한다. 공대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법대인데...

 

모든걸 주사파학생들에게 돌리기엔 학생대중들의 몰정치성이 너무 두려울 따름이다. 언제까지 주사파학생들을 바어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언제쯤 제대로된 의사표시를 할 수 있고, 정확한 노점과 공격으로 투쟁할 수 있을까? 학생운동권은 왜 성장 할 줄 모르는가? 빨리 졸업해야 겠다. 등록금이 바벨탑을 넘어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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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오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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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투쟁에 대하여 두번째

교육투쟁에 대하여 두번째...

학원의 3주체로 교직원, 교수, 학생을 언급하였다. 물론 학교에는 교직원, 교수, 학생이 있는것이 사실이나, 학교의 운영방식을 생각해보았을때 과연 교직원과 교수의 입장을 어떠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3주체 중 학생만 왜 등록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주장이라면 심사숙고 해야 한다. 지난 3월부터 정문에서 하도관쪽으로 진입하는 복지관 길에 걸려있는 플랭카드를 보았다. 교수와 교직원의 보험료 등을 왜 학생들이 내느냐는 문구였다. 얼핏보면 교직원과  교수의 보험료등을 등록금에서 내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실질적인 교육의 담당자, 급부 의무자에 대한 공격이 아님을 정확히 인식해야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있는 경비원, 청소 아주머니들에 대한 임금을 삭감한다던가, 해고함으로써 얻어지는 수익을 등록금동결에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용인할 것인가? 교직원과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원에 고용되어 있는 입장에서의 교직원과 교수들이 교육 투쟁의 주체로 과감히 나서고 있지 못함은 사회가 안고있는 불안정한 고용관계때문이다. 물론 우경화 되어있는 교직원, 교수가 있을 수 있으나 생존을 위해 몸담고 있는 학원을 상대로 싸움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구성원들간에 사용되는 비용을 줄여 등록금에 충당하자는 의견인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지적이 된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은 결국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분열과 차별을 재생산할 뿐이다. 정부에 대한 교육재정 확충의 공격이 더욱 마땅한 주장이라 판단되어 진다.

