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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성탄의 기쁨과 사랑은 실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탄의 축복을 바라면서도 또, 그 존재를 부정한다.
외로운 이들이 더 외로운것은 성탄절이기 때문이며, 헐벗은 이들이 그나마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얼 원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성탄절이라고 쓸쓸히 보내는 젊음을 한탄해야 하는 것 인가? 아니면 소외된 인간들을 외면하면서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기원해야 하는 것 인가?
함께하는 성탄을 보내는 이들을 축복하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저주한다.
그렇게 365일 중 어느 하루와 같은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래 당신의 그 절박하고 솔직한 아웃팅을 존중한다...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안다.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대해 뜸금없이 물었다. 우리 오래된 선배부터 바로 윗학번 선배까지 얘기했다.
모두 사실이다. 나느 극복할 수 있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래도 나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의 극복과 승리를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선배 왈 더이상 분노 할 수 없다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행동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가 그만한 자기인식에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스스로 대세에 편입했으며, 그것이 그렇게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며 이쪽보다 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것이 어렵지만 이쪽보다 고달프지 않으며, 그것이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벽이었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좋다. 그 용기에 감복한다.
나는 열우당, 한나라당의 수괴 4명이 손을 잡는 모습을 보고 분노 하지 않는다. 또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걸 보고 가만히 있는 우리를 보고 분노하며 슬퍼한다.
파병동의안은 당빠 통과 될것이며, 국가보안법은 내년까지 위세를 떨칠것이다. 자...
분노하고 슬퍼할일이 너무도 많은 세상속에서 쉽게 슬퍼하고 분노하면 그만큼 쉽게 지치고, 많이 패배하며, 허무해 진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나에게 화가나고 불편할 따름이다.
현실 운동의 위기 내지 붕괴와 우리(?)학교내의 학생운동의 반동적 퇴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 이상이다. 허나 나는 기류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다.
슬프고도 추운 밤이다.
쌀의 시장개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하면 안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한다 해서 설득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훨씬 정확히 분석해 내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으니...
농민들이 동시다발로 투쟁을 벌였다. 더러운 도시 서울에 올라온 그들에게 미안하다. 여태 쌀밥 먹고 살아온 내가 죄송스러워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강남과강북을 이어주는 알량한 다리와 독립문 등에서의 기습시위는 쌀의 의미를 인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농민들이 모두 몸에 불을 질러도 쌀의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우리가 너무 어리석다.
그런데도 농민들이 나서고 있으니 더욱 미안하다. 농림부장관 당신은 내일부터는 쌀밥을 먹지마라... 치사하냐?
쌀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행동은 소농으로써 그들 생존의 의미를 초월한다. 쌀이 없으면 살지못하는 민족의 생존을 담보하고 있는 외침인 것이다.
그래 외국쌀먹으면 죽는거 아니다. 따지고 보면, 외국 비료쓰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구름이 내리는 비 맞어가면 크는 벼들 '우리'의 쌀 아니라 할지 모른다. 근데 그러면 그런 쌀 먹는 너는 '너'아니냐?
더이상 농민들을 괴롭히지 말자. 잘게 쪼게지는 대나무 장대 들고 올라와 자식뻘인 놈들에게 피흘려가며 맞게하지 말자. 너 쌀 먹을 것이라면 그러지 말자.
쌀 그거 어떻게 나오는지 너 알고 있다면 왈가왈부하지 말자, 경찰에게 맞아 흘리는 피보다 많은 눈물흘리며 키워내는 쌀기지고 장난하지 말자...
너도 흙을 먹어라... 텁텁하고 쌉싸름하고 목이 메이는 흙먹어라... 그리고 장롱속으로 들어가라...
미국이 북한 인권법을 만든다 했을때...
어이없음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일본이 그걸 또 만든다고 한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외한 일체의 대북지원을 중단한다 하는데, 그렇게 폭이 넓고 후덕한 오지랍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치사하게 그들 나라의 인권이니 뭐니는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네들이 북조선에게 대하였던 것은 과연 인간다운 것이었는가...
이름이 인권법인데, 내용은 돈을 주네 안주네, 돈을 벌게해주네, 아니면 고립시키네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아프기만 하다. 밥이없이 인권이고 뭐고 할 수도 없는 우리 존재가 슬프기만 하다.