또한 예상 등록인원보다 많은 등록율로 인한 28억원의 수입을 등록금에 충당하라는 의견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즉 다음학기에 예상 등록인원보다 적은 수가 등록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등록금을 인상할 수도 있다는 논리적 귀결을 가져오게 된다. 단순한 이익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물론 28억원을 돌려달라는 주장을 버려라는말이 아니라, 더 등록했기때문에 돌려달라는 주장은 상당히 공격받기 쉬운 주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등록율이 높은 만큼 많은 수입을 돌려 달라라고 주장하기 보다 매해 오르고 있는 등록금 만큼 실질적인 교육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거의 100% 등록금에 의지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학사행정과 학원 발전 계획 등을 공적 재원의 확충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의 인상이 부당한 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총체적 교육투쟁에 대한 지적은 얼마전 게시하였던 글에서 언급하였으나, 전술과 전략적인 면에서의 비판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름의 최선을 방법으로 교육투쟁에 가담하고 있음을 밝히고 동지적 관점에서의 비판이고 나또한 이전의 방식으로 투쟁해왔던 사람으로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투쟁을 권유하는 것으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5월16일 부터 새롭게 진행된 부총학생회장을 비롯한 각 단대 학생회장들의 단식은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단식과 삭발, 점거농성을 이전에 수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는 학교측에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또한 그러한 선전적 투쟁 방식이 투쟁 동력이 되어야 하는 학생대중들에게 효과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관성화된 투쟁 방식은 그 의도가 진실되고 처절하다 할지라도 그만큼의 효과를 내기에 힘들다. 또한 단식이라는 투쟁 방법은 더이상 방법이 없으므로 조직의 의지를 보다 확실하게 보이기 위한 것일진데, 일관되지 않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단식투쟁은 대중들이 저들이 실제 단식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한다. 실제 노동자단위의 단식 투쟁은 옥쇄된 상황에서의 단식이 이루어진다. 즉 타워 크레인, 고로(석유화학단지등의 높은 굴뚝), 봉쇄된 공장 등 전혀 출입이 불가능하며, 사람들에게 주시되는 공간에서의 단식은 신빙성을 갖게되며, 대중들에게 큰 어필을 하게 된다. 허나 이렇게 하라는 요구는 아니니 과격한 투쟁은 지양하길 바란다. 결국 교육투쟁의 주체세력의 3단의 아시바위에서의 고공농성은 전략적으로 성과가 없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시기에서 확실한 패배의지를 들어 내었다. 대동제와 통일문화한마당은 그야말로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어느정도 휴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통일문화한마당 등은 문화제, 경연대회 이상의 정치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한 역효과로 정치의식배양의 배제 효과를 가져오기 까지 한다. 그러한 기간에서의 단식투쟁은 어떠한 방식으로 선전, 선동하더라도 그것에 투여된 노력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음은 당연하다. 실제로 교육투쟁에 주체적으로 결합하고 있던 총학생회 산하 각 단대학생회에서는 통일문화한마당등을 비롯한 갖가지 반동적 사업등을 무기한 연기하고 학생들이 술먹고 즐기고 떠들고 있는 곳에서도 목에 피켓이라도 걸고 돌아다니며 투쟁을 호소하고 등록금 인상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다녔어야 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약간의 유흥을 가미해서라도 등록금 동결 분노의 물풍선 던지기, 등록금 동결을 위한 탄원 서명 받기 등을 진행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미 학교측은 등록금은 전혀 내리지 않아도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는 상황정도까지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 하지만 결코 이전 고지한 만큼의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2,3%의 인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쥐약, 떡고물과 같은 것으로 교육투쟁의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역할로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대중들은 "거봐 총학생회가 날뛰어 봤자, 학교는 지내들이 생각한것 만큼 돌려주고 말거라고" 하며 교육투쟁에 대한  반발심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이는 엄청난 지능적 효과를 발휘하고 이후 교육투쟁에서 대중의 무의식적 비판을 더욱 강력히 형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절대로 학교는 등록금 인상분 그대로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알수 없는 불특정한 대중들의 분노가 실제로 응집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우리학교의 교육투쟁세력은 열세에 놓여 있다. 얼마만큼의 등록금인하가 결코 승리의 결과물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전의 노력에 대한 반성과 선전이 선행 되어야 한다. 대표자들은 일일히 학우대중들을 만나라. 길을 가다보면 "도를 아십니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정도 불쾌감을 자아내는 정도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7000학우여러분~ "이러면서 시작하는 불특정대중들을 대상으로하는 발언보다는 친근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강의실 방문을 조직하고, 1대1 대면을 하라. 지금이라도 교육투쟁에 대한 서명을 받아내어라, 더욱더 조직하라, 새로운 소식들로 유인물을 생산하고 친 학생회 세력들과 연동하여 교육 세미나, 토론회를 건설하라. 대자보의 수, 플랑의 화려함, 투쟁의 과격성이 가지는 선전 효과보다 실제로 대중들이 대표자내지 투쟁단위들에게 신뢰를 얻는 행동들은 다른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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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투쟁 첫번째

교육 투쟁에 대한 짧막한 단상...

총학생회를 비롯한 각 자치단위의 학생회 건설이후 개강 시점까지 조직적으로 교육투쟁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교육하고 투쟁의 결과물로 얻어낼 구체적 사안에 대한 대안을 생산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교육한다고 하는 것은 방중 총학생회 차원, 각 단대차원, 과 학생회차원에서 부단히 교육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회를 진행한다. 물론 학생회 조직원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가능하다면 학생들을 다수 참여시킨다.

개강이후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투쟁을 건설한다. 각 소모임, 학회내지 춤패, 풍물패 모든 친 학생회 세력을 동원하여 방중에 진행된 결과물로 조직원들을 생산하고 교육한다. 빠른시일내에 개강투쟁을 진행하고 학생대중에게 등록금 동결내지 인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학사행정상 불합리한 점들에 대한 개선점에 대해 의겸수렴한다. 이 결과물로 학교측과 협의를 진행한다. 중심은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두어야한다. 학생대표와 학교측과의 협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학생회 활동을 위한 명목상 "자치기금(학원자주화를 위한 무엇무엇)"뿐이다.

대중조직의 가능성과 일련의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후 투쟁을 전망한다. 7000단위의 학원에서 현시점에 1500이 조직될 경우 동결을 아니더라도 4월안에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유리한 지점에 올라선다. 이미 학교측은 10년이상근무한 베태랑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투쟁 전술을 간파당하고 있다. 점거농성을 하더라고 학교의 재정사무는 매우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점거농성을 모든 학사행정마비를 목적으로 하며 단식과 삭발보다 더 최후에 진행되어야 하며, 만약 2000대오를 조직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동맹휴업을 건설하는 것도 매우 강력한 방법이 될것이나, 이것은 총학생회를 넘어서는 학생단위를 조직적 연대와 참가가 있어야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방중에도 계속해서 학부모를 자극하는 선동적이고 현실적인 유인물을 가정으로 유포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확실한 근거에 의해 작성되어야 한다. 개강이후에는 하루도 거르않고 유인물을 생산해 내고, 매일같이 투쟁을 진행한다. 노천에서 춤패들의 문선을 구경하는 식의 투쟁이 아니라, 각 강의실을 방문하고, 점심시간 등을 이용하여 유동하는 학생들에게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존의 관성화된 방법으로 구호하고 웃고 떠드는 선전전도 좋지만, 이번에 진행했 듯이 더운날씨에 음료를 나누어주며, 서명을 받는 다던가, 유인물을 건네면서 설명하는 방식이 보다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

단대학생회 이상급의 학생회는 연대하여 우리학교 교수나 조금은 "저명한" 사람을 불러 공개 토론회를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 재직하고 있는 우리학교의 교수를 이용하여 교육투쟁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토론회에 참여해 줄것을 요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보다 용기있는 지식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명한"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아무리 학생회 대표자들이 떠드는 것보다 대중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도에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 내용이 교육투쟁의 목적과 의의에 합당하다면 좋은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규모 조직의 건설과 투쟁이 어느정도 흐름에 올랐을 경우 학생들은 매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투쟁의 맺음을 잘 못할 경우 내후년의 모습이 모두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결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번투쟁의 조직이 1500이상의 대규모 집회를 여러차례 성사시켰다면 이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록금의 동결을 내년에 할 수도 있으며, 투쟁의 동력이 더욱 커지고 역량이 강화된다면 내후년에는 등록금을 인하 시킬수도 있다.

우리의 교육투쟁들은 언제나 조급한 마음에 실수를 거듭했다. 단식과 삭발, 천막농성, 혈서, 그리고 점거농성 그러나 5월 한총련 출범식과 대동제라는 산맥을 넘기는 힘들다. 학교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5월말까지만 버티면 학교는 승리한다. 투쟁은 학생회건설시점부터 시작해서 등록금 동결이 이루어지는 해까지 진행된다는 시각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이미 어느정도 의식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도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패배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투쟁에 결합하려 하지 않고, 보다 개량적으로 현실의 이익에 급급하게 된다. 또한 교육을 통한 학생대중의 등록금 인하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야만 투쟁에서 대중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보다 많아지고 현실적이 되어 진다. 그 대중들은 나중에 투쟁의 조직원으로서 그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대중의 의사수렴을 얻지 않고, 대중을 동원하려고만 한다면, 대중들은 투쟁에 비판적이고 배타적으로 대항한다. 학내에서의 교육투쟁은 대중을 얼마만큼 조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총학생회의 비상학생 총회의 성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4의 참석이라는 학생총회 정족수를 1/10로 줄여 700으로 만들고 총회를 성사시킨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할수도 있으나, 스스로 비판해야하는 문제이다. 또한 학교측에서 단 5일을 광고하여 만들어낸 "전국의 들썩"의 경우 1200명을 모집했지만, 1500명을 넘겨 이후의 사람들은 참가하지못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학생대중들은 공부에 열중하고 있으며, 경쟁에 내몰리고 있지만, 할것은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 총학생회급 이상의 조직에서는 지속적으로 교육부를 상대로하는 대정부 투쟁의 씨앗을 버려서는 안된다. 각 학교들의 투쟁 사례를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어제부터 각 단대학생회장을 비롯하여 중앙운영위원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간다고 한다. 어떤이들은 나의 후배이기도 하다. 그들이 굶어가며 투쟁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분명 내가 지향하는 바와 조금은 다른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련의 그들의 투쟁이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린 학생들이 수업도 빼먹어 가며 투쟁하고, 단식하고 하는것을 비판하고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이러한 냉혹하고 처절한 현실속에서 해야하는 공부로 못해가며 데모하는 학생들이 가련하고 이런 현실이 싫기만 하다.

등록금 동결, 그리고 어느정도 인상분에 따른 적정한 교육 환경의 발전과 교육내용의 질적 향상이 중요하지만, 이러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들을 위한 싸우는 이들을 감싸안고 방어하고 힘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대중의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등록금 싸움에서 언제나 승기를 가지고 있었던 학교측의 아닐한 발상과 태도, 그리고 언제나 철저하리만큼 중립(?)적인 교수들의 태도는 모두 반성의 대상이다.

지금 싸우고자 의지를 내보이는 보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그들이 이떠한 모습의 결과를 얻어내던지 그것이 승리의 결과물이 될 수 있으려면 부단히 성찰하고 다시 조직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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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리퀘스트속 희망과 쓴웃음...

바쁘신 와중에 대통령 내외가 보기좋게 사랑의 열매를 가슴에 달고 함께 한국방송공사의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왔다.