사실 밥의 생명력, 그 존재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치사하다.
왜 밥을 빌미로 협박하는가. 자신들도 배고픈적이 있으면서. 배고픔이 그리 일찌감치 잊혀지는 것인가...
그들이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권일진데, 왜 밥을 차단하는가. 그게 미국과 일본의 밥을 지키는 것인가?
사실 굶어 죽어가는 전세계의 아동들이 열명중 여덟명임에도, 굶어죽은 아이가 장롱에서 나왔다고 신기해 하는 우리들은 너무 미련하기만 하다.
굶어죽는 이가 별로 없는 것이 아니라, 굶어죽기 전에 죽어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굶음을 신기해 하는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그것을 참다 죽음에 다가갔을 그 어린 아이의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느낄 것이가?
올해는 군세군 냄비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의 수와 액수가 줄어들었다 한다. 그와중에 어떤이의 책에서 모금함에 돈을 넣으라는 글을 읽고 지하철을 타고 모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착지점에 가기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모금함에 부담을 느꼈을 뿐 아니라 두려움 마져 느껴버렸다... 모든 모금함에 모금할 수 없었던 나의 주머니에 나는 부끄러웠으며, 미안하기만 했다.
사람을 감정적으로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모든이를 사랑으로써 대하여야 한다. 나는 사회적 존재의 당위로써 타인을 호의로 대하여야 한다. 허나 헛짓거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미움을 씻어내기에 너무나 힘들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나인가? 미움을 받는 그들인가? 아니면 사랑하라고 배려하라고 가르치는 자인가?
결핍은 욕망을 창출한다. 배고픔에 극에 달았을 장롱속 어린아이가 영양실조의 3살바기 동생을 고이 내버려 둔 것을 우리는 가슴속으로 감사해야 한다. 반성하자.
복학이 두달여 남았다.
복학해야 하나? 아니 복학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등록금은.. 학교다니면서 소비해야할 돈은?
복학하고 졸업하면 난 뭘 해야 하나? 뭘 할껏인데?
전역하기 6개월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아직도 어렵기만하다.
어떤이는 실행 가능한 것부터 천천히 시작하란다...
내가 무얼 시작할 수 있는지 알까 그는?
집은 어렵다. 가난 매우 간단명료한 단어다. 허나 그이상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럽다.
창피해서가 아니라 도피이고, 합리화라는 죄의식때문이다.
공부가 무엇을 담보해 주는지 나에게 가시적인 확신이 전무하다.
누가 나에게 길을 제시해주지도 않고 도움도 주지 않는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나도 알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무지하다. 나도 안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는걸 어쩌나.
답답한 연말이다.
힘내라는 말도, 열심히 하자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며, 공허한 외침이다.
난 또 옥상ㅇ ㅔ올라가 하늘을 보고 무슨 한탄을 할것인가...
산타는 미용실에 그리고 전사들은 고가 위에...
어제 미용실에 다녀왔다. 군대가기 전에는 학교 미용실에서 싼값에 이발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휴학중이고 또 그 미용실이 없어진 관계로 전역후에는 이대에 있는 거대 미용실에 다니고 있다.
커트비용이 비싼 관계로 나는 터럭이 빨리 자라남에도 한달에 한번 꼴로 이발을 한다.
미용실 스텝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풍기는 캐롤, 가요, 팝송이 임의 재생 되고 있었다.
산타처자들은 부산히 움직였고, 나도 미용실 특유의 냄새에 적응하고 있었다.
왜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는 하지 않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것일까...
국회의장이 파병연장안 통과를 위해 국회를 소집했지만, 여와 야는 앙숙인 관계로 파병연장 동의안은 처리 되지 못했다. 여전히 국회는 파행이다...
다행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고가 위에서 칼바람에 구호를 위치고 플랑을 내건 저 여전사들은 산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다시는 도락으로써 투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는 사명감도, 투쟁의식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문화제"를 찾았다.
오늘 저녁에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금속노조가 함께하는 이주노동자투쟁을 위한 작은 문화제가 있었다.
명동성당 들머리는 새파랗게 어린 나에게도 어마어마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공간이다. 허나 지금은 명동성당의 역사를 그리고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꺼 같아 아쉽다.
그 공간에서 있었던 수많은 집회와 문화제 그리고 천막들 그래서 그곳에서의 작은 문화제도 당연히 큰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으리라...