말 잘하는 우리 노대통령은 오늘따라 왜 이리 버벅거리시는지 모르겠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국가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을 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진행 중이며, 완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듣지못해 말도 하지 못했던 소년이 수술 후 3년이 지나 학교에 다니며 말을 하고 방송에 출연한것, 백혈병에 걸렸던 가난한소녀가 오빠의 골수를 이식받아 모두 빠졌던 머리가 돋아나서 양갈래로 땋은 모습을 방송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이 실존하는 것인양 우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에 대해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은 작은 소년 소녀들에게 고난을 이겨내면 그 고난을 통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큰사람이란 단지 대통령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고맙게도 덧붙여 준다.

대통령이 나와 금일봉을 전달하고 소년소녀 가장의 집을 직접 방문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쑈'이상의 기쁨과 순수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실로 직접 얼굴을 맞댄 소년, 소년들은 큰 희망, 힘을 가질 수 있다. 클린턴이 케네디와 악수하며 대통령을 꿈꾸었듯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줄 수도 있다.

허나 잘 할려고 한다고 하는데, 못한다고 꾸짓고, 쓴소리 하는 국민들이 있고, 좋은 소리하지 않는 방송사가 있어 개인적으로 힘들다 말하는 대통령은 유머와 애교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가 숫자의 테러로 탄핵되었을때, 순진한 민초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그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운적 사람들도 탄핵을 일구어낸 짐승들에 분해 함께 했으며, 양초 공장과 상인들은 그 덕분에 한 몫 벌었을 것인고, 믿을 수 없는 이 시대의 희극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이슈중 하나라고 여기저기서 조잘대고 있는데...

대통령의 그 솔직한 아웃팅은 이젠 안쓰럽기 보단, 교활하고 얄미웁다.

그래 그가 방송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진실과는 괴리되어 있는 약자를 위해 국가가 힘쓰겠다는 다짐이다. 거기까지가 그가 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제 그의 아픔을 들어줄 의무는 쓰라린 가슴을 가진 국민들에게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의 아픔은 옆의 권영숙여사에게나 썰을 풀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국보법의 연내 폐지가 조국통일과 노동해방보다 어려운 오늘도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식을 하며 국보법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며, 여의도에는 칼바람이 부는 오늘도 13개의 천막농성장에서 떨고 있을 장애인, 노동자, 농민 등 소외된 사람들이 있고, 장롱속에서 발견된 다섯날난 아이의 굶어 죽어있는 몸뚱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굶지 않고 밥을, 쌀을 팔아 넘기려는 우리는 아무 말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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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행복해지기...

성탄의 기쁨과 사랑은 실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탄의 축복을 바라면서도 또, 그 존재를 부정한다.

 

외로운 이들이 더 외로운것은 성탄절이기 때문이며, 헐벗은 이들이 그나마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얼 원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성탄절이라고 쓸쓸히 보내는 젊음을 한탄해야 하는 것 인가? 아니면 소외된 인간들을 외면하면서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기원해야 하는 것 인가?

 

함께하는 성탄을 보내는 이들을 축복하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저주한다.

 

그렇게 365일 중 어느 하루와 같은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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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당신이 나보다 용기가 크다.

그래 당신의 그 절박하고 솔직한 아웃팅을 존중한다...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안다.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대해 뜸금없이 물었다. 우리 오래된 선배부터 바로 윗학번 선배까지 얘기했다.

 

모두 사실이다. 나느 극복할 수 있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래도 나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의 극복과 승리를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선배 왈 더이상 분노 할 수 없다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행동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가 그만한 자기인식에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스스로 대세에 편입했으며, 그것이 그렇게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며 이쪽보다 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것이 어렵지만 이쪽보다 고달프지 않으며, 그것이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벽이었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좋다. 그 용기에 감복한다.

 

나는 열우당, 한나라당의 수괴 4명이 손을 잡는 모습을 보고 분노 하지 않는다. 또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걸 보고 가만히 있는 우리를 보고 분노하며 슬퍼한다.

 

파병동의안은 당빠 통과 될것이며, 국가보안법은 내년까지 위세를 떨칠것이다. 자...

 

분노하고 슬퍼할일이 너무도 많은 세상속에서 쉽게 슬퍼하고 분노하면 그만큼 쉽게 지치고, 많이 패배하며, 허무해 진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나에게 화가나고 불편할 따름이다.

 

현실 운동의 위기 내지 붕괴와 우리(?)학교내의 학생운동의 반동적 퇴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 이상이다. 허나 나는 기류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다.

 

슬프고도 추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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