천막은 모두 치워졌고, 계성여고 여학생들과 성당 신도들은 무신경하게 오고가곤 하지만, 그래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추위에 떨며 문화제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투쟁의 힘듦과 어려움 보다는 희망과 따뜻함을 느꼈으리라...
밴드 바람의 보컬이 자기도 콧물이 난다며 훌쩍거리며, 콧물이 나는것 보니 살아있는거 아니냐며 우스겠소릴 하는데, 내 마음이 너무도 흔들렸다. 절망적이고 허무해도 그아픔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살아있음에 느껴지는 것이지, 그리고 아프지 않으려 우리는 희망을 찾는거지.
노래와 몸짓이 큰 감동과 효과를 주기에 나는 아직 감정적인가 보다, 그러나 이 기쁨과 따뜻함이 계속되길 바래본다. 더이상 슬프고 힘들어 하지 않고 싶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희망차고 의지높은 발언을 할때마다 저들에게 부끄러운 마음 뿐이다.
이젠 사명으로써 개입하자...
올 나이트...
대학교 저학년일때는 학교근처에서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시고 떠들고 노래불렀던 기억이 난다.
고래 고래 소리지르며 우는 여자 선배가 마냥 재미나고 아름다워 보였으며, 남의 동아리 전기장판을 깔고 뒹굴거려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어제 후배녀석이 말년 휴가나와서 밤 11시에 만났다. 그리고 강릉에 있는 선배 형이 친구 딸의 돌잔치때문에 인천에 올라온 김에 서울에서 보자고 하여 같이 만났다.
이들 셋은 밤11시 부터 아침 6시까지 밤시간을 쓱썩쓱썩 베어가며 마시고 부르고 뒹굴렀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보낸 밤은 과연 나만의 초라한 낮 보다는 한결 의미있고 돋보였다.
아직도 그들은 꿈나라를 열심히 여행 중이다...
신사역 먹자골목의 밤은 여느 거리의 낮보다 분주하고 화려하지만 우중충하고 때에 찌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낮은 찌들어 있었구나 싶었다. 나는 깨끗한척, 더러운것 안 묻히려는 척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더러운 인간이었다.
어젯밤은 나를 씻겨주었고, 나는 편안히 안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염되고, 다시 치유하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삶이라 위안해본다.
다시 눈을떠 오염되어가는 나를 느끼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지만,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어야지...
이주 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에 관한 영상물을 보았다.
작년 겨울에 시작되어 올해 겨울에 해단한 그들의 싸움은 단지 380이라는 수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리라.
남한에서 살기 가장 힘든 신분이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눈물을 흘리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나약한 마음을 수련하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과연 이들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을것인가? 과연 이들을 보고 도락에 빠져 읽을 것이며, 볼 것이며, 외칠 것인가?
나는 울적하다 싶으면 대중집회에 달려나가곤 했다.
시위대를 저지하기위해 출동한 진압중대 전,의경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는 모습만 보아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뿌듯하다 느끼곤 했다.
민중대회에서 민주노총이 사전결의대회를 마무리 지을즈음, 전빈련 대오와, 농민 대오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한곳으로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연출된것 같다며, 감동적으로 보았던 나를 생각한다.
과연 나는 사명으로 살고 있는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중요시 하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다고 다짐했던 나의 삶은 도락에 빠져있는 것 은 아닌가?
치열함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치열함이라는 것, 처지지 않는다함이라는 것...
가장 무섭고 두려운것은 긴장감을 잃는 것이다.
내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비켜나갈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흘려들을때.. 장애인 동지들의 투쟁에 잠시라도 무관심할때, 여성노동자들이 남성 동지들에게 상대적으로 박탈당할때...
나는 죽어가고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잊지말자...
죽을 수 있습니까! 투쟁!(천지인의 노래 '무엇을 원하나'中) 답을 하는 노동자 대중들의 목소리에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쳐져 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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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이든, 동아리방이든... 무언가 배울 것이나, 할 일이 있다면 복학을 하시지요. 딱히 그럴만한 것이 없다면 다른 곳에서 그걸 찾아야겠네요. 사실 별다른 배경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돈과 젊음을 바칠만한 곳이 못되지요. 우리나라 대학이라는 곳이....부가 정보